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라는 시대적 활동은 복합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관점에서 이를 일일이 열거하고 해석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에 가장 기본 적인 역사적 서술의 맥락을 살피며 르네상스라는 넓은 길을 걸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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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세사에 대한 실증적인 이론으로 유명한 벨기에 출신의 역사학자 피렌(Pirenne,H,1862~1935)이 펴낸 유럽 생성 과정의 이야기로 그 서술의 논지가 정확한『유럽사,1936』는 필독서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사가인 알폰스 도프슈(Dopsch,A,1868~1953)를 만나야 합니다. 이는 역사의 발전단계설에 대응하는 역사적 현상을 바탕으로 고대 말기와 중세 초기와의 문화 연속설을 통하여 게르만족의 침입에 의한 문화의 단절론을 배격하였던『유럽문화발전의 경제적,사회적 기초,1918~1920』가 빠트릴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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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종교 역사학자인 트뢸치(Troeltsch,E,1865,2~1923)가 펼쳐낸 『역사주의와 그 문제들,1922』,『역사주의와 그 극복,1924』에 이르는 일련의 연구는 문화사 또는 역사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지닌 종교와의 관계를 살피는 관문입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영국의 종교 철학자이자 문화사가(文化史家)인 도슨(Dawson,C,H,1889~1970)을 이해하는 것은 이 부분의 가장 핵심입니다. 그의 저서『유럽의 형성,1932』과『종교와 서구문화의 흥망,1950』을 만나보면 “유럽은 인종 단위로 구성된 인종적 단위이거나 지리적 동질성을 보여주는 지리적 단위가 아닌 오직 문화적 단위”라는 소중한 밑줄을 긋게 되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도슨’이 서술한 “서양 중세는 근, 현대의 세계정세와 흡사한 여러 의미가 있다“ 라는 견해에 무한한 공감을 하게 됩니다. 이어 "서양 중세는 한마디로 말하여 그리스도교 문화에 의한 시대이다"라는 주장을 통한 종교사를 중심으로 유럽의 역사 형성에 관한 내용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긴 흐름 속에서 우리는 브르크 하르트와 함께 문화사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의 역사가 호이징가(Huizinga,J,1872~1945)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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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4~15세기 중세 문화사의 흐름을 담은『중세의 가을,1919』에서 서정적인 문체와 폭넓은 혜안으로 중세 역사의 중심을 헤아려 갔습니다.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 중세의 역사를 가을이라는 계절로 상징하여 당시 유럽사회의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명망가들의 기호에 의하여 창의적인 예술성을 상실한 시대의 아픔을 냉철하게 비판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또 다른 저서『호모 루덴스』는 부제에서 (유희에서의 문화의 기원)이 의미하듯 유럽과 동양의 여러 나라에 이르는 역사와 언어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문화와 유희(遊戱)의 연관성에 대한 견해를 담았습니다.
놀이(유희)가 가지는 문화의 원천적인 논지를 중심으로 유희의 규칙이 전쟁이라는 가장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지켜지는 전쟁법과 같은 사례를 통하여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는 정의 속에 인류의 역사는 놀이(유희)에서 비롯되어 놀이(유희)의 추구라는 연속적인 과정을 밟아간다는 이야기의 중심은 문화와 놀이(遊戱)가 부분적 연관이 아닌 문화의 실체라는 점이었습니다.
호이징가의 놀이(유희)와 문화에 대한 논지의 배경을 역사적인 사실에서 헤아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이나 끈의 모양을 칭하는『string figures』인 실뜨기 놀이는 전 세계적으로 오랜 기원을 가진 놀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모양과 형태의 출발에서 복잡한 기하학적인 모형과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내는 오늘날에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놀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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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류의 가장 오랜 예술 중에 하나인 무용의 기원이 놀이라는 고대의 역사적 사실에서부터 시작된 내용입니다. 이탈리아인들의 놀이로 출발한 극으로 구성된 춤이었던『ballo』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후원자로 평가받는 메디치가의 C,메디시스(C,Mdicis,1519~1589)공주가 프랑스 앙리2세 왕(Henri,II,1519~1559)과 결혼하여 지었던 프랑스 튀를리궁(宮)마당에서『ballo』을 배경으로 놀이로 만들었던 것이 바로 오늘날의 발레(Ballet) 가 되었듯이 이러한 배경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후 르네상스 이해의 연관성으로 주요한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영국의 비평가인 러스킨(Ruskin,1819~1900)은 경제학을 전공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가들의 활동에 대하여 르네상스라는 정확한 개념의 화론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는 1843년에서 1860년에 이르는 17년 동안『근대 화가론,5권』을 집필하였습니다. 화론서에는 조토, 라파엘로, 티치아노,틴토레토등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들과 영국의 풍경화가터너에 이르는 작가 및 작품들의 회화적인 서술적 평가와 특히 교분관계에 있었던 터너의 옹호론적인 비평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팽배하였던 예술모사설(藝術模寫說)을 부정하며 회화예술은 화가의 내재한 감성과 사상을 표출하는 것이라는 작가 표현론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예술의 경제적인 역할과 영향이라는 논지의『예술의 경제학,1857』등을 출판하며 영국 미술사에 활발한 활동으로 1869년 옥스퍼드대학에 미술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또한 데카당스 문예사조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영국의 비평가 페이터(Pater,W,H,1839~1894)는 인상주의적 비평으로 1873년『르네상스 사(史)의 연구』를 펴내면서 예술적인 새로움으로 키워간 상상력이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운동을 낳았다고 정의 하였습니다. 다음 칼럼은 17.『르네상스의 미술』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