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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토막을 점령한 홍등가와 낡은옥편!

“비정규직 700만의 신음으로 온 세상이 탁하고 시끄러워요”

이래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4/12/22 [10:14]

-내가 보살핀 게 아니라 그분들이 나를 긍율히 여겨 살렸다.


영욕이랄 것도 없고, 지난한 투쟁의 역정이랄 것도 없는 평범한 무직자의 설움을 겨우 덮을 수 있는, 찌질 한 역술인이자 공사판 잡부를 겸하고 있는 나는 이제 55세의 황량한 겨울 끝에 서 있다. 밤이 깊어지면 새벽을 잉태하고, 겨울이 한창이면 나무들은 땅 밑의 뿌리나 회초리 같은 연약한 가지 끝에 매달린 새싹을 지키며 봄을 꿈꾼다. 인간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자연계의 순환상생의 생명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알고, 서로 유기적으로 좋은 인연과 소통을 통해 세상에 싱그러운 생명의 활력을 확대재상산하는 것이 극락이요 천당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모르면 배우고 또 배워라

 

▲ 이래권 작가     ©김상문 기자

환자 없이 어찌 의사가 노블 워커가 되며, 범죄자 없이 검경 변호사가 안정된 수입을 얻으며, 가난한 노동자 없이 어찌 기업이 세계로 나아가 국부(國富)를 창출할 것인가? 개구리 없이 뱀이 생존하고, 새와 벌이 없이 어찌 자연계의 과수(果樹)과 열매를 맺으며 드넓은 산야에 고루 파종되어 번식될 수 있단 말인가?

 

요새 국법수호 창조경제 구호가 국민의 귓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제2의 국운도약 제2의 규제개혁 철폐운동이 한창이다. 좋다! 당연한 말씀이다. 문제는 국가가 끌고 가야 되는데 상부는 썩을 대로 썩어서 냉소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세계경제 침체로 노동자는 양계장의 산란계처럼 산란율이 떨어지면 정리해고와 함께 비정규직 땜방으로 기업이윤을 맞춘다. 잔혹한 자본주의의 경제적 가치판단 기준은 무자비하게 체로 걸러내는 무직자와 비정규직의 천국을 도래시켰다.

 

하여, 55년간 무직자 잡역부 삼류 역술인으로 살아온 나의 위대한 스승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저 위에 초라하게 찍힌, 네 귀팅이가 닳고 닳은 25년 이상 늙은 한자옥편이 최고 스승이다!

 

나는 공고 기계과 출신으로 용접공자격증이 전부인 학력이다. 일곱 살에, 전주 이씨 익안대군 대림도정공파 17대 독자인 부친은 지병으로 피고름냄새와 고통의 신음을 몇 년간 남기고 내 일곱 살에 홀연히 소천하셨다. 가족에겐 경제적 고통과 잔인한 노동을, 서른 청상과부 모친과 사남매에게 강요했다. 학교는  사치였다. 비과세증명서 천민으로 겨우 학비를 면제받고, 그나마 工高를 나오게 한 것은 70년대 ‘조국근대화의 기수’ 양성이란 박정희 정권의 기능공 우대정책으로 인한 연유였다.

 

나는 학교 앞 책방에서 위에 찍힌 한자옥편을 샀다. 그리고 꾸준히 옥편을 펼쳐가며 지금까지 모르는 글자를 찾아가며 외우고, 또는 망각된 언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려 힘써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잡역부로 일하다 특전사에 자원입대하여 5년간 근무했을 때도, 고참들은 내 한자옥편만은 관물대에서 빼앗아가지 않았다. 조마조마하면서도, 옥편을 빼앗아가지 않았던 이유는 그때까지 익힌 한자를 토대로, 선배들이 내가 특전사 부사관 중에서 글줄이나 읽는 한학자 후예로 착각한 탓이었다. 선배들은 각종 수기공모전에 대필의뢰를 해왔다. 적중률 90% 정도로 수기들이 육군 내에서 상을 휩쓸자 통닭이나 깡통햄에 소주를 바쳐가며 청소와 사역을 면제케 해주기도 했다. 지금은 전부 유식한 부사관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대학을 다니다 논산훈련소에서 강제로 차출되어 사병으로 끌려온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한자와 글쓰기에서는 단 한 번도 여단내에서 사병에게 상장을 빼앗긴 적이 없었다. 가까스로 한자가 눈에 잘 들어오고 두뇌에 쏙쏙 박히는 것은, 아마 이씨조선 600년을 꾸린 태조 이성계의 장남 익안대군의 후예로써 우성인자를 물려받은 까닭이라고 스스로 자위하고 재밌게 공부해왔다.  물론 대만대 박사출신으로서 한중 고어의 권위자로서 한민족의 근원을 베이징 박물관을 뒤져 그 어려운 한자들을 해독하시는 심백강 박사님 같은 분을 비교한다는 것은 조족지혈의 미천한 실력이다.

 

한자옥편 첫 장에는, 일제의 조선합병과 만주진출로 대중국전으로 확전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망케 하고, ‘동양평화론’을 내세워 테러리스트가 아닌,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군인으로 꼿꼿하게 옥사하신 안중근 열사의 말씀이 적혀있다.

▲ 안중근     ©브레이크뉴스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안위노심초사)!-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국가의 독립과 백성을 압제하는 일제의 만행에 매일매일 걱정하며 내 영육을 태워 해방을 꿈꾸노라! 란 뜻이다.

 

내 집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이 한 장 있다. 왜정때 반장이셨던 아버지는, 학교의 비스듬한 언덕에 양쪽에 니뽄도 장검을 허리에 차고 군복을 입고 모자를 쓴 선생들 가운데 초라하게 앉아계신 사진이 유일하다.

 

나는 매일 사전을 한번 이상 펼쳐본다. 우선 첫 장에 쓰여진 안중근 열사의 말씀을 되새기다보면, 니뽄도 장검을 허리에 찬 선생인 듯한 인간들 사이에 초라하게, 의식도 가물가물하한 선친의 모습을 되살리려 무진 애를 쓴다.

 

하여튼 이젠 지천명을 넘어 55세를 넘기는 한해의 마지막 강취위 속에서 그나마 빚지지 않고 연명하는 것은 닳아빠진 한자옥편이 일등 조언자이자 대스승이다. 요새 세태를 보면 한마디하고 싶다. 나는 평소 15세 아들에게 10년째 벽에 붙인 17가지 인간의 해야 할 일 중에서,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된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하고 또는 설령 알았다 해도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고 행하면 두고두고 후회하니 명심하라.’란 구절을 읊조리게 한다.

 

◆연말 정국이 가뜩이나 움츠러든 서민들에게 분노까지 안긴다.

 

야당의 비대위원장이 처남의 취직으로 8억을 벌게 했다는 사과가 있었다. 여당은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서운하다는 누나에 대한 원망과, 비서실장으로 모시던 대통령을 두고 비서관 삼인방을 쥐락펴락한 사건으로 경찰관 한분이 번개탄으로 자살을 선택했다. 그는 구속된 동료에게 남겨진 처자를 부탁하며 분노와 원망과 한계를 처절하게 가슴에 묻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당사자들에게 묻는다! 비선실세 십상시니 만만회니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올 겨울에 난방비 아끼려다 전기장판에 타죽는 쪽방촌 노인들과, 올해도 취직 안 되고 결혼 못하는 비정규직 700만과 하루에도 수백 개씩 망해가는 자영업자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지, 대책이 없는지를 여야 정치권에게 묻고 대책을 세우길 촉구한다. 백성들의 고난을 몰랐다면 골목골목에 나가 묻고 들어라. 알았다면, 선거철 공약을 달콤한 세치 혀로 속였으니 사기다. 사기죄는 철창에 갇힌다. 철창을 비켜간 대신 국회의원수 줄이고, 세비를 백성의 중산층에 맞춰 대대적인 인하로 석고대죄하라.

 

하여튼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 구도자의 일상을 꾸리고 있다. 하여 38년간 저 한자옥편으로 이제 더듬더듬 일본어와 중국어로 손님들을 상담하여 엔과 위안화를 복채로 받을 때도 있다. 몇 년 전엔 신칸센 철도회사 관련 여사장이 이끌고 온 7~8명의 일본인들을 대궐같은 무슨 캐슬에 불려가 운명을 감정해준바 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자는 거의 80%이상이 식민지 36년간 학습된 일본어적 어의를 함의하고 있다. 말문이 막히면 과감하게 한자로 문장을 만들어 설명하면 ‘하이, 와가리 마시다. 혼또니 쓰고이네’ 등등의 이해한 듯한 답변이 돌아온다.  일인당 4인기준 이 만엔이니 제법 쏠쏠한 간헐적인 수입이 되기도 한다. 일본인들도 한자를 많이 쓰면 유식한 사람으로 본다. 벙어리 일본어 실력으로 2년간 일본에서 알바 잡부를 하고, 이젠 가끔씩 에약한 후 비행기를 타고 와 운명을 물어보는 단골도 생겼다. 사람 사는 것은 어느 나라나 다 똑같다. 경륜에 비추어 필담으로 일본 고객에게서 감정료를 받으니, 나중에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실력 있는 봉이 김선달이 된 내 자신에게 때때로 헛웃음과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중국인들에겐 ‘닌더 밍스와 썬머?’ 라고 물은 다음에 역시 문장으로 모택동의 옌안장정 5만리와 등소평의 개혁개방 장쩌민 대에 이르러 식량자급자족의 역사, 시진핑의 치적과 분배의 불평등성, 연대 어학당을 나오면 차후 유망한 한-중 무역 관광, 메디컬 코디 등등의 미래를 열 수 있다고 자문해주면 대부분 ‘세쎄, 짜이지엔’이라고 감사와 재회를 약속해온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저 낡은 한자옥편을 38년 품에 안고 위대한 친구이자 스승으로 모신 댓가라 생각한다. 요새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스펙 쌓는 것도 좋지만, 한평생 같이 할 사전 하나쯤은 매일 알현하라는 충고다. 인터넷 검색이 빠르니 금방 알고 금세 잊는다. 작가에겐 자동기술이란 글쓰기 기법이 있다. 지식을 이미지로 그리고 손으로 쓰고를 반복하다보면 비슷한 어의나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볼펜에서 기술되어 나온다는 기법이다. 자꾸 쓰는 버릇을 기르다 보면 살도 빠지고, 체력이 고갈되어 밥 먹을 시간을 신체가 스스로 알려주는 효과를 느낄 것이다.

 

◆시창가 에이즈는 콘돔으로 막지만, 홍대 클럽 번개팅은 에볼라 보다 더 독하게 감염된다. 

청량리~제주도 싼지 골목까지, 사창가에서 보낸 7년의 기록!


어제 전국의 수백 곳의 풀싸롱형 사창가를 발본색원하겠다고 정부가 나섰다. 부채와 가족의 생계를 떠안은 그녀들의 생존권 묵살인지, 아니면 생활환경 안정 내지 개선책인지 총각들은 이제 연말에 골방에서 독수리오형제 음울한 수음(手淫)으로 갑오년 연말을 보내게 됐다. 필요악이냐, 법을 집행하는 융단폭격이냐를 두고 세계 유락산업(遊樂)산업에 비추어 보면 답이 나온다. 태국은 성전환자 수술로 미스 트랜스젠더 타이 선발대회도 있고, 네덜란드는 마약이 합법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갈수록 심해지는 성범죄 증가에 대해서 대체 배설구를 만들거나 묵인할 필요가 있다. 사창가를 없앨수록 미성년자 성폭행이 증가하지는 안하는지 국민적 합의나 묵인의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내가 사창가 15~18만 원짜리 쪽방생활을 하면서 맹세컨대 단 한 번도 그곳에서 생계를 잇고 있는 창녀와는 관계를 맺지 않았다. 나름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여겼고, 방세가 싸서 저소득에 맞는 생활상 선택이었다. 또한 그녀들이 몸을 팔 때는, 천막을 금지구역 입구 한쪽에 치고 역학을 임상실험하는데 다양한 삶들을 엿들을 수 있는, 오욕칠정의 공통분모 위에 앉아 있는 다양한 일상들을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창가를 터전으로 잡은 것은 밤중에서 새벽까지 손님들이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즉 돈쓰러 오는 사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취객을 상대로 이삭줍기 삶을 꾸렸다. ‘미성년자 출임금지구역’에 칠팔년간 그네들과 같이 살게 된 연유는 손님들이 안정적인 방문으로 내 생계를 이어주는데 또다른 고육책이기도 했다.

 

유리창 안에 들어앉은 여성들은 한번에 7만 원 정도의 화대를 받았다. 7만원 화대에서 2~3만원을 이른바 ‘삼촌’이라 불리는 건장한 업주들에게 뜯겼다. 유리창 밖으로 쫓겨나 골목 안쪽으론 이른바 ‘펨프’라는 삐끼 아줌마들이 행색이 남루한 행인들을 상대로 각종 감언이설로 유리창 안 아가씨들의 반값인 3만 원 정도의 저렴한 화대(花代)를 무기로 유인했다. 골목의 오줌냄새나는 곳에 자리잡은 그곳에서는 집주인 1만원, 펨프 1만원, 인생 막장인 늙거나 지적장애인 상태인 창녀들은 1만원을 받았다. 양계장의 닭보다 못한 그녀들은 자기 수입의 33%를 집주인과 펨프에게 뜯기는 장기 거주형 윤락녀들이었다.


공용화장실에 퀴퀴한 냄새가 나는 사창가 8년 생활은 나에게 야수와 같은 성욕을 누르고, 사창가 언저리에서 기생하는 사주쟁이로서 오히려 그녀들에게 감사해야 했다. 영등포역 앞 사창가생활 2년을 끝으로 나는 신촌 공원으로 택시를 타고 출근하면서 사창가 생활을 정리해나갔다. 영등포역~신촌현대백화점까지 택시비 편도 2700원!

 

IMF 직전 상황이라 길거리에는 기업형 포장마차로 언론이 떠들어대고 구청에선 대대적인 단속으로 가스통에 불을 붙여 공권력 집행에 생존권을 내세우며 싸우던 시절이었다. 영등포를 뜨기로 작정한 이상 그녀들에게 뭔가를 베풀어야 했다. 나는 고추를 고무줄로 동여맨 상태라서 줄 것이라곤 매일 버는 돈에서 50% 정도를 사창가 기둥서방들과 어울려, 수입의 절반을 고스톱으로 잃어줬다. 그렇게 2년을 버티면서 짬뽕에 소주도 나눠마시며 기나긴 이별을 서서히 준비해갔다. 나는 호구였다. 고스톱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서운하지도 않았다. 설령 이겼다할지라도 딴 돈을 다 내놓고 음식으로 그녀들을 접대했다.

 

그리고 나는 그해 겨울에 신촌으로 이사 왔다. 이사랄 것도 없이 여관골목에 짱박힌 서너 개 여인숙이 잇는 노고산동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태양여인숙“이었다. 영등포~신촌 간 택시비 5400원을 아끼니 15만원이 절약되어 딱 한 달 방값이 되었다. IMF전후로 신촌 연대 앞 공원은 포장마차와 취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지금은 상권이 홍대로 몰려갔지만, 당시에는  이대 연대로 이어지는 황금벨트였다.

 

그곳에서 나는 소위 가게 종자돈 2000만원을 마련하여 드디어 꿈에 그리던 보증금 700만원에 월세 75만원 비좁은 가게를 삼층에 열었다. 길 건너편엔 "KISSES 어학원이 있었다.

 

PHYLOTOPIA! 철학+유토피아를 합성한 이름이었다. 간판 밑엔, 'reasonable price and cozy space for new generation!' 라고  사족을 달았다. 봉이 이선달의 또 다른 도전이었다. 간판을 보고 학원생들이 단골이 되었다. 간판은 영어인데 풀이는 한문으로 어렵게 격언들을 인용해가니 사람들이 의아해하면서도 몰려들었다. 영어를 요구하는 손님이 늘었다. 나는 다시 이태원 해밀턴 호텔 아랫길에 천막을 틀고 3년 간 외국인들을 상대로 뿌리 없는 영어훈련을 했다. 필라토피아란 가게는 저녁 때까지만 하고, 다시 이태원 길거리에서 무식하게 손짓발짓해가며 영어에 무모한 자신감과 하나로 실력을 조금 살려냈다.

 

그리고 한 3년쯤 지나칠 즈음에 영어의 기초를 다지고 고민하다가 영어를 버렸다. 그리고 한자옥편을 통해 익힌 한자경구 등을 인용하며 우직스럽게 필라토피아를 운영해나가면서 이태원 거리투쟁을 멈추고 신촌 공원으로 퇴각했다. 그리고 월세 15만원의 태양여인숙 생활도 정리했다.

 

우선 필라토피아의 15평 남짓한 공간에 서너 평을 베니어합판으로 막아 침실과 주방을 꾸렸다. 인천으로 왕복하는 삼화고속 정류장 옆에 위치한 까닭에 인천 손님은 늘어나는데 서울 손님이 줄어들었다. 하여, 필라토피아 영업시간을 오후 7시에 마치고 간판불을 끄고 다시 신촌공원으로 나가 새벽 5시까지 포장영업을 계속했다. 그 공원은 한때 퍽치기 이리랑치기 소매치기의 천국이었다. 심지어 노래방도우미 살인마 유영철도 경찰관 두 분을 흉기로 찔러 절명시킨 이학만도 단골이었다. 다는 그들에게 세상을 원망하지 말라고 했었다. 차라리 공산주의 사회에서 태어났더라면 ‘노력영웅“이 됐을 거라며, 미라보 호텔 뒤편에 가서 퇴물 기생을 모시고 국밥집이라도 하는 것이 하심(下心)으로 평안을 구하는 길이라고 몇 번씩 설득한 적이 있다. 대기업 부회장들과 심지어 국무총리까지 길거리에서 만났으니, 그분들이 나의 단견을 우습게 여기면서도 단골처럼 찾아드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나중에는 찰스 황태자 오바마와 롬니의 사주까지 50만원 30만원에 봐준 적이 있다. 영국경제의 핵심안정은 노르웨이가 제안한 북해유전 지분을 50:50%로 사들인 선택이 안정된 국운의 기반임을 설명할 수 있었고, 미국은 히스패닉과 흑인의 희생과 사양화되어가는 군산복합체 경제와 서민과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박해를 덜어주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다고 1300만원을 들여 책을 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책을 보냈다. 보안검사 삼일 후에 잘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나중에서야 내가 가진 장점은 궁정 밖의 길바닥 인생살이가 손님 설득의 열쇠임을 깨달았다.

◆내 생애의 최대의 축복은 길거리에 앉은 나를 구원해 준 아내였다.

 

서른아홉, 개털 같은 나를 선택해주고 전주이씨 익안대군 대림도정공파 19대 독자후손을 안겨준 마누라도 길거리에 앉은 나를 선택해주었다. 생활이 안정되고 체중이 늘어가자 이젠 당뇨가 몸을 침습했다. 십년 째다. 고혈당에 눈이 흐릿해지고 저혈당에 빈혈이 오기도 한다. 자식을 해외연수 보낼 정도가 되니 우울증 하지정맥류 알콜성 지방간 당뇨 들이 내 몸을 흔들어댄다.

 

해결책이 없을까? 옛날에는 하루 열여섯 시간 이상 운동삼아 일하고 길거리를 살폈다. 답을 찾았다. 길거리로 나가자! 운명이 나에게 묻는 것 같기도 하고 명령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밥 맛있게 잘 먹고 술 또한 내 멋대로 마셔대면서 음풍농월을 했으니 주제넘은 벌이다. 달갑게 받아들여라!’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신촌공원은 공사중이다. 대리석 의자를 깔으니 젊은 사람들이 스케이트 보드 점핑 앤 슬라이딩으로 대리석 의자를 다 망가뜨렸다. 나무로 바꾸니 취객이 썪은 의자를 차대서 역시 무용지물로 만든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손수레에 책상과 의자와 파라솔을 실고 거리로 나가리라. 궁핍의 바다에 푹빠져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 감언이성를 일삼는 사기꾼이지만, 삶의 절벽에서 찾아드는 절박한 이웃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야겠다.

 

위대한 나의 스승, 저 한자옥편을 들고 거리로 나가리라. 존경하고 감사한 나의 고객들이 왜 안 나오느냐고 아우성들이다. 집에서는 5만~백만원을 받는데, 너무 상업적인 아귀로 변해버린 내 불경스런 태도에 하늘이 당뇨와 우울증을 안긴 것 같다. 나는 요새 하루 16시간 노동을 꿈꾸며 기다린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20년 전의 궁핍한 삶으로 돌아가더라도 굽혀 위안을 주는 삶을 다시 꾸려야겠다고 다짐한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그 옛날 나를 키워준 길거리와 이웃들을 너무 잊고 살았다. 내 남은 삶을 길거리 민심의 바다에 푹 담그고 살아가야겠다.

 

걸핏하면 여기저기서 번개탄 자살소리가 들린다. 갑오년 세밑에 하늘은 내게 이웃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당뇨악화 합병증 처방을 내렸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집 안에서 길바닥으로 강제 추방시킨 당뇨야말로 뒤늦게 깨우친 또다른 나의 스승이다. 노동의 숭고함을 잃고 살아가는 내게 값진 선물이자 회초리다. 금주금연, 식사량 30% 절식만해도 당뇨 400만을 넘어 북녘동포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비책 아닌 비책이다.

 

그 옛날 어머니들께서 그래도 부족한 식사량을 줄여가며 부엌  항아리에 한주먹씩 아끼던 전 국민 절약미(節約米)운동이라도 새롭게 전개할 시점이다. 이를 모아 떡을 찧든 가루를 냉동 반죽을 하던 간에 북녘동포들에게 보냈으면 한다. 농협창고에서 썩고 쥐들이 훔쳐가는 쌀만 보내도 북녘 동포들에겐 굶주림을 면케 할 것이다. 북녘동포가 농협창고의 쥐만도 못하냐?

 

다사다난했던 갑오년을 뒤돌아보면, 우선 청와대 권력의 심장부를 탓하는 민심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불통정권이란 오명아래 인재로 숨져간 이들이 그 몇몇이던가? 동서남북의 소통과 화해를 도모하는 것이 민심의 갑오년 세밑의 주된 여론이다. 비선실세들 간의 암투는 결국 최 경위의 자살을 야기했다. 그는 민중의 충복이었고 가장이었으며, 조직의 모든 것을 떠안고 감으로써 뜨거운 침묵 속의 자살을 선택했다. 더 이상 정치권과 공무원 타락이 백성을 죽음으로 몰지 않는 새해가 되길 학수고대한다.

 

남북은 풍요와 빈곤으로 갈라졌고, 군사적으론 핵이다 D-DOS공격이다 벼랑끝 대치로 남북 모두 민심이 흉흉하다. 나진에서 소련산 유연탄이 포항으로 수만 톤이 들어왔다. 우선 남북 지도자들은 푸틴을 매개로 나진-속초간의 철도 개보수와, 시베리아산 가스 송출을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을 서두를 것을 촉구한다.

 

민심은 가로세로 층층시하로 반봉건 갑을관계로 여전히 단가 후려치기 횡포적 주종관계가 여전하다. 땅콩 한봉지로 수백명의 여행객 무시 회항은 징역형으로 수형만기 출소시켜야 한다. 아래가 무능한 게 아니라 위가 너무나 썩었다. 비정규직 700만의 신음으로 온 세상이 탁하고 시끄럽다.

 

나를 세운 저 낡은 한자옥편을 다시 챙기며 먼지 풀풀날리는 길바닥으로의 진출을  꿈꾼다.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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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나브로 2015/11/26 [10:13] 수정 | 삭제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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