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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삼, 北응징보복 33명 사살..진짜 영웅!

[인터뷰] 최초의 북파응징작전 강행한 이진삼 장군

문흥수 기자 | 기사입력 2013/05/06 [09:42]
 
▲ 대북 보복응징 당시 이진삼 대위(방첩부대장)     ©브레이크뉴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등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들은 답답하다. 우리는 왜 응징보복을 하지 못하는가? 이진삼 전 자유선진당 의원이 1967년 방첩부대 단위 부대장으로 복무 당시 펼친 대북 응징보복 작전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인 정신은 무엇이며 애국 충정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당시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로 엮은 '가위주먹'이 출간된 이후, 이진삼 전 의원을 최초로 직격 인터뷰했다. 

"이진삼 대위는 대원들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비트 속에 숨어있던 대원들이 맹호처럼 튀어나갔다. '드르륵 드르륵' 총소리가 울려퍼지자 북한군 군관과 부사관이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소변을 보러왔던 북한군 사병은 목에 단도를 맞았다. 그 다음은 '식은 죽'이었다. 방첩부대 609특공부대장 이진삼 대위와 대원 3명은 수류탄 6발을 던져 북한군 13명을 죽였다"
  
5.16 군사정변 이후, 우리 군이 1967년 9월 27일 황해도 개풍군으로 넘어가 감행한 최초의 북파작전이다. 방첩부대 이진삼 대위가 이끈 대북응징보복작전은 1967년 9월부터 10월까지 모두 3회에 걸쳐 이뤄졌으며 북한군 33명을 사살했다. 이 작전은 지난 2008년 기무사 국정감사릉 통해 처음 알려졌으며 당시의 상세한 작전 상황과 전향 무장공비 출신 부대원들의 신상이 적힌 작전 일지는 지난 2011년 12월 13일 44년만에 공개됐다. 이는 우리 역사상 유일무이한 보복응징 작전이다.
 
북한군복을 입고 북한총을 들고 임진강을 건너가 대북응징작전을 수행한 이진삼 대위는 1990년 육군참모총장, 2008년 충남 부역 청양 지역 출신의 자유선진당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이진삼 전 의원(77)은 1960년대 당시 간첩 한인동 사건, 무장공비 임관제 검거사건, 삼척 무장공비 사건, 무장간첩 김채흥 사건 등 굵직한 여러 사건을 해결하고 간첩을 검거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진삼 전 의원은 키 166cm의 자그마한 체구이다. 하지만 군인 이진삼은 '작지만 매운 고추'였다. 철봉, 평행봉, 복싱, 축구, 육상 등에 능한 만능 스포츠맨이었으며 태권도 실력은 공인 7단이다. '적과 싸울 땐 바람을 뒤로 서고 해를 등지고 싸우라'는 교전 수칙도 그가 만들었고 실전무술의 대명사가 된 특공무술도 그가 창안한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은 지난 2월 3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대남 전쟁협박을 일삼고 있으며 급기야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우리 군의 유일무이한 응징전의 영웅인 이진삼 전 의원을 그의 방배동 자택에서 만나 현정세와 대한민국 국가안보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이진삼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 무슨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다. 이게 실화가 맞나

▲그렇다. 당시 한국군과 미군이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도발에 강력대응하지 안할 것으로 판단하여 1966년부터 1967년까지 공비를 175회 침투하여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다. 실례로 21사단 65연대 부연대장의 숙소에 침입하여 부연대장과 세 자녀를 살해하는 등 무차별 학살만행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우리군은 보복작전을 하지 않고 당하고만 있었다.
1967년 8월 방첩부대장 윤필용 장군, 대공처장 김교련 대령, 특공대장 이진삼 대위가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던 중, 윤장군은 1군사령관 서종철 장군에게 전화를 해 "사령관님, 우리가 당하고만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라며 보복작전을 건의하였으나 "고려해보자"는 답변만 받았다.
 
이에 "제가 보복하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우리 부대는 적을 잡는 부대다. 보복작전은 기다려 보자"는 말만 들었다.
 
하지만 나는 서빙고 공비수용소로 가서 그곳의 공비 10명 중 3명을 선발, 전향 훈련시켜 침투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 9월 27일, 10월 14일과 18일 모두 3차에 걸쳐 북으로 침투해 적 33명을 사살하였다. 하지만 한 명의 대원이 희생당하는 불운을 당했다.
 
이러한 응징작전을 한 것은 몇배의 응징으로 적이 다시는 오판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 방첩부대 부대장 윤필용 장군(준장, 우측)과 함께     © 브레이크뉴스
-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군 수뇌부로부터 북침 작전을 승인받지 못하지 않았나? 군기문란행위 아닌가?

 
▲우리가 당하기만 한다고 생각하니 울분이 터졌다. 당시 대위였지만 방첩부대 소속은 당시 모든 기관에서 편의를 제공했다. 공작부대였던 방첩부대 장교 신분으로 전국 어디를 가서 뭐를 하든 비밀이 보장됐다. 당시 군대를 다닌 사람들은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상관인 윤필용 장군도 처음 갈때는 몰랐고 나중에야 알았다. 세번째로 북한에 넘어가겠다 했을 때는 불러서 "그만하라"고 강력히 말했다. 그래도 자기 말을 안들 것 같으니깐 전두환, 노태우, 권익현 등을 통해 만류했다. 3차 작전이 끝나고 대공처에 보고했는데 전두환, 권익현씨가 한 일식집으로 저를 불러서 "자네는 자식이 없느냐? 이제 됐다. 앞으로 장군도 하고 해야 할 것 아니냐?"며 말렸다.
 
당시 나는 나 혼자 죽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함께 다닌 대원들 역시 공비 포로들이기 때문에 죽어도 사회적 문제가 될 상황이 아니었다. 필사즉생의 각오로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생각으로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3차 작전에서 대원 한 명이 죽은 것을 보고 괴로워서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 지금 국가시스템이나 군 시스템을 감안하면 대북 관련 부서가 있어도 지금은 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내가 만약 차세대 신형 전투기를 이끄는 편대장이나 작전사령관이라면 "모든 책임은 나한테 있다"고 말하며 "북한 도발에 보복하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보복응징을 해야 더이상의 도발을 막을 수 있다.
 
- 북한은 올들어 연일 대남 전쟁위협을 하며 공공연히 무력도발을 하겠다고 엄포를 하고 있는데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
 
▲우리 정부는 잘 사는 경제논리만 앞세웠지 국가안보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NLL, 미사일 발사,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그리고 핵실험 등으로 국방에 대한 국민 불안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현재 우리 국민은 국가안보 불안을 넘어 전쟁공포를 느끼고 있다.
 
2008년 당시 나는 국가안보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며 "2009년 서해교전에서 피해를 당한 적은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 그러니 정신 차려라"고 국방관계자들에게 경고를 했었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이야기를 들었던 국방위원들이 나에게 '예언자'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러나 그것은 예언이 아니고 군 지휘관이라면 당연히 예측하고 적의 보복 도발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했어야 했다.
 
당시 나는 경계의 허점 노출, 보고체계의 문란, 사고 직후 처리 지연(사고원인), 작전보안, 지휘체계(작전사령관→해군총장→합참의장)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불합리, 사후처리 부실, 책임자의 책임회피 등 군인답지 못한 행동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에게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무능한 지휘관은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군인은 야전성을 갖고 전투에 임해야 함에도 적이 오면 남북대화에 저해된다며 밀어내기 하라는 지시로 인해 우리의 소중한 젊은이들이 전투다운 전투도 못하고 적의 공격으로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


▲ 이진삼 전 의원     ©브레이크뉴스
-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 창설 후에 처음으로 유임을 하게 됐다. 현 시기와 상황에 걸맞는 적임자라고 보는가?

 
▲적임자로 판단한다. 2010년 12월 3일 국회 국방위원으로 김관진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지난 3년간 발생한 각종 사태에 대한 검증을 했다. 당시 내정자는 제대로 분석을 하고 청문회에 임했다. 특히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사태 그리고 대북 대응태세와 주적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증했다.
 
청문회에서 국방문제에 대한 질문에 지식과 소견을 뚜렷하게 갖고 있었다. 내가 제일 까다롭고 강력하게 질문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국방장관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지금까지 대북 강대강으로 맞서는 전략을 구사했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두 번이나 해 실패한 대응이라는 일각의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나?
 
북한의 속성으로 볼 때, 우리의 강력 또는 온건 대응과는 관계없이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 2009년 2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이 최고사령관 자리에 오르면서 장거리 로켓 발사,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핵을 강성대국론과 결부시켜 선전용 카드로 써왔으며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굶주리는 주민들의 통치차원에서 포기할 수 없는 카드이다.
 
- 육군 참모총장 출신으로서 육해공군 참모총장에게 군령권(작전, 정보)을 부여하는 상부지휘구조개편에 대해 어떤 생각인가?
 
▲임무가 부여되면 군 지휘관은 즉, 육해공군 참모총장은 우선 임무를 분석하고 편성하며 장비와 교육훈련을 책임지는데 전투지휘선상에서 배제된다면 이는 이율배반입니다. 또한 그렇게 되면 작전성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현재 합참의장은 군사령관 또는 육행공군 작전사령관을 통하여 군령권을 행사한다. 그리고 군령 책임자로 각 군 총장, 군사령관과 함께 공동권한과 책임을 지도록 한다면 일사분란한 지휘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부작용 없이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육해공군 참모총장에게도 군령권 즉, 작전정보에 관여하도록 상부지휘구조개편을 해야 된다. 
 
인터뷰어 : 우문길 브레이크뉴스 상임고문, 글 사진 : 김병묵 온바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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