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계열 건설사 엠코가 과도한 ‘실적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나머지 업계 상도의마저 외면하는 무리한 사업 확대로 논란을 빚고 있다. ‘시공권 가로채기’ 잡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정서적 ‘본향’인 울산에서조차 하도급 업체 부도로 ‘공공의 적’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안 된다’는 민자사업에서도 출혈경쟁을 마다하지 않는 등 ‘실적 쌓기’에 혈안이 돼 있다. 엠코의 이같은 원죄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1월2일 오전 8시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이곳에서 치러진 신년식에는 현대차그룹 오너를 비롯해 정의선 기아차 사장, 정태영 현대캐피탈·현대카드 사장 등 친인척과 김동진(현대모비스), 김창희(엠코), 이여성(현대로템) 부회장 등 그룹 수뇌부들이 비장한 각오로 자리를 함께 했다.
마이크 앞에서 입을 뗀 현대차그룹 오너는 ‘판매확대’만을 강조했다. 액면 그대로 보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자동차 산업의 현실을 감안해서 그룹 주력인 현대차와 기아차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룹 오너의 이같은 메시지는 전 계열사 사장단의 가슴 깊이 와닿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자동차 계열사는 판매대수를 늘리고, 건설사는 시공·수주 물량을 확대하라’는 소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셈이다. 다들 알아서 ‘실적’으로 답하라는 강력한 메시지인 것이다.
통상 시무식에서는 당해년도 목표치를 제시한 것이 관례라면 관례. 하지만 초유의 경제불황 앞에 구체적 목표치는 제시되지 않았다. 현대차·기아차 수뇌부의 고민도 컸겠지만 자리를 함께 했던 다른 계열사 사장단의 부담감 역시 이들 못지않았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특히, 그룹의 전폭적 지원으로 자리를 잡은 엠코의 경우 오죽했으랴.
정몽구 회장 2009 신년사 ‘판매확대’ 강조는 “실적으로 답하라”는 메시지?
현대차 그룹 물량지원 덕분에 ‘엠코’ 승승장구…시공능력 31위에서 23위로
2008년 c등급 건설사 된서리 ‘엠코’에는 호재…‘먹잇감’ 낚으려 무리수 두기
엠코, 그룹물량 떠안고 고속성장
엠코의 고속성장은 국내 광고대행 업계와 견주어 비교할 수 있다. 국내 광고대행사 중 최고로 치는 제일기획은 삼성그룹 물량을 등에 업고 고속성장을 해왔다. 삼성이 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광고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크기에 그룹 물량만 고스란히 소화해도 업계 1위는 따놓은 당상격이었다.
유통·소비재 전문 롯데그룹의 대홍기획도 과거 그룹 물량이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롯데백화점·롯데제과 등 유통·소비·제조 업체가 많은 그룹 특성상 광고물량은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대홍기획은 업계에서 꾸준히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해태그룹의 계열사였던 코래드도 해태제과·해태음료 등 계열사 물량이 있었기에 업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때문에 국내 그룹사 대부분은 자체 물량을 소화할 광고대행사 하나쯤은 갖고 있다.
엠코도 바로 그런 식이다. 현대건설·대우건설·삼성건설 등 유수의 건설사들이 즐비한 국내 건설시장에서 엠코의 위상은 초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을 배경으로 한 까닭에 어렵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전폭적인 그룹의 물량지원 덕분에 승승장구한 대표적인 건설사로 회자되고 있다.
정부가 건설사들의 공사실적과 경영상태, 기술능력, 신인도 등을 종합평가해 매년 7월 말 공시하는 ‘2008 시공능력평가’에서 한 해 만에 31위에서 23위로 8단계 수직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대차그룹에서 발주한 공장을 도맡아 온 것이 가장 큰 몫을 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현대·기아차 관련 생산시설이나 해비치리조트 사업 등에서 실적을 쌓아온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룹 물량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이같은 급격한 성장세를 시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니다.
혜동건설 부도 해법 안 내놔 ‘정서적 본향’ 울산에서마저 ‘공공의 적’ 몰리기도
김 부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사업실적의 85%가 그룹사업”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엠코의 성장에 그룹물량이 기여한 점이 크다는 것을 공석에서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안정적인 그룹물량 몰아주기가 초기 엠코 안착의 성공요인이었지만 업계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자체 사업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절실했다. 그룹에 의존하는 사업구조로는 안정적 성장과 외형 쌓기를 이뤄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엠코는 본격적으로 자체사업 강화에 나섰다.
엠코는 지난 2006년 서울 강동구 하일동 강일택지개발지구 1·3단지 아파트 건립 사업 수주에 성공하면서 관급공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주택사업 수주에서도 엠코는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평.
재건축·재개발·지역조합 등 주택조합사업의 시공권 확보에 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건설사에 대한 신용위험성평가에서 등급이 공개된 것은 엠코에게 아주 반가운 ‘호재’가 됐다.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으로 지정된 건설사들이 된서리를 맞게 되면서 이들이 맡고 있는 사업장이 엠코의 주된 표적이 됐다. 아울러 조합원과 시공사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사업장도 훌륭한 먹잇감이었다. 이를 계기로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실적지상주의’ 시공권 가로채기 잡음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 올 상반기 엠코는 각종 구설에 시달려야 했다. 잇단 시공권 가로채기로 업계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 실적 지상주의가 빚은 비애다.
엠코는 신동아건설이 맡았던 인천 도화동의 지역조합주택사업장의 시공사로 교체됐고, 서울 한강 이남 지역 최대 조합주택사업장인 동작구 상도동 134지역주택조합사업의 시공사로 교체 선정되는 ‘개가’를 올렸다. 이곳 조합원들은 지난 3월 중순 임시조합총회를 열고 시공사를 기존 한진중공업에서 엠코로 전격 교체했다.
이 지역에는 총 1559세대가 들어서는데 2001년 당시 한진중공업 건설부문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측과 조합이 조합사업비 지출 자금의 지급을 놓고 마찰을 빚으면서 결국 시공사 교체까지 이르게 된 것. 현대차그룹 계열사라는 후광효과를 등에 업은 엠코가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이다.
엠코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서 이수건설이 맡은 지역주택조합 시공권에 대해서도 입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지역은 303세대가 들어서게 되는데 시공사인 이수건설이 c등급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자 조합차원에서 시공사 교체 움직임을 보였고, 이 틈을 타 엠코가 시공권 확보에 나선 것이다.
엠코가 이처럼 건설업계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무리하게 시공권 가로채기에 나선 것은 바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엠코의 배경에 현대차그룹이 버티고 있지만 2002년 창업한 풋내기 업체로서는 상위 5개사가 사실상 독점하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도급사업에서 승부수를 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적으로 손쉬운 시장진입이 가능한 지역주택조합사업에 주력하면서 중소형 건설업체들을 모기업 후광효과 등으로 밀어붙여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엠코가 싸움이 버거운 대형사를 피해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조합주택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선의의 경쟁을 통한 ‘획득’이라면 재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엠코의 시공권 획득은 사실상 ‘가로채기’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평이다. 정당한 수주활동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경쟁사가 오랜 세월 공을 들여 확보한 시공권을 막판에 가로채 가는 엠코식 사업확장은 업계 도의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발등 찍힌 ‘울산’…지역도 등돌린 ‘엠코’
엠코는 본거지인 울산에서조차 외면받을 처지에 내몰렸다. 엠코의 하도급 업체인 혜동건설 부도로 울산시 건설시장이 마비될 상황에 처했지만 해법을 내놓지 않으면서 ‘민심’을 잃고 만 것이다.
올 초 울산지역 건설업체인 혜동건설이 부도처리 되면서 울산지역 건설시장이 요동쳤다. 혜동건설이 당시 울산지역 건설업계에 지급한 어음은 최대 500억원 규모. 100여 개 영세 건설업체의 줄도산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문제는 ‘울산’에 지역적 정서가 큰 엠코가 이 과정에서 나 몰라라 했다는 점. 두산건설의 경우 혜동건설 도산 직후 하도급 업체의 임금체불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고 밝히는 등 ‘지역민심’을 챙긴 것과 다른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혜동건설의 부도 이면에는 엠코의 저가 발주가 자리하고 있다는 게 지역민심이고 보면 엠코가 이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점이 지역민의 반발을 야기한 것이다.
울산은 현대자동차공장·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의 주력 기업들이 모여 있는 현대가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다. 때문에 지역민들에게 엠코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손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혜동건설 부도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엠코는 그동안 현대가가 쌓아올린 브랜드 이미지를 순식간에 깎아 먹고 만 것. 소탐대실의 전형을 보여준 꼴이 됐다.
엠코의 실적 쌓기는 돈이 안 된다는 민자사업을 대상으로 해서도 계속되고 있다. 사실상 출혈경쟁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실적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엠코는 한국토지공사가 발주한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 일원 강원 원주혁신도시 2공구 단지조성 공사에서 사업자로 최종 낙찰됐다. 원주혁신도시 2공구 단지조성사업은 총 151만㎡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 예정가격은 552억6000만원이지만 엠코는 예정가 대비 67.88% 수준에 불과한 375억1133만원으로 공사비를 입찰했다.
토공이나 주공·조달청 등 정부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관급사업의 경우 예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70∼75%이 적정선으로 통용된다. 엠코의 초저가 낙찰로 이제 예가대비 낙찰비율은 60%대로 낮아지게 된 것. 이는 대형부실 공사의 싹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엠코가 전방위적으로 사업확대, 실적 쌓기에 나선 까닭은 전체 실적의 85%에 달하는 그룹 의존도를 줄이고 대형 건설사업 입찰에 참여하기 위한 사전pq 심사 통과 요건을 갖추기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된 것이다.
업계 23위로 부상한 만큼 현대차 그룹 후광이 아닌 ‘엠코’ 브랜드로 대형 건설사업 등을 유치, 자체 사업역량을 강화해 보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행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공격적 개발사업, 해외투자 ‘강행’
엠코의 공격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목표를 정하고 돌진하는 것이 고 정주영 회장의 강인한 실천력을 빼닮은 듯할 정도다.
엠코는 해외사업에도 의욕을 갖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 하이퐁에 1조7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복합리조트 건설 공사에 들어갔지만 이 역시도 최근 세계 경제환경을 고려할 때 우려를 자아냈다. 해외진출의 여세를 몰아 엠코는 2월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지상 22층 규모의 오피스 전용 빌딩을 건립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엠코의 문어발식 사업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사업확대 과정에서 대형 건설사는 물론, 중소형 건설사가 적지 않게 피해를 보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과연 엠코가 그 많은 사업을 무난히 소화해 낼 수 있을지, 아니면 더 큰 희생을 강요하는 부실의 씨앗을 잉태하는 전주곡이 될지 동업자로서 진정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