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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중국, 냉전시기 끝내고 교류시기로...

마잉지우 대만 총통, ‘1992년 양안 컨센서스’의 유래와 의의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2/11/23 [10:48]
마잉지우 대만 총통, 20주년 기념일 맞아 특별 치사

대만과 중국은 2008년 이래 8차례에 걸친 쌍무회담을 거행하고 18개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양안관계를 대폭 개선했다. 이러한 성과를 이룬 주요 원인은 양측이 ‘1992년 양안 컨센서스(九二共識, 이하 92컨센서스)’에 기초하여 대화와 교류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대만의 반관반민 양안 협상창구인 해협교류기금회(海基會)는 11월9일 ‘92컨센서스 20주년 학술포럼’을 개최했다. 마잉지우(馬英九) 대만 총통은 해협교류기금회의 초청에 응해 치사를 하면서 특별히 92컨센서스의 유래와 의의를 설명했다. 마 총통의 치사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마잉지우     ©브레이크뉴스
중화민국(대만) 정부는 1987년 대만 국민들이 중국대륙으로 가서 친지방문(探親)을 할 수 있도록 개방했으며, 1991년에는 헌정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중 양안관계와 관련된 부분은 바로 비상계엄 기간을 종식시키고 임시법령을 폐지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헌법에서 양안관계를 ‘하나의 중화민국, 두 개의 지역(一個中華民國, 兩個地區)’으로 새롭게 규정하고 확립했다. 이후 양안 당국은 양안관계 업무를 처리하는 기구를 잇따라 설립했다. 이들 기구에는 대만의 대륙위원회(통일부)와 해협교류기금회, 중국의 국무원 대만판공실(國台辦)과 해협양안관계협회(海協會)가 포함된다. 교류와 대화를 통해 양안관계는 세계정세의 변화에 발맞춰 마침내 냉전시기를 끝내고 교류의 시기로 들어섰다.

‘92컨센서스’가 이뤄진 데는 그 역사적 배경이 있다. 92컨센서스가 생긴 것은 20년 전 양안의 해기회와 해협회가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一個中國原則)’을 처리하는 문제를 두고 이견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1992년 갓 출범한 해기회와 해협회가 문서검증과 등기우편에 관한 의제를 놓고 협상을 시작할 때였다. 중국은 서명할 협상문건의 서문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추가하도록 요구했다. 우리 측은 이에 대해 정론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간 보류를 했다. 이후 1992년 10월28일에 이르러 해기회와 해협회는 홍콩에서 재차 협상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해기회가 협상을 하기 위해 출발하기 전인 그 해 8월1일, 당시의 ‘국가통일위원회’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겸 주임위원의 주재 아래 특별히 전체위원회 회의를 열었으며, 이 회의에서 ‘하나의 중국의 의미에 관한’ 결의를 달성했다. 바꿔 말하면, 조만간 중국대륙과 협상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양측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협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입장을 확립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결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협 양안은 똑같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지만 쌍방이 부여하는 그 의미는 다소 다르다. 하나의 중국은 당연히 1912년 출범해 지금까지 이어진 중화민국을 가리키며 그 주권은 원칙적으로 전체 중국에 미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현재의 통치권은 대만과 펑후(澎湖), 진먼(金門), 마주(馬祖)에만 미칠 뿐이다. ……1949년부터 중국은 일시적인 분열상태에 처해있으며, 두 개의 정치적 실체가 해협 양안을 분할 통치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객관적인 사실이다.” 이것은 1992년 8월1일 총통부에서 열린 ‘국가통일위원회’ 위원 회의에서 통과된 결의이다.

1992년 10월 말 열린 양안 협상에서 쌍방은 각각 5개의 방안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했다. 우리 측의 해기회는 10월31일 또다시 정부의 권한위임을 받아 3개 방안을 제시했으며, 중국 측은 이것을 받아 들고 11월1일 중국대륙으로 돌아갔다.

이틀 후인 1992년 11월3일, 중국 해협회는 관영 신화사를 통해 뉴스를 발표하고 우리 측이 제시한 3개 안 중 1개 안(즉, 구두성명 방식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표시한다)을 수용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구두성명으로 표시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또 다시 협상할 것을 제안했다. 우리 정부는 즉시 해기회에 권한을 위임하여 같은 날 언론에 발표를 하는 한편, 해협회에 정식으로 서한을 보내 ‘구두성명 방식으로 양안 각자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표시한다’는 데 대해 주무기관의 동의를 이미 얻었음을 밝혔다. 해협회는 같은 날 쑨야푸(孫亞夫) 부비서장이 천롱지에(陳榮傑) 해기회 비서장에게 전화 통지를 통해 이를 존중하며 수용한다고 밝혔다. 1992년 11월16일 해협회는 해기회에 정식으로 회신을 보내 ‘해협회는 해기회의 제안을 충분히 존중하며 수용한다’고 밝혔다. 이 회신은 72자로 중국의 구두성명 내용을 설명했을 뿐 아니라 우리 측의 성명 원문 총 83자도 첨부문서로 담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92컨센서스’는 쌍방의 성명내용이 명백한 기록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상이 바로 20년 전 해기회와 해협회가 컨센서스를 달성한 과정이다.

2000년 4월, 대만 총통선거에 따라 집권정당 교체가 발생했다. 당시 쑤치(蘇起)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장관)은 호의와 양안관계 대국에 대한 관찰에 기반을 두고 1992년의 컨센서스를 ‘92컨센서스(九二共識)’라고 이름 붙였다. 이 명칭은 곧 각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됐다. 바꿔 말하면, ‘92컨센서스’란 명칭은 당시 대륙위원회 주임위원 쑤치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내용은 명백히 해기회와 해협회가 협상을 통해 얻어낸 컨센세스이다.

‘92컨센서스’는 고도의 정치적 지혜를 응집한 것으로서 ‘창조적인 모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나타내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쟁론은 제쳐두는’ 정신과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측의 성명 내용이 중화민국 헌법의 규정 및 국가통일위원회의 ‘“하나의 중국”의 함의에 대한’ 결의문 정신과 완전히 부합된다는 점이다. 양안 협상 과정에서도 정부가 협상에서 일관적으로 취하고 있는 ‘대등’과 ‘존엄’의 원칙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2008년 3월22일 본인이 총통에 당선되고 난 후 4일 뒤(3월26일) 중국대륙의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핫라인 전화로 통화를 했다. 여기에 대해 중국 관영 신화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He said it is China’s consistent stand that the Chinese Mainland and Taiwan should restore consultation and talks on the basis of “the 1992 consensus” which sees both sides recognize there is only one China, but agree to differ on its definition.’ (후진타오 총서기는 중국의 일관된 입장은 중국대륙과 대만이 마땅히 ‘92컨센서스’의 기초 위에서 협상과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92컨센서스’는 쌍방 모두가 오직 하나의 중국이 있음을 인정하되, 하나의 중국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르다는 점에 동의하는 것이다.)

이 영문 구절은 신화사가 발행하는 영자신문 뉴스에 실렸으며 중국대륙의 유엔 주재 대표단의 홈페이지에도 게재됐다.

92컨센서스의 의의는 중대하며 영향 또한 심원하다. 92컨센서스는 양안관계의 긴장을 완화했을 뿐 아니라 대만의 국제관계를 보다 개선했다. 양안관계와 우리나라 국제관계의 개선은 상부상조하여 점차 ‘악순환’에서 ‘선순환’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대만을 종래의 ‘골칫거리를 만드는 자’에서 ‘평화 창조자’로 변신하게 했다.

양안의 60년간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양안 사이에 전쟁을 할 수도 있고 평화로울 수도 있으며, 투쟁을 할 수도 있고 경쟁을 할 수도 있으며, 서로 격리될 수도 있고 교류를 할 수도 있으며, 적대를 할 수도 있고 보다 더 협력을 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쌍방이 어떻게 지혜를 활용하여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양안관계는 단지 ‘92컨센서스’ 만으로는 부족하며, 아직 3가지 일을 더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양안교류를 확대하고 심화해야 한다. 둘째, 양안의 해기회와 해협회는 업무기구를 상호 설치해야 한다. 셋째, ‘양안인민관계조례(兩岸人民關係條例)’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3가지 일은 모두가 현재의 양안 상호관계 구조의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양안관계에 보다 견고하고 장기적인 기초를 놓고 양안 국민들에 보다 평화롭고 번영하는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지난 20년간 양안 국민과 정부는 모두가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그것은 바로 ‘협상으로 대립을 대신’하고 ‘협력으로 윈-윈(win-win)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크고 장기적인 평화의 큰길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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