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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전도사' 이명박 간도되찾기 나설까?

국회에서 잠자는 옛 영토 반환 100년 프로젝트 진실은‥

김경탁 기자 | 기사입력 2008/01/04 [16:11]
 
▲지난해 9월4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간도의 날' 선포 2주년 행사. 이날 행사에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김원웅 국회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도 참석해 자리를 함께 했다.

우리 민족의 잊혀진 북방영토 '간도'에 대해 정치권에서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온 사람의 하나로 꼽히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12월19일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차기정부에서 간도 문제가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1987년 tv에 출연해 간도의 영토 주권을 역설하는 강연을 하고, 중국과의 고구려사 논쟁이 불거졌던 2004년에는 현직 서울시장으로서 '간도 고토 회복 운동'에 나서는 등 정치권에서 간도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은 열성을 보여온 사람으로 꼽힌다.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대선을 1주일 앞둔 지난해 12월11일 서울 을지로 3가에 있는 북방민족나눔협의회 간도되찾기운동본부 사무실에서 육락현 대표를 만나 '간도 되찾기 운동'의 현 주소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중국 눈치만 보던 정부, 정책 변화 있을까?

인터뷰 / 육락현 간도되찾기운동본부 대표

▲육락현 간도되찾기운동본부 대표
육락현 간도되찾기운동본부 대표는 <사건의내막> 최근호에 보도된 "21개월 지나면 간도는 중국 땅"(일명 '시효 100년'설)이라는 주장이 사실은 '움직일 수 없이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청일간도협약의 근거였던 을사보호조약 자체가 무효이고, 시효에 대해서도 여러 이론이 있기 때문에 1909년 간도협약으로 간도에 대한 청나라(현 중국)의 간도 영유가 공식화된 이후 100년이 지난다고 해서 상황 자체는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이 육 대표의 지적.

육 대표에 따르면 '시효 100년'설이 처음 제기된 것은 1997년 백산학회 창립 31주년 기념 토론회로, 당시 학회 차원에서 간도 문제를 이슈화시키기 위해 퍼뜨린 이야기가 구전되면서 정설처럼 굳어져버렸는데 이제는 바로잡을 때가 됐다고 육락현 대표는 밝혔다.

※ 1966년 출범한 백산학회는 '간도학회'와 '간도되찾기운동본부'의 모태로, 지난 40여 년 동안 간도와 백두산정계비 등 국경 문제 연구에 주력해 오면서 학회지 '백산학보'를 통해 4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책·지도·논문 등 8000점이 넘는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2004년 9월 국회에서 처음으로 열린 간도역사 자료 전시회

육락현 "시효는 사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효 100년 설'은 이슈화 위해 우리가 꺼낸 것"

"다음 세대에 찾을 근거 쌓자"

당시 토론회에서 국제법 부문 토론자로 나온 김명기 천안대 석좌교수는 영토의 취득·소멸 시효와 관련해 30년설, 50년설, 100년설, 300년설 등이 있다고 소개했는데, '100년설'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견해도 있지만 시효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학설도 있다고 한다.

육락현 대표는 "시효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최대한 빨리 정부나 국회차원에서 간도문제에 대한 공식적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이 간도 땅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놔두면 자연히 중국 땅이 되어버린다"고 강조했다.

육 대표는 "우리가 지금 이야기를 하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당장은 못 찾더라도 다음 세대에서라도 찾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며, "독도의 경우 일본이 정기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장기적으로 사태를 바라보면서 국제법적 근거를 쌓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육락현 대표는 지난 2004년 두 차례(16대 국회 임기 말, 17대 국회 원 구성 직후)에 걸쳐 국회에 상정된 간도결의안이 아직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면서 "정치권은 관심이 없다기보다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정부·여당의 소극적 태도에 실망"

육 대표는 간도결의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간도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왔던 것으로 잘 알려진 김원웅 의원이 국제외교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여당 소속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점점 소극적인 자세로 변해왔다며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2004년 국회의원59명이 '간도협약 무효화 결의안'을 제출할 때 참여 의원 수가 59명에 그치게 된 배경에 당시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초대 원내대표로 선출된 천정배 의원이 연판장을 돌리는 등 적극적인 반대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육 대표는 말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천정배 원내대표는 "결의안이 현 시기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필요가 있고,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초점을 흐릴 수 있다"며 반대했고, 안영근 제1정조위원장도 "간도협약 무효 결의안이 열린우리당 의원들 중심이 돼서 서명이 추진되고 있고, 열린우리당의 당론인양 비춰질 수 있는 데, 오늘 회의에서 당론이 아님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날 육 대표는 "많은 국민들이 '찾지도 못하는 것 괜히 분란의 불씨만 일으키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고, 정부도 마찬가지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면서, 당시 신중하지만 소신 있는 발언을 했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현 un사무총장)에 대해 존경의 뜻을 밝혔다.

육 대표에 따르면 2004년 외교통상부 국정감사에서 간도 문제가 국감 주제로 채택되자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백산학회에 "간도에 대해 우리 외교부도 모르고, 국회의원들도 모르니 참고인을 보내달라"고 해서 국제법 교수를 보내줬다고 한다.

▲2004년 9월 국회에서 처음으로 열린 간도역사 자료 전시회

"반기문 전 장관 소신발언에 존경"

반 장관은 그 해 10월2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간도협약은 법리적인 측면에서 무효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고, 이에 앞서 8월23일 중국의 역사왜곡 논란 진화를 위해 방한한 무대위 중국 외교부 아시아담당 부부장이 "간도 영유권 주장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하자 "민간차원에서 하는 연구를 막을 수는 없다"고 대응한 바 있다.

물론 반 장관은 국감 당시 "법리적으로 무효라고 해서 간도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간도협약문제와 간도 영유권 문제는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반 장관은 "정부의 이러한 입장이 현재의 한-중 관계에 새로운 사안을 발생시킨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국제정세 현실은 우리가 간도문제를 외교적으로 제기하기가 어려움이 있어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 지를 고려해 접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육락현 "간도 결의안 국회에서 잠자는 중…천정배
원내대표 연판장 돌리면서 결의안 통과 적극 반대"

이와 관련 육락현  대표는 "외교 문제 등을 감안하면 정부·여당의 입장이 이해되는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1만3000여 개에 달하고, 재중동포가 200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육 대표는 "이것은 정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모양새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회가 국민의 여론에 떠밀려 처리하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 여론으로 국회 압력해야"
 
육 대표는 "간도 문제에 대해서는 강재섭 대표나 정형근 의원 등 한나라당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왔다"며, 특히 이명박 후보(현 당선자)가 이전부터 간도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온 점을 지적하고 이번 대선에 간도에 관심을 보이는 후보를 찍을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육 대표는 간도 문제에 접근하는 주류 학계의 시선이 고구려 및 발해사에 대한 연구에 한정되고 있는 분위기에 대해 강한 안타까움을 표하고, 본질적으로 불과 100년 전까지 계속됐던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국경분쟁사'라는 관점에서 간도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육 대표는 "국제법이나 역사·정치 연구자들 불러서 '동북공정이 간도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 남북 통일되면 간도문제 불거질까봐 그러는 거 아니냐'고 물으면 다들 동의하지만, 이를 널리 알리라고 하면 모두들 '개인적으로는 할 수 없다'고 물러섰다"고 회고했다. 간도학회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간도되찾기운동본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2004년 6월 경 경향신문 자매지 <뉴스메이커>에 간도에 대한 특집 기자가 나가고 난 후 한 시민이 찾아와서 "우리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달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단체의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간도'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걸면 외교부, 통일부, 교육부 어디에서도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고육지책으로 '북방민족나눔협의회'(외교통상부 등록단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는 것이 육 대표의 설명이었다.

'간도되찾기운동본부'는 매월 둘째 토요일 사무실(서울시 중구 을지로3가 334-2 청호빌딩 211호 전화:02-2267-2090)에서 정기 운영위원회 회의를 개최한다.

육락현 대표에 따르면 운영위원회의 공식 참가대상은 운영위원 및 본부장이지만 참가자격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참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간도되찾기운동본부'의 인터넷 홈페이지(www.gando.or.kr) 상단에는 "현재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미래도 결코 변할 수 없다"는 경구가 걸려있다. '바로 지금'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kt@breaknews.com




'간도'에 대한 아주 특별한 시선
이명박 "영토는 타협할 사안 아니다"

'간도'문제를 놓고 그동안 학계에서는 여러 반론들과 재반론이 진행되어왔다. 전문가들이 내놓는 반론의 핵심 논리들은 "감정적인 '간도 영유권 주장'이 현실성 여부를 떠나 국익에 해가될 것"이라는 우려로 요약된다.

중국의 패권적 제국주의를 감안할 때 섣부른 영유권 주장이 불행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들로, <사건의내막>은 간도에 대한 이러한 일반의 시각들과 차별성을 갖는 아주 특별한 시선 두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공교롭게도 이들 두 시선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번 2007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 명은 과반에 가까운 득표로 당선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이고, 또 한 명은 '새로운 진보'를 내걸었지만 0.1% 득표에 그친 금민 한국사회당 후보이다.

2004년 1월 <뉴스메이커>에 실린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인터뷰와 인터넷언론 <프로메테우스>에 같은 해 8월26일자로 실린 금민 당시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의 칼럼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이명박의 경우

<뉴스메이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명박 당선자가 간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0년대 후반 사업차 중국 동북 3성과 구소련 연해주 등을 드나들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이 당선자는 "간도가 역사적으로 누구의 영향력 아래 있는 땅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됐고, 역사학자를 만나고 tv에 출연하는 등 간도영토권에 관한 여론을 환기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이 당선자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 '남북 및 남남 갈등 확산'으로 이어져 개방화 시대에 대응을 어렵게 할 것이라며, 특히 정부의 소극적 대응에 대해 "정부는 정면 대결을 피하고 싶겠지만 역사와 영토는 타협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당선자는 특히 간도가 남북공동의 문제라며, "남한은 북한에 미루고 북한은 남한에 미룬다면 역사는 왜곡되고 영토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역사학계에서는 중국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간도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우리'인가?
금민 "최초의 '국민'에 대한 고찰 필요해"


금민의 경우

금민 후보는 <프로메테우스> 칼럼에서 고구려사 논쟁에 있어 중국의 주장은 고구려가 한족의 선조들이 세운 국가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화 제국'의 역사에 포함된 '변방사'라는 것이라며, 그 근거가 현재 중국인인 조선족의 존재에 있다고 지적했다.

금 후보는 '중화 제국'의 정체성에 대해 중국 헌법이 '다민족 국가'를 규정하고 있으며, 전문에서 청-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으로 연결되는 국가 계승관계가 강조된다며, 영토 문제에 있어서도 중국은 청조의 강역에 대해 계승자로서의 지배권을 주장한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의 경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계승을 규정한 헌법과 '최초의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규정이 없는 국적법의 '흠결' 때문에 1948년 12월20일 이전의 조선인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금 후보의 지적이다.

특히 북한 주민의 국적취득에 대한 대법원 판례의 근거인 헌법 제2조 영토조항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를 감안할 경우에도 고려인이나 조선족, 1905년에 멕시코로 송출된 노동 이민자 등의 경우 대한민국 국민일 수 없다고 금 후보는 지적했다.

금 후보는 고구려사 논란에서 한쪽은 중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역사의 일부로 보고, 다른 한쪽은 '한민족'이라는 종족사의 일부로 본다면, 논란을 바라보는 제3자는 전자에 대해 '중화 제국'을 소수 종족들의 감옥으로 만들고자 하는 역사 확장이라는 의심을 하게 될 것이며, 후자에 대해서는 그 지나치게 종족적인 집착에 대해서 의아해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 후보는 한국의 대응이 보편성을 띄기 위해서는 고구려사를 '국민국가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고 국사를 '국민사'로 이해해야 한다며, 종족사 관점에서 전개되는 고구려사 논쟁은 제3국 사람들에게 별로 설득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탁 기자
119@breaknews.com
2001년 9월 해운업계 전문지인 <한국해운신문>에서 조선업계 출입 및 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의 길을 시작했으며, 2005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브레이크뉴스+사건의내막 경제부에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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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게개 2008/01/04 [21:21] 수정 | 삭제
  • 지금 커나가는 애들을 특수교육을시켜..
    갸들이 똘똘하게 다 큰 다음이면 몰라도..

    정치것들은.. 맨날 잇권에만 눈이멀어.. 부패는그대로고..
    냄비것들은.. 맨날 옆전에만 눈이멀어.. 냄비는그대로고..

    일본분들 같았으면... 지금쯤 그곳에서 씨뿌리며 농사짓고 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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