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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대한항공, 유일 외국인 감독-사상 최고 황금기..프런트 '탁월한 선택'

외국인 감독 영입 '환상적 결실'.. 선진 배구, 임동혁 급성장, 사상최고 성적

김영국 기자 | 기사입력 2022/04/27 [16:54]

▲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왼쪽)과 임동혁 선수  © 한국배구연맹


명실공히 대한항공 프로배구 팀 역사상 최고 황금기가 도래했다. 2021-2022시즌 V리그 남자배구는 대한항공의 '2시즌 연속 통합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V리그에서 통합 우승은 한 시즌에 정규리그 1위(우승)와 포스트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모두 달성한 경우를 말한다.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하기도 여러운데, 2년 연속 통합 우승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는 기록으로도 증명된다. V리그 18시즌 역사에서 '2년 연속 이상 통합 우승'을 달성한 팀이 남녀 14개 팀 중 3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배구 삼상화재가 2011-2012, 2012-2013, 2013-2014시즌 3년 연속 통합 우승, 여자배구 흥국생명이 김연경 선수의 맹활약으로 2005-2006, 2006-2007시즌 2년 연속 통합을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이번에 대한항공이 2020-2021, 2021-2022시즌 2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일궈냈다. 이번 2년 연속 통합 우승도 8년 만에 나온 것이다.

 

대한항공(구단주 조원태) 팀 역사로 봐도 2년 연속 통합 우승은 창단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대한항공은 1986년 팀을 재창단한 이후 그 해 대통령배 대회부터 겨울 리그에 참가해 왔다. 그러나 2016-2017시즌 V리그까지 무려 31년 동안 단 한 번도 겨울 리그에서 최종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7-2018시즌에 팀 창단 후 32년 만에 최초로 겨울 리그인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당시에도 정규리그 우승은 실패했기 때문에 통합 우승은 아니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바로 외국인 감독이다. 대한항공의 2년 연속 통합 우승을 지휘한 사령탑이 모두 외국인 감독이었다. 더군다나 V리그 남녀 14개 팀 중 유일하게 외국인 감독이 이끄는 팀이었다. 현재도 유일하다.

 

대한항공 구단 프런트는 2020-2021시즌을 앞두고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외국인 감독인 이탈리아 출신의 산틸리(55세) 감독을 영입했다. 그리고 2021-2022시즌에도 핀란드 출신의 젊은 토미 틸리카이넨(34세) 감독을 영입했다. 

 

단순히 외국인 감독만 영입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코치까지 감독이 지명하는 외국인 코치를 세트로 영입했다. '외국인 감독과 외국인 코치'를 동시에 영입한 경우는 V리그 역사상 대한항공이 최초다. 감독이 소신껏 팀을 이끌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프로팀 감독은 결과로 증명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자리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항공의 외국인 감독 시대 2년은 과정과 결과 모두 팀 역사상 최고였다.

 

선수 구성이 좋으니 당연히 우승?.. 그렇지 못한 사례도 많다

 

일각에선 대한항공이 국내 선수 구성이 좋기 때문에 우승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이는 가당치 않은 '천만의 말씀'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당연한 건 없다. 팀에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많고 우승 후보로 꼽혔던 팀이 우승한 사례도 있지만, 우승도 못하고 오히려 망가진 사례도 부지기수로 많다. 해외 리그는 물론, 국내 V리그에서도 그런 사례는 이미 널려 있다.

 

팀이 우승을 하기 위해선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투지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각자 위치에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 방식, 선수 기용, 전술 등에서 감독의 역량과 리더십도 중요한 부분이다. 구단 프런트도 선수와 감독 영입시 수준 높은 안목, 충분한 재정적 지원 등으로 뒷받침을 잘 해줘야 한다. 여기에 팀 운도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한다. 선수 구성만 좋다고 당연히 우승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대한항공은 우승 조건 중에서 구단 프런트와 감독의 역할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팀이다.

 

대한항공 구단 프런트가 외국인 감독 영입을 결단한 이유는 간단했다. 팀 플레이를 유럽·남미식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한 스피드 배구'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배구가 대세인 유럽 감독에게 맡겨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선진 배구를 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훈련 방식부터 선수 육성 및 선수 기용 마인드까지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같지만, 국내 구단 프런트 입장에선 쉬운 결단은 아니다. 여전히 국내 남녀 프로배구 팀들은 구단 고위층이 컨트롤하기 까다로운 외국인 감독을 선택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에 배구계 일각에서 소위 밥그릇 뺐길까봐 반발하는 기류도 있다. 

 

국내 V리그에는 모든 팀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외국인 감독 영입으로 근본적인 혁신을 할 필요성이 있는 팀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최근 남녀 팀 중에서 외국인 감독 영입을 검토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대부분 구태의연한 국내 감독으로 되돌이표 행보를 보였다.

 

유일 외국인 감독-사상 최고 성적.. '구단 프런트 마인드'가 중요한 이유

 

대한항공의 외국인 감독 시대 2년은 배구 스타일 면에서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한 스피드 배구'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위기에 직면한 한국 남자배구에 바람직한 미래상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V리그 남자배구는 삼성화재 팀이 왕조로 군림하던 시절부터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는 몰빵 배구'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지금까지도 국내 남자배구 팀 감독 대부분이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몰빵 배구는 국내 선수의 기량 저하·도태로 이어졌고, 이는 한국 남자배구가 20년이 넘도록 올림픽 무대를 밟지도 못하고, 결국 남자배구 인기마저 암흑기로 만든 핵심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제대회 경쟁력 추락과 궤를 같이 하며, 프로 리그인 V리그 남자부 인기도 하향 추세가 뚜렷하다. 그러면서 3회 연속 올림픽 진출과 4강 신화 돌풍으로 프로야구를 위협할 정도로 인기가 치솟은 여자배구와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국내 남자배구 선수들의 능력 부족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국내 감독들이 스피드 배구·선진 배구와 동떨어진 몰빵 배구 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지도력 부족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

 

반면, 대한항공의 외국인 감독 시대 2년은 국내 선수 육성 부분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을 만하다.

 

대한항공의 2시즌 연속 통합 우승에는 임동혁(23·201cm)의 급성장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임동혁의 역할이 없었다면, 연속 통합 우승도 없었다. 이는 개인 기록, 팀 플레이 등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임동혁이 지난 2시즌 동안 외국인 선수 부진, 주 공격수인 정지석의 장기 공백 때 교체 멤버와 선발 주전으로 투입돼 다른 팀의 외국인 선수 못지않은 최고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대한항공이 급격한 추락 없이 정규리그 우승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특히 2021-2022시즌에는 임동혁의 맹활약이 없었다면, 정규리그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 진출도 장담할 수 없었다. 또한 임동혁의 성장이 있었기에 대한항공이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토털 배구와 스피드 배구도 가능했다. 

 

외국인 감독 최대 성과 '임동혁 급성장'.. 연속 통합 우승 '핵심 요인'

 

임동혁은 고교 시절부터 장신의 라이트 공격수로 큰 주목을 받았다. 남자배구 대표팀의 차세대 주 공격수로 성장해주길 바라는 배구계의 기대도 컸다. 그러나 국내 감독들이 이끌고 있는 V리그 무대에서는 예상대로 외국인 선수에 밀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임동혁의 급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인 감독을 만나면서 본격화됐다. 그만큼 국내 감독과 외국인 감독의 선수 육성과 기용 방식의 차이가 크다는 걸 증명해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임동혁은 지난 2017년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대한항공에 지명됐다. 사실 6순위로 뽑힌 것부터 아이러니했다. 대한항공에서도 국내 감독이 팀을 이끌었던 2017-2018시즌부터 2019-2020시즌까지 3년 동안 임동혁이 V리그에서 기록한 득점은 극히 미미했다. 2017-2018시즌에 20득점, 2018-2019시즌에 42득점, 2019-2020시즌에 49득점을 기록했다. '자연 도태'가 우려될 정도로 거의 기용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시즌 동안, 임동혁의 득점은 무려 10배가 넘게 급증했다. 기량도 당장 대표팀 라이트 주 공격수로 기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임동혁은 산틸리 감독이 이끌었던 2020-2021시즌에 506득점을 기록했다. 팀 내에서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던 정지석(632득점)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책임졌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이 이끈 2021-2022시즌에도 419득점을 기록했다. 팀 내에서 외국인 선수 링컨(659득점) 다음으로 높은 득점이었다. 국내 선수 중에서는 팀 내 최다 득점이다. 

 

임동혁의 이런 급성장은 외국인 감독들이 KOVO 컵부터 V리그까지 의도적이고 집중적인 육성과 출전 기회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임동혁을 대하는 마인드부터 국내 감독들과 차원이 달랐다. 외국인 감독들은 유럽·남미형 토털 배구와 스피드 배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장신의 라이트 공격수가 중요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외국인 감독들은 임동혁을 단순히 외국인 선수의 보조 역할이 아닌, 대등한 선수로 육성시켜 언제든지 빈 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임동혁 키우기'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대한항공의 외국인 감독 시대는 선진 배구 시스템을 도입해 팀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둔 점, 소리 없이 사라질 뻔했던 차세대 대표팀 라이트 공격수가 급성장한 것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외국인 감독 선임을 주도했던 구단 프런트의 핵심 인사들도 박수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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