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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고암 전 종정스님과 동행한 하심길

<박삼중 스님 대증언> 고암스님 생전 베푼 은혜로운 행적 풀어놓다

김성애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2/01/09 [11:22]
조계종에서의 종정스님이란 살아계신 부처님 한 분으로 수천 년 동안이나 거느리는 역사적인 사찰들을 대표하는 자리였다. 생불로 모시는 자리를 무려 세 번씩이나 역임했던 고암 스님(조계종 전 종정, 1899~1988)은 인욕과 자비를 최우선으로 스스로 겸손하게 하는 하심행을 한평생 일관했다. 대부분 두 번만으로 역임하는 종정스님들에 비하여 고암 스님은 세 차례씩이나 연임할 정도로 청정한 생불로서 높게 칭송받았다. 평생을 자비와 하심으로 일관했던 고암 스님은 1967년 3대 종정에 오른 이후 흔들거렸던 조계종단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다. 그 시대를 함께 동참한 삼중 스님은 고암 스님이 살아생전 베푼 은혜로운 행적들을 풀어놓았다.

▲ 삼중 스님     ©브레이크뉴스
불가 법규에서는 스님들끼리 만나면 삼배를 하면서 상대에게 존경심을 표현했다. 이런 풍습에서 큰스님을 만나면 아래 스님들은 우러러 모시면서 삼배 큰 절을 올리곤 했다. 그런데 이런 따스한 정경이 현대사회에서는 비딱선을 탔는지 일부 큰스님들은 자기 자신을 오만스레 삼배 큰절을 받으려는 겉치레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삼배 예도에 걸림돌을 놓은 사람이 있었다.

한철 장관이라도 영원한 장관이야?

고암 종정 스님에게 삼배 큰 절을 할라치면 한 배만 받고서는 자리에서 발딱 일어섰다.

“아니! 왜 그리 일어나십니까?”

종정 스님이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절을 하다만 삼중 스님은 황당한 마음에서 질문했다.

“요새는 악수를 하는 거야요.”

“대한민국에서 삼배 큰절을 종정 스님이 받지 않으신다면 어디에다가 삼배를 해야 합니까? 어서 앉으십시오.”

“그냥 악수하면 되지, 왜 한사코 사람을 불편하게 해요! 그냥 앉아요.”

우리 불교사에 이리 천진하고 겸손한 종정 스님의 모습에 삼중 스님은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더욱이 자신의 시자나 상좌라 할지라도 일단 스무 살이 넘어선 성년이 되는 순간부터는 존댓말을 썼다. 고결한 종정 스님을 조금이나마 닮아보겠다는 생각에서 삼중 스님도 덩달아 따라 행동에 옮겼다. 신문 방송에서 생불처럼 묘사하는 통에 불편한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신도들이 삼배라도 할라치면 저도 모르게 이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버려요. 그런데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내가 먼저 절을 해버리면서 모면하려 하죠. 그리 한평생을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다하신 고암 스님도 삼배를 받지 않으셨는데 난 계율을 지키지 않는 스님도 아닌데 어떻게 삼배를 받을 수 있겠어요.”

고암 스님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하심의 경지를 최상으로 끌어올린 생불도 삼배를 마다했다. 그런데 조그만 절간이라도 소유한 스님들은 이상하게 곡해한 나머지 버티고 앉으면서 삼배를 받고자 고집 부렸다. 심지어 삼배를 하지 않는 신도들에게는 내 꼴이 뭐가 되느냐는 식으로 젠체하며 위선적인 모습들을 들어냈다. 삼불을 생각하면서 삼배 절을 하는 불법승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면서 상대방을 높이는 기본적인 계율을 잘못 해석해 버린 탓이었다.

절간뿐만 아니라 세상사에서도 채 6개월도 채우지 않는 장관자리가 영원한 장관 자리인 줄 착각하는 부류들이 허다했다. 심지어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서도 자기 자신을 ‘아무개 장관’이라 칭하는 사람들은 ‘OOO 장관’이라는 명패를 늙어 죽을 때까지 내밀었다. 주변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옹색한 나무 꼭대기에 자신의 목줄을 잡아 매버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잠깐 장관직을 스쳐지나갈 뿐이지 영원히 장관 자리를 지킬 수 없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그 사실을 무시해 버렸다.

“장관이 자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장관직에서 인간적으로 대하면 어느 때라도 인간적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어요. 이런 말 하면 좀 곡해할 소지가 있을지도 몰라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벼슬 떨어진 시골 할아버지처럼 느껴지는 인간적인 따스함으로 주변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고암 종정 스님처럼 그리 인간적으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신 분은 이 세상에는 없을 겁니다.”

존경하는 마음에서 보살들이 돈다발을 고암 종정 스님에게 많이도 갖다 바쳤다. 종정 스님뿐만 아니라 불교 계율을 지키는 스님들은 돈을 몰라야 했다. 돈을 가장 잘 모르는 스님 중에 가장 대표적인 스님은 바로 고암 종정이었다. 돈을 돈으로 보지 않는 모습을 보이니 종정 스님의 주머니에는 돈이 더 많이 채워졌다. 아마도 수백억이 넘을만한 돈들이 종정 스님의 주머니를 거쳐 갔다.

“이거 가져가서 병원비에 보태 써요!”

주머니에서 잡히는 돈 뭉치를 지나치는 불쌍한 신도들에게 쥐어주었다. 삼중 스님은 고암 종정 스님이 한 번도 돈을 세는 모습을 보지 않았기에 손에 잡히는 돈이 얼마인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 모습에 반하여 신도들이 주머니를 불룩하게 채워주면 다른 불쌍한 신도에게 잡히는 데로 주어버리는 부처였다. 지방 사찰에서 고암 스님을 법회에 초청하면 100만~200만원의 법사비를 전달하는 것이 예의였다. 절 분위기를 살펴보고는 가난하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도 모르게 법당 탁자 위에다 법사비를 올려놓곤 했다.

건네주는 방법도 정말로 조용히 마무리하는 하심하는 모습이 바로 종정 직책을 세 번씩이나 연임할 수 있게 만든 바탕이었다.

“아니! 그리 잡히는 대로 돈을 주시면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이제는 노후대책이라도 조금씩은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이리 손에 잡히는 대로 주변 가난한 신도들에게 돈을 뿌려대는 고암 종정을 삼중 스님은 걱정했다.

“노후대책? 그럼 예금하라는 말이지요? 난 빚이 많아서 그 빚을 죽을 때까지 갚아야 돼요.”

“종정 스님께서 무슨 빚이 있으셔서 그러십니까?”

이리 청정한 스님이 세상 빚을 얼마나 많이 지었기에 주머니에 넘나드는 돈들을 나르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있지요. 오늘은 한가하니 내가 빚진 이야기 해줄게요. 내가 19살 때 저 강원도 금강산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왜정 때여서 금강산에 입산하려면 나룻배로 큰 강을 건너가야 하는데 뱃삯은 10전이었어요. 그런데 내 주머니에는 탁발해서 모은 돈이 겨우 5전밖에 없어서 사공한테 사정사정을 해보았지만 배에서 질질 끌려나왔어요. 그런데 배 안에서 어린애 젖을 물리고 있던 젊은 아낙네가 나를 부르는 거야요. ‘스님! 이리오세요. 제가 5전 보태 줄 테니 어서 배 타세요.’ 그 시절은 남녀유별한데다가 내가 아주 부끄러움을 많이 탄 탓에 고맙다는 인사를 한마디도 못하겠더라고. 입에서만 맴맴 돌 뿐 배에서 내릴 때까지 젊은 아낙네의 이름과 주소조차도 물어보지도 못한 채 그냥 내려버렸어요. 그러니 한평생 그 빚을 갚으려면 죽을 때까지 빚을 갚아도 못 갚을 거야요.”

뱃삯 5전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고암 종정은 아마도 수백억이나 되는 돈을 주변 가난한 이웃들에게 갚았다.

가장 기본적인 자비로운 심지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던 고암 스님이 유점사에서 남긴 일화에서도 그 단면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쓴 글씨가 아닌데

유점사 500명이나 넘는 스님들이 겨울철을 나기 위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공양주로 나서야 하는 판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금강산에서 겨울철은 상상할 수 도 없는 매서운 추위여서 홑옷만 입는 시절이었으니 공양주로 겨울내기를 한다는 것은 죽음 그 자체였다. 그런데 금강산에 입산한지 얼마 지나지 않는 고암 스님이 나섰다.

“여러 대중들을 위해 겨울 한 철은 제가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추위뿐만 아니라 500명이나 넘는 스님들에게 세끼 밥을 혼자서 챙기는 공양주는 한잠도 잘 수 없는 고행 길을 선택했다. 직책 있는 스님들은 다른 방에서 잠을 잘 수 있지만 수행하는 스님들은 아주 큰 방에서 500명 함께 잠을 잤다. 9시에 무조건 자리에 눕고 새벽 3시에 눈을 뜨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통에 신발을 가지런히 정돈해서 벗어 놓았다. 그런 어느 날 대중공사를 끝내고 나오는 스님들은 깨끗하게 닦아진 신발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군가가 이 추운 날에 신발을 깨끗이 닦아 놓았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살금살금 몇 켤레씩 가져가서는 신발을 닦아놓는 범인을 색출하고자 창호지 틈 사이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지. 고암 스님이 바로 범인이구나. 공양주살이도 힘들어서 죽을 판인데 이런 일까지 하면 어찌하려 해!”

“제가 잘못했습니다. 스님들 허락을 받고서 해야 하는데 그만 허락도 없이 해서 죄송합니다.”

이십대 삼중 스님은 처음으로 해인사에서 고암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때는 그토록 소망하던 사법고시를 정식으로 해볼 요량으로 대학 3학년으로 편입했던 시기였다. 절간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은 불경 이외에는 외서도 읽을 수 없었던 계율을 많이도 벗어난 행동이었다. 요새처럼 당당하게 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으나 무슨 배짱이 있었던지 삼중 스님은 교복에 교목까지 쓴 채 신도들과 함께 해인사까지 동행했다. 신도들이 대법당에서 큰절을 올리는 동안 삼중 스님은 교복 입은 모습을 다른 스님들에게 들키지 않을 방편으로 법당 뒤편에서 서성거렸다. 그런데 해인사 옆 용탑선원에 계신 고암 스님이 교목까지 쓴 삼중 스님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삼중 스님! 그 옷 참 잘 어울려. 훤하게 생긴 얼굴이 더 멋져 보여요. 진작부터 교복 입고 다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백년도 넘은 누더기보다는 정말 좋아요.”

고암 스님이 비꼬면서 하는 인사말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다른 스님들이 이런 식으로 말했더라면 배배 꼬인 속내가 보인다는 생각에서 얼굴을 붉혔겠지만 고암 스님만은 예외였다.

“여기까지 왔으면 내 방으로 와야지 왜 이리 뒤편에서 어슬렁거려요. 이것 학비에 보태 써요!”

고암 스님은 주머니에서 한 움큼 돈을 집어서는 삼중 스님에게 건네주었다. 이런 고마운 고암 스님에게도 숨어 있는 가시는 말 중에 살아 있었다. 몇 겹이나 덧기워서 아예 천조 각이 한 곳도 보이지 않는 누더기 장삼을 입고 다녔던 삼중 스님을 독특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발광하는 빛을 매달고 다니면서 천하에 무서울 게 없었던 삼중 스님은 다른 스님들이라면 감히 하지 못하는 일들을 만들어 가면서 소란스럽게 살았다. 누덕누덕 기워진 장삼을 입은 채 명동 한복판을 휘저으면 눈 달린 사람이라면 기괴한 구경거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였다. 소란스런 누더기로 명동거리를 활개 치는 간덩이는 어지간히 커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날카롭게 찔러대는 시선들을 생각하면 감히 입어보지 못했을 누더기 장삼을 벗어던진 후 교복을 입은 모습을 고암 스님은 진심으로 칭찬하는 말이었다.

대다수 종정 스님들이 다른 사찰을 방문할 때면 언제나 수십 명이 넘는 상좌들을 대동하면서 방문하는 게 관례였지만 고암 스님만은 홀로 다녔다. 청하 보경사에서 삼중 스님이 주지로 있을 무렵에도 법문에 초청받은 고암종정은 그 많은 상좌들을 물리치고는 혼자 방문했다. 종정 스님이 아니라 일반 스님들에게도 사찰을 방문했다가 떠날갈 때는 언제나 여비조로 자그마한 성의를 건네는 게 예법이었다. 그러니 삼중 스님이 법문을 한 대가로 봉투 하나를 건네주니 고암 스님은 펄쩍 뛰었다. “원래 이리 드리는 게 당연해서 그럽니다. 제발 용체에 보태 쓰세요.”

“무슨 소리를 그리 하세요. 삼중 스님이 그 좋은 보경사 주변을 하루 종일 나를 안내해 주었잖아요. 그러니 이 돈은 절대 받을 수 없어요.”

독사를 보듯이 돈을 내쳐버리면서 고암 스님은 끝내 돈 봉투를 받지 않았다. 이렇듯이 살아있는 부처를 지켜보는 세월 속에서 삼중 스님 자신도 가끔씩 자신을 부처처럼 느껴질 때가 더러 있었다. 사형수와 마주 앉아서 안타까운 그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을 때에는 가끔씩이나마 부처의 마음이 깃든 것처럼 느껴졌다. 사형수가 쏟아내는 별의별 이야기들을 다 들어주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런 이상스런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찾아드는 속물근성들이 가득 차 버리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실망스럽게 끝을 냈다. 그러나 오로지 고암 스님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앉으나 서나 똑같았다.

이국땅에서 상대방 포교원에다가 한창 똥칠을 하고 있던 어느 날엔가 고암 스님이 불쑥 보현사를 방문했다.

“아니? 어떻게 이 절까지 오셨습니까?”

“왜 그래요? 내가 못 올 때라도 온 거야요?”

천진무구한 표정으로 다가서는 고암 스님의 얼굴에서는 어떤 불편한 심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장 가난한 절들을 찾아다니면서 잘 살펴준 후에는 떠나갔다. 가난한 절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몸소 보살폈다. 한때나마 보경사에서 주지직책을 맡은 삼중 스님은 몇 주 동안 배를 곪는 스님들을 위해 하는 수 없이 고암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러 간 적이 있었다. 12폭포 천하의 비경을 품은 보경사는 예부터 풍족한 사찰로 유명했지만 대처승과 한판 전쟁을 치르느라 힘든 시절이었다. 대법당 돈통에 신도들이 돈을 넣기만 하면 서로 돈을 가로채려는 싸움을 할 정도였으니 치졸하기 그지없었다.

“삼중 스님! 왜요? 무슨 고민거리가 있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 같은 데 이야기해봐요!”

밥을 굶어가면서까지 대처승과의 전쟁을 치르는 모양새는 정말로 세상 끝자락에 걸친 지옥 그 자체였다. 아내와 자식들에 둘러싸인 대처승이야 기본적인 의식주는 해결되었지만 조계종 비구들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했다.

“저런! 내가 쌀 10가마를 해줄 테니 어떻게 해서든지 대처승을 보경사에 얼씬하지 못하도록 해주세요!”

“이제 연세도 많으시니 편안하게 한 곳에 정착하셔야죠. 이 연세에 이리 가난한 절을 순례하면서 살리는 고행은 이젠 그만 하실 때가 되었잖아요. 이번만큼은 여기서 지내시죠.”

삼중 스님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여윈 고암 스님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거들었다.

“중은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욕심이 생겨요. 중이 욕심이 생기면 말짱 꽝이잖아요.”

고암 스님이 종정직책에 머물렀을 때에도 삼중 스님은 자주 조계종에 드나들곤 했다. 한창 양동수 사형수와 불쌍한 할머니를 위해 전국적으로 탄원서를 받아서 열심히 구명운동을 하던 시절이라 조계종 스님들에게도 탄원서를 받으러 갔다. 고암 종정 스님은 언제나 삼중 스님이 나타나기만 하면 따로 사용하는 호칭을 있었다. 멀리 삼중 스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갑게 소리쳤다.

“어이! 지장보살님! 오늘은 무슨 볼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나요?”

“종정 스님은 왜 저만 보면 그런 불편한 말씀을 하십니까? 다른 스님들이 들으면 괜한 오해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무슨 지장보살입니까? 그러니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아주세요.”

“뭔 소리야! 삼중 스님이야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형수를 살려내느라 동분서주하니 당연히 지장보살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부르고 싶어서 부르는데 다른 사람들 눈치는 왜 봐요?”

다른 큰스님들이 옆에 있건 말건 한결같이 고암 종정 스님은 삼중 스님을 높이 올렸다.

“전 조계종 스님들의 탄원서를 받게 해주셔서 양동수 사형수와 불쌍한 할머니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저번에 종정 스님이 써주신 글씨를 MBC ‘법창야화’ 드라마 제작자에게 선물로 주었더니 글쎄 하나 더 부탁을 해서 왔습니다. 한 폭 더 써주실 수 있으신지요?”

삼중 스님은 MBC ‘법창야화’ PD가 MBC 본부장에게도 고암조정의 글씨를 선물로 주고 싶다는 부탁을 받았다.

“삼중 스님이 꼭 줘야 되는 건가요?”

“저야 한 폭 써 주시면 좋죠.”

“좀 곤란한데….”

“….”

“…사실은 전에 썼던 글씨는 내가 직접 쓴 글이 아니야요. 내 상좌가 글씨를 잘 써서 내가 지장만 찍어서 삼중 스님한테 선물했는데 가짜를 또 만들 수는 없잖아.”

종정 자리에서 참으로 솔직한 내막까지 내비치는 고암 스님은 그만큼 천진스런 부처였다. 이런 높은 경지까지 넘쳐나는 고암 스님은 상좌들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었다. 하와이에 있는 상좌를 돕기 위해 구순을 바라보는 고암 스님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건축물이 들어서기 전이라 컨테이너 박스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까지 하와이 ‘대원사’를 건축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런 와중에 상좌와 함께 하와이 관광길로 들어섰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다. 긴급하게 서울대병원까지 옮겼으나 다시 해인사 탁불선원에서 열반으로 들어갔다. 아주 천진스러운 자비심을 세상에다 마냥 뿌려놓은 고암 스님은 삼중 스님에게는 영원히 살아 있는 생불로 남아 있었다.

sungae.kim@hanmail.net
 
*필자/김성애. 본지 논설위원. 수필가. 이화여대 국제사무학 학사, 서강대학교 국제경제학 석사. 경희대학교 국제경제학 박사과정 수료. 전 인덕대학 전임교수. 전 경인여자대학 전임교수. 저서로 <현대비서 실무> <영어 전화응대> (한국 금융연수원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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