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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퇴근 후에 후배랑 소주를 마시고 밤 열시 쯤에 헤어졌다. 서대문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빈 자리가 금세 눈에 띄었다. 얼른 앉고 보니 모자를 쓴 사람 옆이었다. 그 순간 술 취한 할아버지가 내리면서 큰 소리로 횡설수설 하는 바람에 잠시 소란했다. 멀쩡한 할아버지인데 술 때문에 저러지 싶었다.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보고 한마디씩 했다. 나도 취기가 있어서 혹시라도 옆 사람에게 술 냄새 안 풍기려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에 있던 백발의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 아저씨도 모자를 쓰셨네? 나도 모자를 썼는데.... 얼마 전에 무슨 약을 먹었는데 그 뒤로 머리 위쪽이 다 빠졌어요.”
할머니는 마치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에게 말 하듯 자연스레 모자를 쓰고 있는 까닭을 내게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모자를 쓴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듯이 내 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말했다.
“저도 머리가 많이 빠져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할머니가 모자를 벗어보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모자를 확 벗어 할머니 앞으로 고개를 약간 숙여 머리 빠진 데를 주었다. 할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구, 아저씨도 머리가 많이 빠졌군요. 그러나 저처럼 밑둥에는 아직 많이 남아 있어 다행이네요.”
내 입에서 술 냄새가 날까 염려되어 할머니와 자연스레 대화를 하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2.
나 들으라고 할머니는 묻지도 않는 말을 이것저것 많이 했다. 이름은 정 아무개고, 나이는 일흔 둘이고, 집은 서초동에 있고, 뭘 어디에 납품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용산에 사무실이 있고, 천호동에 창고가 있는데, 지금 창고에 볼 일 보러 간다고 했다. 이 늦은 시각까지 일을 하는 것은 돈이 생기기 때문이라 했다. 이 늦은 시각까지 일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차림새나 말하는 뽄세로 봐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당당한 할머니 같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동무들은 다들 노인정이나 꽁짜 여행 다니면서 소일을 하는데, 나는 그딴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아요. 가요교실에 가서 노래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맨날 하는 것은 노래가 아니예요. 골프도 내 체질에 맞지 않아요. 나는 그 동안 해온 내 일을 땀 흘리며 열심히 하는 것이 밥맛도 좋고, 즐겁고, 마음도 편해요. 참, 아저씨는 무슨 일 하세요?”
할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시인이라 할까? 한글기계화연구가라고 할까? 아동문학가라고 할까? 글자꼴연구가라고 할까? 학생들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할까? 명상수련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까? 신문사 다니는 사람이라고 할까? 섹스연구가라고 할까?
우리 애들이 어릴 때 나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아빠가 뭘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말할까요?”
그럴 때 나도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직업을 한 단어로 규정을 지을 수 있지 싶은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 단어로 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냥 네 편리한 대로 말해. ”
할머니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뭣 하는 사람인지 정말 궁금한 사람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내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작가입니다”
작가라니! 나는 작가가 아니다. 그 동안 책은 여러 권 냈지만 남에게 자랑할 만 한 변변한 작품이 없다. 거기다가 한국문단에서 받은 내 면허증은 시인이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표는 시인이다. 물론 시집도 변변한 것이 없다. 미당 서 정주 선생 추천으로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한 이후로 삼 십 여 년 간 시집 한권 낸 적이 없는 시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단에서 미아가 된 이름 없는 시인, 개점은 해놓고 삼 십 여 년 째 휴업한 시인이다. 그래도 남 앞에서 시인으로 소개 받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그렇다면 당당하게 시인이라고 할 것이지 난데없이 작가는 웬 작가? 무슨 얼어 죽을 작가?
3.
내가 작가라는 말에 할머니의 눈빛이 문학소녀처럼 반짝였다.
“명함 한 장 주세요”
이제 나는 임자를 만난 것이다. 물러 설 수가 없다. 내 지갑에는 두 가지 명함이 있다. 하나는 평소에 쓰던 시인 명함이 있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신문사에서 찍어준 신문사 주필 명함이 있다. 만만찮은 상대 앞에서 발가벗는 기분으로 평소에 쓰던 시인 명함을 주었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받아서 핸드백에 넣었다.
“돋보기를 안 가져와서 이거 참... 내일 밝은 날에 자세히 봐야지. 그런데 좌우지만 영광입니다. 작가 선생님.”
나는 입을 굳게 다문채로 멋쩍게 씩 웃었다.
할머니는 뜻밖의 말을 했다. 할머니는 한 달에 한 번 씩 자원봉사를 해 왔다고 한다. 할머니가 한 자원봉사는 내가 평소에 생각해온 것과는 사뭇 달랐다. 책을 백 권 쯤 사서 선물한다고 했다. 지난 달은 카네기가 쓴 책을 선물했고, 그 전 달은 톨스토이 인생론을 선물했다면서 선물한 책 제목을 줄줄이 읊어댔다. 그 순간 나는 약간 긴장했다. 뜻하지 않은 시각, 뜻밖의 장소에서 만만치 않은 선수를 만난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옷깃을 여미고는 내 입에서 술 냄새가 나지 않게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작가 선생님이 쓴 책이 있으면 한 권 추천해 주세요. 제가 사서 한권 읽어 보고, 마음에 들면 다음 달에 봉사 활동 할 때 백권을 사서 선물하게요.”
나는 난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작가라고 하지 말고, 신문사 다닌다고 소개할 걸 하고 후회했다. 할머니는 집요했다. 내가 쓴 책 제목이 뭐냐, 무슨 책들을 썼냐, 별별 것을 다 물었다. 그러면서 내가 작가라는 말에 반신반의 하는 것 같았다. 차 안에서 책 제목을 말해준다는 것도 말로 내 대표작을 설명한다는 것도 적절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가방을 열고 노트북을 꺼냈다. 할머니는 나의 동작이 뜻밖이고 신기한 모양이었다. 노트북에 무선 모뎀을 꽂고 전원을 켰다. 이날 따라 첫 화면이 빨리 뜨지 않았다. 그 순간 차내에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번에 내릴 역은 장안평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4.
아까 나는 장안평역에 내린다고 말했기에 할머니가 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난감했다. 그래서 나는 “장안평역에 잠깐 내려서 벤치에서 내 책 관련 자료를 마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는 뜻을 눈으로 말했다. 할머니는 내 눈을 정확히 읽었다. 할머니가 나를 따라 일어섰다. 나는 노트북 모니터를 연 체로 장안평역에 내렸다.
내린 그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첫 화면은 그새 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 홈페이지로 갈 것인가, 내 팬클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신문사 홈페이지로 갈 것인가를 망설이다가 네이버 검색창으로 가서 “지여처다”라고 쳤다. 그러자 얼마 전에 출간한 내책 “지여처다”에 대한 자료들이 줄줄이 떴다. 그 중에서 지난 주일에 브레이크뉴스와 저자 인터뷰한 기사를 찾아서 화면에 크게 띄웠다. 활짝 웃는 내 사진이 뜨자 할머니는 사진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화면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이 오빠가 옆에 있는 이 오빠와 동일인물인지 확인하는 듯 했다. 모자를 쓴 것이나 안경을 쓴 것으로 보아서 할머니는 금세 동일인물로 판정하였다.
“와, 아주 유명한 작가님이시군요. 내일 당장 한 권을 주문해서 내가 읽고 마음에 들면 백권을 사서 선물하겠습니다.”
나는 대답대신 빙그레 웃었다. 그때 다음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벌떡 일어서서 역구내로 들어오는 차가 멎기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자 잽싸게 탔다. 나는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절을 하면서 말했다.
“정 선생님, 잘 가십시오”
할머니는 차 안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시야에서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2008. 9.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