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이 오면 인체에 내장된 생체시계는 분주해진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인체에도 여러 변화가 일어난다. 인체의 온도계 역할을 하는 뇌의 시상하부와 그 밖의 조절 기관이 새로운 계절에 맞춰 호르몬 분비 수준을 재조정하는 등 화학적 조정 작용을 거쳐 인체를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우선 체온 유지를 위해 기초대사량이 증가한다. 이에 따라 열량 보관 창고인 체내 지방분의 사용이 증가하나 신체 활동 감소로 지방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또 기온의 하강과 건조함도 신체에 여러 증세를 동반한다. 독감, 기관지염 등 각종 호흡기 질환과 함께 심장병, 뇌졸중 등 혈관성 질환 발생률이 높아지며 건조한 날씨로 인한 피부 질환과 계절성 우울증 등이 발생하게 된다.
기온이 떨어지면 혈관은 수축 경직되고 혈압은 올라가며 혈액은 끈끈해진다. 요즘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성 기후로 변한다고 난리다. 9월 초만 해도 낮 최고기온이 30~35도를 웃돌았다. 그러나 이달 8일을 고비로 26~30도로 낮아졌다. 이 정도 기온 하강만으로도 인체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심장과 혈관계에서는 외부 기온이 낮아지면 피부를 통한 열 발산을 최소화하기 위해 땀을 적게 흘리게 되고 말초 혈관이 수축하여 피의 흐름을 방해한다.
따라서 여름에 비해 수축기혈압은 7㎜hg, 이완기 혈압 3㎜hg정도 올라가는 것이다.
특히 정상인보다도 고혈압 환자에게서 그리고 고령자일수록 실내외의 기온차에 따른 혈압의 변화가 심하게 나타난다. 보통 온도가 1도씩 내려갈 때마다 수축기 혈압은 1.3㎜hg, 이완기 혈압은 0.6㎜hg 올라간다.
또한 기온이 떨어지면 혈액이 진해지고 혈관수축이 촉진되는 등 혈압 상승과 더불어 동맥 경화증의 합병증도 더 자주 발생한다. 겨울철 아침은 그래서 위험하다. 아침에는 혈관 수축이 활발해져 혈압이 상승하는데 여기에 차가운 바깥 날씨를 만나면 심장발작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하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혈관 내피세포가 손상돼 있다.
손상된 세포 밑에는 콜레스테롤이 쌓이고 이것을 청소하기 위해 백혈구가 모여 포말 세포를 형성한다. 여기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 동맥 벽의 근육 세포가 분열하여 벽이 두꺼워지고 죽종을 형성한다. 죽종이 터지면 혈관 내 혈액이 엉겨서 혈전을 만든다. 완전히 커진 혈전 덩어리가 뇌나 심장의 큰 혈관을 막으면 그게 바로 돌연사다.
따라서 고지혈증 비만이거나 혈전 생성을 막으려고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사람은 가을이 오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사실 이런 사람은 일년 내내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환절기·혹서기·혹한기에는 이런 질환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아오는 환자가 더 증가하는 경향을 띤다.
최근에는 실내 생활 빈도가 크게 늘어나고, 온난방이 잘 되어 예전에 비해 심장 질환이나 뇌졸중의 계절적 특성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지난 7년간 가을철인 9~11월에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은 심근경색증, 협심증, 뇌졸중 환자는 겨울철인 12~2월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양상을 보였다. 그만큼 선선해 지기 시작하는 가을철도 쌀쌀한 겨울철 못지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부 역시 가을이 되면 공기가 건조해지고 기온차도 커지기 때문에 피부의 수축과 이완이 심해진다. 이로 인해 가을~겨울철이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거칠어진다.
건조하고 쌀쌀한 기후는 혈관뿐만 아니라 기도까지 수축시키고 예민하게 만든다. 더욱이 알레르기성이면 가을철의 잡초 꽃가루가 기관지를 자극하는 데다가 기온 하강을 직감하는 생체시계까지 가세해 자극을 증폭시킨다. 천식 환자가 늘어나는 게 이 때문이다.
천식이 심해질 수 있는 요인으로는 꽃가루 알레르기, 감기, 곰팡이균, 집먼지 진드기, 대기 오염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외적 요인이 큰 원인이다. 꽃가루 알레르기는 오히려 봄철보다 가을철이 더욱 심하며 증상은 감기와 비슷하다.
가을철에 날리는 꽃가루는 쑥 꽃가루, 풍매화 꽃가루, 돼지풀 꽃가루 등인데 1년 중 8월 말과 9월이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다. 꽃가루 알레르기의 경우는 알레르기 피부 반응 검사로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어 치료약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치료할 수 있다.
집먼지 진드기 또한 가을철이면 천식 환자를 많이 유발시키는데 집 안 먼지를 털어내고 실내 환기를 자주 하며 소파나 카펫 등을 깨끗이 하거나 없애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밖에 원인이 쉽게 규명되지 않는 천식을 막으려면 약물이나 방부제, 색소 등이 들어 있는 음식물을 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변화는 이뿐이 아니다. 햇빛이 줄어들게 되면 뇌 속에서 멜라토닌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의 분비가 줄어들며 신체 리듬이 깨어져 우울증이 유발된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멜라토닌 양이 줄어들더라도 일시적으로 우울한 마음이 드는 정도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울 증세가 심하게 나타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비만도 주의해야 한다. 비만한 사람이 체중을 5kg 정도 줄이면 수축기 혈압을 10㎜hg, 이완기 혈압은 5㎜hg 정도 떨어뜨릴 수 있고, 고혈압 약제에 대한 효과도 증가한다. 그런데 활동이 적은 겨울철에는 오히려 체중이 늘어나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을이 오면 퇴행성 관절염 때문에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가 는다. 여름철에는 높은 습도 때문에 둔중하고 불쾌한 정도의 통증을 느낀다면 가을에는 시리고 칼로 에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기온 하강 때문에 관절의 혈액 순환이 떨어지고 근육과 관절이 경직되기 때문이다. 늦가을, 겨울에 다가갈수록 운동량은 부족해지고 섭취 열량이 높아져 체중이 증가하는 것도 관절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또한 가을에는 먹을거리가 풍부한 탓에 혈중 콜레스테롤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많이 나와 있다. 여름철에 허해진 기를 보충하는 차원에서 본능적으로 많이 먹는 것인데 이게 혈액을 끈끈하게 만들고 비만을 부르는 원흉이다.
가을엔 모든 게 말라비틀어진다. 피부, 콧속, 안구, 구강 등 적절한 수분 또는 유분으로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야 할, 외부에 노출된 이들 기관이 마르면 문제가 생긴다. 가을에는 일사량이 여름보다 적지만 습도가 높고 대기 중 분진이 적어 오히려 여름보다 피부를 노화시키는 자외선이 더 많이 도달한다는 견해가 있다. 보습제와 영양 크림으로 적절한 수분과 유분을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
건조하면 코와 호흡기의 점막이 부어오르는데 이런 상태에서는 바이러스 침입이 쉬워져 감기에 걸리기 쉽다. 따라서 실내 습도를 50~60% 정도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코를 너무 자주 후벼 파는 것도 삼가야 한다. 안구건조증은 실내 습도 유지와 인공 눈물로 예방해야 한다.
건조한 몸을 어떻게 촉촉하게 적실 것인가. 우선 적절한 보습과 보온으로 습기와 열의 증발을 막는 게 필요하다. 유연성을 높이되 무리하지 않는 운동으로 혈액 순환을 촉진한다.
흡연은 구강, 인후, 기관지, 안구를 마르게 하므로 금연해야 한다. 이뇨를 촉진하는 카페인 음료나 체내 수분을 줄이는 각종 약물을 삼간다.
요즘 많은 이들이 맹물 대신 각종 건강 음료를 선호하나 이 중에는 수분 배출을 촉진하거나 신장이 과로하게 만드는 각종 단백질과 복잡한 유기 물질이 들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물 대신 녹차나 커피함유 음료를 입에 달고 사는 분들은 물은 물대로 차는 차대로 따로 마시는게 좋을 것이다. 특히 애주가는 술을 한 병 마셨다면 물은 두 병을 마셔야 알코올과 함께 빠져나간 수분을 벌충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둬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