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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녀의 격정적인 사랑과 이별 그리고 인간사의 희노애락이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을 무대로 2차 세계대전 가운데 펼쳐지는 대서사 러브로망 <러브 인 클라우즈>(감독 존 듀이건, 배급 예지림엔터테인먼트)를 보고나면, 문득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이 떠오른다.
'쾌락은 가면을 쓸 수 있지만 고통은 가면을 쓸 수 없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교수들과 숱한 스캔들을 뿌린 섹시걸 길다(샤를리즈 테론 분)는 어느 날, 영국의 대학 기숙사에 머물고 있는 순수청년 가이(스튜어트 타운센드 분)의 방에 숨어들면서 낯설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한다.
두 남녀는 우연한 만남을 반복하고 길다는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지만 길다는 사진작가로 대중적인 스타가 되고 자신의 연인 미아(페넬로페 크루즈 분)와 달콤한 시간도 잠시,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 대전 발발에 따라 참전을 결심한 가이와 미아로부터 이별을 예감하게 된다.
빗발치는 포탄과 죽어가는 전우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삶 속에 희망으로 자리잡은 길다를 만나기 위해 살아남는 가이와 명분보다 자유의지로선택한 삶을 살기로 한 길다가 중첩되면서 두 사람은 격변 속의 운명에 처한다. 이 영화는 지난 2004년 미국에서 개봉됐고 국내에도 2006년 소규모 영화제를 통해 영화의 원제 <헤드 인 더 클라우즈(head in the clouds)>로 소개된 적이 있다.
그로부터 2년 여가 지난 지금, 2008년을 마감하는 31일, <러브 인 클라우즈(love in the clouds)>라는 타이틀로 개봉관에 내 건 이 영화는 <몬스터>로 2004 오스카(아카데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샤를리즈 테론과 <귀향>으로 2006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페넬로페 크루즈 등 연기파 배우들의 등장을 홍보 컨셉으로 삼으면서 '러브액츄얼리' 류 장르에 목말라 하는 국내 영화팬들에게 2008년 세모(歲暮)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닥터 지바고> 이후 영화 속 연인들의 운명적인 사랑은 전쟁 속에 더더욱 빛을 발한다. 이것이 러브로망 대서사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 세모에 즈음해 휴 잭맨-니콜 키드먼 주연의 <오스트레일리아>와 늦깎이 개봉 영화 <러브 인 클라우즈>는 시대를 초월해 현대인들에게 전쟁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잘 생긴 두 남녀가 어려운 상황 속에 운명적인 만남을 반복하고 사랑하게 되는 러브스토리 <타이타닉>류의 내러티브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만 이 영화 <러브 인 클라우즈>에서 연기파 배우들은 카리스마 넘친 연기력으로 서사보다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춘 감독의 연출 의도를 잘 소화해냈다.
이로 인해 두 남녀의 필연적인 몇 차례의 만남 설정이 다소 작위적이어 보이지만 그 보다는 한 여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어가는 남자의 선택이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멀어져만 가는 여자의 선택과 엇갈려 애틋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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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에 초점 맞춘 러브로망 대서사시
찬 바람이 부는 겨울철 즈음이면 극장가에 '대서사 러브로망' 영화 한 편이 걸리곤하는데, 역시 2차대전을 배경으로 지난 1997년 상영된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비롯해 광활한 시베리아 설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2000), 그리고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니콜 키드먼의 열연이 빛났던 <콜드 마운틴>(2004), 이 외에도 <인게이지먼트>(2005), <청연>(2005), <블랙북>(2006) 등 갖은 고초와 역경 속에서 빛을 발하는 사랑의 모습을 일깨워줬다.
같은 시기에 걸린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와 비교해 <러브 인 클라우즈>는 여러 공간적 배경을 담고 있지만 일부 전쟁씬을 제외한다면 다소 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주인공의 천신만고 모험 여정을 그린 <오스트레일리아>가 신화를 바탕으로 한 서사 로망이라면, <러브 인 클라우즈>는 인물의 심리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러브 로망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볼 수 있는 것은 영화 속 시간적 배경은 빠르게 바뀌는 반면에 극중 인물들은 전쟁, 삼각 애정관계 등의 상황이 놓여있긴 하지만 전형적인 캐릭터로 일관된다.
먼저 만남과 끊김을 반복하며 길다와 인연을 이어가는 가이는 학창 시절부터 길다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고, 스스로를 자유연애주의자로 자기 최면을 건 길다는 가이와 만남을 통해 영향을 받고 가면 속의 자신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점차 주변상황에 휘둘리며 그에 대한 애틋한 정서를 키워 나간다.
오래도록 로맨스 영화에서 다뤄왔던 여자와 남자의 입장 차이는 이 영화에서도 가이와 길다의 선택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격변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한 남자만을 사랑하고 곁에 두고 싶어했고 남자(가이)와 그녀의 동성연인(미아)은 사랑보다 조국에 대한 의무와 지식인으로서 양심을 택해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장으로 향하면서 이후 길다의 앞날이 평탄치 않을 것임이 예고된다.
당초 세 남녀의 격정적인 사랑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극중 미아가 길다의 동성 연인인데다가 조국 스페인을 외면하지 못하고 간호사로 참전하는 미아의 선택에 따라 불길함을 예감한다. 다만, 전장에서 재회를 한 가이와 미아의 만남은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선을 명확히 그으면서 결국, 미아의 희생에 따라 두 남녀는 걷잡을 수 없는 운명에 휩쌓인다.
영화 <몬스터>에서 연쇄 살인마로 변신한 연기파 배우 샤를리즈 테론은 1940년대 복고풍 의상을 멋지게 코디해 내며 농염한 자태를 드러낸 섹시함을 과시했고, 그녀의 동성연인으로 등장한 페넬로페 크루즈 역시 화려한 자태 외에도 영화 <귀향>에 이어 전쟁 속에서 산전수전을 겪는 미아로 변신에 성공하며 극중 내러티브의 단조로움을 덜어 주었다.
감독은 영화 중반부 전장에서 다시 돌아온 가이와 길거리 재회씬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권력과 쾌락'을 탐닉하면서 가면 속에 가리워졌던 길다의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그녀가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살 수 밖에 없었으며 고통을 애써 감춰왔던 그녀의 속마음이 '민족의 반역자'이자 '나치의 창녀'로 낙인찍힌 초췌한 모습으로 드러내며 길다가 자유의지로 선택한 삶에 대한 결말에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지금도 자신의 의지와 달리, 사회적인 오해와 왜곡 등으로 인해 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선택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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