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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강간 인정이어 성전환자 강간도 유죄

부산지법 고종주 부장판사…처음으로 유죄 판결 내려 눈길

신종철 기자 | 기사입력 2009/02/20 [18:09]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한 트랜스젠더(성전환자)를 성폭행한 경우에도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나와 다르다는 사회적 편견에 따른 트랜스젠더들의 삶의 고단함을 위로하며 앞으로 보통 사람으로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합당한 편안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번 성전환자에 대해 강간죄를 인정한 재판부는 지난달 17일 사법사상 처음으로 부부사이의 강간을 인정한 동일한 재판부라는 사실도 이채롭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s(29)씨는 지난해 8월31일 오전 8시경 부산 부산진구에 있는 a(59)씨의 집에 침입해 10만원을 훔친 뒤, 부엌에서 흉기를 들고 나와 방안으로 들어가 인기척에 깨어난 a씨를 흉기로 위협해 반항을 억압한 다음 강간했다.
 
그런데 a씨는 1974년 성전환수술을 받고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등 30년 넘게 여성으로 살아왔으나,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하지 않아 호적에는 남성으로 돼 있었다.
 
이에 검찰은 당초 s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주거침입강제추행죄로 기소했으나, 이후 재판부와 협의해 공소사실을 주거침입강간죄로 변경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아 고종주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호적상 남자인 a씨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s씨에 대해 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12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흉기로 위협해 변태스러운 방법으로 피해자를 강간한 것에서 보듯이 초범의 범행으로 믿기 어려운 악성과 죄질이 엿보인다”며 “피해자의 나이가 피고인의 어머니 나이와 비슷하다는 점에서도 죄질이 좋지 않아 범행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시인하고 구금 중 8회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하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으며, 피고인의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관용을 호소하고 있고, 특히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해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 젊은 피고인의 앞날을 위해 부디 선처해 달라고 간청하는 점 등을 참작해 형량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 트랜스젠더 호적 안 바꿨어도 여성
그런데 이번 사건의 핵심은 호적상 남성인 트랜스젠더(성전환자)에 대해 강간죄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는 1974년 성전환 수술을 받아 여성의 외부성기와 신체 외관을 갖췄고, 이후 30년 넘게 여성으로서 살아오면서 과거 10년간 남성과 동거하며 성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이나 사회생활에도 자타가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피고인도 범행 당시 피해자를 여성으로 인식으로 눈으로 직접 피해자의 성기를 확인한 다음 자신의 성기를 삽입한 이상 피해자가 강간죄의 객체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부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성전환자를 강간죄의 객체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관련 법리와 이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단정에 불과한 것일 뿐, 피해자의 성별을 여성으로 봄에 의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따라서 피고인에 의해 피해자의 권리가 침탈당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피해자는 호적상 남자지만 어릴 때부터 여성으로 행동해오다 1974년 병원에서 성전환증 확진을 받고 나서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성으로 살아온 만큼, 호적은 성별정정 대상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피해자를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로 인정함에 장애가 안 된다”며 “나아가 성별을 정정하는 것은 피해자가 여성임을 사후적으로 확인하는 조처에 불과할 뿐 성별정정으로 피해자의 성별이 비로소 여성으로 변경되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전환자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 경우 호적의 정정 여부를 확인하기보다는 피해자가 성전환자로서 공인된 절차를 거쳐 성전환수술을 받고 상당기간을 여성으로 살아왔는지, 보통의 여성과 다름없이 남성과 성행위가 가능한지,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함에 문제가 될 만한 장애사유가 없는지, 범인의 성기가 삽입되는 등의 명백한 성적 침탈행위가 있었는가 등이 더 중요한 확인사항”이라고 강조했다.
 
◆ 성전환자들 위로 및 보통 사람으로 명예로운 삶 살길 희망
이와 함께 재판부는 피해자와 같은 성전환들의 당면한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여건이 개선되기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보내 눈길을 끌었다.
 
먼저 “성전환자에 대한 사정과 법리가 이러함에도 사회구성원들 중에는 사안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진지한 노력도 없이,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혀 그들의 존재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감이나 막연한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는 자신의 가족들로부터 배척당하기도 한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어 “이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주로 야간업소에서 일을 하면서 평생을 외롭고 고단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바로 이것이 오늘날 성전환자들이 겪어야 하는 불행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들에게 발생한 성정체성의 혼란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며, 그들이 새로운 성으로 살겠다는 진정한 성의 주장이 공서양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a씨는 1950년 7월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치마를 입는 등 여성 옷을 입고 여자아이들과 어울리고 남자아이들은 멀리 했다. 그 때문에 놀림을 받고 집에서도 이상한 아이로 여김을 받으면서 따돌림을 당했다.
 
사춘기 때 자신의 성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분명한 성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a씨는 중학교 재학 중이던 16세 때 무작정 집을 떠나 전국을 떠돌면서 당시 명망 있는 사람들로부터 밤무대 공연을 위한 무용을 배웠다.
 
이렇게 무용수로서 생계를 이어가다가 24세 때인 1974년 서울의 한 성형외과에서 상담을 받고, 의사의 권유에 따라 정신과 진단도 받은 다음 성전환증 확진을 받고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이후 a씨는 30여년간 여성 무용수로서 우리나라 전 지역은 물론 일본, 태국, 중국 등을 오가며 밤무대 업소에서 여성 동료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
 
재판부는 “보편타당한 원리를 추구하는 사법은 본래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바탕으로 하는 점에서 사법의 본령은 삶의 현장과 소통하는 것이며, 이에 모든 사람들의 문제와 애환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며 “특히 형사사법절차에 있어서는 피고인의 권리보장에 못지 않게 범죄의 피해자 등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지위와 처지에 합당한 배려와 처우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또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국가가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과 행복의 추구를 돕고자 하는 헌법 원리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재판부는 그와 같은 목표에 입각해 성적 소수자인 피해자의 법률상 지위를 여성으로 인정함으로써 이러한 배려가 이제 노경에 들어서는 피해자가 우리와 다름없는 보통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로이 어울려 자신의 성정체성에 합당한 편안하고 명예로운 여생을 보낼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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