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조토1266~1337) 와 시인 단테(Dante,A,1285~1321)는 한 살 차이의 나이로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전반을 서유럽 이탈리아 북부의 피렌체에서 화가와 시인으로 살며 르네상스의 새벽을 열었습니다.
조토와 단테가 밝힌 르네상스의 새벽은 중세의 어둠 속에서 천천히 밝아오는 여명의 불빛과 같았습니다. 조토가 켜든 불빛은 중세미술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열차와 같았으며 단테의 문학은 미지의 땅에 도착하여 역을 나서면 생생하게 느껴져 오는 감각의 새로움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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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의 미술은 중세 시대의 절대적인 종교의 영향으로 구축된 색조 와 구조에서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이라는 대상으로 시야를 옮긴 르네상스라는 변화의 바람이 어른거리는 미술과 같았던 것입니다. 또한, 단테의 문학은 고전에 바탕을 두어 현실을 직시한 신선한 의식으로 속삭이는 언어가 물결처럼 일렁이며 르네상스 문학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조토의 작품에 존재하는 중세건축물의 양식들은 엄밀하게 고딕시대를 살다간 시대의 거울이지만 화면에 나타나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은 중세를 벗어난 새로운 색면과 공간구성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신의 중심인 당시 미술사에서 신과 인간이 함께 존재하는 의식을 추구한 변화로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사유의 핵심일 것입니다.
단테 또한, 라틴어에서 이탈리아 속어로 쓰인 작품들을 통하여 고전이라는 역사성을 중시하며 현실이 가지는 이야기를 민중의 언어인 이탈리아 속어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는 과거의 역사와 인물에 국한되어온 문학의 한계를 현실과 미래로 확장시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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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인과 관계의 사랑이야기를 펴온 오랫동안의 시대적인 경향을 벗어나 사랑이라는 주제를 그리스도의 폭넓은 사랑으로 연결하여 인본주의적인 사상의 지평을 열었던 특성이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동일한 맥락인 것입니다.
시인 단테는 자신의 대표작인 신곡의 연옥편 11곡에서 절친하였던 친구 조토에 대하여 ‘이제는 조토라 외쳐야 한다’ ‘조토에 의하여 치마부에의 명성이 희미해 졌다.’라고 헌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푸르른 날도 찬란한 권능도 허무한 것임을 함께 일깨우고 있었습니다.
다음 칼럼은 (19) 『르네상스를 그린 조토』 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