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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서 충효자료ㆍ독도사진전 개최

추경화 대장 개인소장 자료 전시 및 독립유공자ㆍ독도 관련 역사적 자료 전시

황현태 기자 | 기사입력 2015/03/02 [17:19]

 

 

 

충효실천운동본부, 독도의병대(대장 추경화)가 지난 24일 경남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에서 충효자료 및 항일운동, 독도사진 전시회를 개최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참석해 관심을 받은 이날 행사는 추경화 대장이 10여년동안 소장해왔던 전시된 자료 250여점을 전시했다.

 

특히 진주지역과 경남 일원을 중심으로 한 독립유공자들이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도 내 놓은채 옥살이의 고초와 시련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자리가 돼 그 의미를 더했다.

 

또한 이날 행사에서는 독립유공자와 그 가족들을 일일이 소개하며 국권회복과 조국광복을위한 공적을 세세히 열거하며 격려하고 치하했다.

 

 

추경화(60)/진주문화원·향토사학자

독도사랑본부 본부장

 

 

 

 

 

 

항일투사 구여순 선생

 

구여순(1892~1946)선생은 진주시 중안동이 본적지로 기록되었고 진주보통학교 졸업생이지만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 8권에는 의령군 동동으로 기록됐다. 1919년 3월 14일 의령군 의령읍 3.1운동을 총지도. 지휘한 분으로 2일간 계속된 투쟁에서 군중을 이끌며 투쟁을 전개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이 확정되었다.


동아일보 1921년 7월 17일자에 의하면 적십자 사원 최웅림. 정몽석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1923년 2월 중국으로 망명한 구여순(具汝淳)선생은 프랑스 조계에서 대한민국 대표자 대회가 열릴 때 참가하여 무력에 의한 항일투쟁만이 광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대일 항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열성적으로 싸우자고 말하고 의열단에 가입했다.


경상도 출신 문시환. 강홍열. 김정현 등과 함께 국내로 잠입해 중요건물. 요인암살의 명령을 받게 된다.구여순 선생은 암살용 육혈포 등을 만주에서 평양으로 운반하는데 성공했으나 동지 한명이 발각. 체포되자 모두 검거되고 말았다.1924년 2월 28일 경성지법에서 징역 4년형이 언도되었고 서대문 감옥에서 1928년 2월 까지 옥중 고생했다.

 

출옥 후 애국동지 김용호, 이태수, 남호섭, 최철용 등과 함께 반제단 지방단부를 조직해 지방단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1929년 5월 9일에는 의령기근구제회를 조직해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하청, 황용봉, 이태수, 남호섭, 심상목 등과 함께 신간회 의령지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진주시 옥봉동 양옥진 여사 댁에서 고경인. 강대창, 이문태, 정창화 등과 함께 고려구국동맹회를 조직하고 활동하다 광복을 맞이했다.서울로 달려가 김구 선생을 만나니 구 선생은 바로 진정한 애국동지라고 말하며 새 조국 건설에 매진하자고 약속했다.


한국 민주당에 들어가 신탁통치 반대위원으로 활동하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임원으로 활약하고 반민특위 경남지부장이 되어 친일파들을 색출. 청산하기 위해 경남지역을 두루 다니며 맹활약하니 피곤이 겹치고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다 고문 후유증과 옥에서 생긴 병이 재발해 1946년 1월 진주시 봉래동 90-12번지에서 혼절하고 세상을 떠났다.


부인 이악지 여사도 세상을 떠났고 자녀 철근. 연각. 철회. 연회 등이 부산지역에 산다.1990년 12월 상훈법이 개정되면서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향리 묘소에서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옮겨 안장되었다.

 

 

브레이크뉴스 황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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