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준 향상과 의술의 발달로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이 향상 되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고령 인구는 점차 늘고 있는 것. 95년 인구 총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노인은 전체인구의 5.9%인 2백64만7천명에 달한다.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노인 인구가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00년의 노인 인구가 전체의 7%를 점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고령 인구의 증가에 따라 노인을 상대로 하는 산업의 규모가 확대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상태로선 노인들을 위한 요양원(56곳), 양로원(98곳)등의 시설(96년 통계)은 미미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노인들은 날씨가 춥거나 무더운 것을 가리지 않고 공원이나 지하 전철역 등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람은 불가피하게 누구를 막론하고 늙게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갈곳 없어 도심지의 변두리를 헤매고 있는 노인들의 문제는 결코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는 문제다.
대화 그리워 찾는 야외사랑방
서울시 종로 2가 탑골공원. 이 공원은 서울의 가장 이름난 노천 경로당이랄 수 있다. 날씨가 무척 춥거나 무더위에도 노인들이 북적거린다. 1년 내내 노인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는다. 이 곳에 모인 노인들은 공원 의자에 앉아 있거나 아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세상사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뿐 아니라 곳곳에서 장기를 뒤느라 정신이 없다. 장기판 주변에는 으레 훈수꾼들이 에워싸고 있다. 장기 뒤는 사람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훈수꾼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 놓아 열기가 넘친다.
필자는 영하의 차가운 날씨였을 때 취재차 공원을 찾았다. 낙원 상가에 인접한 곳에 있는 벤치에서 몇몇 노인들이 장기를 뒤고 있었다.
"장이야, 장받아. 뭣하고 있어"
"이 사람아 조금 기다려"
"장 안 받고 뭘 기다리라는 거야. 장 받아"
"허어 그거, 된통 걸렸네"
"아니 장 받아라니까"
"한 수 물리면 안될까?"
이때 훈수하던 사람들이 아우성이다.
"물리다니 뭘 물리자는 거야. 끝난 장기야"
이긴 사람은 서둘러 장기판을 손으로 쓸어버린다. 승리자의 입가에선 미묘한 승리감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패배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 하나를 꺼내 문다. 승(勝)과 패(敗)를 눈앞에 두고 격론을 벌이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이들에게서도 승패의 열정이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판 더하세. 장기라는 게 이길 때도 있고, 패할 때도 있는데....."
두 사람은 다시 장기판을 정열하고 상대방의 군졸들을 앞다투어 포식해 들어간다. 그리고 또다시 열기 있는 훈수가 이어진다.
탑골 공원에 모인 노인들은 장기를 뒤면서 얼마 남지 않은 자신들의 미래를 그렇게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 노인들이 탑골 공원을 찾아오는 것은 집안에만 틀여 박혀 있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지. 여기에 나오면 얘기를 나눌 친구들도 더러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마음놓고 할 수 있어서 좋아. 아무 때나 와도 나와 같은 처지의 노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좋단 말이야. 장기나 바둑도 뒤고, 여러 노인들의 인생 얘기도 듣는 거야.
그런데 몇 년 전에 사귀었던 친구들이 여기에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세상을 먼저 떠난 것 같아. 나도 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아. 하지만 나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까지는 여기에 나올 거야. 집안에 혼자 있는 것보다 백배 천배 좋은걸. 역시 사람은 말이 통할 수 있는 사람과 어울리는 게 최고야"
70을 넘겼다는 한 할아버지의 말이다. 편히 몸을 기댈 만한 시설도 변변치 않은 공원 사랑방이 집안 보다 좋은 이유는 대화할 상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노인 상대하는 중년 매춘부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옥외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또하나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이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중년 매춘부들은 이 공원에 나오는 노인을 상대로 성을 팔기도 한다. 일명 "박카스 부인"들이 활개를 친다.
다음은 이름을 밝히길 꺼려하는 한 노인의 체험담.
"공원에서 놀고 있는데 박카스를 파는 아낙네가 접근해 왔다. 오죽하면 이런 곳에서 박카스를 팔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1천원을 주고 박카스 한 병을 사 주었다.
그런데 그 뒤부터 그 아낙네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할아버지 외로우시죠. 내가 애인이 되어 드릴까요?}라고 물어 오는 것이었다. 나이 많은 노인에게 젊은 여성이 애인이 되어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조건이 뭔데?}라고 물었다. 그녀는 {5만원만 주면 저기 파고다극장 옆 골목에 있는 여관에서 사랑을 해 드릴께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마침 주머니에 용돈이 있어 그녀를 따라 여관을 향했다. 여관에 들어간 그녀는 내 몸을 따뜻한 물로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그리고 사랑을 해주었다. 그래서 이 늙은 나이에 돈주고 사랑이란 걸 해봤다."
노인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는 "박카스 부인"들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철에 극성을 부린다고 한다.
날씨가 차갑지 안은 계절에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도심의 공원들이다. 서울의 경우 탑골공원, 사직공원, 효창공원, 올림픽공원, 남산 공원, 도봉산공원 등등의 공원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면 서울역 대합실이나 잠실 롯데월드 지하철역 등 보온이 잘 되는 장소로 모인다.
잠실 롯데월드 지하철역의 경우, 맹 추위가 극성을 부리는 한 겨울에는 매일 2-3백 여명의 노인들이 북적거린다. 이곳에서 새롭게 사귄 말년의 친구들끼리 못다 나눈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철새들은 철 따라서 자신의 거처를 옮긴다. 오갈 곳 없는 도심의 노인들도 철새처럼 철 따라서 자신의 쉼터를 옮긴다. 여름철이면 공원이나 호숫가를 찾고, 겨울철이면 비교적 따뜻한 서울역 대합실이나 지하 전철역을 찾는다. 그들은 그런 장소에서도 훈훈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또한 세상이 돌아가는 이모저모의 평론들도 한다.
삶의 마지막을 편하게 보내고 싶은 노인들. 길거리를 사랑방으로 활용하는 노인들은 국가나 부모를 가진 자녀들의 보살핌의 손길이 더 풍족하고, 더 따뜻해지는 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