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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구름 걷혀…이래저래 행복한 하루”

<土 曜 隨 筆> 수필가 이순영, ‘청하 가는 버스’

수필가 이순영 | 기사입력 2009/04/03 [16:00]
수지가 맞았다느니 팥죽을 맛있게 사먹었다느니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어떤 할머니는 젊은 새댁이 와서 고기이름을 묻기에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르쳐 주고 맛있게 요리해 먹는 방법까지 알려줬다고 한다.

대구에서 무정차버스를 타고 포항터미널에 도착해서 이십 여 분을 기다렸다가 청하로 가는 버스를 탔다. 승객은 나를 포함해서 두 사람뿐이다. 기사님은 승객을 확인하는 듯이 차 안을 휙 둘러보고 운전석에 앉아 라디오를 켰다.

경쾌한 노래가 오후의 나른함을 말끔하게 씻어준다. 버스가 출발했다. 승강장이 있는 곳마다 행선지를 안내하는 방송이 있어 길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리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는 사이 오호광장을 지나 죽도시장 앞에 이르렀다.

할머니들이 커다란 고무통을 하나씩 들고 차에 올랐다. 생선비늘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새벽시장에 생선을 담아 왔던 통인가 보다. 비린내를 몰고 오는 할머니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기사님이 꼭 이웃집 아저씨 같다.

오늘 장에 시세가 어떠했으며, 금(金)은 잘 쳐서 받았는지, 점심은 맛있는 것 사 드셨는지를 묻자 할머니들의 대답도 인정이 넘친다. 고무통을 장바닥에 내리자마자 어떤 부부가 와서 통째로 한꺼번에 다 팔고 한복점에 앉아 놀다가 차 시간 맞추어서 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수지가 맞았다느니 팥죽을 맛있게 사먹었다느니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어떤 할머니는 젊은 새댁이 와서 고기이름을 묻기에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르쳐 주고 맛있게 요리해 먹는 방법까지 알려줬다고 한다.

오늘 번 돈으로 병원비와 약값주고 나니 겨우 차비만 남았다는 할머니도 있다. 일흔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과 할머니 다섯 분이 차안에 오르자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어판장의 활기를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라디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기사님이 라디오 소리를 크게 조절했다. 가늘게 흘러나오던 음악이 멈추고 뉴스가 시작되었다.

잠자던 아이가 사라졌는데 아파트에 설치한 무인카메라를 되돌려 본 끝에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나가는 장면이 밝혀졌고, 조사결과 자백을 받았단다. 재혼에 지장이 될까봐 아이를 없애려했다는 것이다.

비통한 뉴스가 버스 안에 퍼졌다. 여기저기서 하이구, 죽일 눔, 미친 눔 하며 한숨 섞인 말이 차 안에 가득 번지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베락맞아 뒈질 눔 아이가, 시상에…’ 하며 호통을 친다.

뉴스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다. ‘군에 가는 아들에게 외투 하나 사 입히고 싶어 어머니가 백화점에서 남의 지갑을 훔쳐 경찰에 잡혔는데 정상이 참작되어…….’ 아나운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잘 한 거여, 아들한테 잠바를 얼마나 사 입히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하며 마치 당신들의 손자와 며느리의 일이라도 되는 양 안타까워한다.

오늘 아침에 신문에서 본 내용이다. 김밥장사를 하며 키운 외아들이 추운겨울에 훈련소에 가게 되었는데, 아들에게 그동안 따뜻한 옷 한 번 사 입히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가게 수십 곳을 다녔지만, 너무 비싸서 사지 못하고 돌아 나오던 길이었다.

마침 어떤 여인이 현금이 많이 든 지갑을 가방에 넣는 것을 본 순간 그런 일이 저질러졌으며 현장에서 경찰에 잡혔다. 구속되어 징역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징역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는 것이다.

아들을 사랑했던 어머니의 그 마음을 지나치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가. 비싼 물가 탓에 귀한 외아들 외투 하나 좋은 것 사 입히지 못하는 현실을 어찌 어머니 탓만 할 수 있을까. 라디오에서는 한미fta, 6자회담, 대학입시제도에 관한 소식이 이어지고 모두들 묵묵히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차창밖에는 봄바람이 아지랑이 피운다.

조금 전에 타고 온 무정차버스안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라디오를 켜둔 것은 같았으나 열 명 남짓 한 승객들이 저마다 혼자씩 따로 앉아 잠을 자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라디오를 듣는지 안 듣는지 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라디오 소리만 나지막하게 버스 안에 서성거릴 뿐이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방향에는 커튼으로 빛도 가렸었지만 농어촌으로 다니는 버스 안은 동네 경로당 같다.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서 기쁜 이야기와 슬픈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때로는 같이 걱정도하고 울기도하는 식구 같다. 이를테면 움직이는 작은 동네 같다고나 할까. 모든 세상이 온정이 넘치는 이 버스 안만 같았으면 좋겠다.

희로애락을 포장하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세상. 그렇게 하는 이야기를 순수하게 들어주고 마음을 나누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청하로 향해 달린다.

길가에는 노란 개나리가 띄엄띄엄 피어있다. 병아리 부리 같은 꽃잎이 오늘따라 아프게 보인다. 몹쓸 아빠의 손에 끌리어 하늘나라로 떠난 가엾은 아이와 가난한 어머니의 아픔이 치유될 수는 없을까.

봄은 왔지만 진정한 봄은 언제쯤 오려나. 버스를 타고 재래시장에 다니는 노인들의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피어나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 그런 날이 오면 덩실덩실 춤을 추리라.


▽ 수필가 이순영 프로필

경북 포항 출생
계간 문학세상 수필부문 신인상(등단)
동서커피문학상 수필부문 수상
보리수필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포항지부 회원
포항문예아카데미회원
글 항아리 독서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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