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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33)- 카페 왕조 300년 프랑스와 영국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2/24 [10:10]

카페 왕조의 시작은 현대의 프랑스를 낳은 태생의 의미가 있습니다. 로마제국 멸망 이후 500여 년간 끝없이 이어온 왕권 혈통의 계승에서 귀족의 신분으로 왕권이 바뀐 의미가 권력이 절대적이 아닌 바뀔 수 있다는 역사를 증명한 까닭입니다.

 

카페왕조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위그 카페(Hugues Capet 941~ 996)의 등장은 당시의 시대 상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9세기 말과 10세기 초를 거치면서 프랑크왕국의 카롤링거 왕조는 왕권의 쇠퇴로 각 지역의 귀족들이 독립된 영역의 권력을 행사하는 시기이었습니다. 특히 8세기 말부터 북유럽 노르만족인 일명 바이킹족들이 제2차 대이동을 하여 유럽 전역은 혼란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전투력과 용맹성으로 점차 서유럽의 중심부로 거점을 이동하면서 지방 귀족세력의 용병이 되기도 하고 자체 세력으로 일정한 지역을 침략하여 영토화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서유럽 각 지역에 오랫동안 매만져온 수준 높은 생활 거점을 전투력을 정복이라는 수단으로 쉽게 점령할 수 있는 상황은 전투력이 바탕인 바이킹 세력들이 절호의 기회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척박한 영토와 자체 생산 수단이 없는 세력으로 생존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사의 용맹성 앞에  서유럽 대륙의 각 영역은 그들에게 주요한 거점을 앗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 노르만족 이동지도와 노르망디공국 국장 출처: http://shissem.com     © 브레이크뉴스

 

 

이러한 상황에서 9세기 말 위그 카페의 로베르 가문은 네우스트리아의 후작이었던 로베르 강성공이 노르만인의 침입에 큰 공을 세우면서 급성장한 가문으로 이러한 배경을 안고 카페 왕조의 시조가 시작된 것입니다. 위그 카페 왕(941~ 996)의 9년간 재임 기간을 통하여 시작된 카페 왕조는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 시대를 거치면서 분할 상속이라는 제도에서 빚어진 문제들을 교훈 삼아 장자 직계 상속이라는 제도 속에서 샤를 4세(Charles IV,1322년~1328)를 마지막으로 300여 년간 이어온 왕조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강력한 세력화를 도모한 노르만 족들은 911년 센강 지역에 노르망디 공국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르망디공국이 카페 왕조와 협력을 통하여 1066년에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합니다.

 

여기서 잠시 이러한 영국의 기원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봅니다. 영국에 원주민은 신석기 시대에 들어온 이베리아반도의 이베리아인과 알프스 산맥에 거점을 가졌던 아리아 족에서 분파된 켈트족입니다. 여러 기록으로 기원전 6~7세기경 프랑스 갈리아 지역에 이주한 켈트족이 영국으로 건너와 원주민으로 동화된 내용이 가장 설득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국 하면 연상되는 앵글로색슨에 대한 내용은 잠시 정리합니다.

 

앵글 인(Angle)은 4~5세기에 덴마크 제도와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앵글이라는 지역에 거점을 두었던 민족입니다. 색슨 인(Saxons)은 옛 게르만족이며 현대의 니더작센 지역에 살았던 민족으로 앵글족과 동화하여 앵글로색슨 인이 되어 5~6세기 민족 대이동 시기에 브리튼 섬에 원주민을 침략하여 7 왕국 시대를 거쳐 통일 왕조를 세운 나라가 잉글랜드입니다. 이러한 앵글로 색슨 족에 대하여 영국에서 DNA 조사를 하여 영국인 40%가 해당하는 혈통이라고 발표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 카누트 대왕의 초상 출처:http://misjonarz.info     © 브레이크뉴스

 

이러한 영국은 BC 55년 무렵 로마제국 시저(카이사르)가 브리튼 섬을 정복하여 400여 년간 지배하였습니다. 이후 게르만족 대이동으로 앵글로색슨족 등이 몰려오면서 본국의 복잡한 상황에 따라 로마군이 물러나고 원주민 켈트족 또한 웨일스 섬과 스코틀랜드로 이주하며 로마제국의 멸망에 따라 잉글랜드는 지형적인 이점으로 서유럽 대륙에서 오랫동안 지속하여온 격동의 역사를 비켜나 앵글로색슨만의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다시 1066년에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한 시대 상황 이전에 대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2차 게르만족 이동의 주 세력인 노르만인(데인인)은 앵글로색슨 왕국을 계속 침략하였지만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앵글로 색슨 왕국의 부분적인 점거에 불과하였습니다. 그중 실제로 잉글랜드 왕국을 정복한 이는 덴마크 왕조의 창시자인 크누트 대왕(Kanut Wielki,995~1035)입니다. 덴마크 왕조는 덴마크와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와 잉글랜드를 최초로 통합한 바이킹왕가로 바이킹족 중 가장 잔인하고 용맹한 전설적인 부족입니다.

 

크누트 대왕의 할아버지 하랄드 대왕(Haraldr,850~933)은 본디 노르웨이 국 건국자로 덴마크를 통합하여 아들 스웨인 포크비어드(Sweyn Forkbeard,960~1014)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스웨인이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한 달 후에 사망하여 아들 크누트 대왕이 이를 물려받아 잉글랜드에서부터 북유럽을 지배하는 강력한 세력을 가졌으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무렵 아들 하다크누트(1018~1042)가 24살의 나이로 사망하여 전설의 바이킹 왕조를 전설의 역사 속에 남기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962년 현대 독일의 바탕이 된 신성로마제국 탄생과 1096년 유럽 모든 세력이 연관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칼럼은 (34) 『카폐 왕조 300년 신성로마제국과 십자군 전쟁』 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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