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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95년만에 ‘명예졸업장’ 받아

13일 중동고총동문회 여수 방문, 졸업장 전달과 기념식수

이학철기자 | 기사입력 2014/02/12 [15:56]
[브레이크뉴스=여수]이학철기자= 세계 교회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꼽히는 ‘20세기 사랑의 원자탄’ 순교자 손양원 목사가 지난 6일 95년 만에 중동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중동고등학교총동문회(회장 백강수)는 13일 오후 여수시청에서 손양원 목사 명예졸업장 전달식과 순교기념관 등을 방문한다.

이날 행사에는 손양원 목사의 딸인 손동희 권사 등 유족과 총동문회 30여명이 참석, 김충석 여수시장에게 명예졸업장을 전달한다. 명예졸업장은 손양원목사 기념관에서 영구 보관하게 되며, 기념식수도 갖는다.

이번 손양원 목사의 중동고등학교 명예졸업장 수여는 제17대 중동고등학교 총동문회(회장 백강수, 중동 64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추진됐다.

앞서 지난해 3월 백농포럼에서 중동고 동문인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강연에서 손양원 목사가 중동고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백강수 총동문회장은 학교측에 문의해 이 사실을 확인했고 김병민 중동고 교장과 손양원 목사인 딸인 손동희 권사에게 건의했다.

중동고 총동문회 임시임원회는 만장일치로 손양원 목사의 명예졸업장 수여를 학교측에 건의했고, 학교는 지난 6일 오전 중동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손양원 목사의 딸인 손동희 권사에게 손목사의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손양원 목사는 1902년 경남 함안에서 손종일 장로의 장남으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7살때부터 새벽기도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한일 합방 이후 일제가 동방요배를 강요하자 신앙의 정신으로 불복종하다가 간신히 칠원보통공립학교를 졸업하면서 같은 해인 1919년에 서울 안국동에 있던 “중동 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하지만 3.1운동 이후 부친이 고향에서 독립운동으로 징역을 살게 돼 손목사에게 심적인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까지 겪게 됐고, 결국 손양원 목사는 중동학교에서 키워가던 꿈을 포기하고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이후 손 목사는 193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애양원교회에 부임한 뒤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생활했으며 손 목사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다 1942년 투옥됐다.

손 목사는 ‘전향(轉向․덴꼬)’해야 출옥할 수 있다는 담당 검사의 위협을 뿌리치고 광주 형무소에서 경성 구금소, 청주 구금소 등으로 옮겨 다니며 광복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 발생 당시 손 목사의 두 아들 동신과 동인은 공산당원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두 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한 공산당원을 양아들로 삼았다.

손 목사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공산군에게 체포돼 여수시 미평동에서 총살당하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 사진은 손양원 목사    © 여수=이학철기자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전남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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