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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그때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태우려고 이글!

"그리고 또 그려낸 해바라기 속에도 정녕, 해가 없어 슬프다"

문일석 시인 | 기사입력 2008/11/09 [02:07]
▲ 허유그림 /해바라기   ©브레이크뉴스

최근에 쓴 시입니다.
 
**해바라기

1966년, 나의고향 전라도에 한해가 들었을 때
해는 들판의 모든 식물들을 바싹 태워 버렸다.
태양은 그때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태우려고 이글거린다.

그런데도 해바라기는 해의 뜨거움을 온몸에 받아들이려
큰 얼굴로 해를 따라 눈 맞춤하며
햇볕에 취해, 열기를 감추지 못한다.

늦가을, 스스로 불타올라 색감 넘치는
폭발시킬 듯 잘 여문 해바라기라도
꽃 속에 해가 없다.

해를 사랑한 열정으로 자신을 불태웠던 추억을 위해
말없이 고개 숙이고 있을 뿐이다.

화인 허유는 해바라기를 그리지만
그리고 또 그려낸 해바라기 속에도 정녕, 해가 없어 슬프다.

하지만 화인의 가슴은 하늘의 해와 더불어
뜨거움을 향한 치열함으로 늘 불타고 있다.

화인의 그림은 해보다 해바라기 보다, 그래서 아름답다. (11/8/2008)

▲ 화인 허유  교수   ©


**다리

천둥 번개 치고 홍수가 나던 날
강원도 산골마을 다리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다리는 짧았지만 그 다리가 없어져
마을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리 짧은 다리라도 다리는 이곳과 저곳을 이어준다.
사람에게도 다리와 같은 사람이 있다.

도무지 친해질 수 없는, 멀리만 있는 사람을
가까이가까이 이어주는 사람
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곳에서
생명을 걸고, 더불어 강을 건네주는 사람

세상에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검은빛 슬픔 앞에서 빛이 되어주는 사람
외롭다, 외로워하며 가슴을 찧는
절절한 고독을 녹여주는 따스한 내복 같은 사람

징검다리든 나무다리든 짧은 다리든 긴 다리든
사람 옆에서 다리처럼, 다리를 떠받치는 교각처럼
없는 듯 있는 듯 살고 있는

장갑 같은, 타올 같은, 숟가락-젓가락 같은
그런그런 사람이 고맙다, 너무 고맙다, 정말 고맙다. (11/8/2008)

*필자/문일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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