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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맹희 씨 ©브레이크뉴스 |
삼성그룹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의 큰아들 이맹희씨는 1973년 무렵 삼성과 결별, 끝내 삼성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그는 그 당시 삼성그룹의 경영자로서 사실상 2대회장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눈에 들지 않아 삼성을 떠나야 했던 비운의 황태자(?)였다. 그는 아버지의 "얼음장처럼 차디찬 결정"에 따라 삼성을 나오게 됐다고 회고하고 있다.
정상권력이 갖는 속성 "얼음장처럼 차디차다"
이맹희씨는 "당시 아버지(이병철)는 1970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그룹으로 다시 복귀하겠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내가 아둔해서 그걸 깨듣지 못했던 것이다. 1972년 무렵엔 거의 완전하게 복귀 준비를 했다. 우선 삼성 본관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말하자면 전면에 나설 준비를 완료한 것이다. 예전엔 나에게 일체를 맡기신 일들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으며 그 이전보다 사장을 불러서 직접 지시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시 이진석 비서실장을 시켜서 사방들을 호출하는 일도 잦아졌고 늘 임원 서너 명을 데리고 뭔가를 챙기거나 지시하는 모습도 많이 지켜 볼 수가 있었다. 내가 둔해서 그랬겠지만 나는 그런 것을 보면서도 전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현지 공장을 비롯하여 국내외로 열심히 쏘다녔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무렵 이미 돌아오실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이맹희씨는 자신이 삼성을 떠나게된 깊은 내막을 공개했다. 그는 "더욱이 창희 사건의 여파도 아버지와 나 사이에 내부적으로 보이지 않은 금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더라도 나에게 늘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풍기곤 했다. 실제 여러 가지 면에서 나에게 내용을 말하지 않은 면들이 있기는 했는데 나는 그 당시에 그런 일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서 "정상권력이 갖는 속성은 얼음장처럼 차디차다는 것이다. 그것은 냉혹하다. 누구든 정상의 위치, 거대한 조직을 끌고 갈 책임을 지면 냉혹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절대 권력은 속성상 그 정상의 위치에는 단 사람 밖에 설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내가 아버지와 갈라서는 일은 그렇게 시작"
이맹희씨는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직함을 빼앗아 간 과정을 상세하게 털어 놓았다. 그는 "주변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그 실체에 대해서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1973년 여름이 되었다. 아버지 방에 에어컨을 틀어 두었던 기억이 나니 한여름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나를 부르더니 나에게 '니 지금 직함을 몇 개나 가지고 있노?'라고 물었다. 내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열댓 개 되는 것 같다고 했더니 '니가 다 할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아버지의 얼굴이 밝질 않았다. 그 이전부터 뭔가 낌새를 채고 있었기에 '다 할 수는 없심 더'라고 했더니 '그라모 할 수 있는 것만 해라'라고 말을 잘랐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났다. 이번엔 아버지가 '내가 한번 보게 직함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종이에 써 와 보라'고 했다. 이진석 비서실장을 시켜서 내 직함을 써오니 전부 17개였다."고 전하면서 "삼성전자, 중앙일보, 삼성물산, 제일제당, 신세계, 동방생명,, 안국화재, 제일모직, 성균관대, 삼성문화재단 등 모두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의 직책으로 17개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나 역시 도 내 직함이 이렇게 많은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헤어짐의 시작이었다. 아버지와 내가 갈라서는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비탄어런 감정을 쏟아냈다.
이맹희씨의 다음과 같은 회고는 이맹희씨의 삼성과의 결별내막을 담은 핵심 내용인 것 같다.
"말투는 의논조로 이건 하기 힘들제' '이건 너 할 수 없제!' 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예정을 하고 있었던 듯 연필로 직함들에 줄을 죽죽 그었다. 대부분을 그렇게 줄을 긋고 나에게는 삼성물산, 삼성전자, 제일제당의 부사장 직함 3개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삼성의 운영에 상당한 실권이 있었던 삼성문화재단의 상무이사 자리와 안양 골프장 운영위원 등 한 두개의 자리는 더 남겨져 있었던 듯하다. 나는 그제서야 사태를 깨달았다. '아, 아버지가 나보고 물러나라고 하시는 구나' 사람들은 부자지간에 '이젠 내가 할 테니 너는 당분간 쉬어라' 라고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왜 그리 복잡하게 일을 진행하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다."
이맹희, 삼성과의 이별 마지막 장면
이건희를 삼성의 후계자로 옹립하기 위해 이건희 장인이었던 홍진기씨 등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설들이 있었지만 이맹희씨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그가 아버지와 헤어지고, 삼성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삼성이라는 재벌 총수자리를 놓고 부자지간이 어떻게 대응했고, 어떻게 결별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아버지를 모시고 일찍 출근했다. 나도 회사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만 나갔다. 6개월을 그렇게 보냈다. 별로 할 일도 없고 아버지가 전면에서 일을 하는데 내가 끼어 들어 이런저런 말을 보태는 것도 우스웠다. 무료하던 차에 어느 날 김재명씨를 만나서 일본에 가서 당분간 쉬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나마 아버지한테 자유롭게 의사를 전하던 김재명씨가 이버지에게 내 뜻을 전하고 대답을 들어왔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하다니....' 김재명씨에게 대신 전한 아버지의 응답이었다. 그 길로 짐을 싸서 3일 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