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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Kg의 금괴를 허리띠에 걸고 있는 그 뼈의 주인공이 실종자였다는 사실이지요. 아마도 이 사람은 배가 난파하자 200Kg의 금덩어리를 허리띠처럼 두르고 바다에 뛰어든 모양이었습니다. 그 황금이 아까웠던 것이지요. 그러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황금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기독교에 ‘마몬’이란 말이 있습니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부요(富饒)’라는 뜻의 아랍어 ‘마모나’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네요. 특히 성서에서는 ‘지상의 부’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답니다. 구약성서에는 용례가 없고, 신약성서의《산상보훈(山上寶訓)》을 통해《마태오의 복음서》(6:24)와《루가의 복음서》(16:13)에서 예수가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다.” 즉,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하신 말씀에서 유래 된 말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가 ‘부’를 우상 숭배 · 탐욕의 화신(化身), 정신을 병들게 하는 악령의 도구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몬’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교 문학에서도 부(富)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거대한 재물의 권화(權化)’로서 널리 쓰이고 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진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사랑해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닌가요?
세상에는 ‘도대체 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처럼 살아가고 있을까?’ 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으로 인과(因果)의 법칙을 상세하게 가르쳐주는《인과경(因果經)》있습니다.《인과경》은 마음속의 거센 불길인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세세생생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인과의 실상을 밝힌 경이죠.
그 경에 보면「진리의 가르침이나 인연의 과보를 보고도 못 본체 하고, 못 들은 체하며, 믿지 않는 사람은 갑자기 화재나 수재를 만나 불태우고 물에 잠겨 떠내려 보낸다. 또 도적이나 빚쟁이들에게 빼앗기기도 하며 모든 재산이 산산이 흩어져 마음은 답답하고 분한 심정에서 벗어날 길 없으니 괴로움에서 헤어날 기약이 없느니라. 이로 인해 마음은 병들고 몸은 지쳐 목숨이 다하게 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빈손으로 떠나니 무엇을 가지고 어디까지 갈 수 있으랴」
이 경은 선업선과(善業善果) 악업악과(惡業惡果)라는 부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의거해 인연의 도리가 한 치 어긋남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설파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의 결과인 과보는 우연적이고 도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나 욕망에서 빚어진 필연이라는 사실을 여러 가지 예화를 통해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예화들을 통해 가장 소박한 인간의 길을 불교적인 관점에서 해명하고 있는 이 경은 가장 인간적인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자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깨달음의 길 또한 확실하게 추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전생과 내생에 대한 삼세 인과를 설하여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복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여 주셨습니다.「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欲知前生事 今生受自是), 전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생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욕지미래사 금생작자시(欲知未來事 今生作自是), 다음 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재 네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라.」하신 이 말씀에서 우리는 ‘도대체 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처럼 살아가고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 런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평소에 세 가지 보물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의 보물은 공덕(功德)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보물은 상생(相生)의 선연이고, 세 번째 보물은 청정일념(淸淨一念)이죠. 그런데 그 중에 제일가는 보물은 청정일념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공덕을 쌓고 선연을 맺었다 하더라도 평소에 공부 없는 사람은 이것이 다 아상(我相)이나 착심(着心)의 자료로 화하기 쉽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원리를 철저히 깨달아 평소에 한 생각 청정일념을 챙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욕심을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욕심 없는 사람이 제일 귀한 사람입니다. 제아무리 거만의 재산을 거머쥐었다 하더라도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그 착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저 200Kg의 금괴를 허리에 두르고 바다에 뛰든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욕심의 잉태(孕胎)는 사망입니다. 진리와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 청정일념을 챙겨 귀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재물을 섬겨 사망에 이를 것인가 하고 결단할 때는 왔습니다. 최소한 ‘도대체 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처럼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 하고 후회를 곱씹어야 하는 인생을 살아가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