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봄은 혼돈이다. 봄에는 미친 바람이 분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를 녹이고 메마른 땅을 적시기 위하여 물기 머금은 바람이 질정 없이 불어댄다. 이 바람은 한반도에만 부는 것이 아니다. 미시시피강 연안에도 불고 포토맥 강변에도 분다.사하라사막과 고비사막에도 분다.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미친 듯 봄바람이 불어대면 겨우내 죽은 듯 엎드려 있던 미생물들이 슬금슬금 활동을 시작한다. 멀리 중국 대륙에서 날아온 황사가 하늘을 뒤덮어 맑은 날도 별로 없다. 이런 봄을 누가 계절의 여왕이라 했는가?
그러나 눈을 발 아래로 돌리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지금 당장 쪼그리고 앉아 우리가 밟고 있는 흙 한 줌을 손에 쥐어보라. 그것이 바로 우주의 무게이다. 생명을 소우주로 표현하는 말은 옳다. 생명은 곧 우주다. 그 생명이 우리가 쥐고 있는 한 줌의 흙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들어 있다.
흙 속에 숨어 있던 생명들은 봄바람과 봄비가 대지를 흔들어 깨우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다. 어디에 그 많은 풀씨가 숨어 있었을까? 어떤 불가사의한 힘이 죽은 불씨에 생명을 주어 대지 밖으로 밀어내는가? 흙 한 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과 죽음의 순환이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누가 생사를 묻는가? 누가 생사의 비밀을 찾으려고 헛되이 평생을 탕진하는가? 발 아래 흙 한 줌만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다 훤히 보이는 것을. 그래서 나는 봄의 대지에 외경을 느낀다.
그렇더라도 봄날 들녘에 서서 흙 한 줌을 쥐고 들여다보며 '아, 생명이여, 놀라운 신비여!' 감상에 젖는 사람은 덜떨어진 인간이다. 농부는 그런 감상에 젖지 않는다. 자연의 순환을 몸과 마음으로 알고 있는 농부는 겨울에도 봄 속에 살고 봄에는 가을을 품으며, 무성한 여름에 황량한 겨울을 준비한다. 그러므로 농부는 그 자신이 흙의 일부로 산다. 농부는 삶이 무엇이며 죽음이 무엇인가 하는 어리석은 질문 따위는 하지 않는다.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운행되며 어떻게 소멸할 것인가 따위로 골머리를 썩이지도 않는다. 그 자신이 곧 우주의 일부이고, 일부는 곧 전체이기 때문이다.
![]() ▲ 김정기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봄을 기다린다. 수많은 씨앗이 대지에 떨어져 숨어 있지만 그 중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 일부 중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들은 더욱 귀하다. 인생의 주기를 길게 팔십 년으로 잡는다면 우리가 익숙하게 경험하는 자연의 주기는 일 년이다. 봄에서 겨울까지 그 짪은 시간 속에 인생과 우주의 모든 것이 축소되어 다 들어 있다. 더 이상 어떤 책을 보아야 삶을 알 수 있다는 것인가. 더 이상 어떤 스승에게 도를 물으러 갈 것인가. 흙에서 묻고 흙에서 배우면 된다. 우리가 곧 흙이므로.
어느 날 나는 북한산에 올랐다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낙랑장송의 그루터기에 기대앉아 땀을 가시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릴 만한 흙이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소나무는 인근의 다른 소나무들을 제압하면서 짙푸른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자연이 시련을 주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라는 것을.
이제 나는 봄날의 혼돈이 즐겁다. 혼돈 속에는 어김없이 샘명이 약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나처럼 거친 바위틈에 던져진 씨앗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거친 바위틈에 내던져진 씨앗이라고 원망하는 사람들은 가까운 산에 올라 흙 한 줌을 쥐고 우주의 무게를 느껴볼 일이다.
*필자/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