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가와 예언자는 ‘미리 말하는 사람’이다. 예측가는 ‘미래에 대해서 분석해 예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예언자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영적인 교류를 통해 미리 말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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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예언자나 예측가는 모두 ‘미래를 관(觀)하여 미리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예언자 같지 않은 예언자’들도 있고, ‘예측가 같지 않은 예측가’들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언(Prophecy)은 통찰이나 직관에 기반을 둔 종교적 마법적 영적인 능력이 있는 자가 미래에 대해서 일어날 일을 미리 하는 말이다. 이처럼 미래의 일과 관련하여 예언력을 가진 사람을 일컬어 프로페시어(Prophecyer) 예언자라고 한다. 예언자는 인간과 신(神)의 중간자로서 또는 영적인 존재의 전달자로써의 역할에 충실 한다. 그 예로는 마법사 영매 무당 박수 등을 다양하게 들 수가 있다.
예측(Prediction)은 수집하고 축적된 정보를 근거로 과학적 학문적인 구조를 갖춘 이론을 통해 분석한 결과로 미래에 대해서 내놓는 예견(豫見)이다. 이처럼 미래의 일과 관련하여 예측력을 가진 사람을 프리딕셔니어(Predictioner) 예측가라고 한다. 예측가는 객관적인 증거와 이론 그리고 논리에 입각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궁구하여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는 각 분야의 학자들이 이에 속한다.
‘취할 여(予)자와 코끼리 상(象)자’를 합성해서 만들어진 글자가 바로 ‘미리 예(豫)자’이다. ‘미리 예(豫)’라는 글자는 회의문자이다. 즉 회의문자란 뜻과 뜻을 합쳐 새로운 뜻을 만든 글자라는 말이다.
예언과 예측이란 ‘무형의 세계에서 상(象)을 취(予)’하여 ‘다가올 일을 미리 말한 것’이기에 예(豫)라고 했음이다. 예언이 가지는 동양철학적인 의미를 알 수 있음은 바로 ‘상(象)을 취(予)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象)이라 함은 흔히 징조, 조짐, 기미라는 말처럼 사물의 본질이나 성질 또는 숨겨져 있는 이면(裏面)이 외형적으로 은밀히 드러내거나 또는 드러나는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한다. 그래서 동양역학(易學)에서는 ‘상(象)을 취(予)하고’ 여기에 ‘수(數)를 취(予)해서’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예측과 예언을 하는 학문으로써 ‘상수학(象數學)’을 발전시켰음이다. 이게 바로 천문역경학(易經學)이고 주역(周易)인 셈이다.
우주변화의 원리 속에서 상(象)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와 설명은 가능해진다. 한마디로 상(象)이라는 개념은 형(形)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예컨대 형(形)이 인간의 감각으로 쉽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상(象)은 명(明)을 잃은 일반적인 사람이나 자연율법과 자연법칙을 관찰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인식되기 어려운 무형의 존재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인간이 분노할 경우에는 반드시 그런 분노의 주체인 간기(肝氣)로서 목기(木氣)가 흥분을 하고 있는 상(象)이 오행의 생극(生剋)원리대로 얼굴의 안면에 그대로 나타나게 되어 있음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일 내심에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노기(怒氣)를 감추려고 제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상(象)이 얼굴의 안면에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때에도 보통의 일반사람들은 그러한 노기(怒氣)한 상(象)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할지 모르나 명(明)을 가지고 있어 총명한 사람에게는 속일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상(象)을 연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인류는 이를 연구하기위해 먼저 수(數)와 괘(卦)를 통해서 상(象)을 관찰하는 방법을 궁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함의 이유는 수식이나 수열에도 자기자체의 상(象)이 있고 팔괘(八卦)에는 만물이 변화하는 상(象)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象)에 대한 쉬운 예를 한번 들어보자. 병원의 의사는 사람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활력징후인 바이탈 사인(Vital Sign)을 통해서 환자의 상태를 진단한다. 예컨대 호흡, 맥박, 체온, 혈압, 심장박동 등의 생명의 신호라는 상(象)을 통해서 환자의 상태와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바이탈 사인이 바로 상(象)’이다.
마찬가지로 한의사는 관형찰색과 진맥을 통해 그 사람의 상태인 상(象)을 진단한다. 예컨대 문진, 찰색, 진맥, 혈압, 맥박, 호흡, 체온 등의 체크 등으로 말이다. 기상청에서 기상을 예보하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구름의 움직임, 기압 그 밖의 여러 가지 기상관측자료들인 상(象)을 참고하여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상(象)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실낱같은 감이 잡히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상(象)을 파악해 바르게 읽어내면 미래를 알 수 있음인 것이다. 더 나아가 미래를 바꿀 수도 있음이다.
예컨대 이성 친구와의 즐거운 데이트를 즐기는 날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이성 친구의 표정이 좋지 않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 걸까? 그렇다면 재빨리 파악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성 친구의 표정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상(象)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현재 심리상태와 앞으로 어떠한 행동이 나타날 것인지를 캐치하여 그에 대한 준비를 미리미리 잘해야만 한다.
눈치코치도 없이 상대방의 기분을 못 맞춰준다면 오늘 즐거운 데이트는 최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기분에 맞추어 적절한 멘트와 매너를 잘 구사만한다면 큰 점수를 딸 수도 있지 않을까?
예언가와 예측가들은 천지자연의 상(象), 예컨대 천지자연의 표정과 숨결을 읽은 사람들이자 대우주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천지가 어떠한 길을 걸어가는지 느끼는 사람들이며 나아가 보이지 않는 신도(神道)세계와 통하는 사람들이다.
예언가와 예측가들은 이 대우주의 비밀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와 방법을 통해서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석가 노자 장자 공자 예수와 같은 성현들도 매양 마찬가지이지 않는가?
대장금의 도사가 파자(破字)예언을 통해 장금의 아버지에게 예언을 한 것처럼, 대개의 예언가들은 일반인들이 알아보기 힘든 신비로운 방법으로 예언들을 한다. 이러한 예언과 예측들이 세상을 만들어가고 또한 변화를 시켜간다.
천지자연의 비밀이자 속마음이 너무 쉽게 공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일까? 이런 저런 이유로 예언과 예측은 일반인들에게 미신(迷信)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마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을 당시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예언과 예측을 미신이나 흥미꺼리 등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예언가와 예측가들이 자신이 필생의 공력을 다해 그들의 깨친 바와 그들이 미리 보고 들었던 천지자연의 깊은 한 소식을 전한 것이 바로 예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오늘날처럼 눈부시게 발전하고 발달한 데에는 분명히 인류의 피나는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자연의 섭리가 깊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듯이 인류의 문명은 흥망성쇠를 거듭해옴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삼국지에서는 ‘천하대세가 분구필합(分久必合)이고 합구필분(合久必分)’이라했지 않았던가?
천하의 대세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짐이 오래되면 반드시 다시 하나로 합해지고, 합쳐진 곳이 오래되면 반드시 여러 갈래로 다시 나뉜다는 뜻인 것이니, 천지자연과 인간역사는 끊임없는 분열과 통합의 연속임을 말하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낮만 영속할 수 없듯이 밤만 영속할 수도 없음이듯, 인간만사의 삶이나 정치권의 여당 야당의 정치권력의 부침도 역시 천자연의 숨결처럼 오르막 내리막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야당이 되었을 경우를 고려한 여당일 때의 처신이 필요한 것이고, 여당이 되었을 경우를 고려한 야당일 때의 알맞은 처신이 필요함이 아닐까?
하루에도 아침, 점심, 저녁, 밤이 있고, 지구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대자연과 이 우주에도 그런 순환주기가 있음이기에 하는 말이다. 요즘 한국 정치권이 제 밥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 그들의 미래가 추측되어 안타까운 마음에 추석명절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씁쓸한 한가위 명절이다.
nbh1010@naver.com
□글/노병한〈박사/자연사상칼럼니스트/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 [노병한의 신간 : “막히고 닫힌 운을 여는 기술” 안암문화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