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담긴 오랜 역사를 헤아려오면서 사유(思惟)의 학문인 수학과 미술이 깊게 교감하여온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수학의 학문적 바탕인 공리와 법칙이 예술이라는 행위에서 심미적인 역할을 선도하였으며 그 핵심이 조화와 균형이 낳은 비례의 미학이었습니다.
인류 문명사의 흐름에서 끝없이 축적되어온 비례의 미학이 이탈리아 수학자와 화가의 만남에서 결정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황금분할과 원근법과 같은 과학적인 회화기법으로 르네상스라는 문예 부흥운동에서 선구적인 길을 열었던 것입니다.
단순한 시각적인 균형과 조화의 비례가 아닌 자연의 생성구조를 담은 정신성으로 예술 분야는 물론 여러 분야에 미친 영향은 크고 높았습니다. 일차적인 시각에서 입체적인 조형의 변화는 기술에서 과학으로 전환을 가져 왔으며 이는 신과 자연으로 유지되어오던 보편적인 생활의 관념이 인간과 물질이 중심이 되는 시대적 변화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맥락은 인문사상의 태동과 함께 기술에서 과학으로 발전한 배경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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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르네상스 형성에 대한 가장 큰 근원으로 보는 의미에서 르네상스에 대한 선구적인 의식을 살펴보면 13세기 초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피렌체화파의 선구자인 치마부에(Cimabue1240?~ 1302?)에서 두치오(Duccio,1255~1318) 와 조토(Giotto,1266~1337)를 통하여 회화사의 새벽이 열렸습니다. 이는 시인 단테(Dante,A,1265~1321)에서 페트라르카(Petrarca,F,1304~1374) 와 보카치오(Boccaccio,G,1313~1375)로 이어진 문학의 바람과 함께 선구의 정신을 열어간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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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작품에 작가의 서명을 남기는 시대가 아닌 이유로 제대로 조명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화가가 바로 조토의 스승으로 알려진 치마부에(Cimabue1240?
~1302?)일 것입니다. 훗날 부분적인 문헌에서 그의 본명 (Bencivieni di Pepo) 이 확인되었고 1272년 로마에 있었던 사실과 1301년 피사에서 산타키아라성당에 성모자 그림의 제작과 1301년과 1302년 피사 대성당 제실(祭室)의 모자이크 장식인 성요하네상 제작에 관한 사실은 명확하게 입증되었습니다. 또한, 단테의 작품 신곡(神曲)의 지옥편 제11곡에서 세밀화가 인 오데리시가 단테에게 전하는 말에서 조토와 함께 거론된 내용 및 바사리의『미술가열전』에 기록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그가 피렌체화파의 선구적인 실체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또한, 치마부에 작품으로 인정받는 산타크로체 성당의『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루브르미술관의『성모자 제단화』및 치마부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 성당의 벽화 등에서 조토의 회화세계에 영향을 미친 구성기법이 드러나며 당시 피렌체 화단에서 조토의 회화적 기반이 태생될 수 있었던 배경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할 것입니다.
치마부에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미술사에는 피렌체의 조토와 함께 당시 피렌체에서 조금 떨어진 시에나(Siena)도시에 시에나파(Siena school)라는 또 하나의 회화적인 흐름이 있었습니다. 화가 두치오(Duccio,1255~1318)는 시에나파의 창시자로 치마부에의 회화를 바탕으로 장식적인 구성과 회화적인 색채의 조화로 조토 와는 또 다른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었지만 조토의 그늘에 가려 그 빛을 나타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였던 회화적인 선구의 기법과 정신은 1285년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로 제작한『루첼라이의 성모 Rucellai Madonna』등 여러 작품에서 가려질 수 없는 빛이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시에나파는 마르티니(Martini,S,1284?~1344)및 로렌체티(Lorenzetti)형제로 이어져 그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마르티니는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에 건너가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와 만나게 되고 이 인연이 두 사람의 깊은 교분을 가지는 배경이 되었으며 조토의 예술 세계를 바탕으로 시에니파의 기법이 혼합된 예술세계를 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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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로렌체티 형제 중 동생 암부로조 로렌체티(Lorenzetti,A,1290?~1348)는 뛰어난 입체적인 공간구성으로 선구적인 조형세계를 열었던 시에나 시 공회당의 벽화(1337~1339)를 남긴 채 1348년 유럽을 휩쓸었던 죽음의 질병인 흑사병으로 형과 함께 사망하였습니다.
르네상스의 시대를 엮어간 수많은 예술가 중 화가 조토의 자연과 인간의 소중함을 그리스도의 부활 정신으로 빚어낸 의식은 가장 큰 바탕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시인 단테가 펼쳐간 인간의 삶이 죽음이라는 최후로 소멸하는 것이 아닌 삶의 방법적인 크기와 형태로 이루어진 길이라는 의식도 같은 맥락의 정신입니다. 이러한 의식들은 영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인 그리스도의 구원 정신을 바탕으로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흐름을 선도한 선구적인 정신이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세계는 비례의 미학과 가장 연관이 깊은 융화의 정신으로 전개되었음을 깊게 헤아리며 화가 조토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과 단테의 그림으로 그려간 문학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다음 칼럼은 18.『화가 조토(Giotto,d,B)와 시인 단테(Dante,A)』 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