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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의 작가 이기찬 한국무역협회 무역아카데미 교수. ©유장훈 기자 |
"진짜 정도경영을 한 재벌도 있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는 대우를 필두로 대봉, 율산, 제세 등과 같이 혜성처럼 나타나서 재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기업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기업을 상속받지 않고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단시일 내에 재벌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수출을 통해서 기업을 일으킨 후 다양한 업종의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사세를 확장했고, 젊음을 무기로 불가능에 도전했으며 진취적이고 패기 넘치는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초고속 성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비춰졌던 스포트라이트는 이미 오래 전에 꺼져버렸다.
그나마 대우는 이름이라도 남아있으나 나머지 기업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 중에 하나라도 살아남아서 삼성과 현대를 능가할 정도의 기업으로 성장했다면 우리나라의 경제는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 소설 <진실>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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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핵심 소재는 1970년대 재계의 신화로 아련히 잊혀져 가고 있는 율산그룹 이야기로, 이 교수가 처음 직장생활을 한 곳이 율산그룹의 모회사였던 율산실업이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현재 한국무역협회 무역아카데미와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기찬무역연구소'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무역업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아낌없는 충고를 전해주고 있다.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7월16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이 교수를 만나 소설 <진실>과 율산사태, 오퍼상 창업, 한국의 무역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이기찬 교수와의 일문일답
- '진실'이라는 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이고,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 대진사태의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하단 타이틀도 흥미롭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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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호 회장이 27살에 사업을 시작해서 3년 만에 종합상사가 되고 4년 만에 10대 재벌로 등극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면 굉장히 관심이 있어한다. 그 이야기를 계속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니까 간략하게 끊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는데 굉장히 아쉬워들 해서 소설로 써보게 됐다.
- 소설이 재밌기는 한데 결말이 너무 허무한 것 아닌가 싶다.
△ 멋있게 끝났으면 좋지만 그러면 거짓말이 되어버리고 진짜 소설이 되기에 사실적으로 쓰다보니 그렇게 됐다. 내용상 앞 부분에 정치적 배경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게 가기에는 좀 무리수가 있는 듯해서 처음 쓸 때부터 결말은 그렇게 가려고 했다.
이 책은 진짜 소설이라는 개념보다는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을 소설형식을 빌려서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완벽한 논픽션으로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나름대로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는데 전문적인 문장가가 아니다보니 어려움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전설적인 이야기이고, 요즘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인데, 그런 뒷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기에,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완전 실화로 만들어버리면…. 사실 책을 보고 결말이 허무하다고 했는데 실화는 더 허무하다. 어느 날 갑자기 그룹의 핵심 인사들이 검찰에 잡혀 들어가서 회사가 끝났다는 것이 실화이고 왜 율산이 걸려들었는지에 대한 뒷 이야기만 무성하다.
- 핵심 혐의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죄를 받지 않았나.
△ 주요 혐의에 외환관리법 위반이 있었고, 외환관리법을 위반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그때 무역하는 사람들 중에 외환관리법을 위반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며, 금융부채가 많았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인데 책에도 썼지만 부채가 더 많은 기업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율산이 왜 걸려들었는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와있는 것은 많지만 그것을 제가 추적해서 이거다 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좀 적절하지 않다 싶었기 때문에 실화에서 모티브만 따와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는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 외환관리법은 1960∼70년대 '외화를 많이 벌자'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였던 시대에 만들어진 법이라 무역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도 많이 있다.
△ 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잘못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 당시에 종합상사가 금융을 통해 자금을 많이 끌어들였는데, 무리하게 자금을 쓰다보니까 막지를 못한 것이다.
다 잘했는데 무조건 누명을 썼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실화로 썼다면 별 의미가 없고 공허한 이야기여서 미화하는 차원이 아닌 한도에서 픽션을 가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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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간의 해외도피생활을 마치고 지난 2005년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대우그룹의 몰락에 대해서도 여전히 뒷말이 무성하게 남아있다. |
△ 남들은 안 걸렸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같은 이야기인데, 대우도 그렇고 율산도 그렇고, 그밖에 제세, 대봉, 명성 등 그런 회사들이 많은데,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정법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자기 능력한도에서 자금을 썼으면 그렇게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제일 심한 경우가 국제상사이다. 그 양반은 진짜 정치적으로 당했다고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괘씸죄라고 한다. 대우나 율산의 경우 방만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국제상사와는 다른 케이스이다.
- 소설에서는 대진실업을 창업한 박성진 회장이 완전히 사라지는데, 율산그룹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신선호 회장이 납치된 적이 있더라.
△ 소설에서는 해외출장 중 이유와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실종이 된 것이고, 신 회장의 경우는 국내에서 청와대 비서실을 사칭하는 괴한들에게 납치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것이니까 사건자체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책에 나오는 박성진 회장은 가공의 인물이다. 실제 신선호 회장은 지금 살아 계시고, 최근에 완벽하지는 않아도 재기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책을 읽고, 그렇게 '정도'로만 간 재벌 회장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던데, 신선호 회장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박성진 회장에 관련된 묘사에 나타나는 세부적인 내용들은 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례들을 엮어놓은 것이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회사가 성장하는 가운데에도 회사의 돈과 자신의 돈은 별개라는 원칙으로 정작 본인은 소형 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던 재벌 회장이 실재했고, 세금을 100% 정확하게 내겠다는 원칙을 실천한 이야기도 실제 있는 사례를 가져온 것이다.
책에 나온 내용이 그냥 허무맹랑한 이야기같이 들릴 수 있겠지만 다 진짜로 있는 이야기들이고, 그런 사례들을 다 합친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으로 그런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 소설에서 두바이 취재를 갔던 화자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꾼 꿈은 감동적이었다.
△ 그 부분은 원고를 다 써놓고 마지막이 너무 허전해서 나중에 추가한 부분인데,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제 소설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세계최고가 된다는 이야기이지만, 그 양반의 책은 북한에서 핵무기를 개발해서 남한과 합작을 해서 일본을 쳐부순다는 개념으로 썼는데, 그 끝이 "그랬다면 어땠을까"하는 것이다. 아무리 소설이지만 "그랬다"고 쓸 수는 없는 것이니까.
- 여전히 재계에서 활동하는 율산그룹 출신 인사들이 많은데 연락을 하고 지내나.
△ 책에도 썼지만, 그때 저는 신입사원으로 들어가서 채 2년이 안 되는 시점에 회사가 쓰러졌기 때문에 연락을 하고 지내는 분은 거의 없다.
- 직장 생활은 언제까지 한 것인가. 율산에서 나오고 바로 창업을 한 것인가.
△ 율산에는 1977년에 들어가서 79년 망할 때까지 있었고, 그 다음에 현대그룹에 신입사원공채로 들어가서 79년부터 87년까지 현대건설에 근무했다. 종합상사를 지망했는데 당시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사우디 등 중동 쪽에서 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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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들에게 둘러싸여있는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정권에 의해 자행된 국제그룹 해체작업에 대해 1993년 헌법재판소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
△ 그때 같이 다녔다. 제가 있을 때가 정주영 회장, 이명박 사장이 있었고, 우리 부서장은 김윤규 부장(전 현대아산 부회장)이고 제가 과장이었다.
제가 최연소 과장이었는데, 맡은 것은 주로 해외업무였다. 통역하고 입찰서 작성하다보니까 계속 나가있어서 국내에서 가정생활을 못했고 그래서 나오게 됐다. 87년에 사표 내고 유선무역이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 홈페이지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을 때 처음 전화를 받은 분이 '유선무역입니다'라고 하던데, 직원은 몇 명인가.
△ 거기는 연락만 받아주는 곳이고, 유선무역은 회사 규모를 키웠다가 수입 판매하던 부문을 따로 독립시켰다. 지금 유선무역은 저 혼자서 하고 있다.
원래 사무실이 이쪽(서울 삼성동)에 있었는데, 용인으로 이사를 가면서 재택 근무를 하고 있다.
요즘은 코엑스 4층에 있는 무역아카데미에서 주로 활동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대구가톨릭대학교에 강의를 다니고 있다.
현재 유선무역이 하는 일은 중개무역 한 가지이다. 중계무역(intermediary trade)과 중개무역(merchandising trade)은 다른 개념인데, 중계무역은 자기가 물건을 사다가 파는 것이고 중개무역은 부동산중개소처럼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만 시켜주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은, 예를 들어 남미에 있는 원료를 동남아 지역에 팔아주고 커미션(중개수수료)을 받는 것이다. 제가 재택근무가 가능한 이유는 '중개무역'을 하기 때문이다.
왜 브라질 사람이 동남아 시장에 직접 진출하지 않고 나를 통해 비즈니스를 하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제가 취급하는 것은 굉장히 고가품이고, 남미에서 홍콩에 한번 다녀가려면 며칠이 걸린다. 그리고 남미와 동남아는 서로 생각이 달라 맞지 않고, 서로 믿지도 못한다.
- 인터넷의 중요성이 크겠다.
△ 요새는 인터넷으로 다 한다. 무역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외업체와 연락을 취하는 것인데, 무역을 안 해본 사람은 무역이 물건을 운송해주고 통관업무하고 보험처리하고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업무는 무역회사가 아니라 외부에서 해주는 것이다.
운송은 포워더가 해주고, 보험은 보험회사가, 통관은 관세사가 한다. 무역업체가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상담'이 핵심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상담하려면 샘플을 들고 나가야 했지만, 지금은 이메일로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주면 되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
- 인터넷은 속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는 맹점이 있지 않나.
△ 저도 처음에는 많이 다니고, 돈도 엄청 깨지고, 속고 그런 것이 있었다. 사실 책에서 대진실업이 대기업이 되기 직전까지 이야기는 거의 제 이야기를 약간만 비틀어서 다르게 쓴 것이다.
지금 거래하는 남미업체를 안 지는 거의 15년 정도 되는데, 제가 그나마 책 쓰고 강의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 중개무역은 별로 시간 걸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거래처도 다 정해져있고, 아침에 일어나서 메일 몇 통 보내면 끝이다. 물건은 현지에서 현지로 직접 실어서 보내면 되니까 서류작업을 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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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조금 과장하면 하루에 한 10분씩만 일해도 한 달에 몇 천 만원씩 버는 것이니까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그것처럼 좋은 직업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저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실 소설책을 쓴 또 한가지 이유는 제가 거기에서 끝내지 않고 재벌그룹이 됐다면 어땠을까, 이런 식으로 기업을 만들었다면 나라에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저의 꿈을 말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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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찬 한국무역협회 무역아카데미 교수. ©유장훈 기자 |
- '이기찬무역연구소'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 사이트에 들어와 보면 알겠지만, 무역연구소는 유형의 연구소가 아니라 상담해주고 칼럼을 올리는 개인홈페이지로, 단지 홈페이지 이름을 연구소라고 지은 것이다.
2002년에 <오퍼상이나 해볼까?>라는 책을 냈는데, 처음 책을 내게된 동기는 후배나 친구들이 자기도 오퍼상을 해보고 싶다고 자꾸 물어보기에 맨날 시간 내고 따로 만나서 같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보다 그동안 겪었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한 부씩 주는 것이 낫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이 경제경영 부문 베스트셀러 6위까지 올라가 버렸고 지금도 꾸준히 나가면서 한 20쇄 가까이 찍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출판사에서 계속 책을 내자고 해서 이번에 나온 소설 <진실>까지 8권 째 책을 내게 됐다.
책을 계속 내다보니까 강의도 나가게 됐는데, 문제는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은 사람들이 계속 개인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더 많아져 버렸다. 휴대폰으로, 이메일로, 무역에 대해서 계속 물어보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고, 1대1로 하다보니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는 것이 반복되어서 2003년경에 사이트를 하나 열게 된 것이었다.
2004년에 발간한 <세계를 향한 끝없는 도전>의 경우 일종의 자서전인데, 오퍼상 관련 책을 쓰다보니까 '무(無)'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바이어를 잡고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알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래서 창피하지만 내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겠다고 하면서 쓰게 됐다.
무역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할 만한 내용이지만, 별 대단한 결론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 책도 끝에 가면 허무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대단한 재벌그룹을 이룬 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인데, 그 과정을 간접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일등만 선호하고, 재벌만 각광받는 세상이지만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뤄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 사실 강의를 많이 나가고 책도 계속 쓰니까 이 친구가 무역이 잘 안 되니까 다른데 신경을 많이 쓰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한번은 홈페이지에 어떤 사람이 "당신 솔직히 무역에서 얼마 벌고, 강사료 얼마 받는지 밝힐 수 없냐"고 글을 올렸더라.(웃음)
사실 강사료는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돈과 비교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시간은 책 쓰고 강의하는 것이 훨씬 많이 들지만 수익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처음에는 재미도 있었지만 갈수록 사명감이 커졌다.
- 창업에 대해 예전에 비해 요즘 젊은이들이 더 부담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아무래도 옛날 사람들보다 모험정신이 없어지는 것은 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창업관련 책을 많이 냈지만, 창업을 하라고 부추긴 적은 없다.
첫 번째 책인 <오퍼상이나 해볼까?> 때문에 굉장히 오해받은 것이 제목만 보고 마치 '너도 한번 창업해봐라'는 식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더라. 하지만 책 내용은 '오퍼상이나 해볼까?'하는 식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정반대의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그런 제목을 쓴 것이다.
오퍼상뿐 아니라 뭐든지 간에 '한 번 해 볼까'하는 식으로는 절대 안되고 못한다. 창업이라는 것이 실제로 해보면 진짜 어렵다. '나는 이거 아니면 살 길이 없다. 이걸로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해야한다.
그래서 요새는 창업특강을 하면 꼭 "웬만하면 하지 말아라"고 말한다. 자신이 의지력도 있어야 하고, 시간을 길게 보고 시작해야 한다. 창업하고 1년 후에 얼마 벌고, 2년 후에 얼마 벌고 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백전백패이다.
일단은 '이 업에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으로, 의사나 변호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도 싫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의지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외국어도 잘 하고, 외국인을 잘 상대할 줄도 알아야 하지 의욕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 책도 그런 식으로 쓴 것이다.
- 5년쯤 전에는 무슨무슨 전문 쇼핑몰로 얼마를 벌었다는 류의 이야기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쇼핑몰 창업이 유행을 타기도 했다.
△ 관련된 창업 책도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다 들어갔다. 어떤 업종을 막론하고 창업해서 10년 이상 살아남는다는 것이, 아니 5년 이상 버틴다는 것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 일부의 잘된 사람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는 좋은 것인데, 어떤 능력이나 의지를 모두 감안해서 판단하지 않고 막연한 생각으로 해서는 백전백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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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은 좋다. 2000년 1월1일자로 무역업, 무역대리업 등 무역관련산업이 완전 자유화되었다. 지금은 사업자등록만 하면 아무나 할 수가 있다. 그전에는 무역을 하려면 허가제, 등록제, 신고제가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나 하는 것이다.
그냥 하면 되는데 문제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조를 겸하는 것도 무역의 범위에 넣을 수 있으나 순수한 무역은 남의 물건을 사다가 파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사다가 수출할 만한 물건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수출할 물건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 전부 대기업 제품이다. 이것은 내가 아무리 바이어에게 주문을 받아와도 거기에서 주지 않는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직접 하면 되고, 중소기업 제품은 인건비 때문에 경쟁력이 없다.
순수한 무역회사가 살아남으려면 글로벌영역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외국의 물건을 사다가 팔거나, 제조업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면 상품을 기획해서 외국공장에 하청을 줘서 만들어 파는 식이다.
- 예전에 곰인형으로 미국 시장을 재패한 양지실업 정석주 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이제 국내에서 제조업 창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 이제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은 힘들다. 제조업자 대부분은 본사를 한국에 두더라도 제조공장은 외국에 둔다. 자본이 뒷받침되면 현지에 공장을 짓는 것이고 그게 안 되는 일반적인 중소기업은 원자재를 보내주고, 인건비가 싼 거기서 마감해주는 식으로 위탁가공을 한다.
선진국이 될수록 무역이나 금융 같은 서비스업으로 가게 마련이고, 글로벌 시대니까 국경이 없어지기 때문에 꼭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서 외국에 파는 것만 수출이 아니다. 이제 전세계 어디서나 만들어서 팔면 수출이 되기에 중계무역이나 위탁가공을 해도 된다.
- 무역업을 하는 입장에서 최근의 환율 급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 그 문제는 단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수출업자들은 환율이 올라가면 좋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수출품 만들려면 어차피 수입한 원자재를 써야하기 때문에 비중을 따져봐야 한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를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 기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환율이 오르내리는 것보다 정부개입에 의해 지나치게 급변동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하더라.
△ 그렇다. 안정적으로 가는 것이 좋지, 급변동하는 것은 큰일이다. 요새는 수출용 가격표를 만들 때 원가계산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 깎고 올리고 해봐야 환율이 오르고 내리면 그보다 더 많이 변하니까 의미가 없어진다. 여기에 대비하는 방법이 환변동 보험에 드는 것인데, 이것도 내려가면 보호를 받지만 올라가면 돈을 더 내야하니까 문제가 많다.
- 연초에 달러당 환율이 900원대 초반으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해서 대비를 했던 기업들이 예상외로 1000원대 이상으로 올라가 버리면서 대비했던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도 많다.
△ 어떻게 보면 기업들이 손해를 봤다고 볼 수는 없다. 옆집에서 환차익 보는 것을 얻지 못하니까 비교해보면 손해로 보일 수는 있지만 말 그대로 손해는 아니다.
-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나 사회정치적 격변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 많았고,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집회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이런 정치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 저는 이메일로 매일 외국에 있는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받는데, 정치적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홍수가 크게 났다거나 하는 등의 일이 있으면 서로 안부를 묻지만, 정치적인 이야기는 일부러 피하기도 하고, 저 같은 경우는 뭐 거의 영향 받은 일이 없다.
취재 / 김경탁 기자 kt@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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