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수많은 사람은 영적인 지도자나 정신적인 지도자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지도자의 가르침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조지 워싱턴이나 에이브 링컨을 상당히 존경하며 외국인들은 케네디를 존경한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김구 선생이나 이순신, 세종대왕을 존경한다고 한다. 나는 그분들과 만나본 적이 없어서 사실 잘 모르겠지만 실존 인물은 만나서 그의 생각을 듣고 많은 가르침을 받고 난 후 그를 존경하므로 오히려 더 실질적인 가르침이 아닌가.
존경이란 말은 단순히 가르침만이 와 닿는 부분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철학적인 사고와 냉철한 비판력 그리고 살아온 모습에서 존경과 추앙을 받는다. 필자는 실존 인물이라면 김동길 박사님을 들고 싶다. 이유는 그는 일반적인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철학적 사관은 물론 관대함과 여유가 있다.
오랫동안 만나 온 사람들은 왜 존경이란 단어를 서슴지 않고 쓰는가는 필자의 경험상 잘 알고 있다. 먼저 사람에 대한 차별이 없으며 모든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못되라고 나쁜 짓 하라고 가르치겠는가 바로 이 부모의 마음을 지극히 온전하게 가진 분이 김동길 박사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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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지식인이나 학자들은 김동길 박사님을 만나고 싶어한다. 뛰어난 일본어, 영어 실력과 유머나 위트로 즐겁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인가 여운을 남기는 말을 안고 돌아가게 하는 참 스승이다. 이번 방한에는 일본 경제연구소 소장이며 메지로 대학원 교수님인 카타오카 유이치 박사가 김동길 박사님을 방문하고 융숭한 저녁 대접을 받고 일본 도쿄로 돌아왔다.
그는 한국의 위대한 지도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이 무궁한 발전을 할 가능성이 많다고 했으며 김동길 박사님의 글솜씨, 말솜씨 수려한 언어 선택에 감동을 하기 충분했다고 . 박사님은 한국의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보여준 한국적인 여유와 관대함이었다. 마음의 빗장을 잠그고 적의를 가진 만남이 아니었다. 그가 큰 인물이 되고 안되고 차이는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다.
혹자는 김동길 박사에 대하여 전혀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으면서 사실무근인 이야기나 작은 글 몇 줄 읽고 감정을 이입시켜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자가 오랫동안의 본 그분의 모습과는 다른 반대의 글들을 볼 때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잘 모르는 사람이 비판하고 비난한다. 잘 알면 그런 무례한 행동을 절대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그분을 만나서 인생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가진 짧은 생각을 반성할 수 있게 된다.
김동길 박사님은 우리의 스승이며 지도자인 것은 확실하다. 그가 살아온 인생 전부는 가르침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일본인들도 고개 숙이고 찾는 그 이유에는 그의 철학적인 사고와 정신적인 생각을 배우려 함이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인들은 주변의 스승이 살아있어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의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그 어떤 사람보다 김동길 박사님이 훌륭한 분이라는데 생각이 변함이 없다. 아마도 만나고 난 이후는 더욱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될 것이다.
존경과 효도는 같은 맥락으로 생각된다. 살아 있는 내 부모를 공경하고 찾지 않다가 죽은 이후 묘지를 관리하고 성묘하는 것 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교과서나 역사책의 훌륭한 인물,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사상을 듣지 못해 피상적 존경이란 말은 사용하기 어렵다. 최소한 내가 사는 인생에서 만난 사람 중에 존경하는 인물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참고로 박사님의 글을 올린다.
2012/10/03(수) -어제가 내 생일이었어요- (1617)
나는 1928년 10월 2일에 낭림산맥 기슭인 평남 맹산군 원남면에서 새벽 5시에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어제로 만 84세가 되었고 오늘은 84년 하고도 하루를 더 살았다고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언제 내 나이가 이렇게 많아진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세월처럼 무서운 건 없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이 날까지 살면서 큰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지만 친구는 많은 셈입니다. 아마 300명쯤은 와서 냉면 한 그릇을 함께 하였을 것입니다. 조상 때부터 냉면과 지짐(빈대떡)만으로 50년 동안 손님을 대접해왔습니다. 미국 대사를 모셔도, 중앙청의 수위들을 청해도, 메뉴는 한결 같습니다. 냉면과 지짐 뿐입니다.
그러나 식도락가로 알려진 내 친구 한 사람은 냉면사리 위에 아무 것도 얹은 것이 없는 (여류시인 모윤숙 씨의 말대로 하자면 ‘나체’)냉면이긴 하지만 아무런 조미료도 쓰지 않고 동치미국만으로 말아 올린 우리 집 냉면을 먹고 난 뒤에는 시중에서 파는 냉면은 사서 먹을 마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산서 OPS라는 큰 제과점을 하는 김상용 사장은 오렌지 케이크 200여 상자를 만들어 택배로 보내주었고 서울 근교에서 <토가집>을 경영하는 김승해 사장은 토가집 된장 150 상자를 보내주었으나 모자랐습니다. 나의 제자 김혜중은 테이블 30개를 장식할 테이블보와 종이로 만든 접시__컵 등을 몽땅 미국서 가지고 나와서 손님들에게 원두 커피를 한 봉지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국제적으로 이름이 있는 내 동생 박동선은 엄청나게 큰 생일 케이크를 사왔고 당대의 제일가는 성악가 박인수 교수는 제자들과 와서 ‘Happy Birthday to you’를 불러주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 외에도 현직 국회의장, 전직 대통령, 전__현직 국회의원 그리고 6.25 전쟁의 영웅 백선엽 대장도 자리를 같이하였습니다. 어떤 공직에도 앉아있지 않은 평범한 시민 한 사람의 생일을 위해 이렇게 많은 인사들이 모이다니!
나의 동지이자 친형 같던 황장엽 선생이 올해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황형은 하늘나라에서 오늘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인생은 괴로우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