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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복원해 드립니다 -신라 건국

노중평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1/12/29 [16:37]
배달나라는 신시체제로 운영되던 연합체 국가였다. 한국의 마지막 천제인 지위리 한인이 한웅에게 제국을 인계하여 생겨난 나라였다. 한국은 9한족에 속한 64민이 제국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 제국이 배달나라로 넘어가면서 9한 64민이 9려족으로 통합되었다.

9려족은 1세 한웅천왕에서 시작하여 18세 거불단 한웅에 가서 끝났다. 17세 혁다리 하웅에서 18세 거불단 한웅, 19세 단군왕검까지 3세는 단국이라 하였다. 단국의 3세 단군왕검이 조선을 선포하여 단국은 3세로 역사를 마감하였다. 

배달라나의 신시체제는 14세 자오지한웅 때 신시체제가 붕괴하였다. 이때는 중원의 남쪽에 유망의 유백국, 산동반도에 치우천왕의 청구국, 산동반도 북쪽에 황제의 유웅국이 서로 배달나라의 신시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력이 막상마가였기 때문에 황제가 신시체제에 반기를 들고 독립하려 했기 때문에 치우천왕이 천왕으로서 하백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판천에서 10년 전쟁을 치러야 하였다. 이때가 BC 517년경이었다. 탁록에서 치우천왕과 황제가 마지막 결전을 치렀는데. 이 전쟁에서 환제군에 속한 응룡군이 탁수를 막아 수공을 가하는 바람에 치우군이 전멸하였다. 청구군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묘족은 3방향으로 흩어졌고, 다른 일부는 태산감당泰山堪當이라는 치우천왕 신표를 들고 태산을 끼고 산동반도와 그 주변에 정착하였다. 이들 중에서 단국이 일어났고, 단국이 조선으로 변신하였다.

진이 나타나 조선은 BC 283년 경에 진에게 멸망하고 춘추전국시대로 들어갔다. 산동반도 일대에 래이족萊夷族이 흩어져 살았는데, 다시 제齊가 일어나 이들을 압박하기 때문에 산동반도 일대에 흩어져 살던 인종들이 한반도의 소래蘇萊를 거쳐 한반도 전역에 흩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3한을 구성하였다. 이들 중에서 부여계,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가 나왔다. 

이런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신라사람들은 배달나라 멸망기에 배달나라의 근거지인 탁록涿鹿에서 온 사람들로 볼 수 있다. <광여기廣輿記>에, 탁록에 대하여, “북쪽으로 곧장 진秦의 보안주保安州로 상곡군上谷郡에 속한다. 한漢은 탁록성涿鹿城이라고 하였다. 서남쪽에 탁록산涿鹿山이 있다.”고 하였다. 탁록은 진나라 때 진에 속한 땅이었다. 그래서 진을 멸망시킨 한이 이 곳의 이름을 상국商國 때부터 써오던 이름 그대로 써서 탁록성이라고 하였다. 상곡군이 탁수涿水가 발원하는 탁록산에 있다. 

또 <주례추관周禮秋官> 주註에, “탁涿을 수명水名(강 이름)이라고 하였고, 탁록현涿鹿縣의 상곡上谷에서 흘러나온다”고 하였다. 이 탁수가 신라사람들과 관련이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辰韓(秦韓)조에는, 최치원崔致遠의 말을 인용하여, “진한은 본래 연燕나라사람들이 피란해 온 곳이므로, 涿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사는 읍리邑里를 사탁沙涿(주, 새 탁수, 혹은 새 탁록이라는 뜻), 점탁漸涿(주, 탁수가 천천히 흐르는 곳) 등 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신라에서는 탁을 도道로 발음하였다.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아서, 신라사람들의 상당수가 탁록에서 이주해 온 것이 들림이 없다고 본다. 탁록은 하북성 탁록현에 있다. 

원래 탁록은 4500여 년 전에, 치우천왕蚩尤天王과 황제黃帝가 10년 전쟁을 벌인 곳이다. 이곳에서 치우천왕이 패하면서, 청구국靑邱國이 멸망하였다. 탁록으로 불리기 전엔 청구靑丘로 불렸다. 상商(은殷) 때 청구가 탁록으로 불렸다. 이어서 상이 주周에게 멸망하였고, 주가 진秦에게 멸망하였고, 진은 한漢에 멸망하였다. 이렇게 왕조가 바뀌었어도 탁록이라는 지명은 바뀌지 않았고, 지금도 중국 북경의 서북쪽에 하북성 탁록현이라는 지명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신라사람들을 진이 망해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였는데, 진이 한에게 멸망하면서, 탁록에서 유민이 발생하여 대량으로 신라 땅에 이주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신라 땅에 진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있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1에는, “먼저 조선유민朝鮮遺民이 산곡山谷 사이에 나뉘어 살며 6촌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조선유민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단군조선유민, 기자조선유민, 위만조선유민의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단군조선이 진시황(BC246~206) 8년(BC239)에 진에게 멸망(<檀君世紀>)하였으므로, 신라에 정착한 조선의 유민은 단군조선의 유민이다. 그러므로 기자조선유민과 위만조선유민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신라에 정착한 유민은 진에 멸망한 단군조선유민과 한에 멸망한 진의 유민 둘로 볼 수 있다. 한에 멸망한 진의 유민은 황제에게 멸망한 청구국의 후손들로 볼 수 있다. 청구국 이 멸망한 이후에, BC2457년경에 천일태제天一泰帝가 다스리는 단국檀國이 생겼다. 단국은 BC2333년에 단군왕검(천일태제의 손자)에 의하여 생긴 조선의 전신이다. 조선이 진에게 BC238에 멸망했으므로, 청구국 멸망 후, 약 2128년 후에 신라가 생긴 것이다.

 

신라의 전신 斯盧國의 정체

 

사로국斯盧國이 주축이 되어 신라를 건국했는데, 사로국의 사斯는 ‘새롭다’는 말이고, 로盧는 ‘말을 키우는 부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로국은 새 땅에 이주한 말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단군조선시대에 이러한 족속을 마가馬加라 하였다. 마가는 단군조선을 세운 오가五加 중의 하나이다. 이들이 말을 키우고 말을 다루는 종족이었으므로, 이들이 기마민족騎馬民族의 조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三國志> 동이전東夷傳 한韓에는, “한은 대방帶方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끝이 났고, 남쪽은 왜倭와 연접되어 있는데, 지방은 4천리나 된다. 이 한은 세 종족이 있다. 첫째는 마한馬韓이요, 둘째는 진한辰韓이요, 셋째는 변한弁韓이다. 진한은 옛날의 진국辰國이다. 마한은 그 서쪽에 있다. 이 지방 백성들은 대대로 여기에 와서 사는 사람들로, 벼를 심어 곡식으로 먹고, 누에를 쳐서 비단을 짜 입을 줄 알았다.”고 하였다. 이들 나라가 50여 나라가 된다. 이 중에서 큰 나라는 인구가 만여 호가 되고, 작은 나라는 인구가 몇 천 호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들 나라 중에서 사로국과 관련이 있는 나라로 볼 수 있는 나라가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막로국莫盧國·구로국狗盧國·사로국駟盧國·정로국挺盧國·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매로국邁盧國 등 8국이다.

 

8국의 이름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속로불사국은 오래전부터 말을 길러온 나라, 자리모로국은 소를 기르는 나라, 막로국은 막조선에 속했던 말을 기르는 나라, 구로국은 구가에 속했다가 말을 기르게 된 나라, 사로국은 말이 끄는 수레를 만드는 나라, 정로국은 특출하게 말을 잘 기르는 나라, 모로비리국은 소를 기르는데 선비국을 떠나온 나라, 매로국은 뛰어나게 말을 잘 기르는 나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나라'라는 말에는 ‘말을 잘 기른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나라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 나라가 斯盧國(새나라)이다. 그러나 <삼국지> 동이전 한에는 駟盧國(말이 끄는 수레를 만드는 나라)라고 하였다. 신라新羅는 사로斯盧의 변음이다.

이외에 신라초기에 서라벌徐羅伐·서벌徐伐이라고도 불렸는데, 서徐는 소蘇의 변음이다. 소벌도리蘇伐都利가 사로국의 육부촌장六部村長의 수장으로서, 박혁거세를 신라의 초대 임금으로 내세웠다.

우리역사에서는 소벌도리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데, 소벌도리의 조상에 소풍이 있고, 소풍이 한국을 세운 한인천제의 60세 손이라 소벌도리를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의 역사가 신라를 세운 소벌도리를 징검다리로 해야 중국 땅에 버려진 우리 대륙의 역사를 되찾아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동이전> 변진전弁辰傳에 24국이 나온다. 먼저 50여 국이었다가 통폐합되어 24국으로 줄었다고 볼 수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 중에 사로국駟盧國이 없어지고 사로국斯盧國이 생겼다. 사로국斯盧國에 새 나라라는 뜻이 있으므로, 로盧자들어가는 8나라가 사로국斯盧國에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로국盧國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나라들이 생겼는데, 변진반노국弁辰半奴國·변진낙노국弁辰樂奴國·변진미오사마국弁辰彌烏邪馬國·변진감로국弁辰甘露國·시로국尸路國·마연국馬延國·변진정조마국弁辰定漕馬國·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사로국斯盧國 등이다. 노奴와 로路와 로露는 로盧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이름들이다. 말을 의미하는 마馬는 말을 키우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로盧와 같은 뜻으로 섰다고 볼 수 있다. 이들 나라들이 공통으로 로자를 나라 이름에 가지고 있었으므로, 신라가 생길 때 신라에 편입되었을 것으로 본다.

 

蘇伐都利와 己私國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신라의 임금으로 세운 소별도리는 어느 나라 사람으로 불 수 있을까?

변진 24국 중에서 기사국己私國이 소벌도리의 나라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소벌도리의 조상이 소풍蘇豊(<부소보서扶蘇譜序>·<동근구보서東槿舊譜序>·<소씨상상계蘇氏上上系>)이고, 소풍의 원래 족성族姓이 기성己姓이었기 때문에, 기사국을 소벌도리의 나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성己姓이 원래 풍이족風夷族에서 나오므로, 사私는 사巳의 변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기己가 사巳에서 나왔음을 밝히는 문자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주:

풍이족 “우리나라에서 고대에 사蛇(뱀)자의 부수인 충虫(벌레)자, 또 사巳(뱀)자로서 씨족의 성을 삼는 예가 적지 않았다. 이로써 뱀을 숭상하는 씨족(본고 필자 주, 風夷)을 이루게 되었다. <모문리>에서는 蛇자와 虫자와 사巳자가 성씨로서 통용되었고, 옛날의 말에서는 작은 뱀이 충虫자가 되었다. 사람과 관련하여 독충毒虫을 사蛇라고 하고, 지금도 사蛇를 장충長虫(긴 벌래)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고대의 치우蚩尤, 축융祝融(본고 필자 주, 衆艅鯀), 우禹(본고 필자 주, 중여곤의 사위 <尙書>)...는 충虫자를 따랐다. 풍씨족風氏族의 복희伏羲, 여왜女媧도 충虫자를 따랐다.”

 

이 글은 지나인이 지나인의 관점에서 쓴 글이므로 이 글의 오류를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씨족이라는 말을 썼는데, 풍風은 씨족의 씨칭氏稱이 아니고 족성族姓이다. 족성은 모계성母系姓을 말한다. 다음에 풍씨족風氏族이라고 했는데, 이때엔 씨족氏族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풍이족風夷族이라 해야 맞는 것이다.

 

이 글의 취지는 충虫자와 사巳자에서 성姓들이 나왔다는 뜻인데, 풍이족의 족성에서 복희伏羲, 여왜女媧, 치우蚩尤, 축융祝融, 우禹라는 족성이 나왔다는 것이다. 복희틑 포희包羲라 했는데, 포包자에 사巳가 들어 있으므로 풍성으로 보고, 또한 여왜는 복희의 누이이므로 그도 또한 풍성에서 나왔다고 본다. 蚩尤의 치蚩에 충虫이 있으므로 역시 모계족성이 풍風임을 알 수 있다. 축융의 융融에도 충虫이 있으므로 모계족성이 풍風이라 본다. 우禹 또한 충虫이 있으므로 모계족성이 풍이라 본다.

 

여기서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축융을 처음 쓴 분은 9,900년 전에 한국을 세운 풍이족 출신의 한인천제라는 점이다. <부소보서>에, 한인천제를 적제赤帝 축융祝融이라고 하였다. 그가 풍이족의 시조가 됨으로 융融자에 충虫자를 썼던 것이다. 따라서 풍이 풍이족의 족성임이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춘천의 설화와 민요>에서는 우씨족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성씨가 양楊씨라고 하였다. 치우천왕은 을묘년(BC2706년)에 즉위하였는데 강수姜水에서 살아 성을 강姜이라고 하였다. 유망도 강수姜水에서 오래 살았다. 그래서 그의 성이 강姜,羌이 되었다. 황제 또한 유망의 이복동생이므로 같은 곳에 살았고, 성이 강씨가 되었다. 강姜자에는 양羊자가 들어 있다. 양자가 들어 있는 강자를 성으로 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같은 모계집단에 소속한 유목민이었다는 증거가 된다.

 

<동근구보서>에 “적제(주, 한인천제)의 후손은 風, 姜, 姬, 己 등 여러 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적제의 61세손 곤오가 기己를 소蘇로 바꾸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강, 희, 기가 모두 풍이에서 나온 모계족성임을 알 수 있다.

 

양성楊姓은 희성姬姓에서 나온다. 희성은 황제의 또 다른 성이다. 주周 선왕이 아들 상부尙父를 양楊(호북성湖北省 양번楊樊 일대)에 봉하여 양성楊姓이 되었다. 양성楊姓은은 지나성의 6대 성중의 하나라 한다.

 

이 고장에 우성과 양성이 정착한 역사가 오래 되었음을 이들 우성과 양성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 두 성이 무슨 이유로 앙숙이 되었는지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소벌도리蘇伐都利를 풀어 쓰면 소도벌도읍리蘇塗伐都邑利로 풀어 쓸 수 있는데, 利는 里와 같은 음과 뜻으로 본다. 소벌도리를 풀면, “소도를 세운 벌판에 정한 도읍이 있는 곳”으로 풀린다.

변한에 속한 50여 국 중에 신소도국臣蘇塗國이 있는데, 신소도국은 소벌도리의 나라인 기사국의 신하나라이거나, 새로이 소도국蘇塗國으로 지정이 된 나라로 볼 수 있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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