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조립식문틀 신화 도용 삼성물산 철퇴 내막

[쟁점추적] 자사 납품하던 중소업체 실용신안 무단도용

김경탁 기자 | 기사입력 2008/12/30 [11:52]
삼성물산, 특허 침해 판결 내막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다윗이 다시 등장했다. 국내 최대재벌이자 국내최대 로펌 김앤장을 능가하는 최강의 법무팀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삼성그룹 계열 건설회사와 벌어진 특허소송에서 최근 승소판결을 이끌어낸 한 중소기업의 이야기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양재영 부장판사)는 지난 11월28일 주식회사 라미우드가 삼성물산 주식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실용신안권침해금지'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삼성물산이 아파트공사에 시공하고 있는 조립식 문틀이 라미우드의 실용신안권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제품의 생산·사용·판매·반포를 중단하고 보유하고 있는 금형을 폐기하는 한편 1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다.

1998년 kbs 9시 뉴스에 아이디어상품과 관련해 크게 보도되는 등 우량 중소기업으로 촉망받던 건축 내장재 전문 기업 라미우드는 경영악화로 인해 지난 2005년에 이미 폐업한 상태로, 명목상의 법인만이 남아서 소송을 진행해왔다.

이번 판결은 지난 12월20일 삼성전자가 중국 통신업체와의 특허소송에서 패해 100억원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금액이기는 하지만 이미 폐업한 중소기업이 국내에서 열린 재판에서 삼성을 이겼다는 점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그동안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다윗들에 대해 집중보도를 해온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이번 사건의 판결문을 긴급 입수해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는 한편 라미우드가 폐업한 배경에 대해서도 추적해봤다.
 

재판부 “아파트 등 건축 현장 시공, 원고의 실용신안권 침해 행위‥침해행위 중지하고 침해행위로 생긴 물건 폐기 의무 있다”

 
▲삼성물산이 시공하고 있는 래미안 길음뉴타운 9단지 현장.    <사진/삼성물산> 

삼성물산과 라미우드 사이에 벌어진 '실용신안권침해금지' 소송에서 핵심 쟁점은 삼성물산이 생산·판매·시공하고 있는 '문틀용 측면틀체'가 라미우드에서 보유하고 있는 '조립 및 교체가 용이한 조립식 문틀'(출원 2000.2.15, 등록 2000.5.9, 확정등록 2001.11.12)의 실용신안 권리를 침해하는가 여부이다.

라미우드는 "삼성 제품은 자사 실용신안의 구성요소를 모두 실시하고 있어서 삼성이 이 제품을 생산·시공하는 것은 자사의 실용신안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그 침해행위의 금지 및 이로 인해 라미우드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이 사건 등록실용신안(이하 라미우드안)은 그 출원 전에 이미 '비교대상고안'들에 의해 공지·공용되었으므로 신규성이 없으며, 통상의 기술자가 비교대상고안들로부터 극히 용이하게 고안할 수 있는 것으로서 진보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3개의 '비교대상고안'
 
재판부는 우선 "삼성의 '문틀용 측면틀체'는 라미우드안과 기술분야가 공통되고, 구성에서 라미우드안의 구성요소를 모두 실시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달성하고 있는 효과 역시 동일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삼성의 제품은 라미우드안의 권리범위에 속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과 관련해 삼성물산이 라미우드안의 '신규성'과 '진보성'에 반박하기 위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시한 '비교대상고안'은 총 3가지이다.

첫 번째는 1999년 8월12일 출원, 11월8일 실용신안등록, 2000년 2월15일 등록공고된 라미우드의 '조립 및 교체가 용이한 조립식 문틀'로 쟁점이 되는 라미우드안과 동일한 제목의 거의 동일한 실용신안으로, 매년 내는 등록료를 내지 않아 현재는 소멸된 특허이다.(이하 1안)

두 번째는 삼성물산 구리 토평 아파트의 문틀 부분 설계도면 및 삼성중공업 보광동 리버빌 아파트의 문틀 부분 설계도면으로서, 각 설계도면에는 라미우드안에 핵심적인 내용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이하 2안)

마지막 세 번째는 1999년 10월29일 출원, 2000년 1월26일 실용신안등록, 2000년 4월15일 등록공고된 건축내외장재 전문회사 한화l&c의 '조립식 문틀'로서, 여기에는 라미우드안과 유사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이하 3안) 

▲ 이미 폐업한 중소기업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1심 승소판결을 이끌어냈다. 사진은 쟁점이 된 실용신안 이미지(삼성이 생산한 제품의 도면).     © 브레이크뉴스
 
“99년 시공 주장 믿기 어려워”
 
재판부는 우선 삼성물산이 제시한 3개의 비교대상고안 중에서 2안에 대해 "라미우드안의 유효성 판단 자료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삼성물산은 '2안'의 기술이 삼성중공업 보광동 리버빌 아파트 샘플하우스 및 삼성물산 구리 토평 아파트의 문틀에 시공되어 1999년 11월경 공연히 실시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 증거들은 삼성물산 주장의 시공 시점 이후 약 9년이 흐른 현재 위 각 아파트에 관한 모든 다른 설계도면이 폐기처분되었다고 하면서도 유독 위 설계도면(전체 설계도면 중 극히 일부이다)만은 9년여의 기간 동안 보존하고 있었다면서 피고가 서증으로 제출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 제출 경위에 비추어 진정성립(사실·진짜임을 입증함)을 위해 제출된 설계도면의 각 기재와 증인 최○○의 증언은 믿기 어렵고 달리 위 각 서증의 진정 성립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

재판부는 "만일 위 각 서증이 진정성립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각 서증이 각 설계도면에 기재된 날짜에 실제 작성되었거나 위 설계도면상의 고안이 피고 주장의 시기에 시공 현장에 실시되었다는 점에 관하여 이 법원이 믿지 아니하는 위 거시 증거 외에는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제시 증거의 진정성립 의심…9년 전 시공했다는 도면 보존, 다른 도면은 모두 폐기

 
▲라미우드의 실용신안 이미지.     © 브레이크뉴스

“공지는 ‘등록공고 시’로 봐야”
 
1안과 3안에서의 핵심쟁점은 1안과 3안의 실용신안 내용이 라미우드안이 출원되기 전에 공지된 것인지 여부(출원 전 공지 여부)와 이른바 '확대된 선원'이라는 특허법 규정에 따라 라미우드안의 신규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두 가지였다.

'출원 전 공지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1안과 3안의 출원일과 설정등록일은 라미우드안의 출원일(2000.2.5) 이전이지만, 등록공고일은 라미우드안의 출원일과 같은 날(1안)이거나 그 이후(3안)라는 점에 주목했다.

즉 각 비교대상고안이 '설정등록 시'에 공지되었다고 보면 선행기술이 될 수 있으나 '등록공고 시'에 공지되었다고 본다면 선행기술이 될 수 없는데, 재판부는 1·3안의 출원 당시 시행되던 구실용신안법의 해석상 각 고안은 '설정등록 시'가 아닌 '등록공고 시'에 '공지되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설정등록은 특허청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로서 일반 공중이 그 등록 사실을 곧바로 인식하기 어려워 설정등록 행위만으로 고안이 즉시 공지 상태에 이른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한 "박사학위 논문 등은 도서관에 등록 시에 곧바로 반포된 상태에 놓이거나 그 기재 내용이 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도서관 또는 대학도서관 등에 입고(서가에 진열)되거나 주위의 불특정 다수인에게 배포됨으로써 비로소 반포된 상태에 놓이게 되거나 그 내용이 공지되는 것이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재판부는 "설정등록된 고안은 원칙적으로 대외적 공표절차인 '등록공고'를 통하여 비로소 공중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른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확대된 선원 규정에 따른 신규성' 논란에서 쟁점은 1·3안이 라미우드안의 신규성 판단에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확대된 선원'이란 △실용신안등록 출원 전에 국내에서 공지되었거나 공연히 실시된 고안 △실용신안등록 출원 전에 국내 또는 국외에서 반포된 간행물에 기재된 고안에 대해서는 법에서 명시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실용신안을 받을 수 없도록 한 규정이다.

재판부는 1안은 고안자가 원고와 동일인이어서 법에서 명시한 예외에 포함되고, 3안의 경우 이 사건 등록실용신안의 핵심 내용 일부가 결여되어 있어 동일한 고안이라 할 수 없다고 판단, 따라서 1·3안으로 이 사건 등록실용신안의 신규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청구에 관한 판단
 
재판부는 "피고(삼성물산)의 제품은 라미우드안의 권리범위에 속하고, 따라서 해당 제품을 생산해 아파트 등 건축 현장에 시공하는 것은 원고의 실용신안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그 침해행위를 중지하고 침해행위로 생긴 물건 등을 폐기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원고가 삼성물산 제품의 '유사품'에 대해서도 침해금지를 청구한 부분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청구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재판부는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한 "피고는 피고 제품을 생산·시공함으로써 원고의 실용신안권을 침해하였고, 피고에게는 그 침해행위에 대하여 과실이 있음이 추정되므로(실용신안법 제30조, 특허법 제130조), 피고는 원고에게 실용신안권 침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손해배상의 액수에 대해 재판부는 총 3억3921만2700원을 청구한 원고의 주장 중에서 일부만 받아들여 1억원의 손해배상을 결정했다.(3154세대×1.5개×14만원×15%=약 1억원)

삼성물산이 시공 중인 수원 인계 재건축 현장, 석관1 재개발 현장, 종암4 재개발 현장 등 총 3개 동 합계 3154세대에 피고 제품이 사용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데, 원고가 제기한 손해배상 대상은 위 공사현장 3곳에 대해서만 적시되어 있다.

문제의 제품이 일반적으로 방음 등을 위하여 안방 기타 거주용 공간 문틀에 시공되는 것으로서 평형에 따라 세대별로 피고 제품이 최소한 1개 내지 2개 시공되며, 원고가 문틀 목창호의 개당 단가가 14만원, 문틀 당 최소 마진율이 15%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피고가 별다른 반박이 없었다고 한다.
 
취재 / 김경탁 기자  kt@breaknews.com
 

라미우드는 어떤 회사?

1993년 설립 목창호 선두업체…2005년 폐업
 
▲1998년 4월 9일 kbs 1tv 9시 뉴스에 방영된 화면캡쳐.

이번 재판의 소장이 접수된 것은 2008년 3월27일이고, 판결선고가 내려진 것은 11월28일이었지만, '주식회사 라미우드'는 이미 2005년에 폐업한 상태이다. 명목상의 법인만 남아있는 가운데 재판이 진행된 셈.

그동안 이 재판을 진행해온 라미우드 한철현 사장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직 재판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적극적으로 나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인터뷰를 정중하게 사양했다.

업계에 따르면 라미우드가 폐업하게 된 것은 당시 국내 대형건설사들의 건설자재 납품에 대한 최저가입찰제 확대시행으로 인해 대기업 납품단가로는 공장 운영마진도 건지기 어려워진 것이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추정된다.

당좌거래 정지내역을 검색해보면 라미우드의 당좌거래가 정지된 것은 2005년 2월22일이었고, 라미우드의 회사 홈페이지가 폐쇄된 것도 비슷한 시기이다.

허망하게 무너지기는 했지만 라미우드는 한때 촉망받는 유망 중소기업이었다. 주요 건설사에 납품을 많이 했고, 1998년에는 '알루미늄 단열판'이라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kbs 9시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삼성·현대·대우 등 대형건설사 자재 납품
한철현 사장 “재판 안 끝나서” 인터뷰 사양


알루미늄판으로 전자부품인 컨덴서를 만들고 남은 대량의 폐자재가 고물로 팔리던 것을 활용해 방바닥의 단열재로 사용하면 열효율을 높여주면서 연료비를 2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뉴스였다.

본지가 찾아낸 자료에 따르면 라미우드는 1993년 11월10일 설립, 국내 최초로 래핑제품을 개발·보급시킨 목창호 분야선두업체로서 이전까지 수입에만 의존하던 원목을 100% 국산소재로 대체함으로써 원자재 시장의 흐름을 크게 변화시키는 역할을 주도했다고 한다.

이 회사는 목창호 및 실내건축 분야에서 '라미우드'라는 자체브랜드로 문, 문틀, 붙박이장, 몰딩, 온돌마루, 알루미늄방열판 등을 생산해 대단위 아파트에 납품, 시공 또는 모델하우스를 설치하는 일을 했다.

납품 업체로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 대림산업, 현대산업개발, lg건설(현 gs건설), 쌍용건설, sk건설, 롯데건설, 코오롱건설 등 국내 유수한 건설사를 망라했으며, 품질 및 규격심사가 까다로운 일본시장의 가지마건설, 구마가이구미 등에 목창호를 수출하기도 했다.

주식회사 라미우드와 관련해 아직까지 남아있는 회사는 라미우드 출신 임직원들이 별도로 설립한 t사가 유일한데, 라미우드 옛 사옥에 자리 잡은 이 회사는 현재 라미우드의 대표품목 중 하나였던 알루미늄방열판을 삼성물산을 포함한 대형건설사들에 납품하고 있다.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김경탁 기자
kt@breaknews.com
2001년 9월 해운업계 전문지인 <한국해운신문>에서 조선업계 출입 및 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의 길을 시작했으며, 2005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브레이크뉴스+사건의내막 경제부에 근무했습니다.

근황은 이곳으로 → 블로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