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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풍요시대의 우리들 잊고 사는 것 뭘까”

<土 曜 隨 筆> 수필가 전원일, “화장지에 대한 단상”

수필가 전원일 | 기사입력 2009/03/21 [11:01]
▲수필가 전원일
우리나라가 가난을 벗고 이렇게 잘살게 된 지는 불과 3~40년밖에 되질 않는다. 세계2차 대전이 끝나고 강대국에게 해방된 독립국가 중에서 이렇게 눈부신 발전을 한 나라는 세계에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짧은 기간에 이렇게 성숙한 나라도 지구상 어느 나라도 없다고 봐야하겠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발전하기까진 4.19혁명 같은 젊은이들의 피와 광주민주항쟁이나 부마항쟁 같은 민중의 피로써 얻어낸 결과이다.

우리나라가 못살고 어려웠을 때, 미국과 우리나라의 경제차이가 50년이고 일본을 따라가려면 3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살았다.

아직도 선진강대국에 비해서 차이가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해방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서구 민주주의가 이렇게 자리를 잡은 것은 괄목할만한 일이다. 제3세계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 같은 민주주의를 이룩하려면 아시아나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은 4~50년을 따라 와야 한다는 말도 있다.

특히 일본은 경제는 앞섰으나 의회민주주의는 우리나라를 따라 오려면 수 십 년이 지나야하고, 중국이 눈부시게 경제가 성장한다하나 민주주의를 만들려면 50년 넘게 우리나라를 따라 와야 된다는 말은 허언이 아닌듯하다.

필리핀, 태국, 미얀마 등 제3세계국가들이 민주주의를 향해 피를 뿌리는 것도 그 모델이 한국의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에서 영향을 받았다하니 정말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경제가 발전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생활도 엄청나게 변모를 거듭했다 사회간접시설은 물론 공업 분야와 더불어 첨단기술과 메스메디아, 서비스, 의료, 교육여건, 관광..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분야가 발전하고 있다.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니 그것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는 그런 모든 것들을 내가 농촌 출신이므로 농촌의 변화를 모델로 설명하고자 한다. 호미나 써레질 대신 경운기나 트랙터 같은 농기구가 등장하는 등의 우리들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 특히 화장실 문화에 주목했다.

지난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만난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만난 화장실과 역사(驛舍)나 관공서, 학교,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같은 공공시설물의 화장실을 보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화장실만큼은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문화국가가 되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요즘 태어난 세대들이야 화장지가 너무 흔해서 화장지의 고마움을 알지 못한다.

자동차 기름을 넣어도 거의 필수적으로 화장지를 주고, 교회의 성도들이 전도용으로 내미는  화장지가 있고, 가게들이 개업 답례품으로 화장지가 있기도 하다. 이렇게 흔한 화장지가 일반인들에게 다가온 것은 80년대 중반이라고 보면 된다.

80년대 초 구라파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선진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보드라운 화장지를 보고 감탄을 해서 자기도 그런 화장지 공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부산 사상공단에 공장을 설립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종이를 만들듯 목재펄프를 가지고 죽을 만들어 그것을 롤러에 돌려가면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만들어보았으나 제품의 실패는 거듭되었고 오랫동안의 시행착오 끝에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얇은 화장지가 아니라 투박한 화장지를 겨우 만들 수 있었다.

부산 사상공단에서 그의 인기는 유명배우보다 더 좋아서 그를 만날 때마다 "김사장! 똥 종이 좀 주소"가 입버릇이 될 정도였다. 어쩌다 화장지를 얻으면 귀중품처럼 고이 모셔와선 부모님이나 평소 은혜를 입은 분한테 선물용으로 드리면 좋아했다.

내가 화장지를 처음 만난 것은 그보다 빠른 1979년도였다. 해군 군사법원에서 상관으로 모시고 있었던 검찰부장님이 법무관에서 전역을 한 후 처음 부임한곳이 마산지방검찰청이었다.

그분은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서울법대를 졸업한지라 지방에 살고 있는 지인이 거의 없다고 했다. 마산지검에 자리를 잡으면서 내가 전역을 하기라도 기다린 듯 나에게 전화가 왔다 마산 타워맨션에 살고 있으니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 화장실에서 겪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곤 하는데 한 번도 보지 못 한 비데용변기가 문제였다. water. wash. dry...등의 영어로만 적힌 글자들이 눈에 들어 왔다. 용변을 본 후 고민을 하다가 water는 물, wash는 씻는다는 뜻,dry는 말린다는 뜻이니 그래 일단 쌌으니 씻어야 된다고 보고 wash를 눌렀다.

갑자기 물총같이 물이 치솟아 오르면서 팬티가 젖어 버렸다. 깜짝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나 이것저것을 만지니 그놈의 기계가 스프링클러처럼 뱅글뱅글 회전하면서 내 얼굴은 물론 옷가지까지 젖어 마치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되고 말았다.

한참동안을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정신을 차려서 세면장 주위를 살펴보니 보드라운 휴지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여자의 미장용으로 사용하는 종이로 생각했다. 그것이 내 생애 처음 만난 화장지였고 화장지를 사용하여 뒤처리를 했지만 물에 흠뻑 젖어 버린 내 모습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랬다. 70년대 후반 내가 방문한 엘리트 계층인 검사님 집에서 겨우 화장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엔 어땠을까? 70년대는 모두 책이나 노트 혹은 ,신문지를 잘라서 양손으로 비벼서 부드럽게 만든 후 용변 뒤처리를 했는데 그 보다 더 옛날인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60년대는 참으로 우스꽝스런 일들이 많았다.

신문을 보는 사람이 아예 없었고 농촌에서는 종이라곤 책과 노트 그리고, 비료 포대뿐이었다. 책은 동생들한테 물러줘야 했으므로 항상 깨끗하게 다뤘고 노트 또한 재질이 두껍기도하고 검은 연필로 글을 쓴 관계로 새까맣게 적혀있어서 용변 마무리로 부적합했다.

대부분 시골에선 화장실에 가면 뻣뻣한 비료 포대 종이와 짚 혹은 가마니를 걸어두거나 준비해두고 사용했는데 우리 집은 다행스럽게 아버지가 중학교 교사였던지라 학교에서 시험을 친 종이를 절반을 썰어서 화장실에 두고 사용했다.

동네 아이들이 우리 집 화장실에 몰래 숨어들어서 종이를 훔쳐가는 일이 생겨나기도 했고, 마을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줄곧 하는 말이 "원일아! 똥닦개종이 좀 도고"하고 부탁을 했다.

나는 그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창고에 보관 되어 있었던 시험지 종이를 조금씩 건네주곤 했었는데 그것을 전달받은 사람들은 고마움을 다른 먹을거리로 꼭 보답하고는 했다.

이렇듯 귀했던 용변 후의 뒤처리용 화장지가 요즘은 너무 헤프게 쓰이는 듯하다. 공공시설물 화장실에 걸러 있는 두루마리 화장지는 제 것이 아니라고 마구 사용하여 쓰레기통이 늘 넘쳐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비료 포대나 짚 혹은 낙엽으로 용변 마무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휴지의 고마움을 잊지 못 할 것이다.

휴지는 결국 수입용 목재에서 그 원료가 생산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요이상으로 과다하게 소비하는 것은 결국 달러를 낭비하는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이젠 화장실이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 할 수 있는 척도라는 말을 벗어나 화장실 휴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문화 의식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어울릴 성 싶다
조금은 추잡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용변 보면서 한번쯤 생각하기 바란다.

 
▽ 수필가 전원일 프로필

1955년 경남 김해 한림면 출생
동아대 도시조경학전공(공학석사)
경북대 조경학 전공(박사 과정)
<문예시대> 시부문 신인문학상 등단
시화집 <나무와시인> 발행인
새시대문학 운영위원
- 시집 <시를 노래하는 나무>
<나무들의 푸른 노래> <시가 열리는 나무>
수필집<조경체험수필> <나무병원 >
장편소설<하동역>.<봉화산>
제7회 환경상 수상(부산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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