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병한 자연사상칼럼니스트 ©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
[노병한의 영혼산책]명절 전후를 통해 <조상공양=제사=차례>를 두고서 부모와 자식 세대 간에 갈등이 격화되는 현실을 이대로 방관 방치했다가는 미래의 사회문제로 크게 비화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우려일까?
<조상의 도움=음덕(蔭德)을 많이 받아 넉넉하고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일수록 명절에 조상에 대한 <차례=제사=조상공양>은커녕 모두들 비행기를 타고 휴양지로 떠나려고 공항 출국장에서 북적대는 인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TV뉴스를 접하는 현실에서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명절을 맞아 가족 친척들이 모이는 건 좋지만 솔직히 말해 제사를 언제까지 지내야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는 젊은 세대들의 솔직한 흉심, 매년 빠짐없이 정해진 음식을 준비하고 장만하는 데서 생기는 세대 간의 갈등은 물론 제사상에 음식을 놓는 위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빚는 갈등, 그래서 차라리 <제사=차례=조상공양>을 아주 간소화하거나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젊은 세대들이 매우 많이 증가했다는 점에서 이런 스피드로 진행된다면 과연 명절(名節)이란 용어 대신에 앞으로는 휴가절(休假節)이라는 용어로 퇴색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앞선다.
명절차례나 조상제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작지 않게 새어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체면이나 명분보다는 실리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명절차례나 조상제사를 간소화할 때도 됐다는 말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적인 계몽이나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결혼•장례•제사> 등과 관련된 간편한 문화예식을 <김영란•법>처럼 규격화해서 장려할 필요가 있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조상을 공경하고 섬겨야 한다는 조상공양(제사)의 전통을 거스르자는 건 아니지만 제사상에 올릴 요리를 이것저것 준비하다보면 ‘언제까지 이걸 해야 하나?’ 자괴감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서 ‘솔직히 말해 이젠 누구를 위한 과정인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며 푸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늘어났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나이가 드신 일가친척들께서는 <조상을 제대로 안 섬기는 놈이 잘 되는 꼴을 못 봤다>고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가문(家門)을 빛내는 게 조상을 섬기는 것이지, 꼭 제사를 통해서만 조상을 공경하고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은 않는다.>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음이 현실이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조상공양을 위한 명절차례와 제사문화의 전통이 크게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함의 이유는 상당수 젊은 세대들이 <눈에 보이는 실리도 없는 제사문화>를 꺼려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라면 머지않은 5~10년 이내에 조상공양에 대한 명절차례나 제사문화 그 자체가 사라지거나 아니면 극도로 간소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잘되면 제 탓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하지 말고> 조상관리기술을 터득해야만 건강하고 성공할 수 있다면 누가 믿으려 들까? 한마디로 <조상분석과 조상관리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살아생전에 <삶의 장애물제거>를 위해서라고 할 것이다.
올 한해의 운수가 좋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올 한해의 운발(運發)을 높이는 방법들을 알고는 계시나요? 아니 모른다고요? 운발(運發)을 높이는 방법도 모르고 또 배우려고도 하지 않고 더불어 실천도 안하면서 감나무에서 홍시가 떨어지기만 기다리시나요? 운수가 좋으려면 또 운발을 높이려면 이제부터 ‘조상 탓 그만하고 <조상분석과 조상관리의 기술>을 배워서 실천하면 운발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 속담에 ‘잘되면 제 탓…잘못되면 모두 다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이게 틀린 말일까? 정확히 맞는 말일까? 그리고 <죽은 조상들의 저승의 삶>이 <살아 있는 자손들의 이승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쉽게 받아드리기 매우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육신(肉身)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조직된 사람은 ❶ 천지의 음양이 합쳐져 정기(精氣)를 이루고 ❷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혼백(魂魄)을 이루며 ❸ 오행(五行)이 생성되고 기(氣)가 모여 형체(形體)을 이룸으로써 ❹ 엄마의 뱃속에서 246일~280여일 사이 안팎을 자라서 나올 때가 돼야만 이 세상에 태어나 나올 수 있음과 같이 <생(生)의 절차>가 있듯이, 또한 <생(生)•노(老)•병(炳)•사(死)>를 다하여 다시 가야하는 <죽음(死)의 절차>도 있음이다.
그런데 불경에 <중생들은 어찌하여 살 준비만하고 죽을 준비를 하지 않을까>라는 기록이 있다. 바꿔 말해 사람들은 <사는 데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고 죽음에 대한 것은 도통 무신경하다>는 점에 대한 경계인 것이다. 삶의 여정이 다되어 때가 되면 누구나 가야하고 선업(善業)이든 악업(惡業)이든 자기가 지은 업장(業障)들을 몽땅 다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곳이 바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어서 가는 저승길이다.
그런데 죽어서 고급영계(靈界)로 가기 위해서는 착한 일을 해 선업도 닦고 쌓으며 깨달음의 공부도 열심히 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서 죽은 후에 후회한들 이미 버스는 떠났고 때는 늦는 일이다. 죽을 준비를 잘하고 죽어야만 저승길도 편하고 살아있는 후손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살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래서 지혜롭고 현명한 선지자들은 살아생전에 죽을 준비를 미리서 철저히 하는 게 아닐까싶다.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행실이 불량한 <개망나니>를 일컬어서 <짐승만도 못 한 놈>이라든지 <사람 같지도 않은 놈>이라든지 욕을 하고 힐난을 해대곤 한다. 이처럼 사람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면 살아생전에서부터 좋지 못한 평가를 받게 됨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인지상정이 아닐까?
사람이 죽어서 가는 길인 사후(死後)에 악업만을 짊어지고 간다면 육도윤회의 환생과정에서도 결국 축생(畜生)으로 태어나는 길 외에 별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미물(微物)로 다시 환생해 태어난들 무슨 힘이 있겠으며 축생(畜生)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그 고통이야말로 또 얼마나 크겠는가 말이다.
그러하기에 조상신의 업장이 깊고 두터울 경우에는 자손들이 해당 조상영가의 천도를 제아무리 여러 번 해줘도 망자(亡者)의 무거운 업장으로 인해서 해탈(解脫)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니 이 어찌 가엾지 아니한가 말이다. 이럴 때에는 자손들이 포기하지 말고 해당 조상영가의 업장(業障)의 소멸을 지속적으로 계속해주어야만 두꺼운 업장이 얇아지고 소멸의 가능성을 높일 수가 있음인 것이다.
집안의 선대 조상•령들께서 업장이 소멸되어 해탈을 얻게 되면 이승에서 살아가는 자손들의 업장도 자연적으로 풀리게 되므로 <죽음을 준비하는 일들> 중에서 <조상업장소멸>이 가장 소중한 준비가 된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어느 곳으로 갈 것인지 정해지지 않아 기다리는 49일이라는 중음기(中陰期)에 업장을 소멸시키고 어두 캄캄한 곳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드리기 위하여 <7재(齋)의 49재(齋)>나 <10재(齋)의 77재(齋)>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이승에서 살면서 잘못을 해놓고도 다 잊어버렸던 것들이 사후의 저승길에서는 낱낱이 몽땅 다 드러나고야 만다. 남이 안 볼 때의 잘못이나 제아무리 작은 사소한 잘못이라도 그냥 대충 넘어가지 말고 항상 참회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준비를 해둬야만 저승길이 평안해진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의 영혼은 사후에 의식을 즉시 회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영혼은 대체적으로 임종(臨終)시에 의식을 잃고 영계로 이동한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 인사불성의 상태가 지속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경우는 수십 년 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중음기(中陰期)의 상태로 헤매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사후의 영혼들이 의식을 회복함에도 길고 짧음이라는 장단(長短)의 차이가 있음은 살아생전에 쌓인 업보에 따라 결정이 된다는 점도 알아야할 것이다.
죽은 이후에 영혼의 의식이 일단 회복되면 임종할 당시의 고통이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 된다. 예컨대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사고당시의 처참한 고통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고, 자살로 죽은 사람의 영혼은 자살할 때 그 순간 처참했던 고통이 다시 시작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영혼의 의식이 다시 회복되는 순간부터 <고통을 받으며 죽은 영혼은 죽음의 순간에 가지고 있었던 그 처절한 고통의 절규>가 구천을 헤매면서 이승에 살고 있는 <자손들과 친인척들에게 파장(波長)>되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됨으로써 자손들의 <일들이 방해를 받음>은 물론 <뜻하지 않는 질병과 사고>의 장애와 고통 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음이다.
죽으면 누구나 가야할 영혼의 길은 언젠가는 너나할 것 없이 꼭 가야만 하고 거역할 수도 없는 정해진 저승길은 필수코스인 셈이다. 저승길은 짝도 동무도 없이 나 홀로 가야하는 나 홀로 영혼의 길인 셈이다. 결국은 내가 왔던 곳으로 말없이 가는 것이기에 즉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 한다.
집안의 어른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일단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해버리는지 모를 일이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생(生)과 사(死)를 하찮게 생각할 일이 결코 아니다. 한마디로 동일한 혈통의 조상과 자손 간에는 절대로 서로 벗어날 수 없는 상관관계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계(靈界)에서 자손들에게 보내오고 전해오는 <조상•령파(靈波)>의 파장을 제아무리 끓어보려고 한들 끊어지지 않는 상념(想念)의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아니다아니다 하고 소리 소리를 친다고 한들 조상이 없는 자손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조상•령파(靈波)>의 좋은 파장이 자손들에게 전파되어야만 자손들이 고통(苦痛) 없이 활기차고 윤택한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이렇게 조상이 있어 귀중한 생명을 이어받은 우리 후손들은 항상 조상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할 것이다.
매년 하는 조상제사(定食)나 명절에 차례(間食)를 지내드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손의 기본적인 도리일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승•영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조상신이 있다면 그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구제하여 드리는 것이 바로 자손의 역할 중 급선무다.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중천에서 고통을 받고 떠돌면서 행여나 자손들이 길을 닦아줄까 기다리다가 지치면 결국은 살아있는 자손들에게 들러붙고 빙의가 되어 <내 혼령이 이렇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듯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써가며 자손들에게 괴롭힘을 주는 것을 자손들이 알고나 있을까?
이렇게 살아 있는 자손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갖가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니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음이다.그래서 철저한 <조상분석과 조상관리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라 할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도 모르는 채 되풀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문제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런 근원을 찾기 위해 가계를 따라 <부모•조부모•증조부모•고조부모•현고조부모•래고조부모> 등의 역사로 올라가 세세히 추적을 해보면 알 수가 있다.
예컨대 가족은 몇 대에 걸쳐 그 집안의 분위기와 정서•상처까지도 함께 물려받기 마련이다. 조상의 죄나 잘못 때문에 후손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조상대에 풀리지 못한 문제들이 <집단양심•무의식> 등을 통하여 동일시 현상으로 나타나서 후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일종의 <내림> <집안내림>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nbh1010@naver.com
□글/노병한〈박사/자연사상칼럼니스트/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