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개혁 작업에 속도 내지 못하는 공무원연금
‘대국민 호소문’ 발표하며 野압박 시작한 새누리당
‘성완종 리스트’ 덮으려는 의도 제기한 새정치연합
단식 투쟁 시작 공무원 노조…‘공적연금 강화’ 주장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공무원연금 개혁 작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열린 실무기구에서 단일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의에 난항을 겪는 기여율과 지급률에 더해 연금 지급시기 연장에 따른 정년 연장 등 인사정책도 넘어야 할 산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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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부진한 논의
지난 4월22일 공무원연금 실무기구 등에 따르면, 공무원노조 측은 당초 연금개혁 합의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세 가지 카드를 제시했다. ▲구조개혁안 포기 ▲하위직 임금인상에 따른 실질 소득재분배 ▲65세 순수 정년연장 등 인사정책이다. 이러한 요구가 선행되지 않고선 그간 핵심쟁점으로 꼽히던 기여율과 지급률은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 관계자는 “구조개혁을 포기하고, 소득재분배에서는 고위 공무원 임금을 낮추고 하위직 임금을 높여야 한다”면서 “또 퇴직과 동시에 연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세 가지 핵심키”라고 했다.
정부·여당의 자체 개혁안에는 연금 지급시기를 65세로 순차적 연장하기로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공무원연금 개혁 인사정책 개선방안’ 자료를 통해 퇴직 후 재고용과 임금피크제·시간선택제를 연계한 정년연장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노조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퇴직 후 재고용은 절대불가 입장이다. 임금피크제·시간선택제는 실질임금 감소에 따라 노동시간만 연장하는 것이란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순수 정년을 65세로 늘려 퇴직과 동시에 연금을 받아야 한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 조건들이 먼저 합의되면 지급률 1.9%도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급률 하한선 1.9%도 일종의 협상카드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이와 관련한 타협책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금 지급시기를 65세로 늦추면 60세 퇴직자부터 소득공백기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막고자 연금액을 줄여 60세부터 지급하자는 안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연금 지급시기 65세 연장에 따른 정년연장과 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임금인상으로 실질 소득재분배 기능을 높이면 공무원도 받아들이게 돼있다”면서 “연금을 60세부터 감액폭을 조금 줄여 지급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정부는 정년연장으로 재정부담이 더 생기는 개혁을 왜 하느냐는 국민적 반대에 부딪칠 것을 우려할 수 있다. 받아들이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고민을 드러냈다.
정치권에서는 공무원연금 개혁 작업이 각론 논의만으로도 고차방정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만큼 합의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실무기구는 당초 지난 4월23일 시작한 국회 특위 산하 법안심사소위에 단일안을 넘길 계획이었지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던 것이다.
실무기구 공동위원장인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야당 추천)는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도 실무기구 개최를 논의하겠다”고 했다. 실무기구 회의가 여야 간 합의 시한 막판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여야 간 정치적 ‘빅딜’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에 담판 회동을 제안했고, 이에 새정치연합은 대표를 빼고 원내지도부만 모이는 ‘4+4’ 회동으로 형식을 바꿔 오는 4월27일 만나기로 했다.
총공세 펼치는 새누리당
이에 새누리당은 지난 4월2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해 공무원연금 개혁과 민생·경제법안 처리를 압박하는 거당적인 여론전에 나섰다. 김무성 대표는 오는 5월2일까지 처리키로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 입법의 실무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전날 제안한 여야 대표·원내대표 ‘2+2 협상’을 거듭 제안했고, 이례적으로 ‘대국민 호소문’까지 발표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열어 공무원연금 개혁의 시급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고 새정치연합에 공무원연금 개혁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특히 여당 의원들은 문재인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며 압박했다.
의총을 마친 뒤에는 당 소속 의원 전원이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이번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입법을 마무리짓자는 결의대회도 가졌다. 여당 의원들이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결의대회를 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의원들은 연금개혁에 비협조적인 야당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여론전은 이완구 총리의 사의 표명으로 ‘성완종 정국’의 수세국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판단, 공무원연금 개혁 및 경제활성화 입법에 드라이브를 걸어 국면을 전환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4·29 재보궐선거에서 민생·경제 정당 이미지를 부각해 야당과 차별화하는 한편 향후 정국에서 주도권을 탈환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당초 이날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광주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려했으나 계획을 바꿔서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한목소리로 공무원연금개혁에 야당과 문 대표의 협조를 촉구했다.
회의장인 국회 대표실의 배경 문구도 ‘공무원연금 개혁, 국민과의 약속입니다’로 교체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4월23일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 “참여정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완수하지 못하고 국민에게 진 빚 우리 둘이 함께 갚자”고 호소했다. 김 대표는 이날 새누리당 전체 157명 의원의 명단으로 ‘공무원연금 개혁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이번에 하지 못하면 지금부터 5년 후, 10년 후 우리 공무원들이 더 가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대표는 “국민들이 이번에는 공무원연금 개혁이 꼭 될 것이라고 큰 기대를 갖고 기다려줬다”며 “특위가 약속한 5월2일의 시한을 9일 남겨놓은 지금까지도 공무원연금 개혁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데 대해 여당 대표로서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한 해에 쏟아붓는 국민 세금이 올해 3조, 내년에 3조7000억원이 된다”며 “올해는 매일 80억, 내년에는 매일 100억의 국민세금이 적자를 메우는 데 들어가야만 한다”고 짚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여러번 기회가 있었는데도 역대 정부는 근본적인 개혁을 미룬 채 곪은 상처를 키워왔다”며 “번번이 좌절됐던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번에 마무리짓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개혁의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는 바로 국민”이라며 “이제는 국민의 대변자인 국회가 나서야 할 때가 됐다. 국민과 약속한 5월2일까지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를 책임질 때가 왔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대표는 “국민대타협기구는 지난 3월28일부터 90일간 활동했지만 공무원단체는 결국 개혁안을 제출하지 않았고, 새정치연합은 아직도 알파, 베타, 감마가 어떤 숫자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며 “어제까지 실무기구가 열렸지만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문 대표와 새정치연합 지도부에 대해 “공무원연금 개혁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양당 대표와 원내대표 간 4자회담을 다시 한 번 제안한다”며 “용기있는 결단, 용기있는 행동으로 나와주길 기대한다. 지금 이순간도 문 대표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양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원내수석부대표·공무원연금개혁특위 간사가 참여하는 4+4 회의에서 ‘2+2 담판’을 위한 전반적인 작업을 진행시키겠다”며 ‘2+2 회담’의 불씨를 살려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인제 최고위원도 “연금개혁은 결단만 남은 문제로 여야 지도부가 만나 마무리 해야 한다”며 “야당이 눈 크게 뜨고 앞을 내다보고 대담한 결단을 하라”고 거들었다.
이군현 사무총장은 “야당이 오로지 성완종 리스트에만 매몰돼 정치공세를 하면서 민생국회는 나 몰라라 한다”며 “경제를 발목 잡는 정당, 정치공세에만 몰두하는 정당에는 한 표의 지지도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누리당은 의총에서 채택한 연금개혁 처리 촉구 결의문에서 “야당과 문 대표는 공무원단체 표만 의식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여야가 함께 국민께 약속드린 5월2일 시한도 넘기려 한다”며 “문 대표는 대국민약속을 이행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반박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이같은 새누리당의 갑작스런 공무원 연금안 공세에 새정치민주연합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지난 4월23일 국회 본회의 일정 취소에 대해 “‘친박게이트’를 덮기 위한 정쟁”이라며 새누리당을 공격했다. 우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어제·그제 이틀 간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을 했지만 국회 의사일정을 거부하는 집권 여당은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여야가 국회 운영위원회와 안전행정위원회 개최 일정에 합의를 보지 못해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일정을 잡지 못한 것을 새누리당 탓으로 돌린 발언이다. 새정치연합은 운영위를 소집해 고(故)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부정한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기춘·허태열 전 비서실장을 검증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안행위 소집은 홍준표 경남지사,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들을 국회로 부르기 위한 것이다. 우 원내대표는 상임위 개최가 불발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에 대한 국회 출석 요구가 묵살된 데 대해 “친박게이트를 덮기 위한, 선거에만 매달리는 정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는 새누리당이 4·2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불리한 이슈인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잠재우기 위해 국회 의사일정을 거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우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공무원연금법 국회 처리를 위한 의원총회를 열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발끈했다. 그는 “우리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안 하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의총을 왜 여는지 모르겠다”며 “정말 이상한 의총”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 등 민생 법안의 국회 처리 지연을 새정치연합 탓으로 돌려 선거에 악용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우 원내대표는 “내일 재보선 사전투표 있다”며 “새누리당이 이번에 승리한다면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 비리에 면죄부 부여해줄 뿐만 아니라 수사도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지는 설전
이처럼 새누리당이 공무원 연금개혁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자 새정치민주연합도 강력하게 대응하는 등 새로운 정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여야는 공무원연금 개혁 처리를 위해 각당 대표·원내대표가 참여하는 ‘4자 회담’ 개최를 놓고도 설전을 벌였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4월22일 인천 강화에서 열린 현장 선거대책회의에서 “공무원연금개혁 특위 활동 기간이 9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지금 여러 조짐을 볼 때 야당은 약속한 (본회의 처리) 날짜를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보인다”면서 새정치민주연합에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함께 참여하는 ‘2+2 회담’을 제안했다. 이 같은 발언은 일각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6월 국회로 미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데 따라 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제안으로 해석된다. 김 대표는 유세에서 취재진에 “공무원연금을 여야가 합의해 놓고 합의 시한을 지키지 않는 것은 매국적 행위”라고도 했다.
새정치연합은 같은 날 오후 이 같은 제안을 단박에 거절했다.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야당 간사인 강기정 새정치연합 정책위의장은 기자회견을 자처해 “김 대표의 제안은 그동안 공무원 당사자와 국회가 일관되게 지켜온 사회적 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강 정책위의장은 김 대표의 제안을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막기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평가절하하며 “실무기구와 특위 활동 기한은 ‘9일밖에’가 아닌 ‘9일이나’ 남았다”면서 “2+2 회동은 실무기구 합의 이후여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강 정책위의장은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4월 임시국회 내 처리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투쟁시작한 공무원들
한편, 공무원 노조가 ‘공적연금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본격적인 투쟁에 나섰다. 지난 4월25일 오후 3시에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참여한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와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이 공동으로 서울시청 광장에서 공적연금강화 국민대회를 열었다. 이 결의대회는 서울에서만 총 3만5000여명이 운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광주, 대구에서도 오후 2시 국민대회가 열렸다. 또한 전공노는 오는 4월27일부터 국회 앞에서 공무원연금개악 저지를 위한 단식농성도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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