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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살아가기에 너무 힘든 곳일까. 아니면 지금 사람들이 사는 데 지친 것일까. ‘대중의 별’로 불리던 서울대 출신의 유명 탤런트 안재환이 사채 빚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뉴스가 또다시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안재환 자살’ 소식은 그렇잖아도 고유가와 물가고로 시름하며 막다른 길목으로 내몰리는 서민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절박하고 막막한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안재환의 죽음을 전하는 언론보도와 이를 접하는 시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세상은 참 요지경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혀를 끌끌 차고 있다. 고단한 삶에서 최후로 선택해야 했던 비극이 누군가에겐 일회성 가십거리밖에 안 된다는 이 모순 때문에 자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알면 자살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은 웰다잉 안내서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오진탁 지음·세종서적 펴냄)의 주요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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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한 해 자살자 수는 얼마나 될까?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7년 국내 자살 사망자수는 1만2174명으로 하루 평균 34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구 10만명당 24.8명꼴로 10년 전 13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9월9일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국내자살 실태 및 국제 자료비교’에 따르면 지난해 1만2174명이 자살로 사망했으며 2006년(1만688명)에 비해 11.6% 증가했다.
2006년 한 해 동안 한국의 자살자 수는 1만688명으로, 하루 평균 2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5년에는 그 수가 더 많아 전체 1만2047명, 하루 33명꼴에 이른다.
통계 속의 자살
인구 10만명당 자살로 계산하면 각각 23명(2006), 26.1명(2005)에 이르는 높은 수치다. 자살률이 충격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하던 외환위기 직후가 19.9명(1998)이었으니 현재의 자살률이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할 수 있다.
자살 사망자수가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는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2002년 이미 교통사고 사망률(19.13명)을 앞질렀다. 게다가 자살은 수년째 20대와 30대의 사망원인 1위로 나타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한국의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 가운데 최고라는 사실이다. 자살률이 높은 나라라면 먼저 북유럽, 일본 등 잘사는 선진국들을 꼽던 우리들의 상식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지난 2003년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4명으로,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헝가리(22.6명), 일본(20.3명)을 제친 지 오래다. 한국은 이제 자살률 세계 최상위의 고위험도 국가가 되었다. 결코 자랑할 수 없는 1위인 셈이다.
게다가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06년 자살자 수는 전체 1만2968명, 하루 35.5명꼴로 통계청 수치보다 훨씬 높은 자살률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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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한림대 철학과 교수이면서 생사학(生死學)연구소장을 겸하고 있는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의 지은이 오진탁 교수는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면, 언론은 단지 일회성 보도에 그치지 말아야 하며, 정부 당국 역시 구호성 정책 나열에 그치지 말고 무엇보다 먼저 정확한 자살자 통계자료부터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 교수는 또한 “통계청과 경찰청의 자살자 통계 문제를 보완하는 노력에서부터 자살 예방의 첫걸음은 시작된다”면서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없는 상태에서는 자살 예방의 의지가 있는지조자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왜 사람들은 자살을 택할까
자살은 자기 자신의 의지로 자기 목숨을 끊는 행위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고 있는 자살 현상은 ‘자기 자신의 의지’라는 수식어를 붙이기가 민망할 정도로 사회적 혐의가 짙은 느낌이다.
굳이 통계수치를 인용하지 않아도, 매일 저녁 뉴스에 거의 단골처럼 빠지지 않는 자살 소식만으로도 우리는 자살 문제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요, 발등에 떨어진 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사람들은 왜 자살하는 것일까? 지난 10년 간 한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재 우리 사회의 자살은 연령과 계층, 성별을 가리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서 무차별적으로,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초등학생까지 자살하는 마당이니 더 이상 말할 게 없다. 지나친 학습부담으로 인한 중고생과 재수생의 자살이라든가 인터넷 사이트의 공개적인 유혹, 경기침체 장기화로 인한 자살, 실직과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그리고 외로운 독거노인의 자살 등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오진탁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자살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는 사회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되는 자살이요, 둘째는 개인적 원인에서 비롯되는 자살이 그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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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이유로 인한 자살
불황의 장기화와 양극화, 그에 따른 실업률 증가, 그리고 최근 유가 급등과 살인 물가고 등 사회 분위기가 말할 수 없이 침체된 요즘, 우리 사회의 자살은 개인 차원의 일시적 문제로만 볼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기실 자살은 그 자체로 사회병리적 현상이므로 개인의 불행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들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쳐 자살에까지 이르는 동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자살의 원인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일시적인 미봉책으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순이 총체적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회구조적 모순은 ‘자살 도미노 현상’이라는 달갑지 않은 형태로까지 표출되고 있다.
먼저 물질만능주의가 빚어낸 어이없는 자살 사례들은 우리 사회가 갈수록 ‘돈의 노예’가 되고 있는 현상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카드빚을 갚지 못해 아까운 청춘을 스스로 저버린 어느 여대생의 자살사건이라든가, 잘못된 ‘10억 만들기’ 열풍이 빚어낸 아버지와 딸의 자살 행각, 거액의 재산 때문에 자녀들의 불화가 끊이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느 할머니의 안타가운 죽음 등은 모두 물질만능주의가 사람들을 얼마나 잘못된 길로 내모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그와 결부된 출세주의는 성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잘못된 풍조는 청소년들에게서는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인격적 성장과 지적 성취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점수 따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에만 온통 학업 목표가 쏠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업의 실패는 곧 인생의 실패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은 주로 청소년층에서 발생해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사태로 번지고 있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이력서 한 장이 젊은이 미래의 상당 부분을 좌우하고 있는 한, ‘인생은 고등학교 성적순’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은 계속 좀먹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구조적 병리현상은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의 자살만 부르는 것이 아니다. 사회안전망 부재로 인한 독거노인들의 자살과 생계비관형 자살도 심각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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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망 부재로 인한 자살은 노인층 외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0개월치 전기료를 내지 못해 자살하고, 아이에게 먹일 분유값이 없어 자살에 이르는 가정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아직도 한국 사회가 국민복지 면에서 후진국형 국가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실례일 뿐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03년 인권보고서’에서 외환위기 이후 형성된 300만명이 넘는 빈곤층이 경기침체 장기화로 인해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생계형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취재/김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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