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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 - (34)-신성로마제국과 카노사의 굴욕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2/25 [12:22]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은 역사 속의 그림자와 같은 나라입니다. 작센 왕조 오토 1세 왕이 962년 요한 12세 교황에게 황제 대관을 받은 시점에서부터 1806년까지 지속하여온 신성로마제국은 역사적 관점에서 이름으로 존재한 나라로 실제의 로마제국과 혼동하는 점이 많아 이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843년 베르됭 조약, 870년 메르센 조약을 통하여 프랑크 왕국이 동과 서로 분할을 거치며 카롤링거 왕조의 혈통이 단절되어 프랑크 왕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 게르만 부족들이 모여 작센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대왕 하인리히 1세의 뒤를 이은 오토 1세(Otto I, 912~973)는 이탈리아 귀족들의 위협에 처한 요한 12세 교황이 도움을 요청해 오자 이탈리아로 쳐들어가 교황을 보호합니다. 이에 교황은 962년 오토 1세에게 로마의 황제라는 칭호와 함께 황제 대관식을 거행한 이후 중세 중반에서 부터 불린 역사 속의 명칭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황제 즉위에 대한 실체적인 배경은 교황과 오토1세 왕 모두가 서로가 다른 계산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 (左)오토 1세와 (右)요한 12세 교황 미니아튀르(세밀화) 출처:wikimedia     ©브레이크뉴스

    

교황은 당시 실권자인 오토 1세를 보호 세력으로 두어 황제를 교회의 지배하에 두었다는 상징적 권한을 계산하였습니다, 오토 1세 또한 로마제국의 후예라는 상징성과 교회를 황제가 지배하는 사실을 대외에 알려 교회의 정신적 역할을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962년 당시 교황과 오토 1세가 비준한 조약에서 오토 1세는 교회에 대한 수호의 역할을 명시하였으며 교황 선출에 대하여 교황은 서품 전에 독일 황제에게 충성 서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한 12세 교황과 로마 귀족들은 성 베드로 무덤에서 오토 1세에게 충성을 서약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교황과 국왕이 서로가 충성을 교환한 사실은 종교와 권력이 서로를 보호하는 의식을 통하여 영원한 동행을 추구한 시대적 산물이었습니다.

                

▲ George Sheridan Knowles 작품 카노사의 굴욕캔버스에 오일140X110cm 1909년 출처: HERNANIantiques     ©브레이크뉴스

 

한편 교회 성직자의 서임에 대한 일부 권한이 오토 1세에게 주어진 내용 또한 오토 1세의 입장에선 상당한 힘을 가지는 통치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고위 성직자인 주교나 대주교는 세속 영주처럼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성직자의 집무에 대한 권한은 교황에게 있지만, 세속 영주라는 입장의 권한은 황제가 통치하는 이중적 권한이 얽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직자 서임에 대한 문제는 이로부터 113년 후 1075년 교황 그레고레오 7세 시대에 독일과 이탈리아 국왕을 겸하고 있던 신성로마 황제인 하인리히 4세(Henry IV) 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황제의 주교직 서임을 금지하는 교황의 명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이에 황제의 권한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하인리히 4세 황제는 교회회의를 통하여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의 폐위를 결의합니다. 이에 교황은 하인리히 4세 황제의 파문과 폐위를 선포하는 정면충돌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주교들 비롯하여 주요한 영주들이 교황의 선언을 지지하면서 교황의 승리로 962년 오토1세와 비준하였던 조약은 역사 속의 백지가 되었습니다. 이에 하인리히 4세는 그해 겨울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 성에 머무르던 교황을 찾아가 엄동의 눈 속에 맨발로 3일간을 빌면서 사면을 받은 사건이 역사 속에 전해오는 ‘카노사의 굴욕’입니다. 

 

▲ 작가 볼테르(Voltaire)와 그의 소설 캉디드 Candide) www.bd-sanctuary.com     © 브레이크뉴스

 

신성로마제국은 서유럽의 기독교 중심 세계를 이어오며 교회의 수호적 역할을 맡아온 황제의 나라가 고대 로마제국의 부활과 연장이라는 상징성을 나타내고 싶었던 명칭입니다. 이는 800년에 카롤링거왕조 샤를마뉴(768~ 814)가 황제로 즉위하여 서로마제국을 부활시킨 역사를 모델로 작센왕조에서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로마제국의 계승이라는 정신성을 통치의 바탕으로 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로마제국, 신성제국, 또는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린 신성로마제국은 근대 독일제국 1806년까지 사용되었던 역사 속의 그림자와 같은 이름인 것입니다. 이러한 로마제국과 프랑크 왕국의 계승적인 의의에 담긴 국경에 연관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명칭에 대하여 근대에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18세기 무렵 프랑스와 독일의 민족주의 운동가들에 의하여 많은 논란이 거듭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철학적 소설 캉디드로 잘 알려진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Voltaire,1694~1778)의 말이 생각납니다. ‘신성한 로마제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신성하거나 로마도 제국도 아니다.’   다음 칼럼은 (35) 『 카롤링거 르네상스와 오토 르네상스』 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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