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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시대에 유호씨가 符都에서 道를 배워 가르쳤다

노중평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1/12/24 [22:46]
요임금이 조선의 사행철학에서 토土의 반란을 일으켜 독립해 나가자 단군왕검은 이를 걱정하여 유인의 손자 유호를 환부鰥夫로 임명하여 권사權士를 이끌고 요임금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사행철학은 4수의 철학이었다. 노자는 4수의 철학에 대하여 <도덕경> 제12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田獵

오색영인목맹 오음영인이농 오미영인구상 치빙전렵

令人心發狂 難得之貨 令人行妨

영인심발광 난득지화 영인행방

오색은 사람을 눈멀게 하고 오음은 사람을 귀먹게 하고

오미는 사람을 입맛에 길들여 사냥터로 달려가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여 재才를 얻기에 힘들어져

사람이 (도를) 행하는데 방해가 된다.



위 글은 노자가 “사람이 도를 터득하고자 하나 터득하기 힘이 든다는 것, 도를 허물거나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힘이 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색에는 먼저 오색이 있기 전에 사색四色이 있었다. 사색은 색도色道의 완성이었다. 오색이 색도의 경지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오색이 무색無色으로 색도의 경지임을 의미했던 것이다. 무색을 볼 수 있는 경지가 무색지색無色之色이었다. 그래서 오색으로 넘어가는 것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도이다. 불교에서는 도를 법法이라 하였다.

음에는 먼저 오음이 있기 전에 사음四音이 있었다. 사음이 음도音道의 완성을 의미하였다. 오음은 음도를 터득하는 경지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음無音의 경지였던 것이다. 무음을 들을 수 있는 경지가 무음지음無音之音이었다. 그래서 오음으로 넘어가는 것을 경계하였다. 이것이 도이다.

맛에는 먼저 오미가 있기 전에 사미四味가 있었다. 사미가 미도味道의 완성이었다. 오미는 미도를 터득하는 경지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미無味의 경지였던 것이다. 무미를 맛볼 수 있는 경지가 무미지미無味之味이였다. 그래서 오미로 넘어가는 것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오미는 입맛을 요사스럽게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입에 좋은 맛만을 추구하게 하였다. 양념이나 향신료의 발달이 이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옛날에 우리 조상은 제사음식을 만들 때 소금 이외에 다른 맛을 쓰지 않았다. 이런 것이 사행철학의 유습이었다.

사람이 오색, 오음, 오미에 맛 들이면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발광하게 만든다. 그래서 맛을 찾아 살육을 일삼게 되는 것이다.



先時有戶氏在於符都 採葛而不食五味 身長十尺 眼生火光

선시유호씨재어부도 채갈이불식오미 신장십척 안생화광

年長於壬儉氏百餘歲 承父祖之業 助壬儉氏而行道敎人

년장어임검씨백여세 승부조지업 조임검씨이행도교인

至是爲使 濟度頑迷之世 其行艱難

지시위사 제도완미지세 기행간난

먼저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 칙을 캐어 먹을 지언즉 오미를 갖춘 음식을 먹지 않으니 신장이 10척이요 눈에 불빛이 생겼다. 임검씨가 1백여세 때에 아버지가 조상의 업을 승계하여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백성을 가르쳐 쓸 수 있도록 하여 완고하고 혼미한 세상을 제도하였으나 어려움이 많았다.



마고시대의 마고성을 단군왕검시대엔 부도라 하였다. 이름을 바꾼 것이다. 왜 이름을 바꾸었을까? 거기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마고성이란 호칭은 마고시대에 마고선파가 썼던 호칭이었고, 부도란 호칭은 단군왕검시대의 동방선파가 썼던 호칭이었다.

부도에선 마고시대에 부도에서 썼던 유습을 그대로 계승하여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오미를 가진 음식을 먹지 않고 금기하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칙을 캐어 먹는 한이 있어도 이 계율을 지켰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문명의 발달이 사행철학의 벽을 허물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도, 귀로 들을 수 있는 도, 입으로 맛볼 수 있는 도를 모두 잊어버리게 되어, 보고 듣고 먹는 도를 찾지 못하게 되자, 종교를 만들어 정교에서 찾으려 하였다.

도를 찾는 도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찾는 도교이다. 무위란 “도가 아무 것도 행하는 것이 없지만 이루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는 도교철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도를 법으로 바꾸어 말했다. 법이 생하는 것이 없지만 이루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단군왕검은 나라 안에 부도를 건설하고 유호를 환부(환부는 도인의 머리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로 임명하여 도를 배우게 하여 백성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그 도가 사행철학과 오행철학 사이에 있는 도이다.



도를 수련한 단군왕검은 오미를 취하지 않아서 신장이 10척 장신이었고 눈에서 불빛이 났다. 그리고 1백여 세나 되어서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직업을 유호씨에게 가르쳐 백성을 가르치게 하였다.

단군왕검은 동방선파의 마지막 종정宗正인데, 그의 부친에게서 배웠다는 것은 단국檀國의 홍제洪帝에게서 배웠다는 것을 말한다.



濟度頑迷之世 其行艱難은 단군왕검이 도를 가르친 시대가 완고하고 미혹한 시대라 하였는데. 이 시재는 치우천왕이 황제에게 패하여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난세를 평정하고 조선을 선포하였다. 그래서 전쟁을 치르라고 도를 행하기 힘들었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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