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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특이한 사죄방법-와키케 보보

한국처럼 산발적 데모하거나 경찰신고 않으면 바로 구속

줄리 도쿄특파원 | 기사입력 2013/09/30 [10:32]
일본 경찰은 데모하는 단체나 시민과 같이 움직인다. 일본에서는 경찰의 허가 없이 집회, 데모를 거리에서 할 수 없다. 먼저 시일을 정하고 인원수와 리스트를 경찰에 보내면 관할 경찰서허가가 떨어져야  데모를 한다. 마이크 데시벨도 정해져 있으며 거리 시위 전 구간도 검열받는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산발적 데모를 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하면 일본에서는 바로 구속이며 최소 10년 징역형으로 형질이 무겁게 잡는다. 일본은 경찰이 데모 단과 같이 움직이므로 큰 사고는 나지 않으나 막강한 경찰동원이 필요하다. 
 
▲ 일본     ©브레이크뉴스
▲ 일본     ©브레이크뉴스
9월 29일 반중국 데모가 롯폰기에서 시작하였다. 이번의 데모는 전문 우익보다 양복 입은 국민이 많다는데 이례적이다. 9월 30일은 반한국 데모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예정에 잡혀 있다. 한국에 대한 데모 역시 거국적으로 진행된다는 데 염려가 된다.
 
데모단 필두가 앞장선다. 지금 일본 정서는 중국과 한국에 관한 감정이 극대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전쟁에서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는 일본으로서는 전쟁 불사를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로 국민 정서가 양국을 가만두지 말자는 데 있다.
 
롯폰기. 신주쿠, 하라주쿠, 시부야, 중국대사관 코스로 이어진 데모 단은  시민들도 전부 들을 수 있게 마이크에 대고 대일본에 반하는 국가와는 수교 단절이라는 말도 거침없이 하고 있다. 더구나 양복 입은 신사들까지 대거 등장하여 놀라게 된다. 국제간의 마찰 역시 작금에 생각할 과제다.
 
謝罪の王様
 
일본 영화가 전 세계 반향을 일으키며 인기를 끌고 있는 사자이노 오사마 즉 사죄의 왕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사죄의 센터 사장에게 온 고객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어진 영화다. 
 
▲ 사죄     ©브레이크뉴스

내용은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주인공이 어느 날 경비 일을 하는데 새로 생긴 라면 야에 줄을 몇 시간 서서 기다려서 라면을 먹으려고 라면야에서 기다린다. 워낙 손님이 많다 보니  불친절은 고사하고 뜨거운 라면을 헹구는 물방울이 얼굴이 한 방울 튀었다. 그럼에도 사과는커녕 아무런 말도 없는 그 담당에게 사과를 받으려고 맞은 편 다방에서 기다린다는 주인공은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오지 않고 라면 야 담당 대리가 와서 돈 봉투를 내밀고 사과한다. 그는 그를 오라고 말한다. 다음엔 부장이 와서 사과한다. 그를 해고했다면서 역시 많은 돈 봉투를 내민다. 그는 돈이 필요한 것이라 아니라 물을 튀긴 당사자에게 사과를 듣고 싶다고 한다. 역시 사장까지 와서 사과한다. 결국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러기를 반복하자. 그 라면 야는 문을 닫고 만다. 그는 사과도 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왜 미안하다는 그 말 한마디 하지 않는가에 울분을 참지 못 한 나머지 사죄 센터를 개설한다는 이야기다.
 
클라이언트 중에는 잘 나가는 검사에 국제 변호사에 아쉬울 것이 없는 남성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 3살 난 딸이 시험 중인데 어디서 나온 말인지 와키케 보보 지유니 메가미 를 말하면서 율동을 하는데 꼭 놀리는 느낌으로 귀찮게 들렸다. 그 뜻은 일본어로는 겨드랑이털 부숭부숭 자유의 여신상이다. 사실 자유의 여신상에는 털이 없으므로 우스개 같이 들리는 말이다.
 
결국 시험 준비를 한 다음 날, 늦잠을 자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는 서둘러 시험장에 가려고 장롱문을 열자 딸이 그곳에 숨었다 나오면서 와키케 보보 지유니 메가미라고 말하자 확 얼굴을 때리게 된 사건이다. 이후 그는 이혼하게 되어  딸과 살지 못하였다. 늘 딸에게 사과하지 못함에 가슴에 맺혀 그를 찾게 된다.
 
또 다른 클라이언트는 영화를 찍었는데 내용 중에 엑스트라를 이용해서 마구 부리고 함부로 다루었다. 알고 보니 여행 온 마탄다라는 가상의 나라인데. 아마도 부탄 같은 나라의 왕자였던 것이었다. 그 영화의 내용에서는 마탄다라는 나라에 크게 죄를 지은 사건으로 문제가 발발되자, 결국 감독, 지휘자, 스탭이  몇 번을 갔지만 문화의 차이로 인한 실수로 국왕과 국민의 노여움을 산 것은 물론이고  일본식 엎드려 사죄까지 했지만, 그 나라에서는 무시하는 놀림이라는 뜻이 되어 더욱 악화가 된다. 아마도 영화지만,  일본과 무역도 끊는다는 그 나라의 발표까지 하게 된다.
 
결국, 그 사죄 센터의 사장은  일본 총리를 찾아가  총리와 같이 마탄다에 간다.
바로 “너무나 죄송하고 잘못을 했습니다”라는 의미가 와키케 보보 지유니 메가미 라는 뜻이 그 나라의 사죄 말이었으며 모션과 말을 이용하여 그 나라 영화를  변호사의 딸이 비디오를 보고 흉내를 낸 것이라는 줄거리인데 진심으로 마음에서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것은 머리를 굽히고 상대를 감동하게 의미의  영화다. 비록 코믹하지만, 지금 뉴욕을 비롯한 세계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필자에게도 두 번의 잊지 못할 일본인 사죄 경험이 있다.
 
신문 칼럼을 쓰던 당시  줄거리를 찾기 위하여 일본 전국을 여행했다. 나가사키로 기억되는데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있는데 내선 전화가 왔다. 받으면 키득거리고 끊고 받으면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한두 번이 아녔다. 결국 프런트에 연락하여 범인을 잡았는데 초등생 2명이 부모와 온 방이었다. 화도 났지만, 주의 시킨다고 하길래 그렇게 넘어갔다.
 
다음 날 아침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와 웨이터가 나의 룸 넘버를 물으면서 어제 아이들 장난 받으신 분이냐고 하였다. 그렇다고 하니 부모가 죄송하다고 하면서 아이들을 내 앞에서 사과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두 명이 申し訳ございません -너무나 죄송합니다.お許しください 용서해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괜찮다고 아이들은 다 그러지요. 라고 말했지만, 부모는 아이들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나는 상당히 놀랐고 곤란하여 그만 일어나라고 했으며 당시에 기억으로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눈을 보니 불쌍하기도 했다.  나는 그 일을 두고두고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또 하나는 지방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지그재그로 하면서 위험하기 그지없는 운전자가 안개등까지 켜고 방해를 하여서 결국 그자를 추적하여 회사까지 간 사건인데 전날의 피로가 과중하여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더구나 업부 시간에 맞추어 빨리 가다 보니 운전을 과하게 했다는 말도 전했다.
 
그 날 본사의 부장이 도쿄 집 앞까지 운전자와 부장, 사장까지 와서는  申し訳ございません -너무나 죄송합니다.お許しください 용서해 주세요  라는 말을 했다. 그 운전자  역시 커피숍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그때도 나는 일어나세요. 이러면 곤란합니가고 했다.
 
일본인의 사과는 무릎을 꿇거나 바짝 몸을 엎드리고 고개를 숙이는 사죄를 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연대 책임이 강한 나라여서 학생을 폭행한 선생이 있으면 그 학교 교장이 방송 앞에서  申し訳ございません -너무나 죄송합니다.お許しください 용서해 주세요  라고 말하며 사원이 잘 못을 하면 사장 이하 임원이 줄줄이 같이 사과하는 나라다.
 
이처럼 일본은 사죄가 철저하다. 그러므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점도 있다. 작은 일에도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너무나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다. 백화점이나 상점도 습관처럼 눈과 마음은 사과할 생각이 없어도 입은 늘 죄송합니다 달고 다닌다.
 
이러한 민족이 내놓은 영화 사죄의 왕은 꼭 볼 필요성이 있다. 일본 전 국민이 이 영화를 잘 된 영화라고 한다.
 
필자에게는 사과하고 싶은 딱 한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사죄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유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은 평생 카르마를  짊어지고 갈 나의 운명이 되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사과하거나 사죄할 행동을 하지 않으며 무례를 가장 혐오한다. 그렇게 사는 데에는  남으로부터 스스로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이유가 더 컸을 것이다.  
 
일본인의 사죄는 머리를 바닥에 댈 정도로 굽히는 것이며 그것은 누가 보아도 사죄라는 누낌을 들게 한다는 점과 사과를 받는 입장에서도 충분하게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들을 줄 아는 태도, 상대를 배려하는 생각, 받을 수 있는 관용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앞서 말한 일본 호텔의 사건인 아이들 사과에서도 이런 못된 아이들이 있나? 부모가 무엇을 가르쳤길래 아이들이 저토록 무례하나? 등의 말이 오갔다면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상대방의 성질만 돋우고 언성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일본인에게 기다릴 줄 아는 바로 그 점, 간과하지 않으면 사과를 받을 수 없다.
 
가족, 친구, 인간관계, 외교도 배려다. 그 배려를 잊고 자신의 주장만 한다면 영원히 원하는 사죄를 들을 수 없을 수도 있다. 죄를 지은 것을 사죄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면 상대에 맞게 대응하고 기다리는 자세도 중요하다.
 
가끔 한국인 중에 일본인 남편, 부인, 일본인 친구가 한국인에게 일본인 또는 국가를 대변하여 사과합니다. 는 말을 하는 사람은 100% 거짓말이다. 천황이 사과하지 않는 군국주의 나라의 국민이 그런 말을 혼자 지껄인다면  필시 재일 교포거나 한국인이다. 아니 꾸며 낸 거짓말이다. 일본 사회의 통념과 교육은 자국의 긍지를 높이도록 가르쳤다. 그러므로 이들이 쉽게 빈말도 하지 않으며 더욱이 한국이나 중국에 사과를? 웃기는 말이다. 과연 일본 배우자라서 한국인에게 사과를? 일본인 대다수의 성격이 나대거나 나불거리는 타입이 아니다. 속에 담기는 잘하여도 뱉지 않는 무서운 면이 많다. 더구나 사죄란 죽음과 같은 처절함이다. 간단하게 입으로 나불댈 수 없는 이들의 문화를 모르기에 그런 말을 지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뭐 가끔은 무명의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사과했다는 등의 이야기도 그의 조상부터 뒤져야 할 문제다.
 
일본인에게 사과를 받으려면 먼저 입을 다물고 경청의 자세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스스로 잘못에 대한 부분을 반드시 말하고 사과할 때까지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사죄할 것이다. 소란을 피우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좀 걸려도 사과를 반드시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과연 사죄를 잘하는가?
 
역으로 묻고 싶어진다. 가족, 친구,부부, 국가에 자신의 잘못은 없고 변명이나  남의 탓으로 돌린 적은 없을까. 괴담이나 유언비어를 남발하기는 쉬어도 진실을 말하기란 참 어렵다면 사죄 또한 쉽게 할 인격도 안 될 것이다. 무릎을 꿇거나 할복을 할 정도의 그 자세로 말이다.
 
이 영화가 한국에 상영되는지에 대하여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인의 근성. 사과의 자세. 시간이 지나도 잘못에 대한 반성 등 살면서 진실로 배워야 좋은 교훈들이었다. 사죄란 마음에서 깊게 우러나와 진심으로 할 때 빛을 발하고 더욱 감동하게 된다. julietcounsel@hanmail.net
 
*필자/줄리. 본지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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