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을 맞아 당시 김대중 대통령 부속실장이었던 김한정 의원 주관으로 ‘6.15남북공동선언의 의미와 과제 김대중포럼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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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은 축사를 통하여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의 심장부로 들어가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결단과 신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6.15남북공동선언‘이 남북간 대립과 분열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화해협력 시대의 개막을 알린 ’통일의 이정표‘였듯 새로운 대한민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시대를 여는 ’통일의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시 햇빛정책으로, 다시 김대중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새정부 일본 특사를 다녀 온 문희상 전 국회부의장은 “남북관계 복원을 위하고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햇빛정책으로, 다시 김대중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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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북공동선언의 주역의 한사람인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는 ”6.15남북공동선언의 주역들인 서훈 국정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2000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성사와 성공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들이 돌아왔다.”고 강조하며 두 가지 일화를 공개했다.
하나는 당시 그 현장에 사진기자가 없어서 사진을 못 찍었는데 박준영 의원(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이 사진이 없으면 무효라고 말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다시 사진을 찍은 비화를 공개했다.
또 하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공식 수행원으로 참가한 남한의 경제인들을 헤드 테이블로 안내하여(와인 한잔씩을 따르며)투자요청을 했다“고 소개하며 분위기가 고조될 때 김한정 의원(당시 청와대 부속실장)이 ”우리의 소원“을 부르게 해달라고 건의해서 이것 또한 두 정상께 건의해서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역사적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은지 입속으로만 노래를 불렀다고 일화를 소개하며 박 전 대표는 “나는 그저 심부름만 했다”고 소개하자 청중석에서 일순간 폭소가 터져 나왔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새 정부는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의 정신을 바탕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새로운 구상을 추진해 나갈 것.”이며,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자세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되 한미공조를 더욱 굳건히 하고 주변국과 협력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6.15남북공동선언 17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회고 - 임동원 전 국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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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주역인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특별회고에서 “지난 9년간의 역주행을 멈추고 남북관계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가운데 6.15남북공동선언 17주년을 맞는 우리의 마음은 벅찬 기대에 차있다.”며 분단이후 최초로 평양에 도착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인상적인 인사말을 소개했다.
“대통령께서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평양에 오셨습니다. 전방에서는 군인들이 총부리를 맞대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갈 판인데, 대통령께서는 인민군 명예의장대의 사열도 받으셨습니다. 이건 보통 모순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6.15남북공동선언>의 의의
임동원 전 원장은 “분단역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선언>은 반세기 분단사의 대전환을 시도한 역사적인 사건이며 냉전의 잔재를 털어버리기 위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하며 <6.15남북공동선언> 의의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6.15남북정상회담은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둘째, 통일은 자주와 평화의 원칙에 따라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룩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데 합의했다.
셋째, <6.15남북공동선언>은 실천선언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두 정상은 평화와 통일의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호신뢰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그것은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실천에 옮겼다.
DMZ 지뢰를 제거하여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하늘 길과 바다 길도 열었다. 분단 후 처음으로 사람과 물자가 남북을 오고 갈수 있는 길을 마련한 것이다. 동쪽에는 금강산관광단지, 서쪽에는 개성산업공단을 건설 운영하고, 교역과 경제협력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여러 분야에서의 남북 왕래와 만남,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되면서 적대의식이 수그러들고, 긴장이 완화되고, 상호신뢰가 싹트기 시작했다. 반세기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넘어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 소중한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넷째, 남북정상회담은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한국과 함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추동력이 되었다.
다섯째로, <6.15남북공동선언>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주도해 나간다는 민족자존(民族自尊)을 드높였다. 민족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좌우되던 것을, 우리 힘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시한 것이다.
민족문제를 당사자인 남과 북이 합의하면, 미국 중국을 비롯한 국제세력의 지지와 협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는 서로 대립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임을 입증한 것이다.
임동원 전 원장은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노력을 경주하느냐에 따라 한반도는 전쟁의 먹구름에 휩싸일 수도 있고, 평화의 햇살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회고했다.
당면과제 :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개
지난 9년간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중단된 여러 가지 요인 중 가장 핵심적인 세 가지를 지적했다.
① 미국 부시 행정부가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과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전면부정하고(ABC) 대북 적대시정책을 추진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정권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며 군사적 선제공격(preemption)으로 제거해야할 대상(regime change)으로 선포하고 적대시정책을 추진한 결과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중단되었다.
② 북한의 핵개발이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고 남북관계를 경색시켰다. 클린턴 행정부는 ‘제네바 미북기본합의’로 핵물질 생산 이전의 초기단계에서 핵 활동을 동결시켰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적대시 정책으로 8년간 준수되어온 이 합의는 파기되고, 북한은 2003년 초부터 체제 생존을 위한 억제력을 확보한다며 본격적인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③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붕괴가 임박한 것으로 오판하고 흡수통일을 위해 압박과 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키려는 대결정책을 추진했다.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先핵문제해결’이라는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여 핵문제 해결에는 기여하지 못하면서 남북관계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북한의 무모한 강경책으로 남북은 사사건건 갈등 반목 대결하게 되고 긴장이 고조되며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그 결과 교류 협력은 전면 중단되었다.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체제 구축해야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관계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북핵을 폐기하고 군비감축을 추진해야 하며 군사정전체제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평화체제 구축은 동북아평화질서 조성과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 전 원장은 “우선 <6.15남북공동선언> 등 남북합의의 이행을 다짐하고, 전제조건 없는 남북대화를 시작하여 그 동안 중단했던 교류 협력 사업을 하나씩 재개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를 놓지지 말고 집권초기에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고 화해 협력시대를 다시 열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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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에 나선 김연철 교수(인제대 통일학부)는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을 기준으로 ‘접촉이 없었던 시대’와 ‘접촉의 시대’로 구분된다”고 규정하며 “서해에서는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지만 동해에서는 금강산 관광선이 출항하는 담대한 용기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평화가 커지면 커질수록 경제가 커지고 경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평화가 커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동의 없이는 한반도에서 절대 전쟁은 불가하다“
최종건 교수(연세대 정치외교학부)는 “17년 전 6.15공동선언 이전에는 극한의 대결과 전쟁을 생각나게 하는 단어들이 난무했는데 6.15공동선언이후에는 화해, 공존, 협력, 평화가 주류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이명박, 박근혜정부에서는 워싱턴, 베이징, 동경을 통하여 남북문제에 관하여 정보를 얻었는데 이제는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주도하는 남북관계가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둘째, 안보관에서 국제공조, 외세에 의존하는 ‘의존안보’에서 민생과 경제를 연계하는 안보가 필요하고 셋째, 2017년 버전의 햇빛정책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서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되며, 대한민국 동의 없이는 한반도에서 절대 전쟁은 불가하다“고 역설했다.
지난 정부에서 과정이 없이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저질스런 ‘통일 대박론’과 같은 것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장용훈 북한전문기자(연합뉴스)는 “대한민국은 대륙으로 가는 길을 잃었다”고 강조하며 “평화를 말하지 않은 보수는 진정한 보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러시아 특사로 다녀온 송영길 의원은 “전 세계 어느 지도자도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만나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만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정상회담을 위해서 대북특사 파견을 해야한다”고 역설했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이 걸었던 남북정상회담의 길은 다시 열려야 한다“
‘6.15남북공동선언의 의미와 과제 김대중포럼 토론회’를 주관한 김한정 의원은 “6.15남북공동선언은 한반도에서 냉전의 잔재를 떨쳐버리고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자주와 평화의 원칙에 입각한 점진적인 통일방안에 합의한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규정하며 “6.15선언이후 남북한은 장관급 후속회담, 이산가족상봉, 문화체육 등 광범위한 교류, 개성공단 건설 등 다방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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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토론회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 백재현 예결위원장, 양승조 보건복지위원장, 문희상, 박병석, 원혜영, 유승희, 송영길, 정성호, 남인순, 김경협, 진선미, 이원욱, 박준영, 최운열, 김두관, 소병훈, 최경환, 유동수, 이훈 등 여․야 국회의원과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홍걸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 등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