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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남북통일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브레이크뉴스 창간 12주년 특별기획>진정한 남북통일의 의미와 전망

권오중 박사 | 기사입력 2015/03/20 [11:29]

1. 남북분단의 구조적 문제와 남북한의 통일정책

 

1) 휴전제제의 국제법적 구조


어떤 국제적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전쟁을 통한 “현상(Status quo)”의 변경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질서를 만든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한 변경이다. 독일의 통일은 후자에 의해서 달성되었고, 한국의 통일은 아직 어떤 방법으로 달성될지 미정이다.

 

1990년 구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동독과 서독의 통일이 이루어졌을 당시에, 한국의 통일도 곧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통일은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남북통일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학설과 논의가 있었지만 국제법적인 시각에서 아직까지 통일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과거 동-서독의 분단과 남-북한 분단을 구속하는 국제법적인 차이에 기인한다. 즉 동-서독의 분단이 이른바 “포츠담 체제”라는 틀 속에 있었던 반면에 남-북한의 분단은 “휴전체제”라는 틀 속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포츠담 체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동-서 진영으로 분할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포츠담 조약”으로 인하여 새로이 탄생된 국제질서였고, 미국과 소련이 실질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체제였다. 1945년에 미국과 소련에 의해 이뤄진 한국의 분할점령도 “포츠담 체제”로 전환되어가는 국제질서의 한 부분이었고, 이로 인하여 이뤄진 한국의 “1차 분단”은 “포츠담 체제”에 구속된 새로운 한반도의 국제질서였다.

▲ 권오중 박사    ©브레이크뉴스

그러나 “6.25 전쟁”을 통해 한국의 분단은 “포츠담 체제”의 구속에서 벗어나 “휴전체제”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구속을 받게 되면서, 동-서독 문제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왔다. 그 근본 원인은 2차 분단이라는 새로운 한반도의 “현상”을 만든 당사국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포츠담 체제”가 승전4개국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휴전체제”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동아시아에서 세력균형이 미-소 구도에서 미-중 구도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독일의 통일이 “포츠담 체제”의 당사국이었던 소련의 몰락과 함께 독일의 분단현상을 만들었던 승전 4개국의 합의(2+4조약)에 의해서 가능했다면, 한국의 통일은 중국의 몰락과 미국과 북한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이해될 수 있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이해관계의 변화는 휴전조약의 옵션(제 4항)으로 진행되었던 1954년 “제네바 한국평화회담”을 통하여 극명하게 드러났었다. 1954년 4월 26일에 시작된 제네바 회담에는 6.25 참전 16개국과 중국, 북한 그리고 전쟁과는 무관한 중립국의 자격으로 소련이 참석하였다. 하지만 회담 참가국들은 한국문제의 해결(통일)에는 관심이 없고, 저마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한국과 참전 16개국들은 합의된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당시 제네바 한국평화회담에 참가한 한국대표(변영태 외무부장관)는 “중국군의 선 철수와 UN 감시 하에서 북한지역만의 자유선거 실시”를 주장했지만,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영연방국가들은 홍콩문제로 중국과의 우호관계유지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전 한국 총선거, 6개월 이내 외국군 완전철수, 전 한국위원회 구성”이라는 당시 중국대표(외교부장 주은래)와 북한대표(외무상 남일)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 회담은 휴전조약이후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명분으로 성립되었지만, 실제로는 “휴전체제” 속에서 중국과 북한의 국제법적 권리를 확인하는 계기만을 만들어 주었고, 남-북한의 분단을 확실히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후 한국의 분단문제를 다루는 다자간 회담은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남-북 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휴전체제”라는 질서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휴전체제”라는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은 아무런 국제법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고, 그로 인해서 통일문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들은 이 문제를 등한시 하고 있다.

 

2) 역대 대한민국 정부들의 통일정책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이후 시대적 국제상황에 따라 각 정부들 마다 저마다의 통일정책방안을 내놓았다.
 
우선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UN 감시 하의 북한지역 자유선거”와 6.25 전쟁 이후에는 “북진통일론”을 제시했고 장면 정부 시절에도 “UN 감시 하의 북한지역 자유선거”(북진통일 포기)을 내세웠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하여 한반도의 평화정책, 상호 개방과 신뢰회복, 공정한 선거관리에 의한 토착인구 비례 남북한 총선거를 주장하였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는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이라 하여 첫째 평화통일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민족, 민주, 자유, 복지를 목표로 하는 통일국가의 미래상과, 둘째 통일을 과정으로 보고 분단의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통일의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셋째 완전한 통일국가를 이루려면 그 과정에서 민족화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넷째 남북한 총선거의 규범으로서 남북한 대표가 협의하여 제정하게 될 통일헌법 및 이 헌법에 따라 통일 민주국가를 완성시키는 과정과 절차를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이어 등장한 노태우 정부는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통하여 분단 현실을 인정하고 통일은 평화적으로 달성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했다. 특히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은 북한을 대결의 상대가 아니라 ‘선의의 동반자’로 간주하고 남과 북이 함께 번영을 이룩하는 민족공동체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통일조국을 실현하는 지름길이라고 규정하면서 남-북간의 대결구조를 화해의 구조로 전환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94년에 이르러 김영삼 정부는 “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3원칙 통일방안”을 제시했는데, 이는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상호 간의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대립관계를 협력관계로 전환(화해협력단계)하여 평화정착과 공존공영으로 경제 및 사회공동체를 형성한 후 남북한 정치통합을 위한 논의 및 통일헌법을 제정(남북연합단계)한 다음 통일 헌법에 따라 민주적 절차에 의해 통일국회와 통일정부를 구성(통일국가 완성단계)하는 것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자유민주주의의 기초 위에 민족공동체를 건설하자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후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일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노태우, 김영삼 정권)을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1998년 2월에 발표된 “대북 3원칙(햇볕정책)”을 통해 전임 정부들과의 차별성을 나타냈다. 그 내용은 “1) 일체의 무력도발 불용, 2) 흡수통일 배제: 평화공존을 통한 남북연합 실현, 3) 화해, 협력을 적극추진: 북한의 변화노력을 지원하며, 민족의 동질성 회목에 매진 한다”라고 되어있다. 이는 “접근을 통한 변화”를 표방하며 보다 적극적인 남북대화와 교류를 목적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정책은 북한 측으로부터 환영을 받으며,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도 “햇볕정책”의 기조에서 큰 변화가 없이 김대중 정부를 철저하게 계승하였다.

 

이어 2008년에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기존 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바탕으로 정상적인 남북관계 정립 및 실질적 관계발전 추진의 관점에서 남북한 주민의 행복한 삶과 통일기반 마련을 궁극적 목표로 제시하면서 1) 실용과 생산성에 기초한 정책추진, 2) 원칙에는 철저하되 유연한 접근, 3)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정책추진, 4) 남북협력과 국제협력의 조화를 추진원칙으로 하는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을 제시하였다(비핵-개방 3000구상). 하지만 이른바 “5.24조치”를 통하여 대북지원을 전면 중단하면서 남북관계는 다시금 경색국면으로 빠져들었다.

 

2013년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근본으로 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남북관계를 관리하고 통일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3가지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1) 대결과 불신의 악순환을 반복해 온 남북관계를 상식과 국제규범이 통하는 새로운 남북관계로 변화시키는 것, 2) 남북관계를 긴장과 대결에서 벗어나 공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평화협력 관계로 바꾸는 것, 3) 남북한이 공동 번영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한민족 전체와 세계인의 지혜를 모아서 평화통일에 이르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추진원칙이 있는데, 첫째가 균형 있는 접근이고, 둘째가 진화하는 대북정책이며, 셋째가 국제사회와의 협력이다. 그리고 2014년 1월 6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한마디로 통일기반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그리고 이어진 3월 28일 “드레스덴 선언(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에서, 1) 남북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2)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3)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 3가지 구상을 북측에 제안했다.

 

우리 역대정부가 추진했던 통일정책과 방안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기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가 민주적 절차에 의한 평화적 통일이고 둘째가 한민족 전체의 자유와 인권 및 민족의 번영이 보장되는 통일이다. 그리고 이것의 기초는 ‘선 평화유지 후 통일’이라는 원칙에 입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역대 정부의 통일정책은 남북관계에 초점을 맞춘 통일정책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반도의 분단현상을 변경할 수 있는 “휴전체제”의 종식을 남북한의 합의만으로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착각이 우리의 통일정책을 답보상태에 머무르게 한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3) 북한 정권의 통일정책


한편 북한의 통일정책의 변천을 살펴보면, 북한의 초창기 통일정책은 오직 무력적화통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 “6.25전쟁”이었다. 이후 1960년 4.19혁명이후에 “남조선 혁명론”으로 변화되었고, 과도적 조치로서 “남북연방제”(1960.8.14)를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연방제 통일방안은 이후 1973년에 “고려 연방제”를 거쳐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으로 전환되었으며, 1990년대에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제 2항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고려민주연방제에 대한 전술적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 북한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의 2000년 10월 6일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의 보고를 통해 “1민족, 1국가 1제도, 2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채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최초로 규정하였고, 이 내용은 2000년 12월 15일자 노동신문 “6.15선언 6개월” 특집을 통해 다시 확인되었다. 결과적으로 사회구조의 기본 하부구조인 경제와 문화교육만을 통일적으로 운영하면서 나머지 상부구조들은 서로 다른 관계를 인정하는 방향에서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통일정책은 원칙적으로 “선 남조선 혁명, 후 공산화 통일”이라는 전략을 갖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방안도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연방제를 통한 남한사회 전복이라는 공세적 전략을 내포하고 있었겠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자신들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방어적 목적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장하는 남북의 연방제라는 것이 남과 북의 체제를 그대로 인정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정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체제유지와 국제사회로부터 자신들의 체제를 인정받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정권이 목적하는 것은 ‘핵보유국’ 인정과 미국과 평화조약체결을 통한 체제안정구축이고, 북한의 경제재건을 위한 지원을 확보하는 것이지, 통일을 위해 대한민국과 관계개선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제시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이 규정하는 “흡수통일 배제”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남북통일이 아닌 북한정권이 원하는 영구분단(혹은 김씨가문이 집권하는 체제로의 ‘통일’만을 그들이 바라는 통일이라고 주장함)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기에 북한정권은 “6.15선언”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우리정부에 대한 그 이행촉구에만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연방제 통일 역시 “휴전체제”의 현상변경이기 때문에, 남북한의 결정만으로 이루어 질 수 없다. 또한 연방제 통일에 미국과 중국이 동의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북한정권이 노리는 것은 연방제 통일이 아니라, 남남갈등과 남북대화를 통한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함일 수도 있다.


2. 통일 후 남북사회의 내적 충돌 가능성


앞에서 언급한 전두환 정부의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은 “완전한 통일국가를 이루려면 그 과정에서 민족화합이 선행되어야 한다”라고 전제하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민족화합”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우리는 이 내용을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 화합이라는 것은 “평등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등은 참정권만을 의미하는 법적 평등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지역적 평등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과거 독일 통일이후, 양 독일지역 주민들의 이질감과 사고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오래 동안 지속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Ossi(동독주민)와 Wessi(서독주민)로 부르며 오랫동안 (심지어 일부는 현재까지도) 서로를 비하하며 지내기도 했다. 심지어는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주민들이 같은 베를린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 지역에 가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던 것일까?

 

우선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불평등에 기인한다. 독일의 경우 통일직후 舊 동독지역 주민의 40%이상이 실업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 이유는 국가기관이나 군대, 국영기업체 또는 학교교사나 대학교수로 근무했던, 다시 말해 사회주의체제의 근간이 되었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실직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직하면서 주정부에서 지급했던 실업수당을 받고 생활을 했다. 그런데 실업수당은 서독지역의 급여수준에서 지급된 것이 아니라, 동독지역의 급여수준에서 지급되었고, 서독지역의 실업수당에 비해 약 80%정도였다. 이 정도의 실업수당을 받고도 생활은 가능했지만, 서독주민에 대한 동독주민의 상대적 빈곤감은 매우 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상태의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구직에 나서지 않았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45년간 생활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즉, 직업은 국가가 정해주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는 서독지역 주민들은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고,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실업수당을 받고 놀고 있는 동독주민에게 불만이 팽배했다. 만약에 동독주민들이 실업수당을 받지 못했다면, 통일독일은 엄청난 소득의 격차로 인한 동독주민의 범죄화나 반사회적인 행동들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엄청난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다. 물론 동독 주민들도 통일이전에 서독방송을 시청하는 등, 자본주의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해왔지만, 현실적으로 직접 그 안에 들어와서는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독일정부가 막대한 투자를 통해 동독지역의 경제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은 거의 20년 동안 지속되었다. 독일통일 20년 후인 2010년을 전후해서 동독지역의 실업률이 15%전후로 떨어졌다. 이 수치는 서독지역과 비교해서 7~8% 정도 높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이제 동독지역 주민들도 구직률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다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교육을 받은 자본주의적 사고를 익힌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로소 과거 동-서독 지역주민들의 사회의식이 비슷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렇듯 통일독일 주민들의 경제적인 평등성 회복에 걸린 시간이 최소 20여년 이상, 다시 말해 거의 한 세대가 흘렀다고 보아야 한다. 그 만큼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체제가 하나의 체제로 진정한 통합이 이루어지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남북한 주민의 경우를 독일주민의 경우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북한주민들은 과거 동독주민들보다 더 절박하기 때문에,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한에 거주하는 친 인척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정부는 과거 독일정부처럼 북한의 인프라 구축과 주민들의 최저생계비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성으로 인한 문제점은 더 심각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기회의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동독지역 주민들은 과거 동독시절에 받은 교육으로는 자본주의체제인 통일독일의 취업시장에서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나마 기술직이나 단순 노동을 제외하고는 사회주의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응하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특히 인문학이나 사회과학과 관련된 직종의 사람들은 전혀 다른 체제에서 재교육 대상으로 전락되고 말았고, 그 자리를 서독인들에게 모두 내 주어야만 했다. 이는 곧 동독지역 주민들이 갖고 있던 사회적, 직업적 기득권을 모두 박탈하는 것으로서, 그들의 상실감은 가히 상상하기 힘든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에 적응된 사람들이 자본주의체제에 갑자기 융화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통일이 된지 24년이 된 지금도 완전한 동-서 통합의 과정은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지역 주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체제에 주체사상까지 가미된 독특한 형태의 독재체제이다. 일반적인(보통의) 북한주민들은 이러한 특수한 체제에 맞는 세뇌교육으로 인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사고방식을 수용하기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현재 북한 주민의 불만이 세습독재체제와 경제적 어려움에 기인한다면, 이들이 반드시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갈망한다고 속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된다면, 그들의 반발감은 과거 동독주민의 경우보다 더욱 심각할 수 있다. 또한 대학교까지 학비의 부담이 없었던 과거 통일독일과는 달리, 교육비 부담이 많은 통일한국에서 북한지역주민들의 자본주의식 교육, 다시 말해 북한지역 학들에게 남한지역 학생들과 동일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지 못한다면, 남북한 학생들 간의 교육정도의 격차도 점점 심각해져 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교육과 취업의 평등성 회복에 소요되는 기간이 과거 통일독일과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길게 소요될 것이다. 교육기회의 불평등성은 남북한 주민의 진정한 사회적 통합을 어렵게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지역 간 富의 불평등이다. 과거 서독지역의 기업과 자본은 통일을 계기로 동독지역의 국영기업인수, 토지매수, 건물매수 등을 통하여 동독지역의 재산을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부 동독주민들 사이에서 통일 이후 통일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빼앗았고, 사회적인 불평등이 더욱 심화시켰다는 상실감이 확산되었기 때문에, 과거 못살았어도 평등했던 사회주의 체제가 그립다고 하는 의견도 등장했었다.

 

통일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북한지역의 자원과 토지 등에 대한 대한민국이나 외국 자본의 침투와 이들에 의한 북한 자원과 자본의 접수는 북한지역 주민들에게 크나큰 상실감과 분노를 주게 될 것이 분명하다. 자신들이 가졌던 것을 모두 남에게 빼앗기고, 정작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상실감과 실망감이 어떠한 형태로든 표출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남북한 지역 사회의 자본의 격차는 북한지역 주민들에게 오히려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북한지역 주민들의 패배감이 통일한국에서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면, 진정한 사회적 통합에 심각한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다. 북한지역의 자본을 가지고 북한지역 경제의 성장을 이루고 그 이익을 북한지역 주민들이 가져갈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히 준비해야할 과제이다.


3. 진정한 남북통일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남북한 정부들이 주장해왔던 한반도의 평화유지는 분단현상유지를 전제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평화는 군사적인 균형을 전제로 한다. 반면에 평화통일은 그 어떤 힘의 균형이, 이를테면 남북한의 경우에, 체제경쟁에서 어느 한편이 무너졌을 때 이뤄질 수 있다. 그러므로 평화유지와 평화통일은 서로 상반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화유지를 평화통일의 전제조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북한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평화적 통일을 기대할 수 없다.

 

전쟁을 하지 않고 현재의 남북분단(2차 분단)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우선 “휴전체제”의 국제법적인 구속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나 북한 정부는 모두 이 문제를 등한시 하고 남북분단문제를 남과 북의 문제인양 서로의 국민을 기만해 왔다. 이것은 다시 말해 남과 북의 정부들이 진정한 통일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분단현상유지에 목적을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54년 제네바 한국평화회담 이래로, 대한민국과 북한은 서로에게 서로가 절대로 수용하지 못할 통일방안을 경쟁적으로 제안하면서 의미 없는 통일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공방만을 지속해왔다. 과거 서독의 초대 수상이었던 Konrad Adenaur는 그의 제헌의회 연설에서 “통일은 단기적 목표가 아니라 궁극적 목표이다(Die Wiedervereinigung ist nicht Nahziel, sondern Fernziel)"이라고 했다. 이것은 독일인들의 통일관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여기서 “단기적 목표”가 아니라고 했던 이유는, 독일의 분단이 동-서독 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였고,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역대 독일정부는 할슈타인-독트린의 정책기조 속에서도 소련과는 외교관계를 맺는 등, 포츠담 체제의 주도세력과의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1970년대 이른바 “동방정책”을 통해 비로소 동독과의 관계개선을 시작으로 동유럽 국가들과의 신뢰관계구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과연 우리의 역대 정부들에게 진정한 통일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또 만약에 북한이 내부적인 문제로 갑자기 붕괴되었을 경우에,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을 간단히 흡수해서 통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정말로 북한의 붕괴가 도둑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찾아올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준비가 되어있을까?

 

다른 한편으로 남북통일은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통일은 단순한 공간적 통일만이 아니라, 그 구성원인 남북한 주민들의 사회적, 경제적 통합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이질적인 체제의 주민들이 하나의 통일된 사회로 통합된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인 통일이 진정한 사회적 통합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상이한 사상과 교육, 정치체제와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70년을 지내온 두 가지 이질적인 가치관과 사고로 형성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교육 시스템이 하나의 통합된 사회에서 융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양 체제 속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통일로 얻어지는 이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평등성을 회복하고, 느낄 때 비로소 진정한 사회적, 의식적 통합은 이뤄지는 것이다.

 

현재 통일독일의 수상인 Agela Merkel은 과거 동독지역의 Rostock대학의 물리학과 교수였다. 동독지역 출신인 Merkel이 통일 이후 10여년 만에 보수성향의 기민당(CDU)의 당대표가 되었고, 통일독일의 수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우리가 남북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북한지역 출신이 10여년 만에 당대표가 되고 이후 대통령이 된다는 것을 쉽게 상상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과 북한 주민을 동등한 국민으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선입견과 편견을 없애지 않고서는 남북한 지역의 경제적 평등, 기회의 평등, 남북 지역 간 부의 평등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진정한 사회통합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1949년에 제정된 독일의 기본법(Grundgesetz)의 서문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 법은 이 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모든 독일인에게 적용 된다(Es hat auch für jene Deutschen gehandelt, denen mitzuwirken versagt war). 전 독일민족은 자유로운 자결권의 행사를 통하여 독일의 통일과 자유가 이룩되기를 촉구한다 (Das gesamte Deutsche Volk bleibt aufgefordert, in freier Selbstbestimmung die Einheit und Freiheit Deutschlands zu vollenden).” 그리고 이들의 바램은 1990년에 갑작스런 소련의 경제적 붕괴로 말미암아 이룩되었다. 우리는 과연 북한주민을 한 민족으로서 평등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diakonie@naver.com

 

*필자/권오중.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 (Philipps- Universitaet Marburg) 철학박사 (현대사/정치학 전공). 서울대학교 교육종합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 민주평통 정치외교분과 상임위원 역임. 한국외대 등 다수 대학 출강. 현재 사단법인 외교국방연구소 연구실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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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va9941 2015/03/21 [20:40] 수정 | 삭제
  • 정치인과전문가들은 남구협력 그리고 통일 또는 평화통일 운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김정은짐권초기 북한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김정은이 개혁 개방을 할거라고 침을튀겼지만 김정은 김성주 김정일이 갔던길을 가고 있다.지금시점으로는 북한의붕괴는 기정사실이다.배급제도가 붕괴되고 전보다 더 혹독한 죽음의공포로 주민들을 억압하는 김정은정권은 북한주민들이 정보를 습득하고 시장에 생계를거는 걸 막지 못한다.흡수통일이 되면 휴전선을 당분간 유지하고 한국에서 통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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