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자르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2022 VNL 대회 © 국제배구연맹 |
여자배구 대표팀이 '2022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대회에서 12전 전패를 기록하며 최하위로 마감했다. 이 같은 결과는 대회 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
3회 연속 올림픽 진출과 2번의 올림픽 4강 신화를 일궈낸 황금 세대의 핵심인 김연경(34·192cm)을 비롯, 양효진(33·190cm), 김수지(35·188cm)까지 장신 트리오가 모두 대표팀에서 동반 은퇴했다.
세계 최고 완성형 공격수인 김연경이 빠진 것만으로도 엄청난 손실인데, 도쿄 올림픽 멤버 12명 중 무려 9명이 이번 VNL에 이런저런 이유로 빠졌다. 대신 젊은 선수들이 대거 발탁되면서 전혀 새로운 팀으로 '강제적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부상 선수도 속출했다.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럼에도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은 4일 SNS 글을 통해 "전혀 쉽지 않았고 많이 힘들었지만, 우리는 계속 노력하고 있고 서로를 믿고 신뢰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더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대표팀이 전패를 했지만, 여자배구 팬 사이트 등에서 팬들의 반응은 상당히 놀랍고 의외였다. 팬들은 전패한 세자르 대표팀 감독에게는 오히려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는 반면, 국내 감독들을 향해서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 단순히 외국인 감독에 대한 무조건 지지나 환상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세자르호, 막판 기대감 상승.. 배구팬, 국내 감독 불신 더 커져 '의외'
우선 대표팀이 대대적인 세대 교체를 선언한 만큼, 선진 배구 시스템을 차근차근 구축해야 하고, 이를 위해 외국인 감독이 필요하다는 방향성에 대한 공감을 꼽을 수 있다. 도쿄 올림픽 4강 신화를 만든 라바리니 감독의 성공 사례도 긍정의 자양분이다. 세자르 감독과 코칭스태프도 현존 세계 최강 클럽팀 소속이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우세한듯 보인다.
세자르호가 VNL 대회 후반부로 가면서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인 것도 팬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센터진의 경우 빠른 성장과 세대교체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고, 센터진의 속공·이동공격 활용 급증, 이한비(26·177cm)를 활용한 '리시빙 라이트' 카드로 라이트의 득점력과 전체적인 수비력까지 끌어올리는 새로운 면모를 선보였다. 그러면서 강호 이탈리아, 중국을 상대로 연속 세트를 따내며 선전했다.
이는 앞으로 다양한 공격 옵션과 발전된 경기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신호이다. 다음 훈련을 통해 배구 강국의 주요 특징인 파이프 공격(중앙 후위 시간차 공격) 활용도와 완성도까지 높아진다면, 세자르호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질 수 있다. 그것이 선진 배구이고, 세계 배구 추세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국내 감독들에 대한 불신·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사실 배구 전문가와 배구를 오래 지켜본 팬들 사이에선 '국내 감독들의 지도 스타일과 플레이 방식'에 대해 불신과 불만이 지속적으로 쌓여 왔다.
그런 인식들이 이번 VNL 대회 과정에서 더욱 거세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팬은 "V리그가 선수 아시아쿼터를 도입할 게 아니라, 외국인 감독 쿼터제 도입이 더 시급하다"고 힐난하기도 한다.
이들은 국내 감독들이 세계 배구 흐름과 동떨어진 구식 방식을 고집하면서 선수들의 국제대회 경쟁력이 현격하게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전 선수 위주로만 기용하면서 선수 발굴·육성 측면에서도 크게 뒤처졌다고 지적한다.
특히 V리그의 프로팀 감독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정확한 리시브만 강조하고, 외국인 선수 한 명의 공격력에 의존하는 '몰빵 배구'를 추구하면서 더욱 기름을 부었다. 국내 선수들의 공격 파워와 테크닉이 갈수록 하향 평준화되고, 몸놀림과 플레이 패턴도 배구 강국들과 비교해 더 느려졌다. 아울러 세계 배구의 핵심 무기로 떠오른 센터 속공과 이동공격, 파이프 공격 같은 다양한 공격 옵션을 구사할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하게 됐다.
선수들 '리그-국제대회 경기력' 너무 큰 격차... 전 세계 대한민국이 유일
이는 국내 프로 리그인 V리그의 질적 수준으로 직결됐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V리그에서 경기력과 국제대회에서 경기력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V리그와 대표팀이 플레이 스타일 등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선수들이 매번 처음부터 다시 적응해야 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많다. 서로 사용하는 공인구도 다르다.
그러다 보니 매년 V리그 종료 후 가장 먼저 열리는 VNL에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경기력이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유독 현저하게 떨어진다. 전 세계 배구 좀 한다는 국가 중에서 선수들이 리그와 대표팀에서 경기력 차이가 이렇게 큰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팀 훈련 기간이 누적되는 여름과 가을 국제대회에 가서야 그나마 안정세로 접어든다.
문제는 또 있다.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제아무리 선진 배구 스타일을 연마했다고 해도 V리그로 돌아가면 다시 몰빵 배구와 느린 배구로 전환돼 버린다. 그렇게 '도로아미타불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본질적 문제들을 싹 감춰둔 채, 국제경쟁력 하락을 운운하는 자체가 애당초 어불성설이다. 사실 국제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의 경쟁력은 선수들이 국내 V리그에서 평소 갈고닦은 기량의 연장선이자, 리그 수준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동안은 해외 리그에서 뛰는 세계 최고의 완성형 공격수가 한국 대표팀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V리그의 수준이 국제대회에서 그 민낯이 가려져 있었다. 그러다 이번 VNL에서 '김연경 없는 대표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는 V리그를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V리그 감독과 구단 프런트들도 대표팀 부진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연경 없는 대표팀' 추락.. V리그 외국인 몰빵 민낯 드러난 '거울'
현재 배구 강국들은 장신화, 공격 파워와 빠르기, 공격 루트의 다양성 등 여러 면에서 한국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 서브까지 강하고 까다롭게 구사한다. 국내 감독들이 강조하는 '정확한 리시브'도 국제대회에서는 이미 어려워진 상황이다. 국내 선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리시브가 다소 불안정안 상황에서도, 또는 반격 찬스 상황에서 다양한 공격 옵션을 통해 득점력을 높이는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한 스피드 배구'를 완성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V리그에서는 어느 팀도 그런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평소 리그에서 하지도 않은 공격 옵션을 갑자기 국제대회에서 하려니 잘될 턱이 없고, 강팀들의 빠른 플레이에 허둥댈 수밖에 없다. 고작 20여 일의 대표팀 소집훈련을 통해 단박에 해결될 일도 아니다.
V리그에서도 자성의 목소리와 변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 대한항공만 2년 연속 통합 우승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국내 감독이 이끌고 있는 대부분의 팀들은 호기롭게 토털 배구·스피드 배구를 선언했다가 결국 돌고 돌아 몰빵 배구 틀로 회귀해버렸다. V리그에서 성적을 내려면 여전히 그런 배구가 '안전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번 VNL 대회 도중 일부 국내 감독들이 언론과 '익명 인터뷰'를 통해 세자르 감독과 선수들의 플레이를 향해 비난한 듯한 멘트를 날렸다. 이를 본 배구팬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대표팀 추락 큰 책임 '국내 감독'들... 제3자인척 대표팀 비판 '졸렬'
누구보다 큰 책임이 있는 국내 감독들이 반성은 없고, 마치 자신들은 제3자인 척, 평론가인 척, 그것도 익명으로 대표팀을 비판하는 모양새 때문이다. 팬들은 그런 국내 감독들을 향해 '뻔뻔하고 비겁하고 졸렬하다'며 냉소적으로 쏘아붙이고 있다.
일각에선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기본기부터 부족하다"고 혹평한다. 이것이야말로 국내 감독 얼굴에 침 뱉기다. 그 기본기를 가르치고 심어준 장본인이 바로 국내 감독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당장 발등에 떨어진 세계선수권 대회를 위해 대표팀을 어떻게 도와줄까를 걱정하는 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세계선수권마저 부진하면, 2024 파리 올림픽 출전도 그대로 끝날 수 있다. 곧바로 이어지는 V리그 흥행에도 찬물을 끼얹게 된다. 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KOVO)을 넘어 배구계 전체의 일이고, 모두의 책임이다.
파리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면, 여자배구도 국제대회 추락과 함께 프로 리그 인기도 동반 추락한 남자배구, 남자농구의 전철을 밟아갈 공산이 크다. 공멸하고 난 뒤, 대표팀 감독 자리를 국내 감독이 차지한다고 누가 박수 쳐줄까. '개밥에 도토리'일 뿐이다. 더 처참한 꼴로 대표팀 감독만 자꾸 바뀌는 사태가 벌어질 게 안 봐도 비디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