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약산 김원봉…. 우리 항일독립운동사의 청사에 길이 남을 이름들. 결코 잊어서도 안 되지만 잊을 수도 없는 이름들이다
최근 영화 암살, 밀정 등을 통해, 항일투쟁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여전히 역사의 뒤 안으로 잊혀 져 가는 뭇 열사, 의사 의열투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처럼 구파 백정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구파 백정기 의사는 우리에게 낯선 존재일 정도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 학교에서 먼저 배웠던 우리나라 항일독립운동사의 기념비적인의거로서 역사적 의의가 큰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윤봉길의 이름은 모두 기억하고 있지만, 그날의 거사는 윤봉길만 준비했던 것은 아니었다. 구파 백정기 역시 홍구공원의 천장절 행사에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으나, 공원을 출입할 수 있는 입장권이 도착하지 않으면서 구파는 그 시각에 홍구공원에 당도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거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약 이날 구파의 입장권을 제때에 전달 받을 수만 있었다면, 홍구공원의 폭탄 의거는 더욱 큰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시계바늘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날 홍구공원의 거사를 준비한 세력은 바로 백범 김구의 ‘임정’과 이회영 백정기 등이 결성한 ‘남화한청연’이다. 두 세력 다 홍구공원의 천장절 행사를 노리고 있었으나, 남화한청연의 거사는 무위로 끝나고 말았고, 그 결과 김구와 윤봉길은 역사에 남는 사건을 성공시켰으나, 무위로 끝난 남화한청연과 백정기의 거사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잊혀 진 역사가 되고 만 것이다.
구파는 이 거사를 포함해 의열투쟁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또한 아나키스트로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으나, 그가 성공시킨 의거는 없었다. 그 결과 그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역사에도 남지 못했던 것이다. 무정부주의 청년연맹인 남화한인청년연맹 활동, 중국인 일본인 무정주의자들과 연대한 항일구국연맹 활동, 그 산하의 행동대인 흑색공포단의 주도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던 그였지만, 결국은 일제가 깔아놓은 밀정의 마수에 걸려들고 만다.
1933년 3월 17일 상해 진주 일본군사령부와 유길 명(有吉 明; 아라요시 아끼라) 공사가 중국정부 요인의 매수공작을 위해 중국 요리점 육삼정(六三亭)에서 연회를 베푸는 기회에 기습공격을 가할 계획을 세웠다. 선발된 백정기, 이강훈, 원심창은 수류탄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유자명의 인도를 받아 상하이 프랑스 조계로 들어가 거사하려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 육삼정 연회는 일제가 밀정을 이용해 벌인 함정이었던 것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구파 백정기 의사는 1935년 5월 22일 나가사키 감옥에서 안타깝게도 옥사하고 만다. 최근 ‘밀정’이라는 TV프로그램이 일부 알려진 항일운동의 흑역사인 밀정을 2차례에 걸쳐 방영하면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의 거사는 바로 이 밀정이 일제와 결탁해 벌인 계획된 함정이었다.
구파는 평생을 아나키스트로서 항일 의열항쟁의 선봉에서 3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의 일대기는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그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며, 그나마 산재해 있어 이를 제대로 엮어 그의 일대기를 복원한 책이나 자료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장대한 항일투쟁의 인생사도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비운의 항일운동가를 추적하고 기록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백남이 시인은 구파와는 한 집안사람이다. 그녀에게 구파는 5촌 당숙이 되니 가까운 후손이기도 하다.백남이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시를 쓰면서 세상을 주유하다 현재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 지난한 표류를 잠식시켜 준 제주에 안착한 채 글을 쓰는 일로 소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늘 마음의 빚이 있었는데, 바로 구파를 올곧게 드러낼 글을 묶는 일이었다. 그녀는 한반도의 땅끝 제주섬에서 100년 전의 시간을 넘나들면서 오래전부터 수집해 온 자료 더미들과 함께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보내왔다
이 시집은 그러한 그녀의 마음의 빚, 즉 후손의 의무, 잊혀지고 묻혀진 의결투사를 발굴하는 사명감, 그리고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면서 죽음의 공포도 끌어안고 죽음의 불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던 한 사내의 옹골찬 삶을 제대로 그려내는 일이리라 그녀의 문학혼은 이러한 마음의 빚의 불소시개가 되어 이제 구파 백정기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감히 백정기열사님의 영전에 바친다.”는 아주 겸양의 언사로 내어놓지만 이 시집은 그녀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집은 그녀의 표현처럼 “도서관 한쪽에 오랫동안 앉아 계신 당숙 어른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심정”에 값하는 오랜 수고로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백남이 시인의 다큐시집이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이 시집은 한 많은 일제강점기 불의에 굴하지 않고 아나키스트로서의 순수성과 독립을 향한 불굴의 의지로 삶을 불살랐던 구파의 삶을 그나마 온전히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아주 제한적인 자료들과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구파시대의 어르신들마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 구파의 생애를 올곧게 복원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수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임을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리라.
역사교과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수많은 실패한 거사와 강점의 시대가 길어질수록 깊어지는 밀정의 늪에서 오직 조국해방의 꿈을 쫓으며 풍찬노숙했던 망국의 의열청년들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이 시집은 모든 이름이 드러나지 못한 수 십 수백의 또 다른 구파들에게 바치는 시집이기도 하다. 구파를 알고 있는 독자들에겐 구파의 삶을 온전히 그려낸 시를 읽는 재미를, 구파를 몰랐던 독자들에겐 아나키스트로서 항일항쟁의 선봉에서 살았던 또 다른 독립투사를 만난다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 ▲ 백남이 시인 © 브레이크뉴스 |
백남이 시인은 2002년 첫 시집 『사랑은 없다, 기다리기로 하자』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민족문학연구회 회원, 창작21작가회 회원, 관동대지진조선인학살추모위원회 운영이사, (사)구파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구파백정기의사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