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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니쉬: 오냐. 잘 있었냐?
송현: 선생님, 사랑의 목적이 무엇인지요?
라즈니쉬: 사랑 자체는 아무 목적이 없다. 사랑은 모든 것의 목적이다. 사랑은 모든 젓의 최종 목적이다. 모든 것이 사랑을 흉해 가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랑은 다른 것의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은 궁극적인 가치이다.
송현: 그런데 사랑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요?
라즈니쉬: 그런 사람은 그 어리석음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 것이다. 사랑은 문제가 아니라 신비다. 사랑은 삶을 통해 살아야 하는 것이지 문제를 풀듯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는 동기가 없다. 사랑은 그저 존재한다. 사랑은 불합리하다. 사랑은 특별한 의미나 목적이 없다. 이런 까닭에 사랑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사랑은 생활용품이 아니다. 사랑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사랑은 저 너머의 세계에서 온 손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이유도 찾아낼 수 없다.
송현: 선생님, 만일 그대의 사랑에서 어떤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면요?
라즈니쉬: 그렇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때 그것은 사랑이 아닌 다른 것임에 틀림없다. 그대가 왜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그대의 사랑은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사랑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앎은 가능하지만 지식은 불가능하다.
송현: 사랑은 언어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입니까?
라즈니쉬: 당근. 사랑은 그대 안에 깊은 맛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언어로 전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누군가 그대의 사랑에 대해 이유를 묻는다면 그대는 당황할 것이다. 한 번 물어보라. 우리 아쉬람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나의 산야신들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선생과 학생 사이의 사랑이 아니다. 이것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이 아니다.
송현: 사랑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란 의미입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사랑은 저절로 일어난다. 사랑은 하나의 해프닝이다. 인위적으로 무엇인가 행할 때는 왜라는 이유를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안에서 그대는 행위자가 아니다. 그대는 주인이고 사랑은 저 너머에서 오는 손님이다. 저 너머에의 세계에서 온 손님이 그대를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그대는 그 손님이 어떻게 온 것인지 이유를 어찌 알겠는가?
송현: 그것은 사랑 안에서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서 그런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사랑은 두려움을 가져온다. 사랑 안에서는 에고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 안에서 그대는 죽어야 한다. 사랑은 이렇게 큰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송현: 죽음을 통해 부활이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그러니 사랑 안에서 죽으라. 그러면 그대는 사랑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다시 똑 같은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대가 사랑으로 충만하다면 지금 이 세상이 신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송현: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사랑을 가르치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사랑이 나의 메시지다. 그러나 나의 방식은 사랑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랑으로서 여기에 존재할 뿐이다. 기억이 촉매 역할을 하여 그대 안에 무엇인가 촉발된다. 그때 그 안에서 무엇인가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대는 임신부가 된다. 처음 임신하는 여자는 매우 두려워한다. 그녀는 고통과 불안 그리고 중압감을 느낀다. 무엇인가 전혀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모른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려고 한다.
송현: 선생님, 사랑 안에서 그대는 임신부가 된다는 의미를 알겠습니다.
라즈니쉬: 새로운 영혼이 태어나려고 하고 있다. 처음에는 힘겨울 것이다. 너무나 생소한 경험이라서 그것에서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서 도망치지 말라. 사랑은 신의 사원이다. 사랑이 일어나면 그냥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라. 만일 그대가 죽어서 사라져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 사랑 안에서 죽어라. 그 안에서 사라져라. 그 도전을 받아들여라. 사랑의 요구에 응답하라. 사랑에서 도망치지 마라 사랑은 신의 사원이다. 사랑이 일어나면 그대로 내버려 두라. 그대는 낸생 처음으로 그 소중한 그 무엇, 신성한 향기를 간직한 그 무엇을 갖게 될 것이다.
송현: 그래서 선생님을 사랑 그 자체라고 말씀하셨군요.
라즈니쉬: 오늘은 내 말귀를 아주 잘 알아듣는구나.
송현: 다른 날도 선생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었습니다.
라즈니쉬: 나는 사랑이다. 내게 가까이 오면 그대 가슴 안에서 무엇인가 춤추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여라. 그대가 속한 사회, 그대가 받아온 교육은 그것을 반대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의 삶이 그것을 반대한다. 따라서 첫걸음을 옮기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계의 영광, 존재계의 광채를 놓치고 말 것이다. 그 찬란한 신비는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드러난다. 진정 진정한 제자는 사랑 안에서 존재한다.
송현: 그러면 저는 선생님과 사랑에 빠진 것이군요.
라즈니쉬: 그대는 나와 사랑에 빠졌다. 왜라고 묻지 말고 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라. 이 경험은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이 경험은 그대를 더 순진무구하게 만들 것이다. 진실한 경험은 그대를 지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순진무구하게 만든다. 진실한 경험은 언제나 그런 식이다. 이곳에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용해되어 사라진다. 그대가 흘러넘칠 때마다 그대가 나누어 줄 때마다 그대는 결코 피로라는 후유증을 모르게 된다. 사실 그대는 더욱더 싱싱하게 힘이 뻗어 나감을 느끼게 된다.
송현: 선생님. 그것은 모든 것이 안정되고 편히 쉬게 된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렇다. 그대는 날개를 달고 하늘을 훨훨 날수도 있다. 그대는 그렇게 가벼워진다. 중력 같은 것은 사라진다. 그 기분은 그대가 새어 나가고 분산되고 에너지를 낭비할 때의 기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송현: 선생님, 이 두 기분을 혼동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라즈니쉬: 그래. 불가능하다. 어떻게 그대가 이 기본을 혼동할 수 있겠는가. 그 기분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마음의 모든 기능은 혼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은 의심을 만들어 낸다. 의심이 존재할 수 있는 곳에 마음은 의심을 만들어 닌다. 마음은 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은 의심을 만들어 낸다. 의심이 존재할 수 있는 곳에 마음은 의심을 만들 어 낸다. 마음은 유형을 만들어 낸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수수깨끼를 만든다. 그때 그대는 물론 마음 그 자체에게 이렇게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송현: 선생님, 그러면 어떻게 하면 혼란을 풀어나갈 수 있습니까?
라즈니쉬: 기분이 다르다는 것은 성적 오르가슴으로 얼마든지 예를 들 수 있다. 만약 그대가 기계적으로 육체만 취하여 사랑하려 한다면 거기에는 함께 나눔도 사랑도 없고 그저 기계적인 습관만이 있을 뿐이다. 의사에게 물어보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몸의 긴장을 푸는데도 좋다고 하기 때문이다. 다른 어리석은 이유 때문에 성교를 한다면 그때 그대는 낭비만 하게 될 것이다.
송현: 그때는 에너지만 새어 나가기 때문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때 그대에게 남는 것은 피로 밖에 없을 것이다. 넘치는 충만감이 아니라 욕구 불만이 있을 뿐이다. 섹스의 물결이 지나가면 그대는 힘이 용솟음치는 것이 아니라 나약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섹스 한 후에 욕구 불만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섹스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송현: 그것은 아무 소용 없는 짓거리이기 때문입니까. 선생님?
라즈니쉬: 그래. 그러나 만약 그대가 상대를 사랑하고 게다가 그대가 흘러 넘쳐 그대의 에너지를 그 사람과 나누려 한다면 그 순간 그것은 전해 성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그대는 성에 대하여 어떤 관념도 가지 있지 않다. 거기엔 그대의 마음이 들어 있지 않다.
송현: 그것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인가요?
라즈니쉬: 그래. 그래서 그대는 그것을 머리속에서 계획하지 않는 것이다. 예행연습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그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것이다. 그대는 행위자가 아니라 행위의 전달매체일 뿐이다. 그대는 무엇인가 그대보다 위대하고 그대보다 높고 그대보다 큰 것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새어 나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때 그대는 평화에 평정의 고요에 도달하게 된다. 그때 그대는 충만감을 얻게 된다. 바로 그것이 오르가슴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거의 오르가슴에 이르지 못한다. 드물게 오르가슴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송현: 선생님, 제가 만든 ss이론의 골자는 10번의 오르가슴입니다.
라즈니쉬: 삼천포로 빠지지 말라.
송현: 선생님. 뻥이 아닙니다.
라즈니쉬: 누가 언제 뻥이라고 했나. 단지 삼천포라고 했다.
송현: 선생님, 삼천포도 아주 좋은 곳입니다.
라즈니쉬: 자네 지금 나에게 삼천포 타령할 참인가?
송현: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즉각 시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라즈니쉬: 조심하게! 진도 나간다.
송현: 예 선생님.
라즈니쉬: 이러한 오르가슴은 성교가 끝난 뒤에도 그대를 약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더 강하게 만들어 질 것이다. 만약 그대가 오르가슴의 흐름으로 넘쳐 흘러 그 에너지를 그저 만나기만 한다면 그대는 신에게 감사드리게 될 것이다.
송현: 일종의 기도가 안에서 솟아오르게 되겠군요.
라즈니쉬: 맞다. 바로 기도다. 그대는 기도와 함께 더할 나위 없는 충만감으로 감사드리게 될 것이다. 그대는 더할 나위 없는 충만감으로 감사드리게 될 것이다. 그대는 나무나 기쁘고 즐거워서 그 순간 전 세계를 찬미하게 될 것이다. 그대 얼굴 그대의 몸 그대의 마음 모든 것이 고요함 속에 묻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실존의 충만으로 하늘의 축복이 그대를 둘러싸게 될 것이다. 기도는 이와 갈은 순간에 솟아오른다. 감사도 이와 같은 순간에 솟아오른다. 사람은 이와 같은 순간에 종교적이 된다.
송현: 아아.
라즈니쉬: 나에게 있어서 깊은 사랑의 오르가슴 속에서 종교가 솟아올랐다. 그런 까닭에 나에게 있어서는 탄트라가 궁극의 종교요 마지막 언어로 남아 있다. 왜냐면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 지금껏 도달한 것 중에서 가장 높은 일체성의 결정이며 거기에서 에고가 흩어져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송현: 보통 사람은 존재하지만 그에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까?
라즈니쉬: 그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 가로막히지 않고 흐름이 될 때, 그때 비로소 에너지가 굽이쳐 흘러서 그대 그가 바로 수많은 에너지 교차로의 중심이 될 것이다. 바로 그 에너지의 통로가 될 때 에고는 사라진다. 에고는 돌과 갈이 매우 단단하다. 그러나 사랑 속에서는 에고의 돌맹이는 모두 녹아내린다. 오늘은 여기까지!
송현: 선생님, 감사합니다.(www.songhy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