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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라즈니쉬와 송현 시인의 대화(12)

송현(시인·본지 주필) | 기사입력 2009/01/19 [14:51]

▲송현(시인·본지 주필)  ©브레이크뉴스
송현: 선생님, 반갑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나도 반갑다.
송현: 오늘은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온 세계에 나라 망신을 시켰습니다.
라즈니쉬: 아아, 이번에 나온 타임지 표지 기사 말인가?
송현: 예 선생님.
라즈니쉬: 현실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다.
송현 : 저는 국회의원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세비도 절반으로 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신 국회에 망치를 많이 사 주고요.
라즈니쉬: 그대 말투를 보니 보수 꼴통인가?
송현: 아닙니다. 저는 정의파입니다.
라즈니쉬: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숫자는 법으로 정한 것 아닌가?
송현 : 맞습니다. 그런데 그 잘못된 법을 바꿔야지요.
라즈니쉬: 자네 성향으로 보아 현실정치에 뛰어 들었을 법도 한 대? 여태 뭐했어?

 
송현: 그럴 기회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젊은 날에 현실정치에 뛰어들어서 열심히 했다면 지금쯤 최하 5선 의원은 되었을 것입니다.
라즈니쉬: 엇쮸!
송현: 선생님, 제 말씀 끝까지 들어주셔요.
라즈니쉬: 계속해!
송현: 젊은 날에 제가 존경하는 함 석헌 선생님한테 현실정치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라즈니쉬: 그래?
송현 : 남 앞에 나서겠다는 것은 주제 파악을 못한 물건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래 전에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함 선생님께서도 현실정치에 뛰어들지는 않았습니다. 라즈니쉬 : 그래?
송현: 삼천포에서 서울로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라즈니쉬: 그러렴.

송현 : 선생님, 만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한다면 그 사랑은 거짓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까?
라즈니쉬: 당근! 진정한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사랑을 배울 수가 있는가? 배운다면 규착에 따라 행동할 것이고, 자연적인 흐름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은 그대의 규칙에 따라 흐르지 않는다. 자연은 그 자체의 규칙을 갖고 있다. 그대가 일단 그 규칙에ㅅ 자신을 내맡기기만 하면 그것이 그대를 통해 일하기 시작한다.
송현 : 아하!
라즈니쉬: 사람들이 숨 쉬는 법을 배워야 할 날이 멀지 그다지 멀지 않았다. 나의 이 말에 지금은 사람들이 다 웃을 것이다. 사람들이 성적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법을 배워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송현 : 선생님, 제 입으로 이딴 소리 하는 것이 부적절하지만, 제 연구소에 에스에스이론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종종 엤어요.

라즈니쉬: ss이론이 뭐랬지?
송현 : 제가 만든 새로운 섹스 이론입니다.
라즈니쉬: 그 핵심이 뭐랬지?
송현 :그 동안은 남성중심의 사랑이었는데, 앞으로는 여성중심으로 바꾸자는 이론입니다.
라즈니쉬: 그래? 참 전에 그것이 책으로 나왔다고 했던가?
송현: 모두 3권으로 출판할 예정이었는데 2권까지 내고 그 출판사가 망해버렸습니다.
라즈니쉬: 저런?
송현: 머지 않아 3권을 출판하자는 임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라즈니쉬: 그게 상품 가치가 있다면.
송현: 저는 대박 상품이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요?
라즈니쉬: 하하하. 대박? 꿈이 너무 큰 거 아녀?
송현 : 아닙니다. 선생님.
라즈니쉬 : 조심해라. 혹시 큰 꿈이 깨어지면 크게 다치는 수가 있으니.
송현: 알겠습니다.
라즈니쉬: 그것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송현 : 있다가 아니라 제법 많습니다.
라즈니쉬: 꽁짜로 가르치나?
송현 : 아닙니다. 탈무드에 “꽁자로 써 주는 처방전은 믿지 마라”고 한 것을 보고, 꽁짜로는 안 가르쳐줍니다.

라즈니쉬: 말된다. 앞으로 배우겠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송현 :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라즈니쉬: 대부분 인간들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사실 동물들은 전혀 배우지 않고도 그것에 도달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것까지도 배우려고 할 것이다. 어떤 스승도 어떤 성보고서도 필요하지 않다. 동물들은 단순히 사랑할 뿐이다. 사랑이 자연스레 일어난다. 지금 미국에는 사람들에게 성적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기관이 있다. 학습과 훈련을 통해 오르가슴에 도달한다면, 잘 기억하라. 그것은 전정한 것이 아니다. 그대가 그것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것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오르가슴은 완전한 휴식 상태에서만 일어나며, 휴식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송현: 네에. 그렇군요.

라즈니쉬: 사람들에게 잠 드는 법을 가르칠 수는 없다. 가르치려 든다면 오히려 그들의 잠을 방해할 것이다.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잠에 방해만 될 뿐이다. 피곤하면 그냥 잠들 뿐이다. 삶이란 숨 쉬는 일과 같다. 그래서 만일 그대가 성에 반대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혼다면 --실제로 전 세계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때 그대는 성적인 인간이 된다. 

송현: 만약 성욕이 사라지면요?
라즈니쉬: 그게 쉽지 않지만 만약 성욕이 사라지면 이번에는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그대는 다시 또다시 성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에는 두뇌적으로 성적인 것이다. 때로 그대는 육체적으로 성적이고 그리고 나면 두뇌적으로 성적이다. 때로는 육체가 때로는 마음이 성적인 것다. 일단 그대가 하나의 구분을 만들고 하나의 갈등을 만들면 그대는 분리된다.
송현 : 그런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라즈니쉬: 세상에는 비폭력을 목표로 삼은 자들이 훌씬 폭력적이고 금욕주의자를 목표로 삼은 자들이 훨씬 더 성적이고 변태적이다. 그러니 어떤 구분도 만들지 말라. 분열되면 자연스러울 수 없다. 자연스러움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내적인 합일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깊은 조화이다. 그곳에는 어떤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곳에는 선택이 없다. 그것은 선택이 사라진 받아들임이다. 선택하지 말라. 이것이 기적이다.

송현: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성욕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던 것이 사실 아닙니까?
라즈니쉬: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성욕에 사로잡힌다. 오히려 더욱 변태적이 되었다. 성이 더욱 타락해졌다. 그러나 성욕이 찾아올 때 성적이 되어라. 어떤 선택도 하지 마라. 이것은 나쁜 것이라고 하지 말라.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라. 그것은 자연스러움의 한 부분이다. 그때 문득 이런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대가 내적인 합일 성태가 되어 성이 자동적으로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이 올 것이다.

송현 :선생님 말씀대로 하면 궁극에서는 내적합일의 상태가 되겠군요.
라즈니쉬: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내적 합일을 이해하면 좋겠다. 모든 남성과 모든 여성은 양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남성의 내면에는 남성과 여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 모든 여성도 내면에는 남성과 여성을 다 가지고 있다. 누구도 단순히 남성이거나 여성이지 않다. 그럴 수가 없다.
송현 : 왜 그렇습니까?
라즈니쉬: 왜냐면 부모의 한쪽은 남성이고 다른 한쪽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내면에 양쪽을 절반씩 가지고 있다. 절반의 어머니와 절반의 어버지가 그대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대는 남성이면서 동시에 여성이다. 절반씩이다 이것이 뿌리 깊은 분열이다. 만일 그대가 외부에서 더 많은 분열을 창조할수록 이 분열이 더 커질 것이다. 
송현: 선생님, 그러면 모든 분열을 버리라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어떤 분열뿐 아니라 어떤 투쟁도 만들지 말라. 선택하지 말라. 분노가 찾아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성욕이 찾아오면 그것 또한 받아들여라. 달리 어떻게 할 것인가? 자연이 이런 것들을 그대에게 주었다. 그러니 그것들을 받아들여라. 물론 결과까지도 받아들여라.

송현: 화도 마찬가지입니까?
라즈니쉬: 당근! 그대가 화를 내면 다른 사람도 화를 낼 것이다. 그 화냄의 결과를 받아 들여랴. 그때 그대는 분열이 떨어져 나갤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그대 안에 있는 내면은 양성은 조화를 이룰 것이고 하나의 원이 창조될 것이다. 내면의 오르가슴이 일어난다. 그대의 여성과 남성이 내면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 안의 여성과 남성이 내면에서 만날 때 그대는 하나가 된다. 이제 새로운 존재가 탄생한다.

송현: 이때 합일이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라즈니쉬: 그래. 이 하나됨, 이 합일은 그 그림자로서 사랑을 데리고 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랑은 사랑은 표면적인 것이며 하나의 속임수다. 단지 성욕을 채우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성욕이 채워지면 사랑이 사라지는 것이다. 일단 그대가 여성과 성적 접촉을 하고 나면 사랑이 사라진다. 24시간 이 지나면 다시 에너지가 생긴다. 에너지가 축적이 되면 다시 성욕이 찾아온다. 다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사랑은 단지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자신의 아내와 남편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대단히 어렵다.
송현 : 그러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라즈니쉬: 사랑은 단지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다. 섹스를 하기 위해 상대방을 유혹하는 전희에 불과하다. 아내와 남편에게는 유혹이 필요 없다. 서로 당연히 받아들인다. 남편도 요구할 수 있고, 아내도 요구할 수 있다.그곳에는 유혹이 불필요하다. 따라서 사랑이 사라진다. 환심을 살필요가 없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사랑을 꾸밀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꾸밈은 모두 무거운 짐이 된다. 꾸며진 사랑, 그때 그대의 삶이 무의미해진다.

송현: 그래서 사람들이 부부 외에 관계에 빠지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바로 그렇다. 그것은 그들에게 다시금 약간은 에너지를 준다. 약간의 사랑의 느낌을 준다. 새로운 사람의 경우에는 또 다시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유혹이 필요하다. 그대의 사랑은 단지 하나의 유혹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수가 없다. 왜냐면 진정한 사랑이란 그대가 내적인 합일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불가능하다.
송현: 선생님, 성이라는 단어는 매우 아름답지 않습니까?
라즈니쉬: 단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성 자체가 아름답다. 그런데 성이라는 단어이 어원은 분리를 의미한다. 성은 곧 분리이다. 그대가 내면에서 분리되어 있을 때 성이그곳에 존재한다. 그대가한 여성을 갈망하는 것은 곧 그대의 한쪽 부분이 다른 쪽 부분을 만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에서 그 다른 쪽 절반을 만나고자 하는 노력이다.

송현: 선생님, 남녀가 잠시 동안 만날 수는 있을 것이라는 겁니까?
라즈니쉬: 그러나 또 다시 그대는 혼자가 된다. 외부에는 영원한 만남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은 순간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타인은 결국 타인이다. 만일 내면의 여성과 남성이 만날 수 있다면 그 만남은 영원한 것이 될 수 있다. 내적인 분리가 사라질 때 이 만남이 일어난다. 이것이 연금술적인 변신이다. 그대의 남성과 여성이 내면에 만난다. 그리하여 그대는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될 때 그대는 영원한 사랑을 갖게 될 것이다.
송현: 깨달은 자들은 사랑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사랑은 붓다의 또는 그리스도의 또는 장자의 특성이다. 그대는 다만 위조지폐를 가지고 장난치고 있을 뿐이다. 그대는 사랑할 수 없다. 

송현: 왜 사랑할 수 없다고 단정하십니까? 선생님.
라즈니쉬: 그대 이것을 깊이 이해하라. 이것을 이해할 때 그대는 어리석은 바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남을 바보로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누구를 사랑하려면 그대 자신이 먼저 사랑 그 자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사랑이 되어야 항상 그대에게 사랑이 흘러넘쳐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대는 그 수준은 멀었다고 본다.
송현: 예. 명심하고 제 자신이 사랑이 되고 사랑이 제게서 흘러넘치도록 힘쓰겠습니다.
라즈니쉬:오늘은 여기까지!
송현: 선생님, 감사합니다.(www.songh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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