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덩어리를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는 IT강국인 대한민국처럼 와이파이가 어디서든 잘 터지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1911년부터 1937년까지 우리의 선조들인 고려인들이 나라를 빼앗긴 국난의 시기에 임시정부 모체가 이곳 신한촌에서 태동했다는 걸 국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록에 의하면 1863년 연해주 지시노 마을에 13가구가 최초로 두만강을 건너 정착했다고 한다. 그 후 블라디보스톡 개척리에 정착해 살고 있던 고려인들은 콜레라가 창궐해서 구릉지인 신한촌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한 때는 16만 7천여명이 거주하며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신한촌에서는 학교, 출판사, 애국단체 등 독립운동세력들이 총집결하여 살았다고 한다.
24일 오전 10시 30분(현지 시각)‘고려인 강제이주80주년기념 시베리아횡단열차오디세이’순례단은 항일민족운동의 성지인 신한촌을 찾았다.
신한촌은 1996년 중앙아시아 우브베키스탄, 카자크스탄 디아스포라 지도자, 한국 해외동포연구소 소장 이윤기, 블라디보스톡 문화자치회장 이베체슬라브 등이 참여하여 신한촌 건립을 하기로 했다.
그에 앞서 1995년 레니그라드 국립대학 역사학자 박표트르 다비도비치가 신한촌 자리를 잡았다. 그후 이윤기 회장은 2년여 동안 18번이나 공공기관 허가를 받기 위해 애쓰다 마침내 공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제작한 석조 기념물은 86톤으로 통관비용이 86,000$이었으나 하원 정유리 덕분으로 무료 통관되어 1999년에 완설(完設)되었다.
이창주 상트뻬테르브르크 석좌교수는 “러시아 정부에서 신한촌을 민족 정착지라는 흔적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하늘, 바람, 땅”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창주 박사는 신한촌에 우뚝선 세 개의 석주와 8개의 작은 돌비석에 대하여 “가장 큰 기둥은 남한국민, 두 번째 큰 비석은 북한동포, 세 번째는 재외동포를 의미하며 8개의 돌비석은 조선 8도를 의미한다”는 민족운동사의 정설을 소개했다.
그러나 이박사는 정부에서는 예산을 지원하지 않고 유일하게 석주를 둘러싸고 있는 철망 예산만 지원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고려인 이베체슬라브(53)자치 회장은 몸이 불편하지만 독립운동의 성지인 신한촌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어눌한 말투로 “러시아 땅이 아닌 우리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말할 때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나 함세웅 신부는 세 개의 석주 의미를 오히려 “바람, 땅, 하늘”이 좋다“고 해석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가롯 유다가 탈락할 것을 미리 알고 한사람을 더 뽑았듯이 13가구가 이주해 와서 정착한 것은 우연의 일이 아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살아가느냐? 소유론적으로 살아 가느냐?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진다.”며 “남북한 8천만의 가슴속에 안중근 의사, 최재형 선생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윤고방(70)회장(미네르바 작가회)은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낭독하여 순례단의 심금을 울려 가슴 벅차게 만들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ㅡ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달이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 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옷을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순례단 일행 중에서는 윤 회장이 시 낭독을 할 때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동방의 진주 블라디보스톡
푸틴이 동방정책으로 2012년 에이팩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21조원을 투입하여 극동 아시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고 한다. 금각교와 금각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금각만과 아무르강이 만나는 요충지를 넋놓고 바라보았다. 이곳은 멀리 중국의 훈춘과 맞닿아 있다고 명 가이드 담양 댁 조미향 이사는 말했다. 겨울에는 바다가 얼어붙어 직선 거리로 바다를 건너 가지만 얼음이 얼지 않은 여름에는 대여섯 시간을 돌아서 간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역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된다’라고 한다. 블라디보스톡이란, 블라디-지배하라, 보스톡-동방 즉,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으로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 동진정책을 반영하여 태어난 군사도시이다. 지금도 태평양 함대사령부가 있는 블라디보스톡은 ‘동방의 진주’로 활기차게 발전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톡은 일본 점령기 일제의 약탈과 기근 등을 피해 연해주에 정착한 독립투사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은 이준 열사와 이상설이 합류한곳이 이곳이며, 안중근 의사가 최재형 선생과 조우하며 항일독립운동정신을 고취한 곳도 블라디보스톡이다. 이곳은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의 시원지이며 최초의 해외 코리아타운인 신한촌이 건설된 민족애환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7월 24일 19시 10분(현지 시각), 시베리아 동쪽 끝 블라디보스톡역! 순례단 일행은 갑자기 내리는 폭우를 맞아 생쥐처럼 쫄딱 비를 맞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피난민 행렬 그대로였다. 80년 전 우리의 선조 고려인들은 이보다 더했을 것이다. 당시 고려인들은 왜 무엇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6,500Km대장정의 길을 떠났다. 여행이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죽음의 행렬이었다. 이동 중에 2만5천여명의 어린아이들과 노약자들이 죽어가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피눈물 나는 통곡의 역, 라즈돌노예 역이다.
우리네 열차처럼 열차 번호가 순번처럼 배치되어 있지 않아서 관광 가이드들이 빗속을 여행용 슈트케이스를 끌며 86명을 인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각자의 열차 번호에 따라 방 하나에 4명씩 3박4일을 열차 안에서 생활하게 되므로 정이 안들래야 안들 수 없는 구조이다. 마침 소나기가 한바탕 내려서 온도가 내려갔다고는 하나 그래도 찜통 더위로 열차 안은 숨이 턱 막히는 그런 구조였다.
우리 호실에는 김석진 교수(경북대), 연민수 역사학 연구위원(동북아역사재단), 정태봉 대표(모리스엔코)가 함께 하고 있다. 특별히 정 대표는 “항일독립운동의 대부인 최재형 생가를 답사 한 후 우리가 최재형 선생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자괴감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울에 돌아가 500만원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YTN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일명 담양댁(고향이 전남 담양)인 조미향 이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이드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아마 관광버스 1호차에 탑승한 분들은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1호차에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함세웅 신부, 이부영 전 의원, 시사인 표완수 대표,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 등 기라성 같은 분들이 승차하고 있었는데 최재형 홍보대사도 겸하고 있는 조미향 가이드는 순례단을 들었다 놨다 할 뿐만 아니라 일제 시대 연해주 독립운동사를 청산유수로 쫘악 끼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때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지난 날 우리의 선조들인 고려인들이 목적지도 모른 채 짐칸에 화물처럼 끌려가신 것을 회상하라는 말을 뒤로 하고 인사도 못한 채 3박4일 72시간의 대장정의 열차에 몸을 실었다. 우주선에서도 보인다는 지구의 눈 바이칼 호를 향하여!(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