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집을 나서다 신문을 배달하는 주부를 보았다. 문득 지난날을 떠올렸다.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엄동 새벽에도 신문을 돌리고, 모닝커피타임이 되면 다방의 손님들에게 신문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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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조간신문을, 오후 2시경 가판을 위한 석간신문이 역으로 배달되면 이를 받아다 버스정류장에서, 다방에서, 시장통에서 팔았다. 하루 사백 환 정도를 벌었던 기억이다. 당시에 자장면 한 그릇이 백오십 환이었다. 이십 환하던 신문 값을 깎아 달라던 어른들도 있었다.
큰 사건이라도 터지는 날이면 신문 헤드라인에 붉은 줄을 긋고, “기사 특보!” 를 외치면서 팔았다. 그런 날은 신문팔이들 수입이 꽤 괜찮은 날이라 장사가 끝나면 자장면집이나 빵집 같은 곳에 가서 포식을 했다. 그 와중에서도 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정규 과정은 아니었지만 월사금이 싼, 공민학교라는 사설 학교가 있어서였다.
그때 내 나이 14살. 나는 이 생활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이를 논픽션화 시켰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같이 고학을 하는 친구들이었고, 나처럼 섬을 떠나온 아이들의 이야기로 설정했다. 원고지 쓰는 법도 제대로 몰랐던 시절, 펜대에 잉크를 찍어 또박또박 써내려간 원고지는 오백 장을 넘어서더니 천 장, 천사백 장을 넘고 있었다.
저녁을 물린 후 식구들이 잠든 사이에 등잔불을 밝히고 동그란 밥상위에 원고지를 늘어놓았다. 글로 채워진 원고지는 삼백 매 단위 혹은 이야기의 맺음대로 묶어놓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쓸데없는 짓 한다고 원고지 오십여 장을 뜯어내 찢어버렸다. 마치 내 꿈이 찢겨져 나가는 것 같았지만, 꿈에 대한 절박감 때문에 쓰기를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소년들 이야기를 쓴 다음 그 시절 인기가 있었던 서부극을 또 썼다. 이번에는 사백여 매였다. 그리고 그 뒤, 다시 원고지를 붙들고 씨름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했을 뿐, 글쓰기에는 더 이상 전념하지 않았다. 내게는 정작 미술에 대한 재능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교양시간에 소설가로 이름이 꽤 알려진 전광용교수님을 만났다. 그분은 70명의 수강생 중 단 한 사람만 a를 주었노라고 했다. 물론 그 평가는 내게 내려진 것이었고, 내가 글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지만, 글을 쓸 기회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내 아들의 나이 14살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원고뭉치를 보여주었다. 아들은 이 글을 컴퓨터에 옮겨 보관하자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래의 원고에 있는 이야기와 성장한 이후의 이야기가 액자 속의 액자 형태로 묶여졌다. 첫 장편소설 <주앙마잘>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때가 마흔 여섯이었으니, 글의 씨앗이 잉태된 지 32년만의 일이었다.
아들에게 원고뭉치를 보여준 뒤 어느 봄날, 담임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아버지 이름을 썼는데, 어떤 분인지 꼭 좀 뵙고 싶다고. 나는 쑥스러운 얼굴로 선생님을 만났다.
그 뒤, 아들은 내게 커다란 멍에를 씌워준 셈이 되었다. 적어도 아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계속 살아달라는. 실제로 그리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녀석이 살아보아야 알 것이다.
문학을 지원하는 중학교 3학년생들을 위한 특강 요청이 왔다. 나는 소설 <주앙마잘>과 내 육필원고 뭉치를 챙겨 강단에 올랐다. 그 소년들에게 나는 14살 소년이 되어 나의 어릴 적 꿈을 이야기 해 주었고, 그 꿈을 좇던 흔적이라며 보따리를 풀었다.
누렇게 바랜 원고지 뭉치는 학생들 마음을 움직였고, 몇몇 학생들에게는 소위 비주얼 쇼크로 다가서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후, 이 육필원고는 비로소 대접을 받게 되었다. 아들은 영구보존을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고, 지인들은 원고 그대로 출판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이 육필원고를 본 한 문인은 내게 이런 글을 전해 주었다. “열네 살 소년의 첫 번째 꿈은 바다를 버리는 것이었다. 두 번째 꿈은 가난을 버리는 것이었고, 이제 그 나이든 소년의 마지막 꿈은 바다로 돌아가 잃어버린 섬을 찾는 일일 것이다.”
내가 잃어버렸던 섬, 비로소 나는 그 섬의 실체를 찾은 것 같다.
박종규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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