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조상 게르만족은 인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를 열어왔습니다. 게르만족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8세기경부터 기록되어 왔습니다. 게르만족은 역사적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벨기에와 나일 강 그리고 프랑스 북부지역과 스위스 지역은 물론 이탈리아와 폴란드와 체코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활동하였습니다. 게르만족은 고대에 갈리아인으로 기록된 수많은 부족 중에 인도 게르만어를 사용하였던 고대인을 게르만족으로 부르며 그중 게르만 조어를 사용한 부족이 현대 독일의 조상인 것입니다.
현재 유럽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들의 어원은 대체로 인도 유럽어족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스칸디나비아어 등이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입니다. 고대 지중해 시대의 공용어로 평가받는 라틴어도 바로 인도 유럽어족에서 분화된 언어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18세기에 영국의 법률가이며 언어학자인 윌리엄 존스(William Jones1746~1794)에 의하여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영국과 인도의 활발한 교류 속에 인도의 여러 학문을 연구하면서 인도의 고어인 산스크리트어가 그리스어, 라틴어와 그리고 유럽의 여러 원시 언어들과 같은 형태의 어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연관성이 어떤 최초의 언어에서 분화된 사실을 연구하여 유럽과 인도 언어의 관계성을 최초로 정립하였던 것입니다.
인도-유럽어족은 BC 2000년 무렵부터 분화하여 BC l000년 경 게르만 조어(祖語)가 발트 해와 북해에 한정되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조어란 공통되는 언어의 역사로 남는 원형의 언어를 조어(祖語-Proto)라고 합니다) 즉 오늘날의 독일어의 전 단계인 게르만 조어는 인도게르만어족이며 인도-유럽어족에서 분화된 순서로 이해하면 가장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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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오랜 역사 속에서 게르만 조어 군의 여러 부족 중에 현대의 독일과 연관된 가장 신뢰받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로마제국 시대에 시저(카이사르Caesar,BC 100~BC44)의 전쟁 기록문학으로 평가받는 ‘갈리아 전기’ 에서 라인 강 동쪽을 거점으로 하는 갈리아인중 독일인이라고 기록하였던 사실과 당시 역사학자인 타키투스(P.C.Tacitus55~117)가 서기 98년 라틴어로 저술한 Germania(라틴어 De origine et situ Germanorum)에 남긴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타키투스의 기록은 총 46장으로 이루어진 저술로 게르마니아 지방의 환경과 게르만 부족들의 풍습과 함께 여러 부족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로마제국 시대에 시저(카이사르)는 라인강 건너편에서 온 종족이라는 게르마니 키스레나니( germani cisrhenani) 라는 표현으로 현대 독일의 가장 원형적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렇듯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활동하였던 게르만족의 언어를 크게 분류하면 동게르만어(반달어, 부르군트어 등) 와 서게르만어(독일어, 영어, 네덜란드어 등) 그리고 북게르만어(덴마크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등)등으로 분류되며 현대 독일어는 영어와 네덜란드와 함께 서게르만어에 속하는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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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독일의 조상 게르만족을 살펴보면 BC 2000년경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부터 시작되어 갈라인 으로 함께 불리 오다 기원전 250년경 독일과 체코 국경의 엘베 강과 폴란드와의 국경 오더 강 인접 지역까지 확장하였고 서기 1세기경에 덴마크, 남부 스웨덴 그리고 북부 독일 라인 강 사이의 지역에 여러 게르만 족이 활동하였으며 점차 남쪽 도나우 강까지 세력화하여 서기 3세기경에는 광대한 지역에서 게르만족의 역사를 열어왔던 것입니다.
로마제국 시저(카이사르) 시대에 라인 강 서부 갈리아 지역은 로마 지배권에 있었으나 라인 강 동쪽은 지배권 밖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게르만족 중 대표적인 고트족은 스칸디나비아반도를 거점으로 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서기 238년 무렵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하며 동서로 분열되어 서고트족은 다뉴브 강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서기 251년 도나우 강과 흑해 사이의 도브루자전투 에서 황제 데시우스(Decius)를 격파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기 370년경 동방의 훈족이 침입하자 서고트족은 376년 로마의 영토인 모이시아로 이동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과정이 훈족과 함께 로마의 멸망에 주요한 요인이 되었던 게르만족의 대이동입니다. 이후 게르만족은 유럽 전역에 크고 작은 왕국을 세우게 되는데 그중 다음과 같은 대표적인 7왕국이 새로운 역사의 등불을 밝히게 됩니다. 413년(부르군트왕국-남프랑스), 418년(서고트왕국-에스파냐), 435년(반달왕국-북아프리카), 453년(동고트왕국-헝가리), 481년(프랑크왕국-북프랑스), 520년(앵글로색슨왕국-영국), 568년(랑고바르드왕국-이탈리아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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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격변의 역사 속에서 게르만족이 세운 7 왕국 중 프랑크 왕국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왕국이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여기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그중 기억해야 할 두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맨 처음 세워진 부르군트왕국이 436년 동방의 훈족에 의하여 멸망한 과정의 이야기가 중세 문학의 최고로 평가받는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1876년 바그너가 4부작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로 만들어 독일의 민족주의 의식을 전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른 하나는 게르만족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동고트왕국과 서고트왕국의 멸망과 이와 반대로 끝까지 살아남은 프랑크왕국의 이야기입니다. 고트족들은 가장 유리한 조건과 세력을 가졌지만 서로 분열하였으며 자국민과 로마의 그리스도교인과의 융화적 정책을 펴지 못한 점이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프랑크왕국은 그리스도교는 물론 여러 세력과 유화적인 정책을 통한 왕정을 펼쳐 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오늘날 EU라는 유럽연합의 공동체에서 탈퇴한 영국과 EU 공동체가 갈등과 반목으로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며 1600여 년 전의 7 왕국의 역사적 교훈을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유럽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다음 칼럼은 (29) 『프랑크왕국과 고대 이탈리아』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artww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