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단군왕검과 같은 시대의 사람 堯와 舜

노중평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1/12/30 [12:42]
단군왕검의 시대는 요순堯舜의 시대와 맞물려 있다. 화이의 신화는 요를 신선의 반열에 올려놓고, 그의 신하도 모두 신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는 제위에 오른 동생 기를 죽이고 제위에 올랐고, 순은 요를 죽이고 제위에 올랐다. 우는 순을 죽이고 제위에 올랐다. 화이는 요순을 성군이라 이르고, 이 시대를 사상 유례없는 태평성대라 하였다.

 

요는 제곡고신帝嚳高辛의 아들이다. <죽서기년竹書紀年>(죽간竹簡에 기록한 연대표)에서 그를 도당씨陶唐氏라 하였다. 왕자시절엔 동궁東宮(태자)으로 불렸다. 그러나 아버지 제곡고신은 요를 젖히고 동생 지摯를 제위帝位에 올렸다. 요가 대권 경쟁자인 중려를 죽였으나 허사가 되고 말았다.

요의 씨칭은 천군天君이다. 요는 두 아들 단주丹朱, 고도皐陶와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두었다.

 

순(제위 9넌, BC 2320~3212)은 전욱고양顓頊高陽(BC 2467~2421)의 제5자이다. <죽서기년竹書紀年>에서 그를 유우씨有虞氏라 하였다.

순은 모계사회를 부계사회로 혁신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에게서 유신維新이라는 말이 나왔다. 당시는 푸날루아로 맺어진 사회였다. 푸날루아는 근친상간의 복수複數 혼인 제도를 말한다. 남편이 둘에 부인이 둘이다. 이를 개혁하여 1부1처제로 만든다는 뜻을 가진 말이 유신이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제위에 올랐다. 유신에 성공하는 듯싶었으나, 그의 혁명정책에 반기를 든 모계사회가 우禹를 내세워 쿠데타를 일으켜 순을 죽임으로써 그의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쿠데타의 주동자는 요의 어머니이면서 순의 왕고모인 종규가 곤의 딸 간적, 그의 아들 우, 우의 부인이자 곤의 딸 사모무, 또 순의 딸 사모신이었다. 우가 순울 죽이고 모계 가족과 친족이 우를 제위에 올려놓았다.

동서同壻라는 말은 두 여자의 공동 남편이라는 말이다. 이들이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그래서 동서라는 말이 배신背信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유호씨는 <부도지>의 기록 이외에 알려진 것이 없다. 부도지에서 유호有戶라 하였고, <죽서기년>에서 유호有扈라 하였다.

 

時堯見有戶氏之子有舜之爲人 心中異圖 任事以示協

시요견유호씨지자유순지위인 심중이도 임사이시협

以其二女誘之 舜乃迷惑 有舜曾爲符都執法之鰥夫

이기이녀유지 순내미혹 유순증위부도집법지환부

過不及而無節 至是爲堯之所迷 密聚其二女 暗附協助

과불급이무절 지시위요지소미 밀취기이녀 암부협조

그때 요가 유호씨의 아들 유순의 위인 됨을 보고 마음 가운데에 다른 생각을 그리더니 일을 맡기면서 도와주었다. 그의 두 딸로 유혹하니 순이 미혹 당하였다. 유순이 일찍이 부도의 법을 집행하는 환부가 되었으나 능력이 모자라 절도를 지키지 못하니 요에개 미혹당하여 요에게 가서 있게 되었다. 두 딸 여영과 안을 몰래 취하여 몰래 붙어 협조하였다.

 

본문에 유호, 유순하고 씨칭을 붙인 것은 모계나라가 아니라 부계나라라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역사에서 씨칭을 시작한 사람은 황제였다고 전해 온다. 황제는 25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씨칭을 붙여 주었다.

 

요는 동생 지를 죽이고 제위에 오른 후에 유호씨의 아들 유순의 사람 됨됨이를 보기 위하여 두 딸을 유호씨에게 시집보냈다. <열녀전>에 유우이비有虞二妃라는 기록이 있는데, <부도지> 18장에는 <열녀전>에서 有虞를 순이라 하였다. 유우와 순이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요의 두 딸에게 장가 간 사람이 유순有舜이었다. 그러므로 유우, 유호, 유순이 같은 사람이라 하겠다.

조선의 단군왕검 치세 때 BC 2198년(병진 49년)에 “당요가 순을 불러들여 두 딸 중에서 큰 딸 아황娥皇은 정비로 둘째 딸 여영女英은 차비로 시집보내어 순으로 하여금 국정을 맡아 보게 하였다. 순이 요지遼地(요서와 요동)에 3주를 설치하고자 하였으나 단군왕검이 불가하니 중지하라고 유시하라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朝鮮紀>)



순이 한 때 환부를 맡아 보았으나 능력이 딸려 절도를 지키지 못하였다. 우가 반란을 일으켜 순을 죽여 창오蒼梧에 장사지냈다. 요의 두 딸 아황과 여영은 원沅(호남성에 있는 큰 강)과 상湘(광서성 안흥현에서 동정호로 흘러드는 강)이 합수하는 곳에 빠져 죽었다. 후세에 정비는 상군湘君이라 하였고, 차비는 격을 낮추어 상부인湘夫人이라 하였다. <초사楚辭>를 지은 굴원屈原은 상군과 상부인을 제사지낼 때 읊어주기 위하여 湘君이라는 시를 지었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