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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29)-프랑크 왕국과 고대 이탈리아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2/20 [08:25]

이탈리아(Italian Republic)를 고대의 로마와 혼동하는 경험은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겪는 일입니다. 로마제국은 기원전 8세기 현재의 이탈리아 반도에 건국되어 서기 27년~395년에 이르는 로마 제정시대를 거쳐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1453년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 멸망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1861년 이탈리아왕국이 세워져 1870년 전체적인 통일을 이루어 오늘날 현대 이탈리아 공화국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로마멸망과 현재 이탈리아 사이의 오랫동안 단절된 역사 속에서 베네치아와 피렌체 같은 주요 도시가 도시국가 형태로 존재한 사실을 이탈리아로 부르게 된 것과 현재의 이탈리아 수도가 로마인 점이 혼동을 가져오기 쉬운 이유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고대 로마와 이탈리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 고대 이탈리아 반도의 언어 지도 출처:wikipedia     © 브레이크뉴스

 

로마제국이 오늘날의 이탈리아 반도에서 나라가 세워졌지만, 로마제국을 건국한 인종과 현재의 이탈리아가 직계 후손 적인 의미가 전혀 다른 점을 먼저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라틴족, 에트루리아족, 그리스족, 갈리아족, 켈트족, 게르만족 등 다양한 인종이 혼혈로 이루어진 까닭입니다. 나아가 1453년 동로마제국이 멸망하고 1861년 현재의 이탈리아가 세워진 400여 년 간의 역사적인 단절 속에서 빚어진 이야기들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물론 인류사에서 가장 융성한 로마제국의 발상지가 현재의 이탈리아 반도가 분명하고 역사적인 유물들이 존재하고 있는 내용에서 문명과 문화의 바탕에 대한 연관성은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대 로마의 기원에 대하여 가장 명확한 내용은 BC 1000년경 이탈리아 반도를 세로로 가로지른 아펜니노산맥의 몬테코르노 산악 지대에 거점을 가졌던 인도유럽어족의 이탈리아어파를 사용하였던 부족을 원주민으로 보는 학설입니다. 이들이 현대의 로마 시내 서남쪽 인근 지역인 테베레 강을 흘러온 화산재가 평야를 이룬 라티움 지역으로 이주하여 라틴족이라는 세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훗날 로마인의 언어가 되었으며 지중해 시대의 공용어로 현대의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 루마니아 어 등의 수많은 언어의 바탕인 라틴어가 바로 라틴족이 사용하였던 언어입니다. 이와 함께 로마건국신화에 나오는 알바롱가 왕국이 바로 라틴족의 최대 세력이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라틴족의 거점과 세력을 바탕으로 인류의 대제국 로마가 건국되었던 것입니다. 
                

▲ 로물루스와 레무스 파울 루벤스 작품, 1616년,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 브레이크뉴스

 

이러한 점에서 고대 로마의 건국신화를 잠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로마건국 신화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이네아스의 후손이 세운 알바룽가왕국에서 동생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긴 누미토르의 딸 레아 실비아의 쌍둥이 아들인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가 탄생합니다. 이 쌍둥이 형제가 성장하여 할아버지의 빼앗긴 왕의 자리를 되찾고 난 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게 되는데 바로 로마제국의 탄생입니다. 당시 두 형제는 자신들이 세울 나라의 장소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하늘을 날아가는 새의 숫자를 통하여 나라를 세우기로 약속합니다. 이는 신들의 계시가 담겨있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에 형인 로물루스는 팔라티누스 언덕(PalatinusHill)에서 열두 마리의 독수리를 보았으며 동생 레무스는 아벤티누스 언덕(Aventine Hill) 언덕에서 여섯 마리의 독수리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팔라티누스 언덕에 최초의 로마가 세워지게 되었다고 신화는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건국신화를 바탕으로 로마의 기원을 정리하면 BC 753년에 건국자인 로물루스가 초대 왕에 즉위한 이후 2대 누마 팜필리우스(BC715~ BC673), 3대 툴루스 호스틸리우스(BC673~BC642)4대 안쿠스 마르티우스(BC641~BC616) 까지는 라틴족이 왕을 이어가다 5대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BC 616~BC 579)왕과 6대 세르비우스 툴리우스(BC579~BC535)와 마지막 7대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BC535~BC509)왕은 에르투리아인 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로마 왕정 시대로 정의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왕정 시대에는 그 누구도 아들에게는 왕권을 계승하지 않았으며 단지 라틴족인 4대 왕 안쿠스 마르티우스가 2대 왕 누마 팜필리우스의 손자이며 마지막 7대 왕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5대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왕의 아들 또는 손자라는 기록이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로마 왕정 시대는 신화와 역사의 기록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 피렌체의 주요 명소 사진 출처: wikipedia     © 브레이크뉴스

 

이렇듯 신화와 역사가 공존한 244년간의 로마 왕정 시대를 마감한 로마제국은 BC27년 로마 공화정 시대가 마감되었고 서기 476년 게르만 로마 제정시대 또한 동방의 훈족과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멸망하며 역사의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이후 이탈리아 반도는 동고트족․ 롬바르드족․ 프랑크 왕국 등의 통치를 받게 되며 962년 고대 로마제국의 부활을 상징하는 신성 로마 제국이 들어서 그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이후 중세시대로 구분되는 역사 속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주요한 도시들이 영주가 통치하는 공화국 형태의 도시국가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8세기부터 천 년간 지속하여온 베네치아 공화국과 1115년에 세워진 피렌체 공화국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이탈리아라는 정식 나라가 존재하지 않으면서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같은 표현으로 이탈리아의 존재성을 역사에서 지우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르네상스라는 인류사의 가장 큰 전환을 가져온 인류의 지혜로운 문화 예술 운동이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대에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베네치아와 피렌체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시대적 영향력이 매우 컸으며 이러한 도시국가의 바탕에서 오늘날의 이탈리아가 존재하는 이유로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문화와 예술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칼럼은 (30) 『프랑크왕국과 유럽』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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