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신임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보건복지부장관으로 내정된 열린우리당 유시민의원의 부친에 대한 친일 의혹 문제가 청문회의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청문회를 앞두고 지난2004년 본지가 제기한 유내정자 부친의 친일 행적에 대해 한나라당이 사실확인에 나섰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증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본지는 지난 2004년6월 유내정자의 부친, 유태우씨가, 만주에서 역사 훈도로 재직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으나 유의원의 확일불가라는 대답과 함께 본지에 대해 재 확인을 요청 하는등 논란이 일었었다. 이에 대해 당시 본지는 경북도 교육청의 한 직원으로부터, "자신의 교직생활을 만주에서 훈도로 시작했다고 적은 유태우씨의 기록이 있으나 본인이나 직계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확인해줄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들었다.
이후 본지는 유 의원측에 공개적으로 이같은 사실을 전했으나, 이후 유의원은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삶이며 나의 삶은 나의 삶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아버지가 한 일을 어떻게 평가하고 소화하느냐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긴체 부친의 친일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었으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보건복지부장관으로 내정돼면서 이 문제의 재점화가 예고됐었다.
당시 본지 송인웅 기자는 유 의원의 서울대 구타사건 문제를 4.15총선 당시 허위로 적시한 문제를 포함해 이같은 의혹을 제기한바 있다.
이밖에도 유의원이 넘어야할 산은 또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국민연금 미납이라는 악재까지 터졌다. 유 내정자는 우선 지난99년 7월부터 2000년 7월까지 소득이 있었음에도 국민연금을 미납했다는 한나라당 주장부터 해명해야 할 형편이다. “제 때 고지를 받지 못했다”는 현재의 해명만으로 야당 의원들의 거친 추궁을 비켜가기가 쉽지 않을듯. 당장 “국민연금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는 청와대의 발탁 논리가 무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아래는 2004년9월10일 본지에 보도된 기사의 일부>
'선생도 제 아들의 선생되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유시민이 지난 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선친은 1943년께 숙부를 따라 만주에 가서 어느 소학교(초등학교)에서 일했지만 교사였는지, 보조원이었는지, 행정사무원이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한 것은 참으로 절묘한 일치였다.
훈도인 아버지가 제 자식에게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 였음을 바르게 훈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이 고백은 단적으로 전해준다. 이 또한 참으로 구구절절한 가르침으로 들린다. '기자'에 '가(家)를 붙이지 않는 것은 '팩트기록'이라는 범주를 먹고 사는 자(者)라는데 연유한다.(중략)
지난 3일 친절하던 취재원 c 씨가 갑자기 " 유태우씨 4인중 한 사람의 인사기록 첫 직책이 훈도(訓導)다. 그러나 본인이나 대리인이 아니면 그 정보공개는 불가하다" 였기 때문이다. 그런것을 '가마귀 날자 배떨어진다'고 유시민이 덥석 물고 들어 온 것이라니 이 얼마나 기가막히는 궁합의 일치인가? 삼척동자라도 짐작이 갈만한 팩트의 드러남이었다. 유시민 그가 스스로 밀고 들어오지만 않았서도 후속타는 필경 꼭꼭숨어라~ 고 미궁이거나 잠복기를 헤맸을 것이 불문가지다.
7일에서 사흘이 지났으나 유시민이 직접 확인했다는 전문이 없다. 기자가 예시했으니 이게 왠 날벼락? 하고 잽싸게 그것을 살폈을 만한 그의 기민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무슨 역전의 발상에 빠져있을까?
각설하고, 그래서 유시민의 선친이 경주에서 교장을 끝으로 퇴직했다'는 설(說)을 확인코자 나섰던 지난 3일의 취재노트를 다시 쳐든다. 아~참, 양해받을 사항이 하나 있다. 지난 글에서 유시민 그의 선친 유태우씨의 만주 모 小학교 첫 교사직 '훈도(訓導)'를 한자로 표기함에 있어 '訓徒'라 적은 것에 대해서다. 여기서 바로 잡는다.
경북교육청은 분명 도내 모든 교사의 인사기록카드 창고를 운영한다. 그것은 교사가 손수 기록한 '이력서'를 기초로 한다. "유태우씨 4인의 기록카드가 있다" "본인이나 위임받은 가족이 아니면 절대 공개불가다" "그 중 한사람이 만주 의급학교 훈도를 첫 교사기록으로 적고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경북교육청 중등교육과 담당자가 다른 신문사 기자의 확인을 두고 "그런 것 확인해 줬거나 확인해줄 수가 없다"고 튕길만 하다는 것은 취재세계의 속석상 충분히 상상이 가는 것이다.
유시민이 아버지문제로 '연좌'가 된 것을 두고 '친일파'의 결정적 단서가 된다 안된다고 섯불리 말할 게재는 아닐 것이다. 팩트의 연장선상에 망자가 그렇게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 당자가 가타부타 투명하고 정당하게 선후가 이렇다는 말을 못한다는데 있다.
모택동의 공산당시절 중국은 '중공'이었다. '황화론'의 컴플랙스에 걸린 미국의 입장에서 오랫동안 골치아픈 철의 장막이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요새 그렇게 많지 않다. '중화민국'의 거대한 국력에 혀를 내 두르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그 여세를 대한민국이 야금야금 받아먹고 있다. 우선은 경제가 그렇다.
원교근공의 외교전략을 전방위에서 자랑하는 중국의 품안에서 북한도 일본도 미국도 러시아, 그리고 한국도 압박게임의 외줄타기위의 피에로인양 춤추고 있다. 그렇게 달이가고 해가 간다.
우리의 사랑하는 유시민의 가족사가 그 와중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묻는 것은 연목구어다. 다만, 친일파 색출이란 지상명제를 두고 3.1독립 선언문 속의 "우리는 조선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외친 최남선같은 분이 설마 친일의 대 문필가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기자와 같은 순진무구한 청춘에게, 당대의 권세가 유시민이 그 아버지도 맘대로 가르치지 못한 전혀 별개의 별난사람으로 치부된다는 얘기에 고개가 가유뚱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덧붙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 권문세가의 일당 '열린우리網'에 가두려는 세태가 자못 수상하고 안타깝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지금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