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국산 천연양념 숙성한 육가공품 제조-유통

<단독 인터뷰>천연양념숙성 떡갈비 도전 최준환 사장

조영관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2/03/15 [07:58]
국내 최초 천연양념숙성 떡갈비 도전 최준환(40세) 사장. “니들이 게맛을 알아?” 최 대표를 만나고 한 때 유행했던 한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게 맛은 몰라도 고기 맛 하나는 제대로 아는 이 남자는 가족끼리 놀러가서도 간편하지만 질 좋은 고기를 먹여줄 욕심에 아예 직접 식육가공 유통회사를 차렸다. 가족에게 먹일 좋은 음식을 대한민국 각 가정의 식탁으로 배달하고 싶다는 포부도 한몫 했다. 
 
▲ 최준환     ©브레이크뉴스
어머니 손맛을 알아갈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형제들을 위해 고사리 손으로 스스로 밥과 반찬은 물론 김장까지 담그며 ‘음식’이란 곧 ‘삶’이라는 것을 원초적으로 배웠다는 그는 음식 만드는 사람의 마음자세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터득한 듯하다. 당장 혀끝에서만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좋은 재료에 정성을 담은 ‘진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보이겠다는 집념 하나로, 5개월 밤낮을 잊고 2톤의 싱싱한 국내산 사과와 배, 양파를 버려가며 개발한 천연양념 숙성 떡갈비의 맛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 벼르고 벼르다 딱 마흔 살 되던 해에 평생을 가슴에 품었던 ‘음식일’에 뛰어들어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꿈을 성취해가는 그 맛이 고기 맛 만큼이나 맛깔난다는 최준환 대표. 그의 도전기를 만나보자.
 
-어떤 것을 도전 하셨는지?
▲순수 국산의 천연양념으로 숙성시킨 고품질 스테이크, 양념갈비, 떡갈비 등을 각 가정 또는 캠핑이나 야유회에 가서 개별포장을 뜯고 익히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신 개념의 육가공제품을 제조하여 유통하고 있다. 저가 위주의 기존 제품들에서는 단가문제로 시도하지 않았던 천연양념을 쓴 고기를 시판하는 것은 국내 최초이며 비싼 값에 맛 볼 수 있는 품질의 고기로 만든 일인분짜리 완제품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호텔가격의 절반정도로 판매하는 것 역시 국내 최초이다. 
 
-도전을 하였던 계기는?
▲오늘날 우리의 식탁은 가공식품으로 인해 저렴해지긴 했지만 부모님이 집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해 만든 진짜 맛있는 음식을 접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현재 육가공제품의 대세는 대중성을 따져 만든 저가형인데 그러다보니 질은 많이 떨어진다. 부재료 역시 100% 천연양념사용은 비용이 상당히 들고 원재료의 단가 등락이 심하기 때문에 기존 업체는 쉽사리 도전하지 않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들과는 다른 것을 해보이겠다고 마음먹었고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출발했다. 사람이 먹는 식품을 만드는 마음자세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도 정도를 보여 주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진짜 좋은 스테이크를 사주고 싶어도 그런 고기는 고급 레스토랑에나 가야 먹을 수 있는데 아이들 데리고 가기에는 너무 비싸고 분위기도 딱딱하다. 나의 아이디어는 어디 가족끼리 소풍을 가서도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 아이들 잘 먹이려고 시작한 사업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시작을 하였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
▲나는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사업을 시작해 18년 동안 석재를 다루는 일을 했지만 언젠가는 꼭 하겠다고 맘속에 품고 있던 일이 바로 식품업 이었다. 그래서 그 동안 만반의 준비를 한 후에 정확히 나이 마흔 되던 해에 이 사업을 시작했다. 음식에 대한 열정은 어릴 때부터 싹 떴다. 어려서 상당히 어렵게 자라 여섯 살 때부터 혼자 밥과 반찬을 만들어 먹었는데 눈썰미가 좋아 쑥버무리부터 김치와 장 담그기도 혼자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보통 육가공업자들은 남에게 공개할 수 없는 고유의 양념비율을 다 가지고 있는데 나의 경우 순쇠고기 떡갈비의 양념을 개발할 때 실험에 실패해서 버린 양념만 2톤이 넘는다. 밀가루나 난백을 전혀 쓰지 않고 양념으로만 고기가 뭉쳐지게 하기까지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었다. 맛은 기본이고 보기 좋은 외양까지 충족하려면 결국에는 시간싸움을 해야 하는데 그게 일 년 육 개월이라는 개발기간 동안에 기술적인 노하우로 축적이 되었다. 
 
▲ 최준환     ©브레이크뉴스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수입육의 경우 수입하는 나라와 그 농장에서 먹이는 사료까지 체크를 해서 그 품종만 써야 하는데 그렇게 선별해서 계약을 해도 맛이 간혹 달라질 경우를 대비해 일일이 생육을 씹어 먹어보고 내가 알고 있는 그 맛이 나오는가 확인한다. 축산업자들은 어떤 사료를 먹이느냐에 따라 고기품질과 맛이 달라진 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양심적인 분들은 좋은 사료 먹여서 정성껏 키우고, 대충 무게만 늘게 하여 파는 이들이 있는데 확실히 차이가 난다.
 
스테이크에 들어가는 소스 역시 직접 개발하였는데 우리 공장에서 소스까지 다 만들려면 다른 여러 가지 허가를 얻어야 하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다른 식품회사와 계약하여 OEM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고기와 양념부터 포장재, 전단지까지, 일일이 내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현재 경기도 포천 연천점이 오픈하였고 서울 광진점은 오픈 준비 중인데 반가운 소식은 국내 가장 큰 리조트 중 한 곳에 매장을 열고 우리 제품을 납품하기로 한 것인데 그 회사의 이사, 전무까지 모두 와서 직접 시식하고 ‘이 정도면 오케이’라고 했다. 갈비와 스테이크 등을 취급하는데 비싼 가격도 좋으니 한우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받았다.
 
-도전에 대해 주변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어려서부터 음식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지식을 아시던 가까운 지인들은 내가 여러 종류의 음식들을 잘 만드는 솜씨 등을 알고 있어,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자네가 그 사업을 하면 남들보다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길 했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사람이 너무 욕심이 많다’, ‘지금 하는 일도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한데 왜 일부러 힘든 일을 시작하느냐’ 등의 우려 섞인 말씀도 들었다.
 
-도전과정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양념갈비 개발하다 실패한 것들의 양도 어마어마했는데 처음에는 음식을 버리자니 아까우니까 집에서 키우는 개를 주자고 했는데 아무리 개를 많이 키워도 개밥으로 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형제들끼리 그냥 나눠먹을까?’ 했다. 그래서 형님들께 이거 만들다가 실패한 거니까 제품이라 생각지 말고 그냥 드시라고 했는데 먹어보더니 ‘뭐 이런 걸 만들었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아차! 잘못 생각했구나..’ 그 때부터는 개도 안 주고 바로 버렸다. 버리면서 배우게 되더라. 버릴 건 처음부터 미련 없이 버려야 했는데 아깝다고 나눠주니까 오히려 내 노력이 이정도 맛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인식이 되는 구나하고 말이다.
 
-도전을 통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생활적인 면에서 보자면 몸은 하나인데 여러 사업을 동시에 추진해 몇 배 바쁜 생활이 되다보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사업적인 면에서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생활 속에 사람들의 입맛도 달라지기 때문에 메뉴의 지속적인 연구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예전에는 단순히 음식을 좋아하고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맛에 정성을 담는 장인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전을 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보람을 얻은 순간이 있다면?
▲아무래도 개발단계에서 우여곡절이 가장 많았다. 2400번의 실험 만에 백열전구를 개발한 에디슨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에 대충할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더 어려웠던 것이다. 실험이란 게 처음에는 샘플로 적은 양을 만들어서 양념비율을 맞춰놓으면 그것을 가지고 대량생산에 맞추는 것인데, 백 킬로그램의 고기에 샘플비율을 그대로 적용하면 맛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었다. 이 양념 만드는 데만 오개월이 걸렸는데 그동안 버린 고기양도 엄청나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끝에 개발한 떡갈비를 신라호텔 조리장께 시식을 부탁드렸을 때 “오! 공장에서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어? 이 정도면 이름난 유명 떡갈비집보다 낫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는 그 동안의 고생이 다 보람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호주산 고기와 맛을 비교해보면 한우가 많이 부드럽다. 그러나 가격부담 때문에 프렌차이즈 스테이크하우스에서도 한우 스테이크를 쉽게 못 쓰고 특급호텔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나는 이것을 일반 가정의 식탁에서 즐기게 하며 동시에 우리 축산농가 살리기에 보탬이 되고자 한우 스테이크를 만들고 있다. 호텔보다 저렴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생육을 받아다 공장에서 바로 가공해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우리 입맛에 맞으면 세계 입맛에도 맞는다는 것이 나의 신조인데 미국에 가서도 한 번 시험을 해봤다. 미국산 소고기를 가지고 내가 가진 노하우로 특제 마리네이드 가공, 숙성시켜 내 놓았더니 확실히 달라서 맛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저온숙성을 며칠 간해야 고기가 맛있다는 것을 아는데 전문가로부터 이렇게 맛을 인정받을 때면 가장 보람찬 순간이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비교적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는데 내가 여섯 살 때 부모님이 불화로 이혼하셔서 우리형제들은 모두 어머니 없이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는 ‘빨리 성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스로를 내 힘으로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이야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어린 마음에는 상처가 참 컸다. ‘자식들 생각하면 부모님이 우리에게 그럴 수 없는 건데... 어린 나도 그걸 아는데 왜 우리를 두고 어머니 아버지는 갈라서야 했을까’ 그런 원망의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그때는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였기에 더욱 그랬다. 아마 내가 하고 싶은 일, 꿈을 갖지 못했더라면 어릴 때 충분히 빗나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홀몸으로 아이들 여럿을 키우기가 힘에 부치다보니 형제들도 같이 있다가 친척집을 다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쑥버무리’같은 음식을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어깨너머로 배워 스스로 해먹고 아버지께 해드리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음식에는 익숙했고 관심이 많았다. 새어머니 들어오실 때가 아홉 살이었는데 그때까지 혼자 음식을 해서 먹었다. 김치도 담그고 고추장 된장까지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사실 내가 음식을 만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먹고 살아야하는 원초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음식의 소중함을 그 어린 나이에 깨우친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가 꼭 나의 인생에 아픔으로만 남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계셔서 다른 집처럼 평범하게 자랐다면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못 찾았을 수도 있고, 이 정도로 사업을 끌고 나올 수 있는 도전정신이나 극기력도 가지기 힘들었을 거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려고 한다.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가족소개를 부탁한다.
▲나의 아내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어머니상으로 헌신적이고 따뜻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만나서 지금까지 22년 동안 보아왔지만 늘 한결같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가장 힘이 되어주고, 응원해주며, 부모, 형제, 친지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며 화합을 이끌어내기에 우리 집안의 꽃과 같은 존재다. 지금의 엠제이푸드 역시 아내의 도움과 정성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어려웠을 거다. 늘 고맙고 의지가 되는 존재다. 우리 아이들 역시 항상 자랑스럽고 내 인생의 희망과도 같다. 아들 최윤석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인사성이 바른 아이로 유명했고 리더쉽이 뛰어나 초등학교 1학년서부터 6학년 때까지 학급회장을 도맡아하는 등 모든 일에 항상 적극적이다. 딸 최명서는 어렸을 적부터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 6살 때부터 음악교육을 시켰는데 초등학교 때 이미 피아노급수 시험제를 모두 통과한 절대음감의 소유자다. 또 요리를 좋아하는 것은 나를 닮아서 나와 아내가 바빠서 늦을 때는 스스로 밥과 찌개를 만들어 식탁 한가득 정성스레 저녁상을 차려놓기도 했다.
 
-값싼 수입고기가 밀려들어오는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 축산 농가의 생존전략은 ?
▲일본에서 키우는 최고급소 ‘와규’는 우리나라 토종한우보다도 가격이 비싼데 최상의 환경에서 엄격히 선별된 사료를 먹여 키우고 육질을 최상으로 만들기 위해 도축 전에 마사지까지 시킨다.  FTA체결로 싼 수입고기들이 들어와 아무래도 기존 농가에 타격을 줄 텐데 이제는 우리나라도 일본의 와규 이상 되는 최상급의 고기로 경쟁력을 갖춰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키우는 사람의 정성에 따라 모든 것이 변화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도 향후 삼년 안에 관세가 다 없어지는데 관세가 없어도 ‘이건 진짜 좋은 고기니까 비쌀 만하다’하고 차별화된 우리의 고유브랜드를 지켜간다고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한국에 수입되는 쇠고기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아예 사료도 특정 곡물을 먹여 맞춤으로 키운 소가 들어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냥 땅만 치고 있을 건가. 아이디어를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정말 좋게 만들어 정말 비싸게 파는 것이 나와야 한다. 
 
▲ 최준환  부부.    ©브레이크뉴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있다면?
▲미국 워싱턴에 처삼촌이 계신데 우리나라에 매장이 어느 정도 정착되고 나면 미국에서 식당을 할 수 있는 분을 찾아서 우리가 만든 비법을 전수해 주어 미국에서 식당을 열 계획이다. 미국진출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계획이기에 꼭해내고 싶다.
 
-도전하는 것이 삶과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누구나 어렵고 힘들면 시도하다 포기하고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에너지를 얻게 된다. 그리고 보면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고개를 저으며 지레 포기할 필요가 없다. 도전은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와도 같다. 일단 문이 열리면 그 길을 걸어갈 힘은 자연스레 샘솟게 된다.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자신감, 도전을 하면서 내가 얻은 것이다.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말은?
▲옛 선인들의 속담처럼 ‘천릿길도 한 걸음 부터’라는 말이 있다. 천리나 되는 길이 늘 평탄하지만은 않을 거다. 그러나 힘들 것을 각오하고 무엇이든 헤쳐 나간다는 생각한다면 그리 힘들 것도 없다. 무엇을 하든 시작한 지금 당장 뭔가 엄청난 결과가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는 지나치다. 다만 목표를 잡아두고, 목표를 향해 조금씩 성실하게 다가간다면 도전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choyk4340@daum.net
 
*필자/조영관. 경영학 박사. 저서로 "생생라이브경제학"(2008) "경제 초보자가 꼭 알아야 할 경제지식 105"(원앤원북스 2009) "봄에게 길을 묻다"(시집 2011.1) "직장인을 웃게하는 경제동화외 1권-ebook(2011.7) "생존을 위한 금융경제의 비밀 26"(2011.11) 등이 있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 최고 2012/03/15 [21:09] 수정 | 삭제
  • MJ푸드 고기를 여러번 먹어본 소비자의 한 사람의로써 정말 기분 좋고 사장님의 정성이 보여 더 믿고 우리 아이들에게 먹일수 있을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앞으로 더 MJ푸드 무한 사랑 할것 같아요 ㅎㅎ 이미 대박 입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