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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는 오행 자궁이자 사통팔달 팔방미인

[노병한의 명당산책] 대지(土)의 생기는 물(水)

노병한 풍수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03/25 [16:56]
◇ 대지(土)는 오행의 자궁이자 만물의 보금자리

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에 대지(土)는 토해내듯 토(吐)하는 것이니 정기를 머금기도 하고 토하기도 해서 만물을 내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 토(土)는 토해서 생겨나게 하는 것이니 그 글자에서 수평의 두 획(二)은 지상(地上)과 지중(地中)을 상징하고 수직의 한 획(|)은 만물이 처음 땅(地表)을 뚫고서 나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하고 있다.
 
때는 계하(季夏)로 여름의 끝인 6월에 해당한다. 계(季)는 성숙함과 늙음이므로 사계절의 끝인 이 시점에서 만물이 성숙함 왕성함 늙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토(土)의 자리(方位)는 사방의 중심(內)에 거처하므로 중심은 사방으로 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토(土)는 황극(皇極)의 바른 기운을 얻고 황중(黃中)의 덕을 머금어서 만물을 감쌀 수가 있음인 것이다.

▲ 노병한  박사   ©브레이크뉴스
토(土)는 양(陽)의 부호인 플러스(+)와 음(陰)의 부호인 마이너스(-)의 합작문자이다. 양인 남자와 음인 여자가 한 몸이 되어서 포옹하고 정을 나누고 있는 신방에 구름과 비처럼 운우(雲雨)의 형상을 그대로 나타낸 글자가 바로 토(土)인 것이다. 양은 남자이고 하늘(天)이기에 위에서 아래에 있는 여자를 포옹하지만, 음은 여자이고 땅(地)이기에 아래에서 위에 있는 남자를 감싸고 섬기는 것이 천지자연의 상태인 것이다.
 
이렇게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하나로 묶은 음양의 통일체가 바로 토(土)인 것이다. 음양을 소양(少陽-木)·태양(太陽-火)·소음(少陰-金)·태음(太陰-水)으로 나눈 것이 사상(四象)이다. 목(木)과 화(火)는 순양(純陽)이고 금(金)과 수(水)는 순음(純陰)이다. 오행 중에서 음양을 모두 갖추고 있는 한 쌍의 부부는 오직 대지인 토(土)뿐이다. 대지(土)는 만물을 생산하는 중생의 자궁이므로 만물은 대지(土)를 통해서 나(出)고 살(生)며 움직(動)이고 변화(變)하는 것이다. 대지는 씨앗을 뿌리면 조용하면서도 부지런히 모든 씨앗들을 품고서 싹을 틔워 부화시키는데 이것이 토(土)의 본능이고 본성이다.
 
흙(土)이 없으면 물(水)은 흐를 수도 머물러 고일수도 없다. 그리고 흙(土)이 없으면 불(火)은 연소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흙(土)이 없으면 나무(木)도 싹을 틔울 수도 자라날 수도 없으며 흙(土)이 없으면 금(金)은 생길 수도 거처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흙(土)은 오행의 자궁이고 어머니이며 만물의 보금자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지(土)는 단순한 음양이 아닌 음양의 결합체·통일체로서 만물을 임신·분만·양산(養産)하는 동시에 만물의 유방․유모로서 중생을 먹이고 살찌우며 기르는 것이다. 그래서 토(土)는 지구상에 고루 존재하며 어느 편에도 치우쳐서 기울지 않고 동서남북과 오행에 동일하게 자궁·산모·유모의 역할을 하고 있음인 것이다.
 
이렇게 토(土)는 만인에게 평등한 사랑과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 아예 눈을 감고서 불평 없이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것이다. 즉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입을 다문 채 무표정·무감각·무신경한 토(土)는 처음부터 눈·귀·입·말이 없고 생사를 초월해서 대자대비의 사랑과 은총만을 베풀고 있음인 것이다. 그래서 땅이라는 대지(土)를 조물주의 창조와 양육을 대행하고 있는 제2의 조물주라고 하는 것이다.

◇ 대지(土)는 사통팔달의 팔방미인

물(水)은 흙(土)의 혈맥이고 식량이다. 흙(土)은 물의 질량에 정비례해서 생명의 부화와 삶을 유지할 수 있듯이 내면적인 생기와 부(富)를 형성한다. 즉 흙(土)이 물(水)을 얻음으로써 죽음을 면하고 살아있는 생토(生土)로서 생명을 유지하고 살을 찌운다. 목(木)은 토(土)의 옷과 날개로서 외형적인 부귀를 형성한다. 즉 허무하고 쓸쓸한 땅에 생기·광명·기쁨·웃음을 심어주고 길러주는 것은 생명의 주인공인 목(木)인 것이다.
 
흙(土)이 물(水)로써 만물(木)을 창조하지만 물(水)을 만물(木)로 변화시키는 것은 태양의 불(火)의 작용이고 능력이다. 빛과 열기를 갖는 불(火)은 모든 것을 새로운 물체로 변화시키는 조화의 주인공이다. 불(火)이 아니고서는 한 톨의 씨앗도 부화시킬 수가 없다. 태양의 화(火)는 만물중생에게 숨을 쉬게 하는 천기(天氣)와 움직이게 하는 생기(生氣)를 제공한다. 화(火)를 연소시키는 것은 산소이다. 그래서 산소 없이는 숨을 쉴 수도 피(血-水)를 순환시킬 수도 없는 것이고, 태양 불(火)의 햇빛이 없이는 생기와 의욕이 나타나지를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은 물(水)이 있기에 먹고 살며 불(火)이 있기에 운동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대지인 토(土)는 이러한 물(水)과 불(火)의 결합을 주선하고 그들의 씨앗을 잉태하고 부화시켜서 기르는 자궁과 유방역할을 할 뿐이다. 오행 중에서 수화목금(水火木金)은 동서남북에 각각 정해진 일정한 방위를 가지고 있지만 토(土)는 일정한 방위가 없다.
 
그래서 남는 공간이 중앙뿐이므로 중앙토(中央土)라 하지만 실제로 토(土)는 동서남북을 막론하고 가득 차 있음인 것이다. 즉 동방에는 목(木)과 통하는 춘토(春土)가, 남방에는 불(火)와 통하는 하토(夏土)가, 서방에는 금(金)과 통하는 추토(秋土)가, 북방에는 물(水)와 통하는 동토(冬土)가 되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토(土)는 동서남북과 수화목금의 모두에 통하는 사통팔달의 팔방미인격인 것이다.

그래서 토(土)는 겉으로 보기에는 모가 없이 무척 둥글둥글해 원만하고 능소능대해 보인다. 그러나 토(土)의 실제는 마치 여기에 붙었다 저기에 붙었다 하는 것처럼 쓸개·중심·지조·주체성 등이 없음이 그 본성인 것이다. 그래서 토(土)는 번지·소속이 특정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적응·순응하는 성질을 타고난 것이다. 토(土)는 누가 자기를 점유하고 무엇에 쓰든 상관하지 않는다.
 
예컨대 토(土)는 농부가 전답으로 군왕이 도읍과 궁전으로 사용하든 말든 그리고 기업가가 공장과 상업용 건물로 장사꾼이 장터·놀이터로 군인이 싸움터 등으로 사용하든 말든 그대로 순응할 뿐인 것이다. 즉 토(土)는 자기라는 주체성과 오장육부를 떠나서 오로지 자기 자신을 점유자에게 순순히 따르고 동화(同化)하는 것이 본성인 것이다. 그래서 토(土)의 본성은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동화력이 있으며, 임자가 누구이건 가리지 않고 주인의 뜻에 따라 순응하고 적응할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토(土)는 반항을 좋아하지 않고 배반은 더 더욱 싫어하며 오직 믿고 사는 신의를 좋아하기 때문에 토(土)의 본성을 믿을 信(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신의는 군신·주객간의 신의가 아니고 점유자와 환경에 대한 신의인 것이다. 그래서 주인이 바뀌고 환경이 변하는 것에는 상관하지 않는다. 토(土)에게는 오직 지금의 현실이 있을 뿐이기에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土)는 오늘을 위해서 살고 또한 모든 것을 참고 견딜 수가 있음인 것이다.

◇ 대지(土)의 생기는 물(水)

씨앗은 생명의 종자이다. 생명은 물(水)에서 발생하고 또 물을 먹고 살며 자란다. 즉 생명은 씨앗부터 물을 찾고 물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씨앗을 흙(土)이 움트게 하려면 충분한 물을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물을 간직한 흙(生土)은 씨앗을 능히 움트게 하고 움튼 싹을 먹이고 기르는 유모의 유방으로서 만물을 발생하고 양육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씨앗인 정자를 잉태하는 자궁과 함께 분만한 아기를 기르는 유방을 가진 여자와도 동일한 것이다.
 
여성의 경우에 있어서 피(血-水)가 왕성하면 임신을 쉽게 하지만 부족하게 되면 임신이 불가능한 이치와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여자는 임신과 함께 양육하는 산모의 역할까지 겸해야 하므로 늘 피가 풍부하며 맑고 깨끗하게 간직해야만 한다. 그래서 여자는 임신의 임맥(姙脈)이 발생하는 시기부터 피를 맑고 깨끗하게 간직하기 위해서 피의 신진대사를 하는 월경(月經)을 한 달에 한 번씩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물(水)은 생명을 창조하는 땅(土)의 生氣(생기)로서 생명을 발생시키며 먹이고 기른다. 중생이 먹고 사는 물(水)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 대지(土)이다. 그러기에 인간을 비롯한 만유의 생물은 모두가 대지를 자신의 삶의 보금자리로 삼는다. 그래서 생기(生氣)인 물(水)이 풍부한 땅(土)에는 생물이 무성하게 자라나며 모여든다. 그러나 생기인 물(水)이 부족하여 메마른 땅(地)에는 생물이 발생하기 어려워서 모여들지를 않는다. 이렇게 생기를 가진 땅(土)은 살아있는 흙으로서 생토(生土)라 하고, 생기가 없는 건조한 사막은 죽은 흙으로서 사토(死土)라 하는 것이다.

물(水)은 흙(土)의 피(血)이고 젖(乳)이며 생기이고 원기(元氣)로써 흙(土)의 운명을 좌우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강(江)은 생기의 줄기이며 물결이다. 그래서 중생은 냇가나 강기슭을 찾아 삶터를 개척하고 촌락을 형성해 왔던 것이고, 명당을 찾는 풍수학도 역시 산(山)보다는 물(水)에 더욱 치중하는 이치인 것이다. 산은 높기 때문에 관(官)으로서 귀(貴)함을 상징한다.
 
물(水)은 먹는 피인 것이고 음식이기 때문에 녹(祿)으로서 부(富)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벼슬은 녹을 먹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물(水)이 따르지 않는 산은 녹이 없는 벼슬로서 부(富)도 귀(貴)도 허무한 것이다. 산자의 명당은 천하의 강물이 모여드는 부(富)의 집결지가 되어야 한다. 강물은 많을수록 좋은데 강물이 많으려면 강줄기가 길어야 하고, 강줄기가 크고 길려면 산이 높고 많아야 하는 것이다.
 
산은 강물을 만드는 원천이기에 산이 없는 곳에는 물이 나오지도 모여질 수도 없는 것이다. 산과 물은 물과 물고기처럼 떨어질 수가 없는 한 쌍의 불가분의 천생연분과 같은 부부인 것이다. 그래서 명당을 살피는 풍수학은 산과 물(水)인 산수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명당은 천하의 생기인 물(水)이 풍부한 곳이라야만 한다. 물의 기운인 생기는 산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고 산세는 산허리인 산맥으로서 관찰할 수 있다. 죽은 산맥은 쭉 뻗어버린 것이고 살아있는 산맥은 뱀의 허리와 같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뱀에 비유한 산맥을 풍수학에서는 용(龍)이라고 일컫는다.
 
천하의 명당은 산맥이 살아있고 생기가 넘치고 뭉쳐있어야만 한다. 생기는 물이고 물은 생물을 발생하기 때문에 생기가 있는 땅과 산에는 초목이 우거지고 생기가 없는 곳에는 초목이 발생하지 않는 불모의 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명당은 살아있는 용(龍)이 굽이치고 정기(精氣)가 꿀단지처럼 한곳으로 뭉치고 갈무리되어 있는 곳이라야만 하는 것이다.

nbh1010@naver.com

□글/노병한〈박사/자연사상칼럼니스트/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질의: 010-524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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