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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위하여-(37)- 카롤링거르네상스-문맹자가 일깨운 역사

이일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3/01 [13:28]

카롤링거 르네상스가 후세의 역사에 전한 많은 업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카롤링거 소문자라는 카롤링체의 개발이라 할 것입니다. 샤를마뉴 황제의 후원 속에서 로마문화의 원형을 복원하고 부흥하려는 노력은 황제의 스승 앨퀸의 몫이었습니다. 이에 많은 수도원과 교회를 건설하면서 소장되어야 하는 성경과 책자들을 필경사들이 직접 써서 책을 만들면서 겪게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자(라틴)는 대소문자의 구분이 없었기에 빠른 필사를 위하여 로마자필기체 라는 흘림 서체를 통하여 만들어지는 책과 문서는 서체가 모두 달라 통일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글을 모르는 샤를마뉴 황제와 같은 문맹자 처지에서 보면 같은 말이 모두 다르게 쓰여 있는 혼란이 지적되었던 것입니다.

       

▲ 카롤링서체와 고딕서체 출처: http://archives.pacscl.org     © 브레이크뉴스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난 서체가 바로 카롤링 서체(Carolingian minuscule)입니다. 카롤링 서체의 가장 큰 특징은 로마 문자(라틴)가 쓰여진지 16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소문자가 개발된 것입니다. 이를 다시 헤아려보면 기원전 900년에 모음이 없던 페니키아 문자를 바탕으로 24자의 그리스 문자가 탄생한 후 기원전 700년경 오늘날 26자의 알파벳 원형인 로마 문자(라틴)로 발전하여 7세기 후반에 대소문자의 구분이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대에 정립된 사실입니다.

 

이는 그리스 문자 탄생부터 로마제국시대를 거쳐 카롤링거왕조에 이르는 오랜 역사에서 마가복음 6장 38절과 마태복음15장 32절에 전하는 몇 개의 빵과 몇 마리의 물고기로 5 천명을 먹였다는 신의 기적에서부터 자연의 진리를 구하고 우주와의 거리를 명확하게 계산한 수많은 학자가 역사를 걸어 왔지만 정작 글을 모르는 문맹자의 정신과 지혜에서 알파벳 대소문자의 구분이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역사를 바꾼 문맹자의 정신과 지혜를 통하여 카롤링거 르네상스 정신을 다시 되새기게 하는 대목입니다. 

 

▲ 중세 필경사 작업 장면 출처:wikipedia.     ©브레이크뉴스

  

이와 같은 카롤링 서체가 정립된 이후 카를마뉴 황제는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 중에도 휴식시간이면 틈틈이 글을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카롤링 서체의 개발은 유럽역사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표준화된 문자를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보고 읽을 수 있는 성경에서부터 수많은 고전문학이 복원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필사본으로 서적을 만드는 일은 큰 비용과 전문 인력이 필요하였습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어서 보존력이 떨어지는 파피루스에서 발전한 다양한 가축의 모조 피지(Vellum)와 어린 양이나 송아지 가죽을 가공한 양피지(parchment)는 가공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고급종이로 귀한 서적과 문서에 종이로 사용되었습니다.

 

샤를마뉴 황제는 스승 앨퀸의 조언에 따라 세력권의 주요 지역에 많은 수도원과 교회를 건립하여 도서관을 만들고 각 수도원에 전문 필사실을 설립하였습니다. 당시 성서를 한 권 제작하는데 전문 핅경사 한 사람이 일 년이 걸리는 시간이 필요할 만큼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주요 도서관과 박물관에 현존하는 고대의 각종 전문서적은 이 시기에 제작된 것들입니다. 이렇게 카롤링거왕조 시대에 제작된 서적 문헌은 약 1만여 점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직지심경 출처:Wikimedia     ©이일영 칼럼니스트

 

이와 같은 카롤링 서체를 바탕으로 12세기에 검은 편지(Black letter)라는 고딕서체가 개발됩니다. 촘촘하게 Tm인 편지라는 뜻을 가진 고딕체 Black letter는 12세기 각 나라에 대학들이 세워지고 여러 행정업무에 필요한 서적과 문서에 적합한 서체로 개발된 것입니다. 이러한 서체를 바탕으로 1455년 구텐베르크에 의하여 ‘구텐베르크 성경’으로 불리는 성경책이 180부 인쇄되어 서양의 인쇄문화가 처음 열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금속활자는 1377년 직지심경(직지심체요절)을 구텐부르크보다 78년 먼저 세계 최초로 출판한 나라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정신 직지심경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가슴에 안고 샤를마뉴 황제가 814년 세상을 떠난 이후 600여 년 지난 후 독일의 구텐브루크가 샤를마뉴와 연관되어 서양 최초의 인쇄문화를 열게 된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다음 칼럼은 (38) 『 샤를마뉴와 구텐베르크』 입니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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